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맞이 (도서관일기 2012.10.29.)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인천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여섯 살 아이랑 네 살 아이를 이끈 어머니 한 분 찾아와서 여러 날 우리 집에서 함께 묵는다. 바다에도 마실을 가고 마을 한 바퀴도 돈 다음 서재도서관에도 함께 나들이를 간다. 그런데 여러 날 함께 지내면서 서재도서관에는 꼭 한 번 나들이를 한다. 바쁠 일이 없다고 할 테지만, 코앞에 있는 곳까지 드나들지 못한다. 새삼스럽다 할 일은 아니다. 서재도서관과 집이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 나부터 하루에 한 차례 들르기도 만만하지 않다. 돌이켜보면, 인천에서 서재도서관을 꾸릴 적에도 3층이 도서관이고 4층이 살림집이어도 큰아이 하나 돌보고 집살림 도맡느라 하루에 한 차례도 3층으로 못 내려온 적이 잦았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두 아이와 복닥이면서 책 한 줄 못 읽는 날이 있다. 두 아이와 부대끼면서 종이책 건드릴 엄두를 못 낼 뿐 아니라, 두 아이한테 그림책 한 번 느긋하게 못 읽어 주는 날도 잦다.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왔기에 아이 넷이 복닥복닥 떠드는 서재도서관이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인 터라 다른 책보다 그림책 둘레에 모인다. 어른들이 찾아왔으면 어른들 나름대로 다른 책 둘레에 모이겠지. 사진기를 어깨에 멘 어른들이 찾아왔다면 이분들은 이분들 나름대로 다른 책 둘레에 모이겠지.


  어느 어른은 우리 서재도서관 책을 살피며 ‘값진’ 책이 많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우리 서재도서관으로 마실을 하면서 ‘넓어 뛰어놀기 좋다’고 말한다. 아마 아이들로서는 ‘도시에 있는 다른 도서관’에서는 뛰지 말라느니 시끄럽게 굴지 말라느니 하는 소리를 신나게 들었으리라.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골마루를 달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걸상에 앉아 책을 읽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흙운동장을 달리며 놀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어른들이 나무그늘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이야기꽃 피울 수 있으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빈터에서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예쁘며 아름다운 도서관살림이 되리라 느낀다. 꿈을 꾸자.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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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들 누런빛 책읽기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살찌우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한국말이 한국말답게 국어사전에 제대로 안 실리곤 한다. 그런데, ‘노란빛’도 ‘누런빛’도 국어사전에 실린다. 뜻밖이라 하거나 놀랍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두 빛깔말이 국어사전에 실린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국어사전에 이런 빛깔말이 실리고 안 실리고를 떠나, 노란빛과 누런빛이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환하거나 해맑은가를 살결 깊숙이 가슴으로 느끼거나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내지 않으니 스스로 겪지 못한다. 스스로 겪지 못하니 스스로 알지 못한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데 깨닫거나 빛내지 못하고, 스스로 깨닫거나 빛내지 못하기에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노란빛과 누런빛 이야기를 글로 쓴다든지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사진으로 찍는다든지, 아니 무엇보다 말로 들려주지 못한다.


  스스로 살아낼 때에 알 수 있다. 스스로 살아낼 때에 비로소 알아보고 느끼며 말할 수 있다. ‘황금빛 물결’이란 너무 안 맞는다. 시골사람은 어느 누구도 ‘황금빛 물결’이라 말하지 않는다. 시골서 살며 ‘금’을 보거나 ‘금빛’을 생각할 일이 없는걸. 도시에서 금덩이나 돈을 주무르는 사람들 눈썰미로 생각하자니 ‘황금빛 물결’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가 튀어나올 뿐 아니라 널리 퍼진다.


  가을들은 ‘가을들빛’이다. 가을들빛은 누런빛이다. 누런빛은 나락빛이다. 나락빛은 사람들을 살찌우고 먹여살리는 밥빛이다. 밥빛은 삶빛이요, 여름부터 가을까지 곱다시 드리운 햇빛이다. 햇살이 살찌우고 돌본 벼빛이다. 흙일꾼이 구슬땀을 흘리며 사랑한 흙빛이면서 손빛이고 사랑빛이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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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자는 유자빛 책읽기

 


  유자 열매 노랗게 익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유자랑 탱자랑 엇비슷하다. 가까이서 보면 유자는 크고 탱자는 작은데, 멀리서 바라보면 엇비슷하다. 유자는 무슨 빛깔이라고 할 만할까. 탱자는 무슨 빛깔이라고 할 만할까. 귤은? 감귤은?


