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생활하게 된지도 벌써 2주가 되어간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과 항상 점심을 먹는다. 안철수는 씹고 즐기는 반찬같은 존재다. 아마도 내가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조심스럽게 물었으리라. "혹시 안철수 지지하세요?"
나는 안철수를 지지한다. 무릎팍 도사에서 그를 보고 존경하게 되었다. 박경철, 이제동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하는 모습들을 좋게 봤다. 백신을 개발한 점. 그 백신을 외국에 팔지 않고 무료로 배포한 점. 안랩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점. 직원 복지에 힘쓴 점. 의대에 입학했지만 의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한 점. 잘나가는 회사를 넘기고 유학길에 오른 점 등 그의 끊임없이 도전에 경의를 표한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이 있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이와 같은 점들을 높게 평가하고 청년들의 멘토로써 안철수를 좋아했을 것이다. 구태의연한 정치에 질린 사람들은 안철수를 찾았다. 안철수에게 기대를 걸었다. 서울시장후보를 박원순씨에게 양보한 그였지만 그는 국민의 부름에 임했다. 재산은 천억을 넘어가는 그가 사적 이익을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 이유는 없다. 그의 백신을 무료로 배포한 점, 회사를 넘기고 유학길에 오른 점 등 그간의 행보를 보면 그는 사익을 추구하는 인물은 절대 아니다. 부인을 비롯해서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를 말렸지만 그는 정치판에 홀로 뛰어들었다. 스스로 뛰어들었다. 나는 안철수가 정치판에 뛰어들기를 바라지 않았다. 정치판이 얼마나 더러운 곳인가? 안철수가 정치판의 희생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안철수는 광야에 섰다. 나는 그 부분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나는 안철수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사실로서의 정보는 받아들이고 스스로 검증하는 편이다.(그럴려고 노력하지만 한 번 자리잡힌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진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기존의 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변명이지만 내 자식이나 부모가 가끔 잘못을 한다고 해서 싫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나는 남들보다 정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원래 티비나 신문을 보지 않는다. 가끔 네이버 기사를 보는 정도이다. 대선 1차, 2차,3차 토론은 보지 않았다. 기사와 주위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이번 4차 토론을 봤다. 역시나 안철수는 착했고 약했다. 공격도 방어도 실패했다. 자살골을 넣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는 이미 3차 토론에서 2번이나 자살골을 넣었다. 이른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에 스스로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유튜브영상으로 봤다. 안타까웠다. 그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그가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역공세, 민주당의 문건을 근거로 해서 문재인에게 공세를 취하고 자신에게 씌워진 오해를 풀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의 어법은 실패했다. 문재인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의도치 않았으리라) 안철수를 함정으로 늪으로 끌고갔다. 문재인의 지적이 옳았다. 안철수는 문재인을 바라보지 않고 국민을 바라보고 이야기했어야했다. 자신은 반MB임을, 자신의 정치 지향성을 국민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해야했다. 안철수는 너무 문재인을 오래 봐라봤다. 집착했다. 문재인에 대한 공격의 창끝은 흐려지고 오히려 끌려가는 모양세가 되었다. 안철수도 조급했으리라. 하지만 갑철수, 이명박아바타 라는 프레임을 빨리 걷어내지 않으면 암처럼 퍼져나가면서 안철수의 지지율을 야금야금 떨어트렸을 것이다. 지지율이 빠진 안철수는 상대의 덫을 빨리 걷어내야했다. 대선까지 시간은 촉박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깔끔하게 덫을 걷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덫에 빠져버렸다. 징징 안철수, 초딩 안철수가 되어버렸다.
4차 토론을 보고 나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가능하다면 심상정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심상정에게 투표하고 싶다. 하지만 심상정에게 투표하는 것은 사표가 될 수 있다. 나는 문재인이나 민주당은 좋아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다. 중도보수다. 심상정의 문재인에 대한 저격은 적절했다. 지금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건 대부분은 공수표다.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나는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좀 더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철수의 당선확률도 희박해 보인다. 안철수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역시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일까? 그가 심상정의 부인에 대한 질문에 깔끔하게 사과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그는 심상정의 질문의 의도를 몰랐던 것일까? 리더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랫사람의 잘못도 책임지는 것이 리더다. 부인의 잘못은 부인의 사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그는 부인을 자신의 아랫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과 대등한 존재라 생각해서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일까? 좋게 포장하려 해보지만 아쉬웠다.
안철수는 토론을 참 못한다. 물론 관전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나도 말을 잘 못한다. 뒤돌아 생각하면 '아,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하기 일쑤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철수도 그래보였다.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스마트해보이지 않았다. 안철수는 착해보였다. 그의 공격의 칼날은 매섭지도 날카롭지도 않았다. 그의 어법이나 화술을 보니 그는 말하는 쪽보단 듣는 쪽으로 보였다. 그는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길고 장황하게 하지 않는다. 짧고 간단하게 답변한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둘만의 대화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이 보는 토론의 장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안철수는 자신과 상대방이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모르는 내용이고 더 설명이 필요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토론을 주도하고 자신의 뜻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좀 더 국민의 귀를 의식했으면 좋겠다.
나는 안철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가 보여준 행보는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4차 산업은 중요하다. 그가 4차 산업을 부르짓는 것은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의 교육개편도 지지한다. 우리 나라의 암기식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다. 암기로는 컴퓨터를 이길 수 없다. 미래를 열어갈 대통령으로 그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채사장의 아옌데 편이 생각났다. 그는 혹시 안철수를 염두에 두고 아옌데 편을 다룬 것이 아니었을까? 채사장은 자신이 집권하기 위해서 적과도 연대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현재로서 안철수의 당선확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아직 13일이 남아있긴 하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이 연합한다면 문재인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안철수는 연대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좋은 자세다. 하지만 4당 연합은 어떨까?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에 정의당까지 연합하는 것이다. 물론 실현불가능한 소리이다. 하지만 진보인 정의당까지 연합시킬 수 있다면 대통령이 되기 전에 미리 진정한 대통합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 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을까 두렵다. 언론이나 서친들을 보면 대부분 안철수를 까는 것 같다. 건전한 비판은 환영한다. 내가 모르는 사실들을 알려주시는 분들도 환영한다. 아직 미숙한 생각이라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남은 기간동안 안철수를 검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