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지만 확실한 행복' 하루키씨의 에세이를 보면 자주 나오는 구절이고 또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우리는 일상 속 소소한 작은 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심한듯 애교있는 고양이, 동료들과 오가는 친절한 인삿말, 아슬아슬하게 버스나 기차에 안착하는 스릴, 웃음을 유발하는 어이없는 실수 등등 마음을 조금 긍정적으로 편하게 먹고 일상을 대하면 분명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책은 내게 항상 확실한 행복을 준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루키씨의 에세이를 보면서 그의 은근한 유머에 때론 미소짓고, 때로는 혼자서 박장대소하며 웃기도 한다. 

 

 이 책은 하루키씨의 가벼운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대체적으로 심각하지않고 가볍고 유쾌하게 힘을 빼고 썼다고 밝히고 있다.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때로는 온힘을 다해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하루키씨를 보면서 나는 무엇이 행복인가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P.S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그리고 리뷰를 쓰고 북플의 마니아 점수를 조금 획득하는 것도 내게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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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별3개 정도 주고 싶지만, 평균 평점이 너무 높은 것 같아서 별2개를 준다. 2.5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혼란스럽다. 나는 보통 평점이 후한 편이다. 그리고 책은 저자와 독자가 반반씩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에 이런 평점 밖에 못 주었고, 다른 사람들의 평점은 왜 그렇게 높은 것일까??

 

 일단 책의 첫번째 장은 강신주씨의 강연으로 시작되는데... 처음부터 나의 비판적 사고능력에 강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 냉장고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했다가 주부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데... 강신주씨의 주장은 냉장고가 재래시장을 붕괴시켰고, 대재벌들이 우리에게 자본을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 중 하나라는 것이다. 논거는 냉장고에 음식과 식재료을 오랜기간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집 앞 재래시장을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분명 재래시장에 가는 횟수는 줄어 들었겠지만 총 양까지 줄어들었을까? 오히려 냉장고에서 보관하다 안 먹고 버리게 되는 음식물까지 생각하면 전체 식료품양은 늘어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횟수는 줄어들었더라도 전체 양은 늘었으니 재래시장에 큰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재래시장을 붕괴시킨 것은 대형마트가 아닐까? 그리고 강신주씨는 냉장고의 실용성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나 고마움이 없는 것일까? 과연 그의 집에는 냉장고가 없을까?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냉장고를 없애자는 주장을 결코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냉장고가 자본을 각인시키는 효과적인 매체라는 주장도 어폐가 있다. 그렇게 따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 심지어 책도 결국 자본의 매체다. 물론 강신주씨가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TV에서 나오는 냉장고 광고일 것이다. 소비재가아닌 가치재로 전락해버린 냉장고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애꿋은 냉장고에게 그 죄를 뒤짚어 씌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유괴범과 자본주의를 결부시킨 이야기와 사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 인간적인 유대를 나누지 못하는 것을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고, 아담스미스는 인간을 동물로 봤다는 주장 등 정말 납득하기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해하는 자본주의와 강신주씨가 이해하는 자본주의의 정의 사이에도 심각한 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이버에 자본주의의 정의를 쳐보니 아직 논박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없다고 나온다. 아마도 강신주씨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정의한 자본주의나, 16세기 이후로 시작된 상업자본주의를 거쳐 산업혁명이후 산업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그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란 결국 아주 오래전부터 기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이미 사유재산이 있었고, 경제활동과 시장경제가 존재했고, 노동력의 상품화도 이뤄졌었다. 그때는 자본주의가 없었던 것일까? 이미 아주 오래전에 사유재산이 생겨났고 물물교환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전된 것이 자본주의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으로 금융을 이야기하는데, 그보다 더 폭넓은 의미에서 물물교환도 자본주의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나싶다.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이것은 내 주장일 뿐이니...

 

 강신주씨는 인간적인 유대의 약화, 사회적인 범죄 등등을 모두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지만, 나는 결국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관점으로 돌리고 싶다. 물론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 그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돈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소크라테스같은 사람이 있었고, 진리 따위보다 돈을 추종하는 사람또한 있었다. 이것은 결국 시대를 넘어 영원히 되풀이되는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든지 배부른 돼지가 되든지는 개인의 선택일 다름이다. 물론 사회환경이 그 개인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분명 모든 것을 사회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회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강신주씨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재밌게 읽고 유익했는데, 이 책의 강연 내용은 정말이지, 이 사람이 철학자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강연들도 전반적으로 기대이하였다. 이태수씨의 강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만스러웠다. 논리성도 떨어지고 통일성도 떨어지고 때로는 독선과 편견으로 느껴졌다. 내가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차고, 글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얻을 것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이런 점이 참 안좋은 것 같다.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것들을 교정할 수 있을텐데. 간만에 내가 수용할 수 없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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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 2014-12-30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처 받지 않을 권리`는 정말 유익하게 읽었는데 요즘은 강신주 박사가 하는 이야기들에 동의하기 힘들어요. 극단적이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생각의 한계인 건지...
 

