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년에 대한 질문 - 밀레니엄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종갑 옮김 / 생각의나무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또 한 번 놀랐다. 굴드의 엄청난 글솜씨에 반해버렸다. 밀레니엄, 역법에 관한 책이다. 전혀 관심없고 지루해보이는 주제였다. 율리우스력이니, 그레고리력이니 모두 머리 아프고 관심가지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런 주제들을 가지고 이렇게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다니. 스토리텔링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마지막에 반전까지 마련해 놓았다. 아니, 인문학, 사회과학 책에 이런 반전이라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굴드는 이 책을 1997년에 썼다. 2000년을 3년 앞둔 시점이었다. 2000년 때의 분위기가 기억난다. 종말론이 득세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천년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부풀어 있었다. 2000년 1월1일이 새로운 천년의 시작인지 2001년 1월1일이 새로운 천년의 시작인지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는듯이 2000년 1월1일을 경축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일단 굴드의 책을 전부 읽고 싶어서 중고로 이 책을 구입했다. 예상보다 헌 책이 왔다. 책 제목을 보고 21세기에 관한 책인가 싶었다. 21세기의 사회, 경제, 정치, 과학, 기술 등을 조망해보는 그런 책인 줄 알았다. '굴드가 박식하긴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을 쓰다니 의왼데?'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게 흥미롭지도 않고 기대없이 책을 펼쳤다.


 예상과는 달리 21세기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밀레니엄과 역법에 대한 책이었다. 밀레니엄은 원래는 기독교에서 쓰이는 용어로 예수의 재림 후 천년 동안 태평성대가 펼쳐지리라. 뭐 그런 내용이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것처럼, 미래에 예수가 재림하면 악한 자,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선한 자, 예수 믿는 자는 천국에 간다. 뭐 그런 내용이다. (세세한 부분은 틀릴 수 있다.) 아무튼 밀레니엄은 원래 그런 의미인데 2000년을 맞이함에 따라 새로운 천년이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밀레니엄의 의미와 기독교 사상 등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새로운 천년은 언제 시작되는가? 이제 역법적인 질문이 나온다. 예수가 탄생 일은 1년이다. 때문에 100년 후는 101년이 되고 천년 후는 1001년이 된다. 그렇다면 2001년이 새로운 천년의 시작, 21세기의 시작인 것이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논쟁은 항상 있어 왔다. 20세기에도 19세기에도 그 이전에도 있었다. 


 여기서 굴드의 진면목이 나온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이 일말의 사태를 바라본다. 자연의 주기와 그것을 파악하고 계산하는 인간들의 노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오차와 그 오차를 또 수정하려는 노력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학, 과학과 역사, 종교, 인문학의 이야기가 장대하게 펼쳐진다. 1년은 365.24xx 일이다. 반올림해서 365.25일이다. 그래서 4년에 한 번 1일을 추가한다. 우리가 만든 1주일, 한 달, 1년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든 자의적인 개념이다. 자연은 정수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나머지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방법들을 도입해야 한다. 수정에 수정을 가해야 한다. 


 역법에서 자연스럽게 날짜-요일 계산의 문제로 나아간다. 우리나라는 자신이 태어난 요일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서구사회는 자신이 태어난 요일을 알고 있고 중요시 여긴다. 날짜-요일 계산 문제란 이런 것이다. 예를들어 1945년 2월 14일이 무슨 요일이냐고 물어보면 답을 맞추는 문제다. 그리고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천재적인 날짜계산 능력을 가진 이들이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대반전은 감동을 자아낸다.


 굴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혀 관심없던 주제에도 빠져든다.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중요할 것이다. 그 누군가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면 더할나위 없이 중요해진다. 굴드는 그렇게 독자의 시점을 변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독자의 시점을 과거로 이동시켜 그 당시 그 문제에 집중하게 한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던 책. 굴드 책 읽기는 계속 된다. 그나저나 굴드의 책 말고 다른 책들도 읽어야 하는데ㅎ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3-02-14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굴드 선생의 책을 하나 수배해둔
게 있는데 여적 못 읽고 있네요.

허허 그것 참.

이 작가의 책들은 죄다 절판이나
품절이네요. 도전!

고양이라디오 2023-02-14 18:35   좋아요 1 | URL
절판된 책들이 많아요ㅠ 그래도 대표작들은 출간 중인 거 같더라고요ㅎ

굴드 선생님 한 번 만나보시길 권해드립니다ㅎ

dollC 2023-02-14 2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풀하우스>를 시작합니다~
품절된 책은 어찌 구해야할지... 중고서적 가격 보고 아찔했어요ㄷㄷ

고양이라디오 2023-02-15 11:20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 중고로 노려봐야죠ㅎ 2권 확보해놔서 든든합니다ㅎ

<풀하우스> 강추입니다. 즐독하시길^^

서니데이 2023-03-13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23-03-13 18:2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드립니다^^b

정말 오랜만에 이달의 당선작이 되서 기쁘네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