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헌책방

 


  도서관에 ‘있는 책’이 있고, 도서관에 ‘없는 책’이 있습니다. 새책방에 ‘있는 책’이 있고, 새책방에 ‘없는 책’이 있습니다. ‘있는 책’은 빌릴 수 있고 살 수 있어요. ‘없는 책’은 구경할 수 없고 찾을 수 없어요.


  헌책방에 ‘모든 책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내놓은 책이나 도서관에서 건사하지 않은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새책방에서 사랑받지 못한 책이나 새책방으로 들어가지 못한 책이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인터넷이 없던 지난날, 헌책방은 너른 이야기바다였고 정보누리였으며 지식곳간이었습니다. 인터넷이 있는 오늘날, 다리품 팔아 마실을 다니지 않더라도 헌책방에서 책을 장만할 수 있습니다. 큰 책방에서도 헌책을 다루고, 아름다운가게에서도 헌책을 다루며, 인터넷책방인 알라딘에서는 아예 헌책매장을 엽니다. 지난날하고 견줄 수 없이 ‘헌책 장터’가 커졌다고 해야 할는지, ‘헌책 팔아 돈이 된다’고 여겨야 할는지 살짝 아리송합니다. 다만, 인터넷으로 헌책을 사고팔 수 있거나, 큰 책방 여러 곳과 인터넷책방 알라딘 ‘중고샵’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런 곳에서 다루지 못하거나 다루지 않는 책이 아주 많습니다.


  인터넷책방은 인터넷에 목록으로 올린 책만 다룹니다. 인터넷에서는 누군가 목록으로 띄운 책만 알 수 있습니다. 매장으로 있는 헌책방에서 목록으로 밝히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런 책이 있는’ 줄조차 모르기 일쑤입니다.


  100만 권 팔려도 책이요, 100권만 찍어도 책입니다. 이름난 작가와 출판사 이름이 붙어도 책이며, 혼자서 조용히 10권쯤 찍어도 책입니다. 책이란 이야기밭입니다. 책방이란 ‘이야기밭 일구고픈 사람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이야기마당입니다. 헌책방은 새롭고 새삼스러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사람들이 다리품을 팔면서 빙그레 웃고 어깨동무하는 꿈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져도 인터넷에 목록 안 올리는 헌책방 많습니다. 인터넷책방으로 꾸려도 모든 책을 목록으로 띄우지 않는 헌책방입니다. 책손 스스로 나들이를 할 때에 눈을 번쩍 뜨이도록 이끄는 책이 새롭게 나타납니다. 책손 스스로 마실을 다닐 적에 마음이 환하게 깨이도록 돕는 책이 새삼스레 드러납니다.


  디지털파일로도 책을 읽는다 하지만, 디지털파일로조차 담기지 못한 책이 많습니다. 전기가 없고 전파를 잡을 수 없는 곳에서는 오직 종이책으로만 이야기를 만납니다. 생각해 보면, 전기도 전파도 닿지 않는 데라면, 굳이 종이책 아닌 나무책 읽고 숲책 읽으면 될 테지요. 숲속에서까지 굳이 종이책 안 읽어도 좋아요. 멧골에서까지 애써 종이책 안 읽어도 좋아요. 책을 쓰는 사람들은 꽃내음 함께 맡고 싶은 마음이에요. 책을 엮는 사람들은 풀빛 서로 즐기고 싶은 뜻이에요. 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나무숨결 다 같이 마시고 싶은 넋이에요. 4346.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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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는 책방

 


  헌책방은 으레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책숨 잇습니다. 헌책방이라는 데가 한국에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무렵 북녘에서 남녘으로 온 뒤 씩씩하게 헌책방 길장사부터 해서 가게를 차려 오늘날까지 꾸리는 분들이 아직 몇 분 계십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제 막 헌책방이든 동네책방이든 마을카페이든 무엇이든, ‘내 일터이자 가게요 삶터’가 될 곳을 마련해서 꾸리려 할 적에, ‘내 일터이자 가게요 삶터’ 바로 앞에 가로세로 1미터쯤 빈터를 마련해서 나무 한 그루 심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열 해가 지나면 자그맣게 그늘이 지겠지요. 스무 해가 지나면 퍽 넓고 시원한 그늘이 이루어지겠지요. 서른 해가 지나면 웬만한 비바람 막아 주겠지요. 마흔 해가 지나면 멀리에서도 알아볼 만큼 우람하게 자라 ‘왜 거기, 큰나무 있는 헌책방’ 하는 이름 얻겠지요. 서른 해가 지나면, ‘나무가 있는 헌책방’으로 찾아드는 사람들이 책방문 열고 들어가기 앞서 나무부터 올려다보면서 아! 하고 한 마디 뱉겠지요. 예순 해가 지나고 일흔 해가 지나면, 나무와 함께 헌책방은 조그맣게 지역문화재가 될 테고, 널리 사랑받는 이야기마당 되리라 느껴요.


