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책도 엉터리로 읽지만, 글도 엉터리로 쓴다. 내가 좋아하고 더러더러 만나는 번역가 형은 알라딘서재에 글을 바지런히 올리다가 '덧없는 댓글 다툼'이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고 '제대로 된 흐름을 못 잡는 샛길 빠지기'인가를 느끼며, 그동안 올렸던 모든 느낌글을 지우고, 댓글을 다 막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번역가 형처럼 그런 '덧없음'을 알면서도 '댓글 막기'는 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까닭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덧없는 댓글싸움을 벌이는 이들 스스로 부끄러운 노릇 아닌가? 왜 바보들은 스스로 바보인 줄을 깨닫지 못할까? 

 

이렇게 글을 쓰는 나는 바보이다. 나는 나대로 바보이고, 덧없는 댓글을 다는 이들은 그들대로 바보이다. 저마다 제가 꾸리는 삶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외곬로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삶에 따라 바라보는 매무새이다. 

 

자가용에 매여 있는 사람한테 자전거 이야기를 해 보아야 무엇 하리? 

국어사전 한 번 제대로 펼쳐서 꼼꼼히 읽고 새긴 적 없는 이한테 우리 말 이야기를 한들 무엇하리? 

책삶을 깊이 파헤치지 않는 사람한테 책 이야기를 들려준들 무엇하리? 

새책방과 헌책방과 도서관이 어찌 얽혔는가를 살피지 못하는 이한테 헌책방 이야기가 무슨 쓸모? 

우리가 먹는 밥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데, 무슨 생태고 환경인가? 

 

귀가 있으면 듣는다고 했지만, 오늘날 사람들한테 얼마나 귀가 뚫려 있을까? 눈 안 달린 사람이 없을 텐데, 다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알라딘서재를 기웃거린다든지, 나 같은 책바보가 끄적이는 바보스런 글에 매달려서 왈왈 멍멍 컹컹 짖는 그 철없는 댓글싸움을 건다든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조선일보를 보며 스스로 멍텅구리가 되는 삶보다, 바보 최종규가 쓰는 글을 읽으며 '넌 참 바보로군' 하고 들먹이는 삶이 더없이 불쌍하고 딱하다. 

 

바보 최종규조차 칭찬할 만한 책을 내도록 애쓸 노릇이지, 댓글로 이러쿵저러쿵 해 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며칠째 '팔리 모왓'이 쓴 <잊혀진 미래>를 읽고 있는데, 이 책은 띄어쓰기 맞춤법 교정교열이 어마어마하게 엉터리이지만, 책에 담은 줄거리는 더없이 훌륭하다. 그런데, 지지난주인가 느낌글을 올린 <청춘을 읽는다>는 띄어쓰기나 맞춤법 교정교열을 놓고는 몇 군데 잘못을 빼고는 참 잘 엮었다. 그러나 줄거리에서는 몹시 안타까웠다. 

 

우리는 왜 겉꾸밈처럼 속가꾸기는 못할까? 우리는 어이하여 겉차림처럼 속다지기는 안 할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지만, 나는 보기 좋은 떡은 먹지 않는다. 속내가 좋은 떡이라야 먹는다. 보기만 좋은 떡은 빛깔과 냄새로도 엉터리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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