역사의 교차로에서
김달수, 진순신, 시바 료타로 지음, 이근우 옮김 / 책과함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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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읽기’는 어떻게 스며들어야 좋을까
 [책읽기 삶읽기 89]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이 있어 문학과 문화가 한껏 발돋움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거꾸로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한껏 일구도록 뒷받침이 될 만하구나 싶어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김달수와 진순신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나눌 수 있구나 싶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김달수와 진순신 같은 사람이 문학과 문화를 마음껏 즐기며 나눌 수 있을까요. 글쎄, 모를 노릇이지만, 고개를 갸웃갸웃 젓습니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일조선인한테 손그림을 억지로 찍도록 내몹니다. 일본 정부는 내놓고 재일조선인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합니다. 아니, 내놓지는 않으나 여느 일본사람한테는 잘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 앉아 아주 단단한 틀과 굴레로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해요. 곰곰이 돌이키면,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한테만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사람 가운데 부락민이라 하는 사람을 따로 갈라 계급과 신분에 따라 푸대접이나 막대접을 하는 흐름이 아직 남았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손그림 안 찍기 운동을 벌일 때에 자그마치 8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운동을 함께했습니다. 이러한 ‘재일조선인 손그림 안 찍기 운동’을 한국에서는 거의 모르쇠로 여기거나 아예 모르기 일쑤입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책을 놓고 불온도서이니 무어니 하고 딱지를 붙이는 한국 정부입니다. 그리 대단할 일 없는 불온도서 목록을 보며 성을 내는 한국사람입니다.

 하나하나 살피자면, 나라에서는 불온도서를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도권 교육을 합니다.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배우면서 꿈나래를 즐거이 펼치도록 돕지 않아요. 입시지옥입니다. 대학졸업장 없으면 바보로 삼는 수렁입니다. 아이들한테 참고서와 교과서 말고는 쥐어 주지 않도록 내모는 나라에서 불온도서 목록이 없다면 외려 아리송한 셈입니다.

 곧, 이 나라 여느 사람은 정부나 국방부나 이런저런 곳에서 불온도서를 뽑든 말든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맺든 말든 마음쓸 까닭이 없습니다. 내 삶을 참다이 아끼고 싶다면, 신문을 놓고 텔레비전을 놓으며 인터넷까지 놓아야 해요. 내 삶을 착하게 사랑하고 싶다면, 제도권 학교를 떠나고 대학졸업장 아닌 낫·호미·쟁기를 쥐어야 해요. 내 삶을 곱게 북돋우고 싶다면, 자가용을 버리고 아파트에서 떠나야 해요. 하늘에서 책을 읽고 햇볕에서 책을 읽으며 흙에서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해요.


.. 한국인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으로 한글이 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문자죠 … 농업 제국이 되면, 즉 중국화하면, 한문이라는 문장이 따라옵니다. 한문은 중국 문명 자체였으므로 한문에 능숙해지는 일에, 즉 중국 문명화하는 데 열중하게 되고요. 그래서 정복 왕조이면서도 종국에는 한족화하는 것이죠 … 한국의 성(성씨)이 더욱 복잡한 이유는 천한 성 일곱 개 혹은 다섯 개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좁은 사회에서 서로 차별하고, 그것으로 질서를 지켜온 것이죠 ..  (시바 료타로/22, 51∼52, 74쪽)


 제사나 차례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성황당이나 장승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시는 넋이 대수롭습니다. 섬기는 얼이 대단합니다.

 죽은 사람 앞이든 산 사람 앞이든, 이러한 틀에 따라 이런저런 말씀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몸짓을 보여야 섬기거나 모시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이어야 하고, 사랑에서 샘솟는 몸짓이어야 해요.

 자가용 몰아 어디론가 마실을 다녀야 즐거운 만남이 아닙니다. 물·바람·햇살 좋은 데로 놀러다녀야 무언가 ‘주말·휴일·휴가를 즐겼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살아가는 곳이 좋은 물·바람·햇살일 수 있어야 해요. 날마다 지내는 터에서 좋은 물·바람·햇살을 누리면서 내 먹을거리를 내 흙땅에서 일굴 수 있어야 해요.


.. 한국은 이 가족주의 탓에 복잡하게 뒤얽히게 되었지요. 문명주의가 될 수 없었던 것은 가족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아직도 강하게 살아 있다는 데에 놀랐어요. 우선은 친척, 그 다음은 지연입니다. 같은 경상도 출신이라거나 전라도 출신이라는 식이죠. 일본에도 동향 의식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번거롭지요. 한국은 유교가 매우 번성했고, 또 그 때문에 사회가 정체되었다고 해요. 우리는 그것에 반발을 느끼지만, 실제로 조선은 유교에 사로잡혀 있는 면도 있어요. 유교는 정체 철학이기 때문에 시바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교에서는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갖지 않으면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 중국이라는 나라는 다양성이 너무 많아서 이른바 단일한 가치관 따위는 없는 나라입니다 … 조선에서는 유교를 통해서 오직 한 가지의 절대적인 가치관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더구나 제자인 주제에 본가인 체하고, 어쨌든 융통성 없이 꽉 막혀 버렸어요 … 한국에서는 일원적인 가치관만 있었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요 … 한국의 경우에는 부임해 온 관료가 착취를 조금만 덜 해도 선정으로 여겼지요 ..  (김달수/64∼65, 82, 91쪽)


