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맨부커상 수상작에 빛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습니다. 워낙 핫한 책이라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은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읽으려는 생각으로 구입하였습니다. 단숨에 읽었습니다.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내용은 무겁습니다.

 이 책이 맨부커상을 받은 이유를 책을 읽다보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피냄새가 나더군요. 니체가 '오로지 피로 글을 쓰고 피로 쓰인 글들만을 읽어라' 고 말했듯이 이 책도 피로 쓰인 글, 피로 쓰인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자살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입니다.

 맨부커상, 많이 들어본 상이름은 아니었지만 세계 3대 문학상이라고 합니다. 세계 3대 문학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 그리고 맨부커상입니다. 아무튼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우리나가 작가가 받아서 자랑스럽고 기뻤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상은 중요하지 않다." 라고 하셨지만, 이런 세계적인 문학상의 볼모지였던 한국국민으로서는 기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상보다 작품이 더 중요하다는 하루키씨의 말씀에는 일말의 반론도 제기할 맘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많이 읽히게 되고, 그리고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요?

 저는 사실 부끄럽지만 우리나라 문학을 무시했었습니다. 전혀 모르면서 무시했었습니다. 어차피 소설을 읽을 것이면 좀 더 좋은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주로 상을 받은 작품들을 선정해서 읽었습니다. 유명한 고전이라던지, 상을 받은 작품이라던지요. 우리나라 소설, 우리나라 문학은 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문학은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없고, 세계적인 작가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전남 벌교에 있는 조정래씨의 태백산맨문학관에 다녀왔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가분이시고,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은 주변에서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누누히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문학관에서 보니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영국, 일본에서만 번역되었습니다. (문학관에서는 업데이트가 안되었나보네요. 방금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으로도 번역이 되었네요) 아무튼 고은시인이 항상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시긴 하지만, 전 고은시인의 작품은 본 적도 없고, 시에는 그리 관심이 가질 않습니다.

 저도 우리나라 소설 가운데 재미있게 본 소설들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 소설들을 주로 읽었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본 한국소설이었고,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앞으로는 한국작가들의 소설도 찾아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강작가와 정유정작가의 책들을 우선적으로 읽어보고 싶습니다. 

 너무 사설이 길었습니다. <채식주의자>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연작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세 편의 중편소설이 같은 주인공을 공유하고 각각 다른 화자의 시점에서 쓰여집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인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각각 다른 시점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주인공은 '영혜' 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선언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포함해서 주위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는데 그것을 막는다면 그것은 폭력일까요 아닐까요? 혹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모두 폭력이 아닐까요?

 저는 어제 회식을 했습니다. 저는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습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술자리는 환영이지만, 원래 술체질이 아니라서 술을 적정량보다 많이 마시면 두통, 구토, 졸음 등의 증상이 발생합니다. 수면장애와 다음날 숙취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권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도통 이해하지 못합니다. 물론 술을 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 경험상 많은 사람들이 술을 권하고 술을 많이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술을 마시니 너도 마셔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도통 그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술은 각자 알아서 마시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처럼요. 때문에 저는 어제 억지로 술을 마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두통과 불면을 겪으면서 다시 다짐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강요받은 술은 마시지 않겠다.' 라고요. 항상 이런 다짐을 하지만 워낙 기억력이 안좋아서 자꾸 까먹습니다. 술자리가 자주 있지 않다보니 이 다짐을 깜빡하게 됩니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술을 빼는 것도 참 힘듭니다. '차라리 한 잔 먹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먹다보면 나중에 후회를 합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강요하지 않는것. 그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 가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인간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어쩌면 둘은 굉장히 밀접히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도덕이란? 관습이란? 또 본능이란? 인간이 과연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요?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 혹은 배우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간극에서 폭력이 발생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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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4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쓸모없는 식물’처럼 취급합니다. 더 심하면 인간 취급도 안 합니다. 조직 내에서 개인의 자유의사가 말살되는 상황이 무섭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6-14 19:03   좋아요 0 | URL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주면 좋을텐데요. 남북통일이 안되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일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ㅠㅋ 아니면 상상력이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Dora 2016-06-14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전원 짜장시킬때 혼자 짬뽕 시키면 눈총 받는 그림이 떠오르네요

고양이라디오 2016-06-15 15:04   좋아요 0 | URL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ㅠㅋ

책친놈 2024-03-25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인공을 완전히 공감할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영혜의 시점이 나오지 않은게 이런 의도 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회식에 관한 내용도 공감하구요. 고양이 라디오님 리뷰를 보니 독서모임가서 이야기할 발제도 떠올랐어요. 스스로 어떤때에 채식주의자가 된다고 느끼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읽고 가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4-04-01 16:13   좋아요 1 | URL
덕분에 저도 발제문 하나 얻었습니다ㅎ

독서모임에서 즐겁게 이야기 나누셨나요ㅎ?

책친놈 2024-04-01 18:33   좋아요 0 | URL
덕분이라니 좋네요 ㅎㅎㅎ 넵 이야기 할꺼리가 많은책이라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ㅎㅎ 추천해주신 <태엽감는새> 궁금하네요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