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읽고 있다. 거의 다 읽었다. 작년에 그의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책에 손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었다. <면도날> 역시 그만큼 흡입력 있고 재밌다. 서머싯 몸의 다른 저서들을 읽고 싶어 주문했다. 


















 <면도날> 속 이야기의 중심인물 중 래리라는 청년이 있다. 그 청년이 도서관에서 집중해서 읽고 있는 책이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원리>이다. 요즘 윌리엄 제임스의 이름을 많이 접한다. 그의 책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구입했지만 읽지 못하고 있다. <심리학 원리> 역시 1권만 해도 800p가 넘는다. 읽기 만만한 책이 아니다. 미국 철학자 중에 굉장히 유명한 분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씨도 그를 좋아해서 그의 저서를 다 읽었다고 한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다시 펼쳐봐야겠다. 그리고 <심리학 원리>도 읽어보고 싶다. 






















 <면도날> 속에서 래리가 재밌게 읽은 책들이다. <세비네>는 세비네 부인의 서간집을 모은 책 같다. <페드르>와 <베레니스>는 프랑스 극작가 라신의 대표적인 비극 작품이다. 어떤 책들인지 읽어보고 싶다.




  "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그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어. 바로 홀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때의 기분이지. 높디높은 저 위에서, 사방이 온통 무한한 공간뿐인 곳에서 날고 있을 때 말이야. 그럼 끝없는 공간에 취하게 돼. 그때 느끼는 흥분이란, 세상 그 어떤 권력과 영예를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지. 얼마 전에 데카르트를 읽었어. 그 평온함, 품격, 명석함이란!" -p125 


 <면도날>에서 래리는 이사벨과 약혼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둘이 바라는 삶은 다릅니다. 래리는 정신적 세계, 지적 세계를 추구하는 반면 이사벨은 물질적, 세속적 삶을 추구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의 과거 생각도 나고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소설 속 래리가 좋은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해서 부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끝나 버렸다는 생각에 그녀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이제 래리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게 끝나다는 사실을,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격렬한 장면조차 연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약간은 원망스러웠다. 마치 집을 빌리는 일을 의논하는 사람들처럼, 너무나도 침착하게 이야기를 끝냈다. 가슴이 무너졌지만, 한편으로는 둘 다 점잖게 행동했다는 사실에 희미한 안도감도 느껴졌다. -p128


 래리와 이사벨이 서로의 생각 차이를 깨닫고 파혼을 결정하는 장면을 묘사한 글입니다. 묘사가 좋아서 소개해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의대 시절에 죽은 사람들을 여러 번 봤으며, 전쟁 때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목격했다. 그때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하찮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위엄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흥행사가 갖다 버린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p416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의대도 해부학 실습을 합니다. 해부학 실습 때 난생 처음으로 시체를 봤습니다. 실습용 시체들은 기부를 통해 이뤄집니다. 기부하신 분들이나 가족 분들은 분명 의학발전 등 좋은 뜻으로 기부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습에서 그런 숭고한 분위기나 경건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체는 너무나 시체처럼 보입니다. 시체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가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실습용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절대 제 시체를 실습용으로 기부하지 않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면도날>을 다 읽었습니다. 서머싯 몸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궁금하네요. 그의 전기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찾아봐야겠습니다. 하루키씨의 소설 속에서 서머싯 몸의 소설이 자주 등장해서 궁금했는데, 역시 재밌었습니다.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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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02-18 1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휴... 감상문이 진지해서 ˝이 책 정말 재미나지 않았어요?˝ 라고 묻기가 쉽지 않네요. ^^;;;

고양이라디오 2022-02-19 11:22   좋아요 3 | URL
감상문이 진지했나요^^;;?
면도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ㅎ

mini74 2022-02-18 1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볼려고 준비 중입니다.~~~잠자냥님도 라디오님도 다들 재미있으셨다니 기대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2-02-19 11:20   좋아요 3 | URL
강추입니다^^

얄라알라 2022-02-21 12:42   좋아요 2 | URL
피겨 4회전 점프 준비 전을 떠올리게 하는 ‘저 볼려고 준비 중˝^^ mini74님은 쉴 틈도 없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광폭이십니다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