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가 들려주는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5
최종규 지음, 호연 그림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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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지은책

- 도란도란 노래하는 말꽃을 온누리에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최종규 글

 호연 그림

 철수와영희

 2011.10.9.



두 아이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저는 이 푸름말, 삶말, 사랑말을 보듬는 매무새를 이 책에 하나둘 담으려 합니다. 잘 따라와 주시면 좋겠어요. 따라오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오셔요. 너무 벅차다면 한참 쉬어도 되고, 다른 데를 들렀다가 다시 찾아와도 돼요. (8쪽)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보면 으레 ‘마음이 바로 말’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갑니다. 마음은 입을 거쳐 말로 드러나고, 얼굴을 거쳐 눈짓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은 손을 거쳐 살림으로 드러나고, 발을 거쳐 나들이로 드러납니다.


  마음을 감출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감추어 거짓을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아닌 척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감추면서 거짓을 말하거나 아닌 척하는 말을 한다면, 스스로 힘들고 듣는 쪽도 고단하겠지 싶어요.


  마음을 담아내는 말인 터라 스스럼없이 엮어서 들려줄 노릇이고, 스스럼없이 들으면서 받아들이고, 삭이고 달래어, 다시 새로운 말씨로 주고받을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끼고 우리 삶을 사랑하며 우리 삶을 살찌우는 결대로 새로워지거나 다시금 태어납니다. (19쪽)


말이란 말재주가 아니라, 내 삶을 일구는 하루하루를 곱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글이란 글솜씨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루는 어제오늘을 예쁘게 나누는 이야기예요. 입으로 읊어 말이고, 손으로 적어 글입니다. 말을 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합니다. (27쪽)



  2011년 한글날에 맞추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라는 푸른책을 선보였습니다. 이 책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인천을 떠나면서 글머리를 잡았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마지막 삶을 아로새긴 충주 무너미마을에 머물는지, 우리 책숲이며 살림집을 건사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던 춘천으로 갈는지, 아니면 아직 디딘 적이 없으나 앞으로 아이들이 숲을 온마음으로 품을 만한 두멧자락으로 갈는지, 이렇게 헤매던 때에 첫머리를 여미었어요.


  큰아이를 2008년에 낳았으니 아직 큰아이는 아버지가 여민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이때에 생각했지요. 어버이로서 이제껏 얼마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살아왔는지 모르되, 잘잘못을 어버이 스스로 털거나 씻으면서, 오늘부터 하나씩 처음부터 새로지을 삶길을 말 한 마디에 얹는 이야기를 짓자고요.


  새롭게 쓰는 책 첫 줄을 쓰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을 담는 씨앗인 말을 다루는 책에 ‘동무를 아끼는 눈물’이라는 숨결을 담고 싶었어요. 두 줄째를 쓰면서 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징검돌인 말을 짚는 책에 ‘이웃을 사랑하는 웃음’이라는 빛을 싣고 싶었어요.



머리로 이 생각 저 생각 쥐어짜서 글을 써서는, 내가 읽어 보아도 따분하며 싱거운 글만 쏟아지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꾸밈없이 한 줄 두 줄 적바림하노라면, 내가 내 글을 읽으면서 빙긋 웃거나 뚝뚝 눈물을 흘려요. (48쪽)



  언제나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요, 좋은 말이 없고 나쁜 말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나타내는 말일 뿐입니다. 거칠다 싶은 말, 이른바 막말이라면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바람에 마구잡이로 날뛰는 아픈 마음’이 묻어납니다. 곱구나 싶은 말, 이른바 사랑말이라면 ‘스스로 다스릴 줄 알면서 어엿하고 참한 마음’이 감돕니다.


  이래저래 보면 ‘얄궂은 한자말’이라든지 ‘엉성한 일본 말씨’라든지 ‘어설픈 영어나 번역 말씨’를 되도록 가다듬을 노릇이라는 이야기를 펴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해야 바른 말씨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을 저 말로 고치자는 뜻이 아니지요. 어느 말씨를 스스로 골라서 쓰든, 그 말씨에 우리 마음을 사랑이라는 숨결을 담으려고 해보자는 뜻입니다.