  사람은 모두 달라 저마다 스스로 이름을 붙인다. 큰 테두리에서는 ‘사람’이고, 사람 테두리에서는 ‘이름’이 있다. 유자도 큰 테두리에서는 저마다 달라 ‘유자빛’ 한 마디로는 뭉뚱그릴 수 없다. 크게 얽어 ‘유자빛’이라 하지만, 유자 열매마다 빛깔과 빛결과 빛무늬가 조금씩 다르다. 똑같은 모양이나 크기나 무게나 맛이나 멋인 유자 열매는 한 가지조차 없다. 그런데 유자나무에 달린 유자잎도 모두 다르다.


  어느 나무이건 다 다른 가지가 자라서 다 다른 잎이 돋는다. 다 다른 꽃이 피고 다른 열매를 맺으며 다 다른 씨앗을 키운다. 다 다른 씨앗은 다 다른 땅으로 떨어져 다 달리 뿌리를 내리며 다 다른 나무로 새삼스레 자란다. 얼마나 아름다운 숲이요 마을이며 지구별인가. (4345.1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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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살며시 읽는 책

 


  책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지식으로 읽는 책이란 없습니다. 누군가 지식을 가득 담아 책을 쓴다 하더라도, 읽는 우리들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왜냐하면, 책 하나를 손에 쥐어 읽는 우리들은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북돋우거나 살찌울 때에 스스로 즐겁거든요.


  대학교 졸업장이 내 이름을 높이지 않습니다. 값진 옷차림이 내 얼굴을 드높이지 않습니다. 새까만 자가용이 내 눈빛을 밝히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마음으로 내 이름을 빛냅니다. 오로지 내 마음으로 내 얼굴을 곱게 가꾸고 내 눈빛을 싱그러이 추스릅니다. 김원숙 님이 빚은 이야기책 《그림 선물》(아트북스,2011) 33쪽을 읽으면 “그러고 보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사랑이다.” 하는 말마디가 나옵니다. 그림쟁이가 그림을 그리든,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든, 글쟁이가 글을 쓰든, 저마다 언제나 ‘사랑’ 하나 있어 삶을 일굽니다.


  시골마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흙을 만지며 숲과 들과 바다를 지킬 수 있는 힘이라면 그예 한 가지 ‘사랑’입니다. 딸아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 보내지만 정작 당신은 시골마을에 남아요. 딸아들이 도시로 당신을 부르려 해도 손사래를 칠 뿐, 시골마을을 떠나지 않아요. 허리가 아프네 눈이 어둡네 하지만,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 사람들 배부르게 먹을 온갖 곡식과 열매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두어요.


  편해문 님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2012)라는 책 53쪽에서 “대한민국은 작은 골목을 없애 도로를 만들고 동네 마당을 메꾸어 큰 건물을 지어, 이제는 아기자기한 골목도 마당도 보기 쉽지 않다. 골목과 마당이 사라지니 아이들도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하고 말합니다. 도시라는 곳은 돈을 더 만들고 돈을 더 벌며 돈을 더 쓰도록 나아가니까, 골목도 마당도 없애기 마련입니다. 나중에서야 겨우 나무 몇 그루 심고 공원 흉내를 내는데, 공원 흉내를 낸 그 자리는 지난날 숲이었어요. 처음부터 숲을 고스란히 살리면 될 노릇이지만, 도시에서는 숲을 되살리거나 지키지 않아요. 언제나 돈을 들여 무언가 뚝딱거립니다.


  깊은 가을날, 아이들 이끌고 바다로 마실을 갑니다. 사람들은 여름바다에서만 물놀이를 하는데, 봄바다에서도 가을바다에서도 물놀이를 즐길 만합니다. 겨울바다라고 물놀이를 못 즐길 까닭이 없습니다. 바다에서는 물을 밟고 만지며 튕길 수 있어 좋아요. 숲에서는 풀을 밟고 만지며 뜯어먹을 수 있어 즐거워요. 들에서는 바람을 쐬고 햇살을 누리며 풀내음 짙게 맡아요.


  돌이켜보면, 책이란 곧 삶이지 싶어요. 삶이 바로 책이지 싶어요. 바다에서 책을 읽어요. 논배미와 유자밭에서 책을 읽어요. 나락을 말리는 할머니 손길에서 책을 읽어요. 풀개구리 한 마리한테서 책을 읽어요.