 누군가 내게 딱 한 가지 조언만 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책을 많이 읽어라."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상관없이 나는 그 사람에게 책을 읽어라고 조언하고 그리고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책을 추천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이 있고, 그리고 지혜가 있다. 다른 수만가지 조언을 책이 대신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공부하는 법을 책으로 배웠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도 책에서 배웠다. 꿈을 꿔야 한다는 것도 책에서 배웠다.

 

 

 책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거기에는 일정량의 정보가 담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을 성숙시켜나간다. 지식은 사색과 성찰의 재료가 되고 거기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의 의식을 재구성하고 만들어나간다. 책은 자기자신을 성장시키는 굉장히 좋은 도구 중에 하나이다. 수많은 위인, 유명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 무수히 많은 증언은 생략하겠다.)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책을 읽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또한 책을 읽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링컨은 우연한 기회에 법전을 얻게 되었고, 거기에서 그의 인생이 심하게 격변한다. 물론 링컨은 원래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난으로 인해서 책을 볼 돈도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책을 빌려서 읽고 돌려주기 전에 몇 번을 보고 메모하고 암기했다. 물론 책만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체험이다. 아무것도 체험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크게 변화시킬 체험을 겪게되면 변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든 그 체험을 자기자신 속으로 끌어안기 위해서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 운명적인 경험, 이런 것들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책 속에는 만남이 있다. 그리고 또한 책 속에는 경험이 있다. 책을 통해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이야기들을 만나고, 또한 위대한 사상가들, 위인들, 스승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책을 통해 무수히 많은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 소설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사랑에 빠진 청년이 되어도 보고, 혁명가도 되어보고, 변호사, 사진작가, 예술가도 되어볼 수 있다. 가본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보고, 겪어본 적 없는 시대로도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만남, 무수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하나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물론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처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깟 책에 파묻친 책벌레가 되지 말고, 진짜 세상을 진짜 인생을 살라구요." 맞는 말이다. 책은 현실과 다르다. 이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책에서 배운 것을 세상 속에서 활용할 줄 모른다면, 책을 읽었는데 읽기 전과 똑같다면 그것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논어를 읽고도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면 그것은 논어를 읽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이있다. 그렇다. 책을 읽고 변한게 없다면 책을 안 읽은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자기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책은 시작이다. 책이 끝이 아니다. 책은 우리의 스승일 뿐이다. 스승이 아무리 열심히 잘 가르쳐준다고 해도 배우는 사람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리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운다고해도 배우는 것이 없을 것이다. 같은 선생 밑에서 공부한다고해도 학생마다 각각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것은 선생의 차이가 아니라 분명 학생의 차이일 것이다.

 

 책은 시작일 뿐이다. 결코 책에 모든 해답이 있고, 모든 가르침이 있고, 모든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자기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책은 목적지로 가는 방향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목적지까지 편안히 데려다주진 않는다. 책은 지도가 되고 이정표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그 지도를 보고 길을 떠나는 사람은 책이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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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31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ueman 2014-12-2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읽기만 했지 생각은 덜 한것같아 부끄럽네요ㅠ.ㅠ

고양이라디오 2014-12-27 18:22   좋아요 0 | URL
전 제 글을 다시 읽으니 부끄럽네요ㅠ.ㅠ 저도 무분별하게 읽기만 하고 생각은 많이 안하는 건 아니지 반성하게되네요ㅠㅋ
 
도서관 여행 - 혼자가 익숙해지는 자유
권희린 지음 / 네시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 한 번 가볍에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기분좋은 책이다. 작가가 참 유쾌하고 솔직하다. 그리고 친근하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도 항상 가던 도서관만 가지 않고, 여러 도서관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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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man 2014-12-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본 책이네요^^
 
책수련 - 나를 깨치고 인생을 바꿀 삶의 혁명 같은 독서 수련
김병완 지음 / 동아일보사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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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완작가의 신작 중에 한 권이다. 한 달에 한 권꼴로 책이 나오는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김병완작가에 대해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어쨌든 양적인 측면에서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48분 기적의 독서법>,<김병완의 초의식 독서법>을 읽었었는데, 그 책들보다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두 책도 괜찮게 읽었다. 분명 얻을 것은 있었다.

 

 전에 북플에서 김병완작가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읽었었다. 3년에 만권에 관한 이야기인데, 일단 나도 다소 허황된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는 3년에 만권이라고도 했다가 3년에 9천권이라고도 한다. 9천권인데 그냥 올려서 만권이라고 가끔 이야기하고 광고도 하는 듯하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48분 기적의 독서법>에서는 작가가 3년 동안 읽은 책이 2~3천 권이라고 했던 것도 같은데, 아무튼 절대 9천권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작가가 주장하는 것도 3년에 천권을 읽기를 주장한다. 아마 작가도 천권에서 이천권, 혹은 삼천권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천권, 어마어마한 숫자다. 더구나 3년이라니. 김병완작가는 또한 속독을 경계한다. 그렇다면 9천권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작가는 처음 6개월 동안은 시행착오를 반복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책 한 권 읽는데 1~2주 씩도 걸렸다고 했다. 아마 그렇게 예상해봤을 때 첫 6개월은 180일, 아마 100~200권 읽는 것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년 6개월 동안 거의 9천권을 읽었다는 이야긴데, 9천을 30개월으로 나누면, 1개월에 300권이 나오고 하루에 10권이 나온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10권을 읽었을 때 2년 6개월이면 9천권을 읽을 수 있다. 만약에 하루 책을 못 읽으면 다음날은 20권을 읽어야 한다.

