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손님

 


  동네책방은 더 많은 책손을 바라며 여는 책터가 아닙니다. 동네책방은 동네 책손 생각하며 여는 책터입니다. 가끔 책나그네 찾아올 수 있지만, 동네책방은 동네사람 사뿐사뿐 찾아들어 오순도순 누리는 책마당입니다. 한때 동네책방은 조그마한 동마다 여러 곳 있었고, 학교 앞에 으레 한두 군데씩 있었어요. 그래서 동네책방 숫자는 만 군데를 훨씬 웃돈 적 있어요.


  이제 동네책방은 아주 많이 사라집니다. 동네사람 스스로 동네책방으로 찾아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네사람 스스로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 할 적에 동네책방 일꾼한테 말씀을 여쭙고 책을 갖춰 달라 하고는 하루나 이틀이나 이레나 열흘 즐겁게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을 남보다 하루 더 빨리 받아서 읽기에 내 삶이 아름답게 꽃필까요. 이 책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서 읽은 만큼 내 삶이 사랑스레 거듭나는가요. 이 책을 적립금 더 쌓거나 에누리 더 얻으면서 장만하여 읽기에 내 마음속으로 한결 깊고 넓게 이야기를 아로새기는가요.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천만을 웃돈다고 하지만, 천만 웃도는 사람들이 서울사람 대접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서울로 들어서지 못한 ‘서울바라기 사람’들이 서울사람 된대서 삶과 사랑과 꿈이 아름답게 피어날 만한지 궁금합니다. 동네를 떠나고 마을을 버리면서 서울사람 되거나 도시사람 되면 책도 더 잘 읽을 수 있고, 영화도 한결 잘 볼 수 있으며, 문화나 예술도 한껏 북돋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참으로 커다란 서울이요 도시인데, 서울이든 도시이든 공원은 아주 작습니다. 공원에 이루어진 숲은 거의 없습니다. 30층이나 50층까지 아파트가 올라간다지만, 막상 ‘아파트 공원’에 나무 한 그루 늘어나기 힘들고, ‘아파트 공원’에 들풀 한 포기나 들꽃 한 송이 거리낌없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단지를 이루는 아파트에 몇 만 사람 살기도 한다는데, 몇 만 사람 살아가는 ‘아파트 단지’에 풀밭이나 숲이나 나무그늘이나 공원은 어느 만큼 있는가요.


  아주 조그마한 헌책방은 책방 손님 조금씩 찾아들어도 알뜰살뜰 꾸릴 수 있어요. 참으로 작은 동네 새책방은 책방 손님 조금만 찾아들어도 아기자기하게 일굴 수 있어요. 책손 백 사람이 한꺼번에 드나들지 못하는 동네책방입니다. 책손 천 사람이 인터넷주문을 해서 책을 받을 수는 없는 마을책방입니다. 동네책방은 많은 손님보다도 단골 발길로 오래도록 사랑받으면서 동네 문화를 일굽니다. 마을책방은 자주 꾸준하게 찾아오면서 책 하나에서 사랑과 꿈을 느끼는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시나브로 마을 예술을 빚는다고 느껴요.


  책방을 살리는 사람은 단골입니다. 마을과 동네를 살찌우는 사람은 마을사람이요 동네사람입니다. 동네책방에 동네단골이 아름답습니다. 마을책방에 마을단골이 사랑스럽습니다. 4346.6.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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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삶

 


  책에 빛줄기 서려 책빛이다. 책빛을 느끼면서 책을 읽기에 책삶이다. 책삶을 헤아리면서 하루하루 누리기에 책사랑 된다. 사랑을 깨닫는 삶이 아름답다고 느껴 책마음 이어간다.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그동안 내 손을 거친 책들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까닭을 나 스스로 아직 잘 모른다. 아니,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책들이 나한테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빛줄기를 비추었기에, 아름다움과 빛줄기를 받아먹으면서 저절로 글이 샘솟았고 시나브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아마, 내가 쓴 글과 내가 찍은 사진도 누군가한테는 고운 책빛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글과 사진이 태어나는 밑거름 될 수 있겠지.


  나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기에 삶을 읽는다. 나는 글을 쓴다. 곧, 책을 쓴다. 글을 쓰기에, 곧 책을 쓰기에 삶을 쓴다. 내가 읽는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다. 내가 쓰는 삶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다. 사랑하는 삶이 있어서, 읽고 쓴다. 사랑하는 삶을 좋아하는 하루이기에, 언제나 책과 글과 사진이 나란히 있으며, 이 곁에 옆지기와 아이들 예쁘게 어우러진다. 4346.5.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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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찍는 사진

 


  나는 내가 쓰는 사진기로만 바라본다. 내가 쓰지 않는 사진기로는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내 주머니에 있는 돈만큼 책을 사서 읽는다. 나는 내 주머니에 없는 돈으로 어떤 값비싼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책을 고르고 읽다가 ‘이렇게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며 읽는’ 느낌이 참 좋구나 싶어서 헌책방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사진을 배우고 찍을 무렵에는 필름사진만 있었고, 디지털사진이 처음 나온 때에는 값이 매우 비싸서 엄두를 못 내다가, 사람들이 디지털사진 널리 쓰며 값이 많이 떨어진 뒤, 비로소 2006년에 처음으로 장만해서 써 보았다.