  나무가 있어 종이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어 글을 쓰고는, 글을 엮어 책을 묶어요. 책과 나무는 늘 한몸이에요. 책방과 나무는 언제나 이웃이에요. 헌책방과 나무는 노상 한마음이에요.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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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4 09:53   좋아요 0 | URL
나무가 있는 책방, 참 좋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나무와 헌책방처럼 잘 어울리는 것은 없을 듯 해요.
저 서점 앞의 나무는 은행나무 같은데 또 가을에는 얼마나 노랗게 아름다울까요? ^^
'가을 우체국 앞에서'처럼, ^^;;

숲노래 2013-06-14 10:05   좋아요 0 | URL
네, 가을에는 책방잔치를 하는데, 그때 낮에 노란나무 사진 찍으면,
사진을 찍는 내 마음도 설렌답니다!

oren 2013-06-14 09:51   좋아요 0 | URL
나무 한 그루 덕분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그런 고마운 나무를 한 그루도 제대로 심고 가꾸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가끔씩 시골에 갈 때마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나무를 보노라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구요. '어릴 땐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리기도 하고, 신발에 흙이 묻었을 땐 가끔씩 그 신발로 나무의 등짝을 때리기도 하고... 그런데도 나는 널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구나. 그런데도 너는 늘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가만히 반겨주고 있구나 싶은...'

숲노래 2013-06-14 10:06   좋아요 0 | URL
나무는 아이들이 놀아 줄 때에 아주 좋아해요.
그러면서 가만히 말을 마음으로 건네지요.

oren 님은 어릴 적에 나무한테서 좋은 기운
많이 받아들여서 오늘 하루도
즐겁게 살아가시는구나 싶습니다 ^^
 

함께 들여다보는 책

 


  어머니 곁에 붙어서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큰아이. 큰아이 곁에 붙어서 누나가 들여다보는 그림책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은 작은아이. 큰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 삶을 배우고, 작은아이는 누나 곁에서 누나 삶을 배운다. 어머니가 아름다운 책 하나 골라 살피면, 어머니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넋 깃들며 아름다운 삶 되도록 북돋우고, 아이들은 어머니 곁에서 아름다운 책에 감도는 아름다운 이야기 받아먹으면서 하루하루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놀이를 즐긴다.


  함께 들여다보는 책은 함께 일구는 삶이 된다. 함께 바라보는 책은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을 살찌우는 좋은 빛이 된다.


  책방마실을 할 때에 가만히 생각한다. ‘우리 넋 곱게 밝히는 고운 책 만날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 얼 사랑스레 보듬는 사랑스러운 책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고운 마음 되어 착하게 살아가고 싶어 책을 읽는다. 사랑스러운 마음 북돋아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하루 즐기고 싶어 책을 찾는다. 나란히 서서 책 한 권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서로 마음밭 일군다. 4346.6.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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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다락방

 


  조그마한 헌책방 하나 있습니다. 조그마한 헌책방에 책시렁 조그맣게 갖추고 조그마한 사람 하나 깃들어 조그마한 책손을 마주합니다.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릅니다. 책손이 천천히 늘고, 책이 조금씩 늡니다. 열 해가 흐르고 스무 해가 흐릅니다. 책방을 조금씩 넓히고, 책손 또한 시나브로 늘어납니다. 이제 헌책방지기는 조그마한 꿈을 하나 엽니다. 조그마한 헌책방 곁에 조그마한 다락방을 꾸밉니다. 한 해 걸려, 두 해 걸려, 세 해 네 해 차근차근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고 붙이고 세우면서 ‘헌책방 옆, 시 다락방’을 일굽니다.


