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새 살림집을 찾으러 춘천으로 갔다가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얼핏설핏 시끄러이 벅벅대는 라디오를 듣다. 시외버스 일꾼은 웬만해서는 라디오를 틀지 않는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은 으레 코 자기 마련이라, 잠잘 때에 귀 따갑지 말라며 조용히 다니곤 한다. 그런데 이날 따라 시외버스 일꾼은 라디오를 틀었고, 라디오 소리는 내 귀에까지 들린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으면서 멀미를 참는다. 이날 내가 탄 시외버스 일꾼은 120킬로미터 가까이 될 듯한 빠르기로 달리면서 찻길을 자꾸 바꾸는 바람에 속이 아주 미식미식 부글부글 끓고 골이 띵하다. 많은 사람 태우고 달리는 길을 좀 보드라이 몰 수 없는가. 좀 귀 안 아프도록 조용히 달릴 수 없는가. 어지럽고 메슥거려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차라리 얼른 생극에 닿기를 바라는데, ‘노동운동가 …… 천만 노동자의 …… 고인 …… 전태일 ……’ 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를 창문에서 뗀다. 문득 무슨 느낌이 스친다. 설마, 아니 설마가 아닌 생각 하나가 스친다. 그렇구나. 틀림없이 그렇구나. 이제 어머니 한 분이 당신 사랑스런 아이 곁으로 가는구나. 먼저 떠난 아이가 바란 꿈을 이루려고 온몸과 온마음과 온삶을 바친 넋이 이제 마음을 고이 쉬면서 눈물로 젖는구나.
창밖을 바라본다. 멀미 기운은 가라앉지 않는다. 머리는 그저 어지럽다. 가을 볕살 받으며 천천히 누렇게 익는 나락이 바람이 흩날린다. 눈물이 핑 돈다. 내 어머니가 머잖아 하늘나라로 간다 할 때에도 이렇게 눈물이 핑 돌겠지. 내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하늘나라로 갈 때에 이처럼 눈물이 젖겠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든한 살까지 살아갈 수 있으면 앞으로 열 몇 해쯤 뒤가 되겠지.
세 사람 이름이 나란히 떠오른다. 세 사람은 세 나라에서 많은 이들한테서 어머니라는 이름을 들었으리라.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다나까 미찌꼬, 이소선. 《마더 존스》와 《마더 죤스》, 《어머니의 길》, 《미혼의 당신에게》 네 가지 책은 모두 새책방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고요히 잠든 씨앗은 언제쯤 싱그러이 새잎을 틔울 수 있을까. (4344.9.4.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