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찍는 사진

 


  나는 내가 쓰는 사진기로만 바라본다. 내가 쓰지 않는 사진기로는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내 주머니에 있는 돈만큼 책을 사서 읽는다. 나는 내 주머니에 없는 돈으로 어떤 값비싼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헌책방을 다니면서 책을 고르고 읽다가 ‘이렇게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며 읽는’ 느낌이 참 좋구나 싶어서 헌책방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사진을 배우고 찍을 무렵에는 필름사진만 있었고, 디지털사진이 처음 나온 때에는 값이 매우 비싸서 엄두를 못 내다가, 사람들이 디지털사진 널리 쓰며 값이 많이 떨어진 뒤, 비로소 2006년에 처음으로 장만해서 써 보았다.


  오래도록 필름사진을 찍다가 디지털사진을 찍으며 든 생각은 꼭 하나이다. ‘화각이 필름사진을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그런데 디지털사진기 가운데 천만 원쯤 들여 장만하는 장비는 필름사진에서 얻는 화각이 나온다. 이천만 원이나 일억 원쯤 들여 어떤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면 필름사진을 뛰어넘는 화각을 얻는다. 언젠가 천만 원짜리 디지털사진기를 1분쯤 빌려 들여다보면서 ‘값비싼 디지털사진기 화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느낀 적 있다. 그러나 나는 딱히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값비싼 장비를 손에 거머쥔 사람이라 하더라도, 헌책방 나들이를 할 적에 책과 한몸 되어 책을 사랑하는 넋이 아니라 한다면 ‘헌책방을 비춰 보이는 사진 한 장’ 얻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필름사진을 더 안 찍는다. 필름을 새로 살 돈이랑, 필름 현상을 맡기는 돈을 대지 못한다. 앞으로는 흑백사진 찍더라도 디지털사진기로만 찍을밖에 없다. 내 디지털사진기는 화각이 매우 좁고, 어쩌면 내가 이제껏 찍던 느낌을 못 살릴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필름사진기도 그닥 대단한 장비는 아니다. 디지털사진이 아직 없고 필름사진만 있던 때에, 내 둘레 사람들은 내 필름사진기를 바라보며 ‘어쩜 그런 싸구려 사진기를 쓰느냐’ 하고 얘기하곤 했다.


  그러니까, 필름사진을 더는 못 찍고, 화각 많이 좁은 값싼 디지털사진기를 쓰더라도, 나 스스로 ‘내 화각’을 내 나름대로 새로 만들면 된다고 느낀다. 값싼 필름사진기로도 ‘내 화각’을 만들어서 찍었듯, 값싼 디지털사진기로도 새로운 ‘내 화각’을 만들어서 찍으면 된다.


  거의 마지막이라 할 필름을 스캐너로 긁으며 내 사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사진 얻은 필름사진기로는 이 화각이 나오지만, 같은 자리에서 내 디지털사진기를 꺼내면 이 화각이 안 나온다. 나는 이 사진에서 책손이 책값을 셈하는 모습이랑 책방 일꾼 실장갑이 책더미 사이에 묻힌 모습을 나란히 담으려 했다. 화각이 안 나오는 디지털사진기를 손에 쥐었다면, 아마 ‘이 사진 같은 화각’과는 다른 ‘새롭게 바라보는 화각’으로 새로운 사진 찍으리라 생각한다. 만 원이 주머니에 있으면 만 원에 맞게 즐겁게 읽을 책을 찾듯, 값싼 디지털사진기 있으면 값싼 디지털사진기로 찍을 만한 사진을 찍으면 된다. 천 원이 주머니에 있으면 꼭 천 원으로 장만할 수 있는 작고 가벼운 책을 장만해서 삶을 즐거이 누리면 된다. 디지털사진기조차 없이 손전화 기계로 사진을 찍더라도 내 마음 담아낼 모습을 빚으면 된다.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홀가분하게 책시렁 돌아보면서 조금씩 책을 읽어 마음밭 살찌우면 된다. 사진기 없으면 없는 대로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마음에 담으면 된다. 참말 그렇다. 4346.5.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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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7 18:22   좋아요 0 | URL
'새롭게 바라보는 화각'으로 새로운 사진 찍으리라...-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마음에 담으면 된다. -

그런데 정말 필요한 돈은, 생겼으면 참으로 좋겠어요..,

숲노래 2013-05-28 07:19   좋아요 0 | URL
네, 사진기 하나 새로 장만해야 하는데
아직 돈을 모으지 못해서
새로 장만하지 못하네요.

필름값도 모으지 못하지만,
필름값 드는 돈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제가 쓸 디지털사진기 하나 장만하려고 하는데
이 또한 참 만만하지 않습니다 @.@

그러나, 곧 그 돈 즐거이 들어올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