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마을 언덕받이에서 (2021.11.6.)

― 서울 〈카모메 그림책방〉



  10월 끝자락에 살짝 서울을 들르고서 고흥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서울로 마실을 가서 이제 마지막날입니다. 오늘 돌아가면 한 달 즈음 시골에서 숨죽인 채 지낼 생각입니다. 이레 동안 서울에서 장만한 책으로 한 달을 누린달까요.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더라도 책은 틈틈이 살 텐데, 낮에 버스를 타기까지 틈이 비어 어떻게 할까 망설이니 방배동에서 금호동으로 슬쩍 건너가면 〈카모메 그림책방〉에 닿습니다. 이러고서 전철로 버스나루로 오면 돼요.


  어제그제 책집마실을 하며 장만한 책을 미처 시골로 못 보내었기에 등짐도 꽉 차고, 손짐으로도 가득합니다. 한가을에 땀을 쪽 빼면서 책짐을 안고 진 채 버스에 전철을 탑니다. 이음목(환승역)이 너무 길다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금호동에 닿아 언덕받이를 천천히 오릅니다. 멀잖은 언덕받이여도 걷다가 쉬고 다시 걷다가 쉽니다. 이제 책집을 만납니다. 등짐하고 책짐은 앞에 부리고서 마을을 둘러봅니다. 마을이 감싼 책집을 보고, 책집이 품은 마을을 헤아립니다. 포근하고 볕이 잘 드는 한켠에 곱게 자리를 잡았다고 느낍니다.


  그림책집에는 그림책을 보러 옵니다. 이미 읽거나 아는 그림책이 있고, 미처 못 읽거나 지나친 그림책이 있습니다. 다 다른 그림책은 다 다른 손빛으로 태어났고, 다 다른 눈빛이랑 만나면서 이야기로 자라납니다.


  온누리를 새롭게 가꾸는 밑힘은 호미 한 자루에서 나오고, 곁에 놓는 그림책에서 나란히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삽자루 아닌 호미이기에 들숲을 돌보는 손길로 잇는다고 느낍니다. 딱딱한 책(인문책)이 아닌 부드러운 그림책이기에 누구한테나 마음을 틔우는 씨앗을 문득 묻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푸름이도 그림책을 읽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도 어르신도 그림책을 펴기를 바랍니다. “백 살까지 읽는 책”이기보다는 “누구나 읽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나이를 따지기보다는 살림을 헤아리는 그림책으로 마주하기를 바라요.


  마을에 책집이 있어 이 마을이 빛난다면, 마을에 그림책집이 있어 이 마을이 사랑스럽지 싶어요. 마을에 그림꽃책집(만화책집)이 있으면 이 마을은 신바람이 날 테고, 마을에 빛꽃책집(사진책집)이 있으면 이 마을은 맑게 노래가 흐를 만하지 싶습니다. 저마다 다른 책집이 저마다 새롭게 마을을 밝힙니다.


  아기하고도 읽을 그림책이면서, 고을지기(지자체장)나 나라지기(대통령)한테도 건넬 그림책입니다. 젊은이가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에 곁에 놓을 그림책이요, 두 어른이 사랑으로 눈을 빛내면서 어버이로 거듭나는 길에 함께 누릴 그림책입니다.


ㅅㄴㄹ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 글·존 클라센 그림/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2014.8.15.)

《숲의 요괴》(마누엘 마르솔·카르멘 치카 글·그림/김정하 옮김, 밝은미래, 2021.10.30.)

《다시 그곳에》(나탈리아 체르니셰바 그림, 재능교육, 2015.9.21.)

《칠기공주》(파트리스 파발로 글·프랑수와 말라발 그림/윤정임 옮김, 웅진주니어, 2006.6.26.)

《아기 오는 날》(이와사키 치히로/편집부 옮김, 프로메테우스, 2003.7.30.)

《개가 무서워요!》(볼프 에를브루흐/박종대 옮김, 사계절, 1993.12.10.)

《바깥은 천국》(로저 메인 외/김두완 옮김, 에이치비 프레스, 2021.4.15.)

《비행기 모자》(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0.)

《우산 버섯》(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0.)

《부엉이 탑》(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7.)

《얼음 거인》(에르빈 모저/김정희 옮김, 온누리, 2007.8.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쎄인트saint 2021-12-1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숲노래 2021-12-17 04:05   좋아요 1 | URL
기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즐거이 글꽃 지피시기를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