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 이반 일리치



  처음 이반 일리치 님을 책으로 만나던 때를 떠올립니다. “왜 이렇게 어렵지?” 싶더군요. 그때에는 잘 몰랐으나, 이반 일리치 님이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이 하나같이 ‘꾼(전문가)’이더군요. ‘꾼(전문가)’이기에 누구나 알아듣고서 쉽게 배우고 즐거이 따르다가 새롭게 삶을 짓도록 북돋울 만한 우리말로 가다듬지 않았어요. 이분이 쓴 책은 “Disabling Professions”라지요. “망가뜨리는 놈들”이나 “망치는 녀석들”쯤으로 옮기면 뜻·결·실마리가 확 다를 뿐 아니라, ‘꾼(전문가)’이 온누리에서 뭘 하는가를 한결 빠르게 알아채도록 이끌 만하리라 봅니다. ‘꾼이 쓰는 말’을 ‘아이들·시골 할매 눈높이’로 풀어내어 이반 일리치 님을 다시 읽어 보면, 이분은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님’이 되어야 한다고 속삭이는구나 싶습니다. ‘꾼이 아닌 님’입니다. 잘난꾼이 아닌 살림님이 될 노릇입니다. 살림을 가꾸는 손으로 하루를 짓고, 살림을 돌보는 눈으로 생각을 일구고, 살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무를 사귈 적에 비로소 온누리에 아름다이 빛이 드리운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여겨요. 책만 곁에 둔대서 배우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책에 서린 숨결을 들여다보고 아이랑 시골 할매하고 나누려는 자리에 설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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