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화책

 


  어떤 만화책 1권과 2권을 읽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도무지 짚을 수 없다.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이 만화를 그리며 그이는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 미국에서 무슨무슨 상을 받기까지 했다는데, 무슨무슨 상은 어떤 만화에 주는지 알쏭달쏭하고, 상을 받았건 말건 이러한 만화책을 굳이 한국말로 옮겨 한국사람한테 읽히려 한 까닭은 무엇인지 또 아리송하다.


  그러나, 나 혼자 재미없다고 느끼거나 뜬금없다고 느낄는지 모르리라. 무슨무슨 상을 준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느꼈을 테며, 한국말로 옮긴 출판사와 편집자와 번역자는 재미있게 읽었을 테지.


  저녁에 아이들과 〈아기공룡 둘리〉와 〈우주소년 아톰〉과 〈달려라 하니〉 만화영화를 하나씩 보면서 새삼스레 다시 생각한다. 꼭 어떤 틀이나 줄거리나 이야기가 있어야 재미난 만화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만화이든 시이든 그림이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살아가는 꿈이 있을 때에 읽을 만하리라 느낀다. 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 있을 때에 즐겁게 맞아들일 만하리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밑까닭이 있다 하면, 바로 이 두 가지 대목이 아닐까. 꿈과 사랑. 나 스스로 꿈꾸지 않을 때에는 어떠한 글도 쓰지 못하고 어떠한 사진도 찍지 못한다. 나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리지 않을 적에는 아무 글도 못 쓰고 아무 사진도 못 찍는다. 난 언제나 사랑스레 살아가며 글을 쓰는 사람이요, 늘 꿈꾸듯 살아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내 글과 사진에 사랑과 꿈을 담지 않는다면 굳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꿈꾸면서, 내 반갑고 즐거운 동무와 이웃하고 예쁘게 나눌 글과 사진을 한결같이 씩씩하게 돌보고 싶다. (4345.10.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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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1등만 떠올리는 얄딱구리한 한국 사회에서는 대통령뽑기가 아주 대단한 일이라 여긴다. 한 표 때문에 갈리든 열 표 때문에 엇갈리든, 한국에서는 오직 1등만 모시거나 섬기는 뒤틀린 얼거리를 보여주기에,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를 뽑는 일마저 몹시 커다란 일이 된다고 여긴다.


  나는 2012년 12월 대통령뽑기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쪽도 저쪽도 그쪽도 ‘내 쪽’이 아니니까. 나는 내 쪽에 있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고 싶지, 내 쪽에 없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고 싶지 않다. 내 쪽에 없는 사람한테 한 표를 주었을 때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여러 차례 겪었으니, 이제는 바보짓을 할 마음이 없다. 사람이라면, 한 차례만 스스로 겪었어도 깨달아야 하는데, 여러 차례 바보짓을 하며 바보스러운 삶을 느끼고서도 바보짓을 한다면 사람으로 살아갈 까닭이 없으리라 본다.


  10월이 저무는 2012년 한자락, 심상정 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 나는 심상정 님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기를 여덟 해 기다렸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말든 내가 스스로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 잘 살아가면 될 노릇인데, 굳이 대통령 한 사람을 뽑아서 무언가 맡기려 한다면,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닌 ‘일을 할’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어느 쪽 대통령 후보는 ‘여자 대통령’이라고까지 말하는데, 참말 여자 대통령이라 하면 그분만 ‘여자’는 아니리라. 그런데 대통령 될 사람이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대수로운가. 사람다운 사람이어야지,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하는 대목으로 금긋기를 하는 뜻이 있을까.


  사람다움이 없으면 남자이건 여자이건 똑같다. 여당 대통령이 되건 야당 대통령이 되건 대수롭지 않다.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할 뿐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 말과 삶과 넋을 골고루 살피면서 말다움과 삶다움과 넋다움을 알아채는 ‘사람다운 사람’ 눈길이 되어, 아이들을 마주하고 내 하루를 누리며 생각을 살찌운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문득 헤아려 본다. 나는 ‘여자 대통령’이 나오기보다는 ‘아줌마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나는 ‘똑똑한 대통령’이 나오기보다는 ‘슬기로운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전태일하고 벗하고 전우익하고 벗하며 아이들하고 예쁘게 벗하는 여느 아줌마가, 아이들한테 젖을 물려 사랑을 나누어 주었으며, 아이들한테 맛난 밥을 사랑으로 차려 주던, 이 나라 아줌마가 대통령 일을 즐거이 맡을 수 있기를 바란다. (4345.10.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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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소리 책읽기

 


  숲속에서는 나뭇가지를 때리고 나뭇잎을 스치며 풀잎에 튕기는 빗소리를 듣는다. 들판에서는 곡식 알맹이를 톡톡 건드리면서 쏴아쏴아 바람에 흩날리는 빗소리를 듣고, 흙을 톡톡 건드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유리창과 쇳덩이에 부딪는 빗소리를 듣는다. 자동차가 촤아촤아 빗물 고인 길을 가르는 소리를 듣는다. 수많은 사람과 우산이 엇갈리거나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후끈후끈하다. 후덥지근하다. 차갑다. 도시에서는 빗물이 살찌우거나 살릴 만한 푸른 숨결이 거의 안 보인다. 도시로 찾아드는 빗물은 매캐한 먼지 뒤집어쓴 나무들 몸을 씻어 주고, 매캐한 먼지로 뒤덮인 건물 벽을 닦아 준다. 도시에서 빗물은 하수구로 흘러들어 빨리빨리 도시 바깥으로 벗어나야 할 쓰레기처럼 다루어진다.