 우리 아이들은 제 아버지처럼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책을 건사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시골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큰도시를 찾아 시골마을을 떠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나무 만지는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배 타는 일을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짝을 만나 시골마을에서 아이들 낳아 조용하면서 조촐히 꾸리는 살림을 이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서고 나면, 이런 꿈 저런 길 모두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아이들한테는 대학바라기 한 가지만 남습니다. 대학바라기 한 가지만 남을 때에 이 아이들로서는 돈을 더 많이 받는 쇠밥그릇 구멍을 찾는 데로 몰릴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아이들 저희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로 걸어가도록 하자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부터 어버이 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을 걸어야 해요. 돈벌이 하느라 집 바깥에서 오래도록 많은 나날을 보내야 하는 어버이라면, 아이들 또한 집 바깥에서 떠돌며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삶에 젖어들 뿐이에요.

 사랑이 낳는 사랑이거든요. 돈이 낳는 돈이거든요. 꿈이 낳는 꿈입니다. 기계가 낳는 기계예요.

 손을 써서 살아가면 크든 작든 내 손을 써서 일굽니다. 기계를 쓰며 살아가면 크든 작든 기계를 장만해서 전기나 기름 먹이는 쪽으로 흐릅니다.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고 거니는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노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다니는 어버이는 아이들하고 눈 한 번 살가이 마주칠 겨를조차 없습니다.


..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들이 급성장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장군은 한족 이외의 인물이 좋습니다. 그래서 위구르나 티베트, 고구려 출신들을 등용하게 되었죠 … 중국에서는 재산을 거의 똑같이 나누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점점 가난해집니다 … 유교는 역시 근대화의 장애물입니다. 윤리적인 측면뿐이라면 문제가 적겠지만, 질서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운신하기 힘들 정도로 체제를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중국에서도 태평천국의 난은 반유교 투쟁입니다 ..  (진순신/72, 96, 156쪽)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꽃을 갈무리한 《역사의 교차로에서》(책과함께,2004)를 읽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일찌감치 일본판으로 장만했습니다. 일본말로 읽을 줄은 몰랐으나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이 책 일본판을 장만하며 참 기뻤습니다. 이러다가 2004년에 비로소 한국말로 옮겨질 때에 더 기뻤습니다. 무척 늦었으나, 한국에서도 이만 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문화가 알려지는구나 생각했어요. 이제라도 한국땅에서 홀가분하면서 넉넉한 삶꽃 삶열매를 바라보는 눈길이 트이는 길잡이가 마련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교차로에서》를 한국말로 옮긴 이근우 교수는 세 사람 이야기꽃이 썩 마땅하지 않다고 옮긴이 말에 밝힙니다. 해묵은 이야기에다가 잘못된 이야기까지 많다고 붙입니다. 보탬말(각주)을 잔뜩 달아 이런저런 역사를 제대로 밝히려 했다는데, 글쎄,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역사 공부를 하자면서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 뿌리인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저마다 어떠한 삶바탕에서 삶꽃을 피우는 길을 걸었는가를 돌아보면서, 세 나라 젊은이가 부디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운 삶길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왜 이 대목은 짚지 않을까요. 왜 이 대목을 짚으려 하지 않나요.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유교’라 하는 종교 아닌 종교가 세 나라를 얼마나 옭죄는가를 거듭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근우 교수는 유교라 하는 종교 아닌 종교를 종교로 여기는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이 대목에서 참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그러면, 옮긴이부터 해묵고 부질없으며 뒤틀렸다고 여긴 이 책을 한국말로 옮기지 말아야지요. 출판사에서는 다른 사람한테 이 책을 옮기도록 맡겼어야지요.

 “침략(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에 맞서서 이쪽에서는 저항하고 싸웠다,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웅주의적인 발상이죠. 그래서는 상대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아요(김달수/190쪽).”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삭여야 합니다. “전쟁(태평양전쟁)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는 작은 예는, 나처럼 자전거도 겨우 타는 덜 떨어진 사람에게 탱크에 대해서 가르친 일이다(시바 료타로/205쪽).”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읽으며 가누어야 합니다.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세 사람은 ‘역사는 이렇다’라든지 ‘역사 참모습은 이렇다’라든지 ‘이 역사는 이렇게 읽어야 맞다’고 내세우지 않습니다. 임금님 삶부터 여느 사람 삶까지 찬찬히 훑으면서 이러한 삶이 오늘 우리한테 어떤 빛이요 꿈이며 사랑인가를 밝히려 애씁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여는 데에 ‘역사읽기’는 어떻게 스며들어야 좋을까 하는 대목을 살피려 힘씁니다.

 좋은 책 하나는 좋은 출판사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이야기 하나는 좋은 글쟁이나 번역쟁이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눈길로 좋은 삶을 읽는 좋은 책즐김이는 좋은 꿈과 좋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좋은 땀방울을 좋은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4344.12.1.나무.ㅎㄲㅅㄱ)


― 역사의 교차로에서 (김달수·진순신·시바 료타로 글,이근우 옮김,책과함께 펴냄,2004.7.22./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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