  2007년 여름부터 문을 연 ‘헌책방 옆, 시 다락방’이 일곱 해째 접어듭니다. 지난 일곱 해 동안 조그마한 헌책방 조그마한 헌책방지기는 조그마한 손길로 요모조모 가꾸고 돌보면서 일합니다.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에 빛이 드리우기를 바라는 꿈을 다락방에 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에 씨앗이 자라기를 바라는 꿈을 헌책방에 얹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아름답지요. 책을 쓰는 사람도 아름답고요. 책을 짓는 사람과 책을 지키는 사람과 책을 만지는 사람도 아름답습니다. 책방지기는 책을 살리면서 아름다운 넋 됩니다. 4346.6.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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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9 15:13   좋아요 0 | URL
참으로 예쁜, 의미도 큰 곳이군요.
언제 친구와 인천 아벨서점, '헌책방 옆, 시 다락방'에 즐겁게
다녀와야 겠어요.~^^

숲노래 2013-06-09 15:22   좋아요 0 | URL
이곳 시다락방 정식 이름은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이고, 말하기 좋게 '시다락방'이라고만 하는데,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기에, "헌책방 옆 시다락방"이 된답니다~

다달이 마지막주 토요일 낮 두 시에 시낭송회를 열어요. 언제 짬 나면 나들이를 해 보셔요~~~

카스피 2013-06-10 23:23   좋아요 0 | URL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죠.예전에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같을적에 보니 문이 닫혀 있어서 문을 닫은줄 알았는데 계속 운영하고 있나 보네요^^

숲노래 2013-06-11 00:22   좋아요 0 | URL
일찍 닫거나 아직 안 열어서 문이 닫혔겠지요 ^^;;;
 

이야기를 듣는다

 


  젊은이가 헌책방에 들러 이야기를 듣는다. 한국전쟁 언저리에 부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젊은이가 묻고, 흰머리 지긋한 헌책방지기가 또박또박 이야기를 들려준다. 헌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학자나 지식인이나 기자도 헌책방지기한테서 이야기를 들어 책을 쓰지 않았고, 헌책방지기 스스로 책을 쓰지도 않았으니까.


  한국전쟁 언저리를 살아낸 사람이 많다. 그무렵 태어나거나 그즈음 어린 나날 보낸 사람들 많으니, 이야기를 듣자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야기를 들을 만하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들 살아온 이야기는 한가득 들을 만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가운데 젊은이들은 지난날 이야기를 어디에서 찾아서 헤아릴까. 도서관에 있는 책으로? 새책방에 있는 책으로? 도서관이나 새책방에서 만나기 힘든 ‘헌책방 헌책’으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어떤 역사를 누구한테서 배우거나 들을까.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은 어떤 발자취와 삶을 누구한테서 배우거나 듣는가.


  권력자와 군대 간부 움직임을 적바림한 책이어야 역사를 말하는 책일까. 역사를 말하는 책은 어떤 역사를 말하고, 어떤 사람들 발자취를 말하며, 이 나라 어떤 마을 어떤 삶터를 말할까.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흔든다. 햇살이 비추어 등판이 따스하다. 지난날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은 오늘날 이야기는 어느 만큼 느낄까. 오늘날을 이루는 삶자락과 이웃과 골목과 서민과 책을 어느 만큼 헤아릴까. 헌책방 책시렁 맨 밑바닥이나 맨 꼭대기 책을 찬찬히 훑는 젊은이는 몇이나 있을까. 헌책방 책탑 샅샅이 살피며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려는 푸름이나 어린이는 얼마나 있을까. 4346.6.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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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3 06:09   좋아요 0 | URL
저희도 청년미사때마다 머리가 하얗고, 하모니카로 동요나 가곡을 반주로 불어주시는
할아버지 신부님께 듣는, 6.25때의 사람들 이야기들으며, 꼭 전쟁이야기뿐 아니라
그 시절에 사람들에게 깃든 마음이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으며, 어른들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도 아스라한 이야기, 한 자락 살폿이 건져가는 듯 합니다..어제 저녁에도.^^

숲노래 2013-06-03 09:25   좋아요 0 | URL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오늘을 잘 아로새기고 살피면서
앞으로 2050년쯤에는 오늘날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한테 살가이 들려준다면
좋은 삶 이루어지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