착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착하게 말을 합니다. 참답게 생각하며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참다이 글을 써요. 곱게 생각하며 고이 살아가고픈 사람이라면 고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79쪽)


‘한문이라는 글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하도록 가로막혔던’ 여느 사람들이 펼친 문학은 책으로 적바림되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이 즐기는 노래 또한 책에 적바림되지 않았어요. (126쪽)



  이제는 나라에서도 비닐자루는 쓰지 말자고 하지요. 이제는 웬만한 찻집에서는 유리나 질그릇 잔에 담아 주려고 하지요. 이제는 플라스틱 그릇을 안 쓰는 사람이 부쩍 늘지요. 그런데 있지요,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처음 내놓은 2011년뿐 아니라 큰아이를 낳은 2008년에, 또 제가 한창 이오덕 어른 글·책을 갈무리하던 2004년, 이에 앞서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어린이 사전을 엮던 2002년, 이러한 때에 숲살림을 말하거나 숲살림을 고스란히 살아가자는 말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혀를 차는 분이 참 많았어요. 뭘 그리 번거롭게 구느냐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 다 쓰는데 너희는 왜 일부러 힘들게 사느냐고도 해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기저귀를 손수 빨아서 대주었습니다. 빨래틀조차 안 쓰고 이불을 빨았어요. 아니, 빨래틀을 집에 안 놓았지요. 유리병을 챙겨서 들고 다니고, 천바구니를 여럿 챙겨서 담았으며, 커다란 등짐에 이 살림 저 살림 빼곡하게 짊어지며 다녔습니다. 아이들 천기저귀하고 옷가지하고 포대기에다가 물병에다가 이모저모 건사하노라면 80리터 등짐으로 모자라 으레 다른 등짐을 한둘 더 들고서 움직입니다. 아이를 안고서 살짝 저잣마실을 하는 길도 마치 ‘한 달쯤 여행하는 사람’ 같은 차림이 됩니다.



‘우아(優雅)하다’가 우리말인 줄 잘못 알던 적이 있습니다. ‘우아미 가구’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아’란 ‘아름다움’을 한자로 옮긴 낱말이요, ‘미’란 ‘아름다울 美’라는 한자입니다. ‘우아미’란 ‘아름답디아름다움’이랄 수 있지만,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은 겹말이에요. (145쪽)


흔히들, ‘立場’이라는 한자말만 일본 한자말로 여기며, 이 말을 안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入場’이라는 한자말 또한 우리말이 아니에요. 우리말은 ‘들어옴’입니다. (150쪽)



  2008년에 태어난 큰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읽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쓴 책을 2011년에 내놓았으니, 2021년쯤이면 드디어 큰아이가 이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읽을 철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읽혀도 좋으나 먼 앞날을 그리면서 미리 마련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말이란 씨앗이니까요. 과일나무가 되는 씨앗을 보면 참으로 작거든요. 작디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떡잎을 내놓고 줄기를 올리며 어느덧 가지로 뻗고 새잎에 꽃망울을 맺기까지 적어도 열 해는 더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버이나 어른이란 자리에서 살아가며 아이들한테 살림꽃이라는 말꽃을 물려주려면, 어버이나 어른이란 사람은 적어도 열 해를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살아야 할 노릇이란 뜻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지 않아요. 열 해라는 나날을 아이가 자라는 결을 지켜보면서 어버이도 나란히 자랄 노릇입니다.


  그냥그냥 읽고 지나간다면, 제가 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이든 이오덕 어른이 쓴 《우리 글 바로쓰기》이든 ‘교양 인문책’으로 삼아서 ‘독후감 한 자락 쓰고 끝’이 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글을 짚는 이러한 책은 ‘한두 벌 읽고 느낌글을 써서 끝날 수 없’어요.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내처 읽을 책이 아니거든요.


  마음을 드러내는 씨앗이 될, 마음에 새롭게 심을 씨앗으로 삼을, 이러한 말글을 짚는 책은 한꺼번에 길게 읽을 수 없어요. 하루에 몇 쪽씩, 또는 하루에 한 쪽씩 읽으면서 되새겨야 비로소 마음으로 새롭게 스밉니다. 그러니까 이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는 ‘어른이나 푸름이 누구라도 열 해라는 나날을 두고서 조금씩 삭혀서 하나씩 맞아들이고, 스스로 더욱 키우기를 바라는 뜻’을 얹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말은 꽃이 되기도 하지만 화살이 되기도 합니다 …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고, 말 한마디로 동무를 죽입니다. 말 한마디로 서로를 아끼면서, 말 한마디로 서로를 깎아내립니다. 생각하면서 쓸 말입니다. 사랑하면서 나눌 말이에요. (192쪽)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가 쓰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웃한테 쓰는 마음이 제 입을 거쳐서 말로 태어납니다. 제가 아이들하고 나누는 생각이 제 손을 거쳐서 글로 자라납니다.


  훌륭한 이웃님이라면 어느 책이든 한두 벌 읽고는 그 책에 흐르는 모든 알맹이를 하루아침에 짠 하고 펼쳐 보이겠지요.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이 한자말을 저 쉽거나 부드러운 말로 고치는 일보다는, 다섯 살 어린이 눈높이에서 사랑스레 생각을 슬기로이 밝히는 낱말은 무엇일까 하고 살피면서 말씨를 가다듬으면 좋겠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어른 인문책 말씨’ 같은 한자말이나 영어를 외우기보다는, 우리가 외우지 않아도 살림새하고 숲터에서 태어난 수수한 말씨에서 한결 너르면서 깊은 생각을 길어올리면 좋겠어요.