  시골집 처마를 따라 주루루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 노랫소리나 멧새 노랫소리는 빗소리에 감겨 거의 안 들리지만, 드문드문 사이사이 아스라한 몇 가닥 소리가 스며든다.


  둘레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가을비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사뿐사뿐 아장아장 예쁜 몸짓으로 감나무를 적시고 빈 들판을 적시며 바닷물과 얼크러진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머리맡으로 빗소리 흐른다. (4345.10.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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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씨 책읽기

 


  꽃씨를 보면 어김없이 후 하고 불어서 날리고 싶은 어린이는 어디를 가건 무엇을 하건, 꽃씨를 볼 때면 발걸음을 멈춘다. 꽃씨가 너를 이끌어 이곳으로 온 셈이니, 네가 꽃씨를 불러 이곳에서 만난 셈이니. 네 작은 입바람으로 날아가는 꽃씨가 있지만, 네 작은 입바람에는 꼼짝을 않는 꽃씨도 있단다. 너 참 예쁘구나, 멀리 멀리 네 아이들을 흩뿌리렴, 하고 노래 한 번 부른 다음 호호 바람을 일으켜 보렴. (4345.10.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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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씩씩하게 읽는 책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가을을 말합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봄을 말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가을이나 봄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때때로 찻길 한켠 나무들이 노랗거나 빨간 잎사귀를 떨구어 가랑잎 수북한 모습을 만들어 주지만, 도시 청소부들은 ‘쓰레기 잔뜩 쌓였다’면서 힘겹게 치웁니다. 자가용 싱싱 모는 이들 또한 길가에 수북히 쌓인 가을잎을 눈여겨보지 않아요. 아니, 자가용 싱싱 몰며 신호등이랑 옆 자동차를 봐야지, 길가 가을잎을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신영복 님은 《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라는 책을 내놓으며 16쪽에서 “모든 교육은 인간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합니다. 참 맞는 말이로구나 싶어 무릎을 치지만, 이내 무릎을 살살 비빕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배움터가 아니라 한다면 학교라 하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학교란, 사람을 가르치는 배움터입니다. 시험공부를 시켜 더 이름 높으며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데가 학교일 수 없어요.


  제가 살아가는 시골마을인 전남 고흥은 전라남도에서도 가장 외진 시골입니다. 해마다 사람 숫자가 사오천쯤 줄어드는 외진 시골입니다. 아직 어린이와 젊은이가 제법 남았으니 해마다 사오천쯤 사람들이 줄어든다 할 만할 텐데, 앞으로 열 해쯤 지나면 그때부터는 해마다 사오백쯤 줄어들겠지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줄어드는가 하면, 시골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고향마을을 떠납니다. 시험공부 잘 하던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느라 시골을 떠나고, 시험공부 그럭저럭 하던 아이들은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가느라 시골을 떠납니다. 시험공부는 그닥 못하지만 실업계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도시에 있는 공장에 일자리를 얻어 시골을 떠납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면 거의 몽땅 도시로 가요.


  시골을 떠난 아이들은 시골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명절에도 바빠 웬만해서는 시골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저는 두 아이와 함께 시골이 좋아 시골에 집을 얻어 살아가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다른 아이들은 도시에서 문화와 물질과 문명을 누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시골을 등집니다. 저는 두 아이와 함께 숲과 들과 바다를 언제나 누리니 즐겁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다른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유치원과 보육원을 오가며 외려 숲이나 들이나 바다도 누리지 않으면서 도시에서 지내고픈 꿈을 키운다고 합니다.


  정진국 님이 쓴 《사진가의 여행》(포토넷,2012)이라는 책 95쪽을 읽다가 “존은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을 만났을 때 서로 질겁하지 않고, 정답게 눈길을 주고받을 때에나 나올 만한 사진을 찍었다.”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더 나은 곳이나 더 좋은 곳은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할 때에 사랑스러운 삶터이고, 스스로 아낄 때에 살가운 보금자리요, 스스로 즐길 때에 아름다운 삶자리예요.


  고흥군은 어디나 정갈한 시골이라 국립공원입니다. 공장도 골프장도 고속도로도 널따란 찻길도 송전탑도 발전소도 없는 데는 한국에서 고흥군 빼고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곳 시골 아이들은 저희 고향마을이 어떠한 삶자락인지 느끼지 못해요.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붙는 입시공부에 바쁘거든요. 고흥과 이웃한 여수나 보성이나 장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서울로 가고 싶습니다. 서울로 못 가면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전이라도 가고 싶습니다. 도시가 어떤 곳인지 모르면서 도시를 바라지만, 막상 시골이 어떤 곳인지조차 모르며 시골에서 살아가는 오늘을 누리지 못해요.


  노정임 님 글과 이경석 님 그림이 어우러진 《땅속에 누가 살아?》(웃는돌고래,2012)라는 어린이책을 읽다가 62쪽에 나오는 “이렇게 동식물과 바위의 가루로 만들어진 흙들이 다 섞여서 지구를 덮고 있는 흙이 되어요.” 하는 대목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흙이 있어야 논밭과 멧자락과 갯벌이 있어요. 논밭과 멧자락과 갯벌이 있어야 우리 먹을거리를 얻어요. 시골 아이가 도시로 간다 하더라도 시골이 있어야 밥을 먹고 삶을 누려요. 시골 아이가 시골을 떠나도 누군가 시골을 지켜야 사람들이 숨쉬고 살아갈 수 있어요. 씩씩한 시골아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4345.10.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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