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듣는다
젊은이가 헌책방에 들러 이야기를 듣는다. 한국전쟁 언저리에 부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젊은이가 묻고, 흰머리 지긋한 헌책방지기가 또박또박 이야기를 들려준다. 헌책방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느 학자나 지식인이나 기자도 헌책방지기한테서 이야기를 들어 책을 쓰지 않았고, 헌책방지기 스스로 책을 쓰지도 않았으니까.
한국전쟁 언저리를 살아낸 사람이 많다. 그무렵 태어나거나 그즈음 어린 나날 보낸 사람들 많으니, 이야기를 듣자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야기를 들을 만하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들 살아온 이야기는 한가득 들을 만하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가운데 젊은이들은 지난날 이야기를 어디에서 찾아서 헤아릴까. 도서관에 있는 책으로? 새책방에 있는 책으로? 도서관이나 새책방에서 만나기 힘든 ‘헌책방 헌책’으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어떤 역사를 누구한테서 배우거나 들을까.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은 어떤 발자취와 삶을 누구한테서 배우거나 듣는가.
권력자와 군대 간부 움직임을 적바림한 책이어야 역사를 말하는 책일까. 역사를 말하는 책은 어떤 역사를 말하고, 어떤 사람들 발자취를 말하며, 이 나라 어떤 마을 어떤 삶터를 말할까.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흔든다. 햇살이 비추어 등판이 따스하다. 지난날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은 오늘날 이야기는 어느 만큼 느낄까. 오늘날을 이루는 삶자락과 이웃과 골목과 서민과 책을 어느 만큼 헤아릴까. 헌책방 책시렁 맨 밑바닥이나 맨 꼭대기 책을 찬찬히 훑는 젊은이는 몇이나 있을까. 헌책방 책탑 샅샅이 살피며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려는 푸름이나 어린이는 얼마나 있을까. 4346.6.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