  오래도록 필름사진을 찍다가 디지털사진을 찍으며 든 생각은 꼭 하나이다. ‘화각이 필름사진을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그런데 디지털사진기 가운데 천만 원쯤 들여 장만하는 장비는 필름사진에서 얻는 화각이 나온다. 이천만 원이나 일억 원쯤 들여 어떤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면 필름사진을 뛰어넘는 화각을 얻는다. 언젠가 천만 원짜리 디지털사진기를 1분쯤 빌려 들여다보면서 ‘값비싼 디지털사진기 화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낀 적 있다. 그러나 나는 딱히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값비싼 장비를 손에 거머쥔 사람이라 하더라도, 헌책방 나들이를 할 적에 책과 한몸 되어 책을 사랑하는 넋이 아니라 한다면 ‘헌책방을 비춰 보이는 사진 한 장’ 얻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필름사진을 더 안 찍는다. 필름을 새로 살 돈이랑, 필름 현상을 맡기는 돈을 대지 못한다. 앞으로는 흑백사진 찍더라도 디지털사진기로만 찍을밖에 없다. 내 디지털사진기는 화각이 매우 좁고, 어쩌면 내가 이제껏 찍던 느낌을 못 살릴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필름사진기도 그닥 대단한 장비는 아니다. 디지털사진이 아직 없고 필름사진만 있던 때에, 내 둘레 사람들은 내 필름사진기를 바라보며 ‘어쩜 그런 싸구려 사진기를 쓰느냐’ 하고 얘기하곤 했다.


  그러니까, 필름사진을 더는 못 찍고, 화각 많이 좁은 값싼 디지털사진기를 쓰더라도, 나 스스로 ‘내 화각’을 내 나름대로 새로 만들면 된다고 느낀다. 값싼 필름사진기로도 ‘내 화각’을 만들어서 찍었듯, 값싼 디지털사진기로도 새로운 ‘내 화각’을 만들어서 찍으면 된다.


  거의 마지막이라 할 필름을 스캐너로 긁으며 내 사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사진 얻은 필름사진기로는 이 화각이 나오지만, 같은 자리에서 내 디지털사진기를 꺼내면 이 화각이 안 나온다. 나는 이 사진에서 책손이 책값을 셈하는 모습이랑 책방 일꾼 실장갑이 책더미 사이에 묻힌 모습을 나란히 담으려 했다. 화각이 안 나오는 디지털사진기를 손에 쥐었다면, 아마 ‘이 사진 같은 화각’과는 다른 ‘새롭게 바라보는 화각’으로 새로운 사진 찍으리라 생각한다. 만 원이 주머니에 있으면 만 원에 맞게 즐겁게 읽을 책을 찾듯, 값싼 디지털사진기 있으면 값싼 디지털사진기로 찍을 만한 사진을 찍으면 된다. 천 원이 주머니에 있으면 꼭 천 원으로 장만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책을 장만해서 삶을 즐거이 누리면 된다. 디지털사진기조차 없이 손전화 기계로 사진을 찍더라도 내 마음 담아낼 모습을 빚으면 된다.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홀가분하게 책시렁 돌아보면서 조금씩 책을 읽어 마음밭 살찌우면 된다. 사진기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마음에 담으면 된다. 참말 그렇다. 4346.5.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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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7 18:22   좋아요 0 | URL
'새롭게 바라보는 화각'으로 새로운 사진 찍으리라...-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마음에 담으면 된다. -

그런데 정말 필요한 돈은, 생겼으면 참으로 좋겠어요..,

숲노래 2013-05-28 07:19   좋아요 0 | URL
네, 사진기 하나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아직 돈을 모으지 못해서
새로 장만하지 못하네요.

필름값도 모으지 못하지만,
필름값 드는 돈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제가 쓸 디지털사진기 하나 장만하려고 하는데
이 또한 참 만만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곧 그 돈 즐거이 들어올 테지요~
 

누구나 쓸 수 있는 책

 


  책은 누구나 쓴다.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그러나, 모든 책이 누구한테나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책이 새책방에 오래오래 남지 못하며, 모든 책이 헌책방 책시렁에 놓이지 않는다. 모든 책이 백 해나 이백 해를 견디지 않는다.


  어떠한 책이든 쉰 해가 지나면 ‘옛책(고서)’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여러모로 섬길 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옛책 이름이 붙는대서 모든 옛책이 책으로서 값어치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나이 오래 먹은 책일 뿐, 딱히 다른 값이 깃들지 못한다.


