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들을 (도서관일기 2012.10.1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이 나라에는 도서관이라 할 곳이 몇 군데 없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도서관이지, 대여점 구실을 하는 데가 아니다.
베스트셀러나 소설 몇 가지를 빌려주고 돌려받는 데라면 대여점일 뿐이다. 도서관이란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가 흘러도 알뜰히 건사할 책을 갖추면서 사람들이 ‘책으로 삶을 읽고 살피도록 길동무 구실을 하는 데’라고 느낀다. 곧, 이런 구실을 하는 데가 거의 안 보이기에, 이 나라에는 도서관이라 할 곳이 몇 군데 없구나 싶다.
베스트셀러나 소설 몇 가지를 쉽게 빌리고 돌려줄 만한 곳도 있어야겠지. 그런데 이 몫은 참말 대여점한테 맡기기를 바란다. 도서관에서는 베스트셀러나 소설 몇 가지도 알뜰살뜰 갖추어 자료로 삼도록 할 수 있으면서, 삶을 밝히고 사랑을 빛내는 온갖 책을 꾸준히 두루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아기를 평화롭게 집에서 낳고 싶은 이들이 도움을 받을 만한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서 갖출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대학교 아닌 길을 찾고 싶은 푸름이한테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삶짓기를 도와줄 길잡이책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사람다움을 건사하도록 이끄는 빛줄기를 보듬는 책과 자료를 도서관에서 살필 수 있어야 하리라 본다.
사진을 배우려는 이들이 도서관에서 나라 안팎 훌륭한 사진책을 만날 수 있어야겠지. 그림을 배우려는 이들이 도서관에서 나라 안팎 훌륭한 그림책(화집)을 만날 수 있어야겠지. 문학과 문화가 빛날 도서관이어야 한다. 방문객 숫자가 많은 도서관이 아니라, 책손다운 책손이 먼길을 기꺼이 찾아올 만한 도서관이어야 한다.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