  생각해 봐요. ‘바다’는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하늘’은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짓다’나 ‘그리다’는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우리는 텃말(토박이말·순우리말)만 가려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지피는 말을 헤아려서 쓸 노릇입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 말씨를 아무렇게나 쓰기에 잘못이 아니에요. 거의 모든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 말씨로는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슬기롭게 지펴서 사랑으로 풀어낼 빛이 될 씨앗이라는 말하고는 동떨어지기 쉬울 뿐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영어 배워 돈 벌기’에 빠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을 널리 쓰던 공무원이 공직을 주름잡았고, 새로 권력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은 미국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일본말 쓰기’에서 ‘영어 쓰기’로 낼름 갈아탔어요. 이러는 동안 일본 말투 “무슨무슨 下에”를 “무슨무슨 아래”로 어설피 적비람했습니다. “서로의 동의 하에”나 “일본의 지배 아래서”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는 모두 똑같이 일본 말투예요 … “서로 이야기해서 헤어지기로 했다”라든지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로 다듬습니다. (220쪽)



  말이란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한국말은 한국이라는 삶자리에서, 영어는 영국이나 미국이라는 삶자리에서, 일본말은 일본이라는 삶자리에서 태어나요. 모든 나라는 날씨이며 숲이며 들이며 바다이며 땅이며 하늘이며 다 다릅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다 다른 말을 써요.


  날씨도 땅도 철도 살림도 같다면 아마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말을 쓰겠지요. 자, 보세요. 오늘날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대구나 고흥이나 양양이나 춘천이나 진주나 보성이나 과천이나 의왕이나 수원이나 거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자동차를 타며,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가게에서,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누리지 않나요? 이러면서 똑같은 신문에 방송에 인터넷을 들여다보지 않나요?


  이러한 오늘날에는 사투리가 없어요. 고장말이 없고, 마을말이나 집말이 없습니다. 어디에 가나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에 얽매인 따분하고 딱딱하며 메마른 ‘국립국어원 서울 표준말’만 도사립니다.


  우리는 고작 쉰 해 앞서까지만 해도 고장뿐 아니라 고을에서도 말씨가 갈렸고, 마을에서까지 말씨가 다 갈렸어요. 왜냐하면 고개 하나만 넘어도 날씨가 다르고, 물맛이 다르고, 나무나 풀이 다르고, 깃드는 새나 짐승이 다르거든요. 우리가 쓰는 말은 바로 ‘삶터에 따라 다르게 태어나서 자라는 마음결’이니, 다 다른 마을에서는 다 다른 마을말(사투리)이었다면, 이제 다 똑같은 도시 얼거리가 되면서 ‘다 똑같은 서울 표준말’로 바뀌면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렸니 맞느니 하는 데에서 옥신각신하고 맙니다.



한자문화권이란 없습니다. 한글문화권 또한 없습니다. 영어문화권도 없습니다. 한자란, 글입니다. 한글이란, 글입니다. 글이 문화가 되거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글이란, 문화나 삶을 담는 그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240쪽)


외국말은 외국말을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살피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은 살림말입니다. 삶말인 우리말입니다. 살림말이요 삶말인 우리말은, 언제나 이곳에서 내 이웃하고 동무하고 살붙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말입니다. (245쪽)



  말을 바르게 쓰는 길이란 마음을 바르게 쓰는 길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바로쓰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바르게 가누면서, 마음을 사랑으로 일으켜 봐요. 생각을 기쁘게 추스르면서, 생각이 노래가 되어 흐르도록 살림을 지어 봐요.


  왜 쪽빛 바다라는 말을 썼을까 하고 생각해 봐요. 왜 앉은뱅이꽃이란 말을 썼나 하고 헤아려 봐요. 왜 꿈을 그린다 하고 말하나 하고 돌아봐요. 왜 사람·사랑·숲·슬기·새롭다 같은 낱말이 ㅅ으로 여는가 하고 곱씹어 봐요.


  우리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 만해요. 우리는 우리 두 손으로 하루를 가꿀 만해요. 우리가 쓰는 더없이 수수하거나 투박한 말 한 마디가 바로 우리 마음이며 생각이며 꿈을 싱그러이 북돋우는 바탕이 되어요. 도란도란 노래하는 말꽃을 온누리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가슴에 고이 품도록 징검다리가 되고 싶기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2011년에 선보였고, 어느덧 열 해가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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