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책읽기
부산마실을 나온 네 식구가 보수동 헌책방골목 이곳저곳을 걸어서 다닌다. 책을 보고 가게를 보며 사람을 본다. 이른아침 아직 세 식구가 달콤하게 잠을 자는 동안 아버지 혼자 조용히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본다. 여관에서 가볍게 밥을 먹은 다음 기저귀가방만 들고는 밖으로 나온다. 보수동 골목집으로 이어지는 끝자락 빵집 못 미쳐 새로 문을 연 헌책방 앞에 선다. 이곳은 열쇠 만드는 일을 함께한다고 적힌 헌책방이다. 헌책방 이름은 ‘천지서적’.
무척 낯익은 이름이요, 열쇠를 함께 만든다는 말마디를 보고는 얼른 들어가고 싶다. 설마 서울 성수동에 있던 헌책방이 이곳으로 옮겼을까.
둘째를 품에 안고 걸어가는데, 헌책방 일꾼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본다. 아, 맞구나. 서울에서 헌책방을 하시던 분이 맞다.
이제 부산 보수동 헌책방 일꾼이 된 〈천지서적〉 사장님은 이야기한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내 가게도 아니고, 치우라 할 때에 비켜 줘야 하는데, 여기로 와서 내 집을 사고 가게를 열었으니까요, 앞으로 오래오래 이곳을 지키면서 할 겁니다.”
2011년 5월에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쪽 끝자락에 살림집을 마련하고 골목길 쪽으로는 가게를 내셨단다. 좋다. 참 좋다. 작은 헌책방골목 작은 헌책방이 좋다. 작은 헌책방에서 일하는 작은 일꾼이 좋다. ‘내 가게’로 장만해서 헌책방골목을 지킬 수 있는 삶이 좋다. 헌책방골목 한켠을 이곳으로까지 이어 책손 발걸음을 맞이하는 삶이 좋다.
서울에서는 달삯 내느라 빠듯할 수밖에 없다면, 부산에서는 집을 살 수 있을까. 부산에서 문화를 하거나 예술을 한다는 적잖은 사람들이 부산을 버리고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가 ‘부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기관지 2011년 9월호 머릿글’로 적힌다. 보수동 헌책방골목 문화관 7층에 있는 책쉼터에서 이런 글 하나를 읽는다. 이러면서 헌책방 〈천지서적〉 일꾼을 나란히 생각한다. 부사문화재단 사람들은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을 ‘문화인’이나 ‘예술인’으로 여길까.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이 ‘부산 문화를 일구’거나 ‘부산 예술을 지킨’다고 느낄까.
부산일보사에서 1980년대 첫머리에 실었던 글을 그러모아 1983년에 내놓은 《고향》이라는 두툼한 책을 두 권 본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깃든 작은 헌책방 〈글벗 2〉와 〈천지서적〉에서 이 두툼한 책을 본다. 부산과 경상남도에서 태어나 자랐던 사람 가운데 ‘어른이 되어 이름이나 돈이나 힘을 날린 여러 사람’들이 어린 나날을 돌이키면서 ‘오늘(1980년대 첫무렵)’하고 견주는 이야기가 촘촘히 실린 책이다. 1983년에 부산일보사에서 펴낸 이 책(나는 사진책이라고 느낀다)에 실린 사진은 1983년 언저리 ‘눈부시게 달라지고 새롭게 꽃피우는 경제성장’으로 해맑게 보인다는 부산 모습을 비춘다.
스물여덟 해 지난 2011년 눈길로 1983년 모습을 어림한다. 2011년에서 1983년을 되새길 때에 이 같은 부산 모습은 어떤 삶자취로 아로새길 만할까. 부산일보나 부산시나 부산문화재단이나 부산땅 예술인 문화인 교육인 정치인 경제인 체육인 …… 들은 1983년에 나온 《고향》이라는 두툼한 책을 알까. 떠올릴까. 값어치나 빛줄기를 헤아릴까.
부산에 닿아 만화쟁이 호연 님한테 전화를 건다. 호연 님은 요즈막에 내놓은 만화책 《사금일기》(애니북스)를 놓고 ‘팬 사인회’나 ‘독자만남’이나 여러 일로 몹시 바쁘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 이야기꽃을 살짝 피운다. 만화쟁이 호연 님은 이야기 끝자락을 “제가 지킨 부산을 즐겁게 구경해 주세요.” 하고 맺는다.
참말 그렇다. 부산은 호연 님이 지켰다. 호연 님 같은 사람들이 지켰다. 이름이 하나도 알려지지 않던 나날에도 부산에서 살았고, 이름이 조금 알려진 나날에도 부산에서 살아가는, 호연 님을 비롯한 숱한 사람들이 부산에서 살면서 부산문화와 부산예술을 알알이 일군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들은 부산에 깃들며 부산사람을 마주하면서 부산다운 헌책방을 지키는 동안 부산 책삶을 알뜰살뜰 보살핀다. 서울을 버리고 부산에서 책읽기 향긋한 내음을 나누는 헌책방 〈천지서적〉이 사랑스럽다. (4344.9.24.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