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일공일삼 11
엘레노어 에스테스 지음,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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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0

 


모두 내 동무예요
―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엘레노어 에스테스 글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 2002.1.11.

 


  이웃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둘레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이웃입니다. 동무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를 떠나 우리 곁 누구나 동무입니다. 나 혼자만 잘산다고 할 적에는 참말 잘사는 일이 아닙니다.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잘살 적에 참말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몇몇만 잘산대서 잘사는 일이 아니에요. 내가 모르는 누구나 잘살 적에 비로소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이지 않은 목숨은 없습니다. 들고양이뿐 아니라 들쥐도 이웃입니다. 거머리와 벼룩도 이웃입니다. 무당벌레와 잠자리도 이웃입니다. 파리와 길앞잡이도 이웃이에요. 버들치와 개구리도 이웃이요, 꾀꼬리와 참새도 이웃입니다.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면서 살아갈 적에 아름답습니다. 몇몇 목숨만 예뻐 하거나 아낀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다 다른 목숨이 다 다른 삶자리에서 즐겁게 어우러질 적에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 완다가 거칠고 시끄러운 아이여서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완다는 아주 조용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완다가 소리 내어 크게 웃는 걸 보지 못했다. 가끔 완다는 입술을 꼭 물고 씩 웃기는 했다 … 완다는 저 위, 보긴스 하이츠에 살았다. 하지만, 보긴스 하이츠는 사람이 살 만한 데가 아니었다. 그곳은 여름에 들꽃을 꺾기에 좋은 곳이었다 ..  (7, 13쪽)


  엘레노어 에스테스 님이 글을 쓰고 루이스 슬로보드킨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비룡소,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책이름에 줄거리가 다 드러납니다. 책이름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다른 문학도 책이름에 모든 실마리가 있어요. 책이름이 바로 우리하고 함께 나누고픈 생각입니다.


  틀림없이 ‘드레스 백 벌이 없는’ 아이가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하고 말할밖에요. 드레스 백 벌이 있는 아이가 ‘나한테는 드레스 백 벌이 있다구’ 하고 말한들 아무런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드레스 백 벌이 없는 아이가 왜 ‘드레스 백 벌이 있다’고 말했을까요.


.. 완다가 채 멀리 가기도 전에, 여자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레스 백 벌이라니! 보나마나 완다는 날마다 입고 오는 저 파란 드레스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완다는 자기에게 드레스가 백 벌이나 있다고 하는 걸까 … 완다는 보기스 하이츠에 살고, 운동장에서 혼자 서 있는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완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일어나 책을 읽을 때 말고는 아무도 완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완다가 책을 읽을 때면, 아이들은 완다가 빨리 끝내고 자리에 앉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완다는 영원히 한 문장만 읽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17∼18, 40쪽)


  언뜻 들여다본다면,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는 따돌림받는 이주노동자 식구들 이야기입니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가난한 식구가 마을과 학교에서 따돌림받으면서 고단하게 지내는 삶이 줄거리라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참말 이런 이야기가 이 책 알맹이일까요. 이 책을 쓰고 그린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었을까요.


  책 끝자락에 비로소 또렷하게 들려주는 말이 있지만,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완다’네 식구는 미국에서 이웃하고 즐겁게 어우러지고 싶지, 이웃한테서 따돌림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린 완다도 학교에서 동무들과 살가이 어울리고 싶지, 외롭고 쓸쓸하게 지낼 생각이 없습니다.


  따돌림을 받거나 힘들게 지낼 생각이라면, 굳이 폴란드를 떠나 미국으로 올 까닭이 없어요. 돈을 벌려고 완다네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할 수 있습니다만, 오직 돈 하나만 보고 미국으로 왔을까요. 돈만 벌면 삶이 재미날까요. 돈만 있으면 삶이 빛날까요.


.. 아이들은 완다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완다가 직접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해야 한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완다는 드레스가 한 벌뿐이어서 밤에 빨래를 해서 다림질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가끔은 채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나올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다의 옷은 언제나 깨끗했다 ..  (70쪽)


  완다한테 동무가 되지 못하던 아이들은 먹고사는 걱정이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 태어나 사는 아이들은 미국을 떠날 일이 없습니다. 미국을 떠나 폴란드로 가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못 찾아 폴란드로 가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으면서 지내는 식구는 아마 없겠지요.


  완다는 폴란드에서 지내던 나날을 마음속으로 그렸으리라 생각해요. ‘나한테도 동무가 백 사람쯤 있다구’ 하는 소리를 옷을 빌어 외쳤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아가려 하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완다는 ‘이곳에서는 너희들이 모두 내 동무라구’ 하고 울음을 삼키면서 말했겠구나 싶습니다.