  나무는 백 살 지나고 오백 살 지나며 천 살 지나면, 나이 한 살마다 더 깊고 너른 넋과 숨결 깃든다. 그러나, 책은 어떠한 책이든 나이값에 따라 더 섬기거나 모실 만하지 않다. 그저 어느 한때 쓸쓸한 자취를 보여줄 뿐이다.


  처음부터 아름답게 빚은 글로 아름답게 엮은 책일 때에 오래오래 아름다이 사랑받는다. 비록 모든 사람이 알아보거나 즐겁게 읽는 책이 못 된다 할지라도, 아름답게 빚은 글은 다문 한 사람이거나 열 사람이거나 백 사람이 되더라도, 두고두고 아름답게 읽어 주어, 사람들 마음에 아름다운 사랑 감돌도록 이끈다.


  책은 누구나 쓴다. 글은 누구나 아름답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고서야 글을 아름답게 쓰지 못한다. 아름다운 삶에서 아름다운 사랑 길어올릴 때에 아름다운 글을 써서 아름다운 책을 빚는다. 아름다운 꿈을 꾸며 아름다운 마음 북돋울 때에 아름답게 물려주면서 물려받을 책을 빚는다.


  백 살 묵은 책이라 하는 이름 하나만 얻는 책이라면, 이러한 책이 된 나무는 얼마나 서글플까. 오백 살 묵은 책이라 하는 이름 빼고는 달리 아무 값이 없는 책이라면, 이러한 책이 된 나무는 얼마나 서운할까.


  글을 쓴 이가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한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책을 불태우기도 한다. 글을 쓴 이가 못된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어떤 사람들은 책을 내다 버리기도 한다. 책을 펴낸 곳에서 얄궂은 짓을 저지른 탓에, 어떤 사람들은 책을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글을 쓰거나 책을 낼 적에는 종이 한 장이 나무인 줄 헤아려야지 싶다. 글을 읽거나 책을 장만할 때에는 책 한 권이 나무에서 온 줄 느껴야지 싶다.


  곧,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한다면, 누구나 나무를 아낄 수 있다는 뜻이요, 누구나 숲을 사랑할 수 있다는 소리이며, 누구나 우리 삶을 새롭게 빛내는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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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06:07   좋아요 0 | URL
정말 저도,
글을 읽거나 책을 장만하거나 읽을 때
책 한 권이 나무에서 온 줄을,
한 번 더 느끼며 읽어야겠습니다.

숲노래 2013-05-26 06:37   좋아요 0 | URL
책도, 책상도, 걸상도, 여느 종이와 수첩도, 연필도...
우리 둘레에는 나무로 이루어진 것 참 많아요.
언제나 나무를 가만히 헤아려 보면서
숲이 있기에 삶이 있구나 하고 느껴요...
 

신문종이

 


  스무 해 남짓 헌책방마실을 하며 헌책방지기를 바라보면, 퍽 많은 헌책방지기는 책손이 뜸하거나 한갓질 적에 으레 신문을 읽곤 한다. 천천히 책시렁 갈무리하는 분이 있고, 책을 읽는 분이 있으며, 텔레비전을 켜는 분이 있는데, 이 가운데 신문을 펼쳐 읽는 분이 무척 많다.


  헌책방지기가 신문을 좋아해서 신문을 으레 읽을는지 모르리라. 그런데, 어느 헌책방이건 신문종이가 어김없이 한쪽에 쌓인다. 이 신문종이는 ‘책을 많이 고른 책손’이 있을 적에 끈으로 책을 묶으면서 위아래로 받칠 때에 즐겨쓴다. 요새는 비닐봉지 많고, 서류봉투 곧잘 흘러나와, 이런 종이 저런 비닐로 책꾸러미를 싸곤 하지만, 예전에는 책꾸러미를 끈으로 묶을 적에 신문종이를 많이 썼다. 헌책방에서 신문을 받아보는 까닭이라면, 책꾸러미 쌀 적에 쓸 생각이기 때문이랄까.


  비오는 날이면 이 신문종이가 헌책방 바닥에 놓이곤 한다. 빗물에 젖은 책손 신을 신문종이에 대고 톡톡 털면, 헌책방 바닥에 물기가 적게 튀곤 한다.


  책탑을 쌓을 적에 신문 한 장 작게 접어서 사이에 끼우면, 책탑이 반듯하게 서면서 책등이 잘 보여 책이름 살피기에 좋다. 바닥에 책탑을 쌓을 적에도 신문종이를 맨 밑바닥에 대면 책이 덜 다친다.


  여느 사람들은 신문종이를 냄비받침으로 곧잘 쓰는데, 헌책방에서 신문종이는 여러모로 알뜰히 쓸모가 많다. 헌책방지기는 ‘안 팔리고 쌓이는 책’을 ‘헌 종이 모으는 할매나 할배’한테 넘겨주어도, 신문종이는 안 넘겨주기 마련이다. 4346.5.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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