 

 결국 답은 두가지이다. 진실 혹은 거짓. 거짓이라면 뻥을 쳤다는 이야기가 되고, 진실이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이라도 전부 진실일 수도 있고 부분만 진실일 수도 있다. 무슨이야기냐면 책을 훑어 본 것, 혹은 발췌독으로 읽은 것도 책을 읽은 것으로 친다면 9천권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예전에 어떤 일본인이 쓴 책인데, 책 한권에 10분 만에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책이 있었다. 그 사람또한 대단한 사람이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떠한 방법이냐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책을 보는 것이다. 책장을 1~2초에 한 장씩 넘겨보면서 그림을 보듯이 책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멈추는 부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만 체크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한 권에 한 두페이지 정도만 목표로 하고) 

 우리의 무의식은 사실 굉장히 놀랍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아도, 우리의 무의식은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중에 어떠한 것은 골라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리는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돈과 비슷하게 생긴 것은 확 눈에 띈다. 굳이 세세하게 집중하면서 사물을 관찰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도 돈과 비슷한 것을 보면 순간 거기에 집중을 하게 될 것이다. 청각을 예로들면, 카페에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나 자기가 관심있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전혀 신경써서 듣고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 부분이 명확하게 들리면서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우리 무의식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책도 그런식으로 보는 것이다. 그냥 그림을 보듯이 보다가, 불현듯 여기다하는 부분에서 멈추고 그 부분을 체크하면서 한 번 슥 훑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지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씨도 속독법에서 이 것을 언급하면서 자신 또한 책을 볼 때 그런식으로 한 번 보고 다시 본다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밝힌 바 있다. 아마도 그런 책들까지 포함한 것이 아닐까? 나또한 책을 볼 때 그런 식으로 보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일단 그 책이 어떤 책인지 파악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한 번 그런식으로 책을 훑어보고 다시 앞부분부터 때로는 관심가는 곳부터 읽어나간다. 물론 소설책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 수밖에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리 책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책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시간에 80~90p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한 번 훑어보고(앞표지, 뒷표지, 목차, 서문을 충분히 보면서) 책을 읽어나간다.

 나또한 속독법에 한창 관심을 가지고 속독법에 관한 책들도 많이 보고 실천도 해봤는데, (비록 한 달정도 하다가 말았지만, 조금의 향상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일정수준에서 더이상 나아지지 않아서 관뒀다.) 요즘은 속독에 관해서 나도 다소 경계하는 입장이다. 이는 다치바나 다카시씨도 기본적으로 속독이란 단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바로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지성작가님에게도 속독법에 대해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이지성작가님이 운영하시는 폴레폴레?인가 아무튼 거기에서 독서캠프가 있어서, 1박2일로 참가했었다. 마지막날에 이지성 작가님의 강연이 있었는데, 정말 내게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만나고 싶었던 분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TOP3에도 드는 분이다. 독서캠프비용도 굉장히 저렴했다.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또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정말 나눔을 몸소 실천하시고 계시는 존경스러운 분이다. 멀리서 강연하시러 직접 운전하시러 오려서 열심히 강연을 하시고 질문에도 하나하나 정성껏 대답을 해주셨다. 나라면 그렇게 못한다. 나라면 장시간 운전하고 강연까지 하면 녹초가 되서 정말 질문은 딱 세명만 받을 것 같다. 하지만 이지성 작가님은 최선을 다해서 질문에 정성껏 답해주셨다. 나도 그렇게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한창 속독법에 대해 관심이 많을 때라서 속독법에 관해 질문을 드렸다. 그리고 호되고 혼났다. 사실 나도 '속독법은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질문을 드렸다. 혹은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하지만 역시나 이지성작가님도 속독법을 굉장히 경계하시고 속독법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무튼 정말 호되게 혼났다. 책은 열심히 많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빨라지는 것이다. 이는 눈동자 굴러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바로 배경지식이 쌓여서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초등학생의 교과서를 읽는 것이랑, 초등학생이 교과서를 읽는 것이랑 비교해보면 아마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아는 내용이니 그냥 슥슥 읽어나갈 것이고, 초등학생은 모르는 단어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아서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을 것이다. 속독은 바로 그 차이이다. 배경지식과 집중력의 차이.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다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책은 책을 왜 읽어야 하는 가? 와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내가 원하는 내용들이많았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용들이라서 공감이 많이 갔다. 물론 비판하자고 들자면 무수히 많은 부분에서 비판하고 딴지를 걸고, 논리의 오류를 지적하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이다. 그 그물망이 나의 편견과 아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기본 원칙은 그렇다.

 

 나또한 책수련을 하는 한사람으로써 다시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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