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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최근에 북다이제스터님과 댓글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유의지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자유의지가 없다" 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을 내리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혼란스럽다. 아무리 답을 찾아봐도 자유의지가 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샘해리스의 주장을 논리를 깨뜨릴 방법이 현재의 내겐 없다.
일단 저자와 책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샘해리스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잇는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한다. 그가 철학의 해묵은 논쟁인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하고 나섰다. 충격적이게도 그의 주장은 "자유의지란 없다." 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래의 글은 처음처럼님의 리뷰에서 인용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 의지란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행동을 상상하고, 그 행동들을 선택한 자기 나름의 논리를 심사숙고하며, 이러한 심사숙고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고, 모순된 욕망들에 직면하여 행동을 통제하는 역량의 집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53쪽). 이와 같은 자유 의지의 관념은 “1. 우리 모두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었다. 2. 지금 우리가 하는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13쪽)”라는 두 가지 가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데, 저자는 이 두 가지 가정 역시 틀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책은 100페이지 가량으로 굉장히 얇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논쟁은 굉장히 거대하다. 첫번째 가정부터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었다." 과연 이 가정은 옳은 것일까?
자 사고실험을 한 번 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과거여행을 한다고 하자. 하지만 현재의 기억은 보존되지 않은채 그냥 비디오 테이프를 뒤로 감듯이 과거로 이동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동하는 과거는 가장 최근에 카페에서 주문하기 전 상황이라고 해보자. 우리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예를들어 우리가 어제 오후에 카페라떼를 주문했고, 다시 어제 오후로 돌아간다면 분명 또다시 카페라떼를 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서 모든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첫번째에 카페라떼를 시켰던 자신과 두번째에 카페라떼를 시키는 자신은 동일하고, 환경도 동일하다. 변한 것은 없다.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다.
과거를 돌이켜보자. 분명 수많은 선택이 있었다. 되돌리고 싶은 선택, 후회스러운 선택, 바보같은 선택, 아주 가끔 성공적인 선택이 있었다. 과연 우리가 그 선택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만약 과거로 되감기해서 그 선택을 하기 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분명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원인에 의해서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는 DNA를 운반하는 생체기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우리가 하는 생각, 사고, 감정 등은 모두 DNA와 그동안 우리가 겪어온 모든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카페라떼를 선택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전혀 자유의지를 발휘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호, 그 당시에 카페라떼를 선택한 이유 등은 모두 과거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만약 다른 메뉴를 주문하려면 다른 과거가 있었어야 한다. (예를들면 오전에 카페라떼를 먹었다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 과거에 카페라떼를 먹고 혀가 데어서 앞으로는 카페라떼는 안 마시겠다는 결심을 했다던가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똑같은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자기자신이어야만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글로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로 오랫동안 고심했다. 저자의 주장은 논박하고 싶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자유의지는 점점 희미해져갔다. 이 책을 명확히 이해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자유의지에 관한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 싶다.
우리의 의식은 무의식에 지배를 받는다. 우리의 의식에 떠오르는 사고와 의지는 모두 무의식에서 떠오른 것들이다. 우리는 무의식을 컨트롤 할 수 없다. 무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우리의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도 의심해 볼 수 있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무의식을 조작해서 그 사람의 의식을 조작하는 실험을 한다. 무의식이 먼저이고, 의식은 그 다음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내 자유의지일까? 분명 나는 글을 쓰기로 선택을 했고, 그래서 쓰고 있다. 여기서 두번째 가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두번째 가정은 "지금 우리가 하는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과연 그럴까?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바로 우리의 뇌이다.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또다시 처음처럼님의 리뷰를 인용하겠다.
그 이유로 저자가 인용하는 과학적 데이터는 “뇌파검사(EEG)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확인한 결과,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뇌의 운동피질이 활동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우리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는 이미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신호를 내보내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뇌 신경세포가 내보내는 신호를 파악하면 인간의 행동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우리 행동의 의식적 주인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어떤 결정이나 생각을 하기 전에 뇌에서 먼저 결정이나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정이나 생각을 발견,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까 카페라떼 예를 다시 들어보면, 우리가 카페라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사후에 설명은 가능할 것이다. 오늘은 왠지 카페라떼가 먹고 싶었어 라던가, 아니면 아침에 원빈이 카페라떼를 마시는 CF를 봤다던가) 뇌가 카페라떼를 선택하고 우리는 카페라떼를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에 팟캐스트 "지대넓얕" 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범죄에서 개인의 자아와 사회적 환경 어떤 것이 중요한가 하는 내용이었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영화로도 제작된 스탠포드 심리학 실험이다. 스팬포드실험이 머냐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다. 한 그룹은 간수, 다른 그룹은 죄수이다. 그리고 가상의 교도소 역활극을 시키는 것이다. 본래 계획은 2주짜리 계획이었는데, 5일만에 종료되었다. 이유는 간수의 폭행이 발행하고, 죄수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당신이 간수의 역활을 맡았다면, 죄수를 함부로 대하고, 폭행하고 폭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죄수 역활을 맡았다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 어디에 자유의지가 있단 말인가? 인간은 결국 환경에 반응하는 생물일 뿐이다. 어떤 환경이 주어졌느냐에 따라 선택도 달라진다.
또다시 사고실험을 해보자. A는 아주 험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사랑도 못 받고 학대받으며 자랐고, 굉장히 가난하고 굶주리며 자랐다. 교육도 못 받았고, 폭력과 범죄를 경험하며 자랐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여동생이었다. 그런데 그 여동생이 어떤 살인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리고 그 살인자가 지금 그 어떤 사람 앞에 있다. 여기서 A의 선택에 자유의지가 있을까? 물론 A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모른다. 그 살인자에게 복수를 할수도 있고 용서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에 자유의지가 있을까? A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전적으로 그가 살아온 모든 과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만약에 그에 대해서 모든 것(그의 유전자와 그가 겪어온 모든 것)을 아는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가 그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지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인과율을 벗어날 순 없다. 어떤 선택이든지 분명이 원인이 있을 것이다. 선택을 원인에 의해서 발생한 결과라고 생각하면 역시나 자유의지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자유의지란 없다.
자유의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양자우연성이나, 카오스이론을 들고와야할까? 더이상 생각을 진행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졸리다. 졸려서 글을 마친다. 여기에도 자유의지는 없어보인다. 횡설수설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고, 아직 내 생각이 명확한 것도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길고 두서없는 글이 된 것 같아 읽으신 분께 죄송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