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읽고 있다. 그 중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보려한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K. 레슬러는 연쇄살인범을 연구해서 프로파일링을 개척한 FBI 요원이다. 존 더글러스와 로버트 K. 레슬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데이비드 핀처감독이 미드 <마인드 헌터>를 제작했다.
로버트 레슬러는 에드먼드 캠퍼와 세번째 면담을 마무리짓고 있었다. 캠퍼는 키 2미터 5센티미터에 몸무게 135킬로그램의 거구에 놀라운 지능을 소유한 연쇄살인범이다. 어린시절 외조부모를 살해하고 소년원에 4년을 보냈고, 출소해서 어머니를 포함해 8명을 살해한 인물이었다. 그는 완전범죄를 저질러서 경찰이 자신을 전혀 잡을 기미가 없자 지루해져서 자수했다. 만약 그가 자수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지 아찔하다.
아무튼 그렇게 위험한 인물과 로버트 레슬러는 단독으로 면담을 하고 있었다. 4시간에 걸친 면담 후 면담을 끝낼 생각으로 교도관을 부르기 위해 벨을 눌렀다. 교도관이 오지 않자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몇 분 후 다시 벨을 눌렀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벨을 처음 누른 후 15분이 지났을 때 세 번째로 벨을 눌렀지만 역시 교도관은 오지 않았다.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겁먹은 기색이 비쳤다. 캠퍼는 이를 대번에 눈치챘다.
아래부터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2미터 5센티미터, 135킬로그램의 높은 지능을 소유한 연쇄살인범과 단 둘이 방에 남겨졌다고 상상하면서 감상하시길.
"안심해요. 근무 교대 중이거나 식사시간이라 그런 거니까."
그가 씩 웃으면서 의자에서 일어서자 안 그래도 큰 몸집이 더 거대해 보였다.
"교도관이 와서 당신을 꺼내주려면 적어도 15분, 아니면 20분은 더 걸릴 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냉정하고 태연해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만 확연하게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는데 캠퍼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난장판을 만들어버리면 당신은 무척 곤란해지겠지. 안 그래. 선생? 당신 머리통을 잡아뜯어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가 교도관한테 보여줄 수도 있다고."
머리속이 온통 뒤죽박죽 되었다. 나는 그가 그 커다란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와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목을 조르며, 내 머리를 비틀어서 목을 부러뜨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릴 것이며, 둘의 체구 차이로 보아 나는 찍소리도 못 내고 몇 번 버둥거리다가 바로 질식해버릴 게 뻔했다. 누가 손쓸 틈도 없이 날 죽일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옳았다. 나는 용기를 내여, 내 몸에 손을 대면 그 역시 무척 곤란해질 것이라고 대꾸했다.
"곤란해져 봤자지. 기껏해야 TV 시청 금지 정도일 텐데?"
이런 식으로 둘은 계속 대화를 주고 받는다. 레슬러는 자신을 죽이면 오랫동안 독방신세를 져야할 거라고 맞받아 치고, 캠퍼는 독방 생활이 평생 가지도 않을 것이며 동료들이 있는 감방으로 돌아가면 FBI 요원을 '작살낸' 대가로 영웅대접을 받게 될 거라 응수한다.
이후에도 레슬러는 자신한테 무기가 있다고 거짓말도 쳐보고(캠퍼는 무기소지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격투기를 할 수 있다고 암시도 줘본다. 캠퍼는 격투기에 흥미를 보이고 둘은 교도관이 나타나서 감방 문을 열어줄 때까지 격투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면담 절차에 따르면 면담자는 교도관이 재소자를 데리고 나갈 때까지 방안에 남아 기다려야 한다. 캠퍼는 복도로 나가기 전에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냥 장난이었다는 거, 당신도 알죠?"
"당연하지."
아마도 장난이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저 때 레슬러의 공포감은 어느정도였을까? 아찔하다.
P.S) 캠퍼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그의 살인방식을 묘사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궁금하신 분은 책이나 드라마 혹은 검색을 이용하시길. 유튜브에 에드먼드 캠퍼 인터뷰를 검색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