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노예처럼slavish 굴었듯이 동물도 짐승처럼 brutish행동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은유를 입에 올리면서도 정작 그 말이 지닌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언어는 강력한 도구다. 선을 위한 무기가 될 수도, 악을 위한 독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말은 입에 담는 순간 더럽혀지고, 어떤 말은 진실을 드러내기 보다는 흐려놓는다. 언어는 사고를 조작하고 마음을 병들게 하며 때로는 장난감처럼 이용된다. 언어는 우리의 의식을 빚는다. 말이 바뀌면 관점도 바뀐다. 언어는 그 자체로 편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 P241
쾌락을 위한 사냥에는 한 가지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삶은 중요하지 않으며, 언제든 버릴 수 있고 썩어 사라질 운명이라는 생각. 마치 일회용품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소모품을 처리하는 데는 ‘포식자 개체수조절‘을 통한 자연보호라는 또 하나의 명분이 따라붙는다. - P367
당시 레오폴드의 눈에 비친 세상은 자연을 바닥나지 않는 식료 저장고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은 책임도 감각도 없이 자연을 소비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제야 그는 생태 피라미드 꼭대기의 늑대 같은 포식자가 단순히 먹이사슬의 마지막 고리가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정교한 질서를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 오만이었다. ‘대지 윤리는 호모 사피엔스를 대지 공동체의 정복자에서 평범한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웃 생명은 물론 공동체 자체에 존중을 요구한다.‘ - P393
나는 우리가 강을 돌보는 이유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태계를 이루는 조각들을 이제라도 이어 붙이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 이제 안다. 생태계는 정교하게 맞물린 아름답고 복잡한 구조이고, 모든 존재는 서로를 살린다. - P409
페인은 몸집이나 개체수에 비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압도적인 종을 설명하기 위해 ‘핵심종‘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아치의 정점에 끼운 쐐기돌처럼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무너지는존재. - P416
세대마다 ‘정상‘은 새롭게 정의된다. ‘기준선 이동 증후군‘이라는 개념은 1995년 수산과학자 다니엘 폴리가 처음 제안했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에기준을 맞추고 예전 모습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준선 이동은 일종의 세대적 망각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가 눈에 띄기 시작할 즈음이면 이미 동물들이 ‘희귀종‘이 되어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잃고 있는 건 여전히 ‘풍요롭다‘고 보는 생명이 아니라 이미 드물어진 존재들인데, 상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기준선을 조금씩, 꾸준히 낮춘다. 다니엘 폴리는 사람들이 과거의 세상이 얼마나 달랐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황폐함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 P426
동물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실용적인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생태계란 실타래처럼 촘촘히 얽힌 하나의 세계다. 그 안의 무엇 하나를 건드리면 나머지 모두가 함께 흔들린다. 어떤 생명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사라진 뒤에야 알게 된다. ‘자연 자본‘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먹을거리, 건강한 흙, 탄소를 저장하는 힘 같은, 자연에서 얻는 자원의 가치를 일컫는 용어다. 한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지만 이제 이런 ‘서비스‘를 ‘사라졌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으로 환산해 ‘잃게 될‘ 가치로 계산하는 시대가 됐다. 자연의 완전한 경이로움이 ‘없어도 그만 아니냐‘는 물음 앞에 이것이 가장 좋은 대답이 될 수 있겠다. - P436
수많은 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서식지는 정교하게 엮은그물과도 같다. 이 균형에 함부로 손을 대면 어떤 결과가 뒤따를지 예측할 수 없다. 생태학자 배리 코모너가 제시한 생태학 제1법칙이 말하듯,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 P445
솔라스텔지어는 인간이 지질학적 시간과 기후, 생태에 영향을 미친, ‘고독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인류세의 병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 - P527
동물은 참 좋은 사고의 도구다. 우리는 동물을 통해 형상을 떠올리고 비유하고 암호를 만들고 우화를 짓고 교훈을 얻는다. 동물은 같이 놀 수 있고 벗이 되고 위안을 준다. 심지어 조금 이상하게도 우리는 동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전혀 모른다. 인간이 지핀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21세기에도 우리를 집어삼키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동물도 고유한 이야기를 품은 존재로 보아야 한다. 존재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 - P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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