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책읽기


 철모르던 때에는 가위로 미역을 잘라서 불린 다음 끓였습니다. 철이 조금 들 무렵 손으로 미역을 끊어서 불린 다음 곱니다. 미역국은 ‘끓일’수록이 아니라 ‘골’수록 맛이 한결 우러납니다.

 옆지기 어머님이 댁으로 돌아가시고 닷새가 됩니다. 닷새를 보내며 저녁나절 기저귀 빨래를 하고 미역을 새로 끊어 불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애 엄마 몸풀이(산후조리)를 집에서 홀로 맡아서 하는구나’ 하고. 첫째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둘째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옆지기를 먹여살리는 일이든, 이렇게 홀로 맡아서 한다고 새삼 느낍니다.

 집일을 잘하든, 집살림을 잘 못 꾸리든,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맡아 꾸리는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을 더 튼튼히 돌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거나 맡을는지 모르지만, 남이 돕기를 바란다거나 옆지기가 하루아침에 기운을 차려 주먹 불끈 쥐며 모든 집일과 집살림을 짊어져 주기를 꿈꿀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튼튼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똑똑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맑아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착해지지 않아요. 사람은 하루아침에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아요.

 이듬날 아침에 새로 골 미역국을 헤아리면서 두부와 버섯을 잔뜩 지집니다. 이듬날 아침에는 호박을 잔뜩 지지자고 생각합니다. 날푸성귀랑 참외랑 토마토를 잘 썰어 무침을 하나 하자고 생각합니다.

 하루일로 고단한 몸을 드러누우면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돌리지 못하고 그저 땅바닥에 찰싹 들러붙습니다. 흙하고 아주 가깝구나 하고 느낍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흙하고 더 가까이 들러붙다가는 아주 흙하고 하나가 될 테지요.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가늘게 내다가 생각 한 자락을 더 하고는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밥을 먹고 새옷을 갈아입으며 잠자리에 드는데, 왜 사람들은 날마다 먹는 밥이랑 날마다 입는 옷이랑 날마다 지내는 살림집 이야기를 글로 안 쓸까 하고 생각을 살짝 합니다. 밥하거나 빨래하거나 살림하는 나날이란 글로 적바림할 만한 값이 없을는지요. 밥하기 빨래하기 살림하기는 책으로 엮일 만한 뜻이 없을는지요.

 바쁘거나 힘들거나 아프다면 빨래기계를 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빨래기계는 사람들 몸과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사람이라면 제 옷은 제 손으로 빨아서 입어야 합니다. 빨래를 도맡을 집일꾼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나 여자가 집일을 도맡는 집일꾼이지 않습니다. 내 밥은 내가 차리고 내 옷은 내가 빨며 내 살림집은 내가 돌보아야 합니다. 밥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남자란, 사람 구실을 못하는 아버지이거나 남자입니다. 밥할 줄 아는 어머니와 여자는, 사람 구실을 얼마나 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4344.6.12.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1-06-12 07:22   좋아요 0 | URL
갓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 빨래 기계 없이 빨래를 해대기란 참 쉽지 않더군요. 저도 한동안 아이 옷은 손빨래로 빨아 입혔는데 정말 아이고 소리가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요.

주로 새벽에 글을 쓰시지요? 아침에 서재에 들어오면 늘 된장님 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숲노래 2011-06-12 07:34   좋아요 0 | URL
새벽 아니면 글을 쓸 수 없거든요 ^^;;;;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을 하고 아이랑 부대끼고 나서... 겨우겨우 밤에 살짝 눈을 붙였다가 밤새 둘째 똥기저귀 갈고 빨며 하다가 끼적끼적 합니다.
첫째가 태어난 날부터 하루에 두 시간 넘게 잔 날이 거의 없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