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강신주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래 별3개 정도 주고 싶지만, 평균 평점이 너무 높은 것 같아서 별2개를 준다. 2.5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혼란스럽다. 나는 보통 평점이 후한 편이다. 그리고 책은 저자와 독자가 반반씩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책에 이런 평점 밖에 못 주었고, 다른 사람들의 평점은 왜 그렇게 높은 것일까??

 

 일단 책의 첫번째 장은 강신주씨의 강연으로 시작되는데... 처음부터 나의 비판적 사고능력에 강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 냉장고를 없애자는 이야기를 했다가 주부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데... 강신주씨의 주장은 냉장고가 재래시장을 붕괴시켰고, 대재벌들이 우리에게 자본을 각인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 중 하나라는 것이다. 논거는 냉장고에 음식과 식재료을 오랜기간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집 앞 재래시장을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분명 재래시장에 가는 횟수는 줄어 들었겠지만 총 양까지 줄어들었을까? 오히려 냉장고에서 보관하다 안 먹고 버리게 되는 음식물까지 생각하면 전체 식료품양은 늘어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횟수는 줄어들었더라도 전체 양은 늘었으니 재래시장에 큰 손해를 끼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재래시장을 붕괴시킨 것은 대형마트가 아닐까? 그리고 강신주씨는 냉장고의 실용성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나 고마움이 없는 것일까? 과연 그의 집에는 냉장고가 없을까?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냉장고를 없애자는 주장을 결코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냉장고가 자본을 각인시키는 효과적인 매체라는 주장도 어폐가 있다. 그렇게 따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 심지어 책도 결국 자본의 매체다. 물론 강신주씨가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TV에서 나오는 냉장고 광고일 것이다. 소비재가아닌 가치재로 전락해버린 냉장고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애꿋은 냉장고에게 그 죄를 뒤짚어 씌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유괴범과 자본주의를 결부시킨 이야기와 사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주장, 인간적인 유대를 나누지 못하는 것을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고, 아담스미스는 인간을 동물로 봤다는 주장 등 정말 납득하기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해하는 자본주의와 강신주씨가 이해하는 자본주의의 정의 사이에도 심각한 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네이버에 자본주의의 정의를 쳐보니 아직 논박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없다고 나온다. 아마도 강신주씨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정의한 자본주의나, 16세기 이후로 시작된 상업자본주의를 거쳐 산업혁명이후 산업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그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자본주의란 결국 아주 오래전부터 기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이미 사유재산이 있었고, 경제활동과 시장경제가 존재했고, 노동력의 상품화도 이뤄졌었다. 그때는 자본주의가 없었던 것일까? 이미 아주 오래전에 사유재산이 생겨났고 물물교환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전된 것이 자본주의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본주의의 근본으로 금융을 이야기하는데, 그보다 더 폭넓은 의미에서 물물교환도 자본주의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나싶다.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이것은 내 주장일 뿐이니...

 

 강신주씨는 인간적인 유대의 약화, 사회적인 범죄 등등을 모두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지만, 나는 결국 문제의 본질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관점으로 돌리고 싶다. 물론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 그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돈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소크라테스같은 사람이 있었고, 진리 따위보다 돈을 추종하는 사람또한 있었다. 이것은 결국 시대를 넘어 영원히 되풀이되는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든지 배부른 돼지가 되든지는 개인의 선택일 다름이다. 물론 사회환경이 그 개인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분명 모든 것을 사회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회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강신주씨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재밌게 읽고 유익했는데, 이 책의 강연 내용은 정말이지, 이 사람이 철학자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강연들도 전반적으로 기대이하였다. 이태수씨의 강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만스러웠다. 논리성도 떨어지고 통일성도 떨어지고 때로는 독선과 편견으로 느껴졌다. 내가 독선과 편견으로 가득차고, 글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지는 않다. 물론 얻을 것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이런 점이 참 안좋은 것 같다.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 내가 잘못 생각한 것들을 교정할 수 있을텐데. 간만에 내가 수용할 수 없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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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책방 2014-12-30 0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처 받지 않을 권리`는 정말 유익하게 읽었는데 요즘은 강신주 박사가 하는 이야기들에 동의하기 힘들어요. 극단적이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생각의 한계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