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줄기 예뻐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새로 뻗는다. 갑자기 나무줄기 꼭대기에서 옆으로 퍼지는 가지는 없다. 줄기마다 조그맣게 움이 트고 싹이 돋으며 잎이 하나 살그마니 나는데, 이 잎줄기가 바로 나뭇가지가 된다. 다른 나뭇가지가 저 위에 있달지라도 새 움은 언제나 조금씩 돋기 마련이요, 새 움은 이내 새 나뭇가지가 된다.


  사람들이 시골을 등지고 서울로 몰려들면서 나무줄기도 가지도 잎도 뿌리도 살갗으로 못 느끼고 만다. 여름 한철 지나고 텅 빈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한동안 사람 손길을 안 타니까 스스로 마음껏 줄기를 돋우며 뻗는다. 푸른 잎사귀는 그야말로 푸르고, 푸른 가지는 그야말로 푸르다. 예쁘다. (4345.1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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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을 말하는 책 (도서관일기 2012.11.1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기까지 한데, 우리 서재도서관을 취재하러 오신 분이 있었다. 올 2012년 2월쯤이었나, 서울에서 먼길을 찾아와 주셨는데, 그분이 돌아다닌 여러 도서관 삶자락을 말하는 책 《도서관 산책자》(반비 펴냄)가 나왔다. 오늘 큰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마실을 나가려 할 적에, 우체국 일꾼이 우리 집에 가져다준다.


  정갈한 겉그림에 알맞춤한 두께로 나온 책을 가만히 펼친다. 우리 서재도서관은 이른여름쯤 책갈무리는 모두 마쳤다. 다만, 책갈무리는 마쳤되 간판은 아직 안 걸었고, 고흥 안팎으로도 ‘도서관 생겼어요!’ 하고 알리지 않았다. 도서관 소식지 《삶말》은 두 달에 한 차례 내놓으며 이곳저곳에 보내기도 하고, 도서관 지킴이한테 띄우기도 하고, 고흥에서 살아가는 이웃한테 드리기도 하는데, 막상 ‘도서관 여는 잔치’를 하지도 않았다.


  이야기책 《도서관 산책자》에 실린 우리 서재도서관 모습은 ‘책갈무리가 까마득하게 남은 예전 모습’이다. 내 전화번호라든지 누리집이라든지 뭐라도 하나 적어 놓았으면, 사진책도서관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이래저래 알음알이로 찾아오도록 할 만할 텐데,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이라고 적어 놓으셨으니, 뜻이 있으면 다 알아보고 찾아오시겠지. 왜냐하면, 우리 서재도서관에는 국립중앙도서관뿐 아니라 이 나라 어느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재미나고 아름다운 사진책이 그득그득 있으니까.


  아무쪼록, 《도서관 산책자》가 예쁘게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빈다. 우리 서재도서관 또한 곱게 사랑받으리라 믿는다. 책마다 서린 아리따운 넋을 사람들이 알뜰살뜰 알아보면서, 국립도서관이든 지자체도서관이든, 또 나처럼 혼잣힘으로 여는 개인도서관이든, 따사로운 손길로 아끼면서 즐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바람은 제법 불지만 햇살이 포근하고 해맑은 늦가을이다. 마을 할머니들 마늘밭 김매느라 바쁘시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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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가 보던 책을 슬쩍

 


  누나가 보던 책을 슬쩍 보는 동생. 누나는 이것을 하다가 어느새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다가도 새삼스레 그것을 한다. 이동안 동생은 누나가 하던 이것을 따라서 하고, 누나가 이어서 하던 저것을 좇아서 한다. 누나는 돌고 돌아 다시 이것이나 저것으로 돌아와서 노는데, 그동안 동생이 이것이나 저것을 붙잡고 놀면 “내가 놀던 거야.” 하면서 가로채려 한다.


  벼리야, 보라는 누나를 좋아해서 누나가 놀던 것을 저도 한번 놀아 보고 싶단다. 벼리는 이것도 놀 수 있고 저것도 놀 수 있잖아. 이 책도 읽을 수 있고 저 책도 읽을 수 있지. 보라가 이 책을 보고 싶다 하면 이 책을 주고, 저 책을 보고 싶다 하면 저 책을 주렴. 다 주면 돼. 그리고 벼리가 보고픈 책이 있으면 보드라운 목소리로 보라한테 달라고 해 봐. 그러면 보라도 너한테 모두 다 줄 테니까.


  예쁜 손으로 예쁘게 책을 읽자. 예쁜 마음으로 예쁜 하루를 빛내자. 예쁜 꿈으로 서로 예쁘게 사랑을 꽃피우자. 네 동생 보라는 누나 벼리가 노는 모습을 책으로 삼으며 하루를 빛내고 싶어 한단다.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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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싫어하는 책읽기

 


  아버지는 말야, 맛나게 먹자고 차린 밥상 앞에서 책을 펼쳐 읽겠다고 하는 모습이 참으로 싫단다. 책을 읽으려면 아버지가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떠는 동안 읽어야지, 밥을 차리려고 부산을 떨 적에는 자꾸 불가에 달라붙으며 이것 달라느니 저것 주라느니 하더니, 막상 밥상을 차린 뒤에는 책을 들고 와서 밥상 앞에 앉고는 밥상은 쳐다보지 않으면, 누가 좋아하겠니.


  밥은 즐겁게 먹고, 책은 즐겁게 읽으며, 놀이는 다 함께 즐겁게 하자. 밥상 앞에서는 책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을 적에는 배고프다 말하지 말자.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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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밭이 좋아

 


  삶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좋다’와 ‘나쁘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좋다와 나쁘다라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무언가 즐길 만할 때에 ‘좋다’라 말하고, 나 스스로 즐길 만하지 않을 때에 ‘나쁘다’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즐길 만하구나, 즐겁구나, 하는 뜻으로 ‘좋다’라는 말이 흘러나와요.


  나는 풀밭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풀이 좋고 반가우며 고맙거든요. 중학교 3학년이었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문학 교과서에서 〈풀〉이라는 시를 만나고는 김수영 시인이 좋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면 이렇게 시를 쓸 때에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풀’을 모두 들려주지 않았어요. 김수영 시인이 살아가는 어느 도시 어느 보금자리에서 느끼는 풀살이만 들려주었어요.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면, 풀은 바람에 따라 눕지 않고 일어서지 않습니다. 숱한 풀이 서로 얼키고 설켜 가만히 있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몰아친대서 풀포기가 뽑히지 않아요. 풀은 서로 뿌리에서도 얼키고 설키거든요. 풀 한 포기 뽑아 보셔요. 이웃한 풀까지 나란히 뽑혀요. 서로 한 뿌리라도 되는 듯 꼭 붙잡으니까요.


  풀밭을 바라보면서 내 눈을 거쳐 내 마음으로 푸른 기운이 스며듭니다. 풀밭을 마주하면서 내 손과 내 가슴으로 푸른 숨결이 샘솟습니다. 좋아요. 풀이 좋아요. 즐거워요. 풀이 즐거워요. 풀은 사랑을 먹고, 사람은 풀을 먹습니다. 풀은 씨앗을 남기고, 사람은 사랑을 남겨요.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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