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기저귀와 천기저귀


 종이기저귀를 썼다면,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오는 동안 똥이불이나 똥바지나 똥기저귀를 빨래하느라 온몸과 두 손에 똥내가 밸 일은 없으리라 느낀다. 천기저귀를 쓰기 때문에 날마다 몇 차례씩 똥을 만지작거리면서 내 몸뚱이와 손에는 아이들 똥내가 짙게 밴다. 종이기저귀를 썼다면, 종이기저귀 값을 걱정하고 종이기저귀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겠지. 천기저귀를 쓰기 때문에 오줌을 누면 금세 알아채고 똥을 눌 때에도 곧바로 느낀다. 아이 낯빛으로도 알고 기저귀 모양새와 빛깔을 보고도 안다.

 둘째 오줌기저귀를 갈기 무섭게 둘째는 똥을 뽀지직뽀지직 하고 눈다. 참 시원하게 눈다. 시원하게 눈 만큼 푸지게 쏟아진다. 백날을 조금 지난 둘째는 벌써 10킬로그램이 넘기에 무릎에 눕히기만 해도 무릎이 저리거나 팔이 힘들다. 첫째를 낳은 뒤 얻은 흔들걸상에 둘째를 가끔 눕히면서 무릎과 팔을 쉬는데, 바로 이 흔들걸상에 눕혀서 기저귀를 갈 때에 똥을 누었다.

 흔들걸상을 빨래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또 빨아야 한다. 아무렴, 똥이 질펀하게 흐르는 흔들걸상에 누가 앉을 수 있는가. 마침 방바닥에 불을 넣는 가을비 흩뿌리는 썰렁한 날씨이기에, 따순물을 틀어 똥빨래를 한다. 오늘은 음성 할머니 태어나신 날이라 낮에 할머니 댁에 다녀오며 인사를 했다. 그래서 둘째를 옆지기하고 갈마들며 안고 읍내를 다니느라 팔이 몹시 저리다. 똥빨래를 하며 이 저린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그래도 따순물을 쓸 수 있어서 빨래는 잘 된다. 즐거이 마치고 방 한켠에 옷걸이에 걸어서 넌다. 가을비 흩뿌리지만, 틈틈이 두어 장씩 오줌기저귀를 빨아 널기에 차근차근 마른다. 이 똥기저귀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다 마르겠지.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이동안 쌓인 오줌기저귀를 빨아서 밤새 마르도록 하고. (4344.9.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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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9-20 01:49   좋아요 0 | URL
주로 눈팅하고 추천만 눌렀는데 오늘은 댓글을 남기네요.
천기저귀를 쓰고 손수 빨래하시는 아빠는 참 드문데 참 좋은 아빠십니다!^^

숲노래 2011-09-20 03:43   좋아요 0 | URL
손빨래나 천기저귀는 하나도 대단한 일이 아닌데,
이 일조차 맞아들이지 못하면서 살아가기에
다른 삶자락을 헤아리지 못하는 분이 많아요.
아이를 생각하면서 내 삶을 생각하는 길이 열리거든요.

hnine 2011-09-20 05:00   좋아요 0 | URL
해본 사람으로서 정말 대단하십니다.
퇴근해서 욕실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 기저귀 손빨래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돌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저는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래도 해보았으니 벼리아버님의 이런 글에 공감이라도 할 수 있네요.
둘째가 벌써 10kg을 넘어섰군요! 와, 우량아인걸요? ^^

숲노래 2011-09-20 05:26   좋아요 0 | URL
젖을 얼마 안 먹는데,
아이 체질이 금세 커지는가 봐요.
아니면, 알맞게 먹으며 알맞게 받아들이는 몸인지 모르고요.

회사원으로 지내는 삶일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종이기저귀를 써야 해요.
그렇다고 집일을 하는 사람한테
천기저귀 쓰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면서
이 아이가 앞으로 '어버이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
다른 병치레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돈을 버는 바깥일'을 줄이거나 그만두면서
아이들 어린 나날 세 해, 곧 서른여섯 달을
아이한테 고스란히 바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천기저귀를 쓸 수 있어요.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서로 돕거나 서로 나누거나
하루 스물네 시간을
아이한테 바쳐야 비로소 천기저귀를 쓰는 보람이 있구나 싶어요.

그래서, 저희 식구는
종이기저귀 쓰는 사람을 나쁘게 여기지 않아요.
종이기저귀를 쓸 만큼 너무 바쁘거나 힘들게 사는구나 하고 느껴요.

감은빛 2011-09-20 13:20   좋아요 0 | URL
이 글 읽으면서 새록새록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첫째아이 때는 제법 오랫동안 천 기저귀를 썼어요.
한동안 육아휴직을 받아서 여유가 있었고,
복직 후에도 밤늦게까지 똥기저귀, 오줌기저귀를 빨았습니다.
솔직히 손빨래하고, 삶은 후에 빨랫대에 널고나면 새벽 한두시쯤이어서,
무척 피곤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기를 위한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었어요.

그런데 둘째 때는 오래 못하겠더라구요.
일단 일터가 바뀌면서 더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고,
밤늦게 기저귀를 빠느라 잠을 며칠 못잤더니,
도저히 버티지를 못하겠더라구요.

역시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돈을 벌려면
(그 전 일터는 시민단체였기에 자본주의 질서를 벗어나 있었어요.)
자본주의에 걸맞는 소비생활을 할 수 밖에 없구나 싶었어요.

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숲노래 2011-09-20 14:24   좋아요 0 | URL
회사와 돈과 체력이 요즈음에는 크게 영향을 미쳐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러니까 종이기저귀라는 물건이 나오기 앞서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인 사람도
바쁜 사람도 느긋한 사람도
모두 천기저귀만 썼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도시에서 여러 가지를 누리며 살아가는 동안
아이들한테는 마땅히 천기저귀를 쓰던 삶을 잊거나 버리면서
너무 힘들다는 핑계를 붙이고 말아요.

나중에 돌아보면서 힘들다 말하지만,
처음부터 '내 일터'부터
'우리 아이 기저귀를 빨아야 할 겨를을 내야 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달라지도록 힘써야 하거든요.

'내 입사조건'을 회사에 말해서
회사가 달라지도록 해야 올발라요.
이제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이라든지 보육시설이라든지
이런 데에까지 마음을 쓰는데,
이렇게 마음을 쓰는 까닭은
바로 '여느 우리들이 회사에 내 입사조건과 내 노동조건'을 바랐기
때문이에요.

아무쪼록, 이제 감은빛네 아이들은 많이 잘 컸겠지요?
종이기저귀를 썼더라도
어버이 사랑을 담은 손길로 돌보았으면
아이들은 따순 사랑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