  카렐 차페크 님은 《원예가의 열두 달》(맑은소리,2002)이라는 책을 쓰며 138쪽에서 “관청의 창가에는 아무것도 피어 있지 않거나 빨강과 흰색의 제라늄만이 피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관청에서 자라는 식물에 대해서는 공무원 또는 장관의 의지와 호의와 일정한 전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철도청 관리 아래서 식물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며, 우체국과 전화국에서는 도무지 아무것도 피지 않는다.” 하고 노래합니다. 참말, 시골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조차 ‘꽃’도 ‘풀’도 ‘나무’도 보기 힘들어요. 자동차 세우는 터만 널따랗습니다. 잔디밭조차 구경하기 어려워요. 건물은 커지기만 할 뿐, 숲이 늘어나는 일이 없어요. 사람들은 애써 수목원으로 나무내음 풀내음 즐기려 간다고 하지만, 정작 이녁 삶자리에 숲이 우거지고 나무가 푸른 잎사귀 흔들며 바람노래 들려주도록 하지 않아요.


  이선관 님 시집 《우리는 오늘 그대 곁으로 간다》(실천문학사,2000)를 읽습니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라는 짤막한 시를 찬찬히 곱새깁니다. “여보야 / 이불 같이 덮자 / 춥다 /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 따뜻한 솜이불처럼 / 왔으면 좋겠다” 겨울날 솜이불 함께 덮는 ‘통일’이로군요. 겨울날 고구마 쪄서 나누어 먹는 ‘통일’도 되겠지요. 따순 봄을 함께 꿈꾸는 ‘통일’도 될 테고, 찬바람 싱싱 불어도 노랗고 하얀 꽃송이 뽐내는 가을 들꽃 어깨동무하며 바라보는 ‘통일’도 될 테지요. 삶을 살며시 읽으며 책을 마음 깊이 녹입니다. (4345.1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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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개구리 책읽기

 


  이제 개구리 노랫소리 안 들리니 개구리들 모두 겨울잠 들었나 싶을 무렵, 마당가 샘터에서 풀개구리 한 마리를 보았다. 시월 첫머리였나. 그러고서 보름쯤 지나 서재도서관 풀숲에서 폴짝 뛰어올라 내 손가락에 사뿐히 올라탄 풀개구리 한 마리를 보았다. 다시 보름이 지난 십일월 첫머리, 아직 다른 풀개구리가 나한테 찾아오지는 않는다. 나는 다른 풀개구리를 더 만나지 못하지만, 어딘가 풀숲에서 조용조용 숨죽이며 먹이를 찾고 짝꿍을 찾으며 가을볕을 누리는 풀개구리 있을는지 모른다.


  이 작고 가녀린 몸으로 너는 참 예쁘게 살아가는구나. 그렇지만, 사람 몸뚱이로 너를 바라보면 네가 몹시 작지만, 네 눈길로 개미를 바라보면 개미가 더없이 작을 테지. 지구별이라는 마음결로 나 한 사람을 바라본다면 내 몸뚱이 하나란 그지없이 작을 테고.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을 바라볼 때면, 지구별 하나란 얼마나 작으며 예쁘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숫자를 가늠할 수 없도록 많은 별들은 저마다 어떤 삶·꿈·사랑을 노래하며 하루하루를 누릴까 궁금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들이 온누리를 이루고, 이 가운데 지구별이 하나 있듯, 내 몸뚱이 또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세포로 ‘사람누리’를 이루면서, 이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고 손톱 하나 자라며, 조그마한 풀개구리 하나 살며시 길동무처럼 찾아든다고 할 만할까.


  생각을 가다듬어 내 어린 날을 되새긴다. 인천이라 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동네에서 땅강아지를 쉽게 만났고, 아파트 꽃밭이나 동네 텃밭이나 바닷가 풀숲 언저리에서 언제나 여러 개구리를 보았다. 주먹만 한 흙개구리를 보며 네가 잡히나 내가 잡나 하고 숨바꼭질 즐기곤 했다. 2012년 오늘날에도 인천이라 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개구리를 만날 수 있을까. 이 나라 도시 가운데 쉽게 개구리하고 동무 삼으며 놀 만한 터전이나 보금자리가 있을까. 이 나라 시골 가운데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개구리랑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면서 하루를 누릴까.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찾아든 다음, 천천히 봄이 스며들면 시나브로 논개구리 멧개구리 한꺼번에 깨어나 새삼스레 노래잔치를 베풀어 주겠지. 고즈넉하고 조용한 가을이 흐른다. (4345.1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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