  완다가 다닌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아직 동무 사귀기가 낯설 뿐입니다. 저마다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동무를 어떻게 사귀며 서로 아끼고 즐겁게 살아가는가 하는 대목을 못 깨달았을 뿐입니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이 나중에 아이들을 나무라는 말을 하지만, 교장 선생은 이렇게 아이들을 나무랄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 탓만 할 노릇이 아니라, 어른들 스스로 뉘우쳐야지요. 아이들이 살갑고 따사롭게 낯선 동무를 품에 꼬옥 안으면서 받아들이는 교육을 학교에서 슬기롭게 했다면, 아이들이 완다를 멀리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겠지요.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는 아이들은 마음으로 압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이요 동무인 줄 압니다. 완다는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서 아이들한테 그림 백 점을 남겨요. 다 다른 동무 백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린 그림을 남겨요. 동무들은 완다가 그림 백 점을 남겼어도 이 그림이 무슨 뜻이었는지 오래도록 못 알아챘습니다. 완다가 처음 그 학교에 왔을 적에도 오래도록 ‘완다는 우리한테 어떤 동무인가?’ 하는 대목을 못 알아챘듯이 말이에요.


  어른들은 알았을까요? 어른들도 몰랐어요. 더구나 교장 선생이라는 분은 ‘완다한테 그림 솜씨가 있다’는 대목만 겉훑기로 알 뿐, 완다가 어떤 마음이요 사랑인가를 헤아리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솜씨가 뛰어나야 빛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다 다른 빛과 숨결로 빛납니다. 아이들은 학업성적이 뛰어나야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웃음과 노래로 예쁩니다.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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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히코리 한림 고학년문고 26
캐롤린 베일리 지음, 김영욱 옮김, 갈현옥 그림 / 한림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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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8

 


꽃이 된 숲인형
― 미스 히코리
 캐롤린 베일리 글
 갈현옥 그림
 김영욱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3.3.12.

 


  사진으로 아무리 멋들어지게 꽃을 찍어도, 그저 멋들어진 사진이 될 뿐, 꽃을 꽃답게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림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꽃을 그려도, 그저 아름다운 그림이 될 뿐, 꽃을 꽃처럼 보여주지 못합니다.


  꽃은 꽃 그대로 있을 적에 꽃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돋은 줄기에서 꽃대가 나오고 꽃망울이 맺히면서 꽃잎을 활짝 벌릴 적에 꽃입니다. 꽃을 찍은 사진이란 ‘꽃을 바라보는 사람 느낌과 생각’입니다. 꽃을 그린 그림이란 ‘꽃을 마주하는 사람 느낌과 생각’입니다.


  꽃을 꽃대로 바라보지 않고 일부러 못생기게 찍는다든지 볼품없이 그린다고 해서, 꽃한테서 꽃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꽃한테 매우 미운 이름을 붙이며 놀린다 하더라도 꽃한테서 꽃내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꽃은 언제나 꽃일 뿐입니다.


.. 히코리는 목장 돌길을 따라 자신이 살고 있는 라일락 숲길로 쿵쿵 다가오는 묵직한 발소리를 들었다. 히코리는 작지만 날카롭고 새카만 눈동자를 굴려 곁눈질했다 … 집이 있는 라일락 숲 아래쪽은 꽃이 피면 자줏빛 꽃 그림자가 향긋한 향기와 더불어 어룽거린다. 긴 여름 동안에는 짙은 녹음과 새들의 노랫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누구든 도시에 나가 살 처지라고 말하면, 히코리는 늘 라일락 숲속 집을 고르라고 충고해 준다 ..  (9, 11쪽)


  매화나무는 매화나무이지 벚나무가 아닙니다. 감나무는 감나무이고 고욤나무는 고욤나무입니다. 뽕나무는 뽕나무이며 대나무는 대나무입니다. 다 다른 나무는 다 다른 빛으로 자랍니다. 다 다른 나무는 다 다른 숨을 내놓아 사람과 뭇짐승을 살찌웁니다.


  나무가 없는 지구별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지구별에서는 어떤 목숨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나무가 있어 우리 삶이 있고, 나무와 함께 우리 삶이 빛납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나무를 괴롭힙니다. 도시에서 나무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겨우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나무가 자랐어도, 도시에서는 재개발을 하느니 무얼 하느니 나무를 뎅겅 벱니다. 돈을 들여 다시 땅에 박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시골에서도 나무를 들볶습니다. 사람이 굳이 솎아내기를 하지 않아도 나무끼리 스스로 솎아내기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굳이 솎아내기를 한다느니 새 길을 닦는다느니 무슨무슨 공사를 한다느니 하면서 숲을 어지럽힙니다. 숲을 어지럽히니 숲에서는 몇 가지 벌레가 갑자기 날뛰면서 온갖 나무병이 퍼집니다.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린들, 망가진 숲에 퍼지는 나무병을 잡을 수 없습니다.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면, 도시 사회와 물질문명을 솎아내야 합니다. 찻길을 줄여야 합니다. 찻길을 없애야 합니다. 너무 많이 놓은 찻길을 줄이고, 온갖 곳에 덮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치워야 합니다. 도시에서도 곳곳에 텃밭과 숲을 마련해야지요. 시골에서도 길가와 마을에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도록 해야지요. 이러면서 나무한테 농약이 아닌 사랑을 줄 노릇입니다.


.. 히코리가 옛날에 나무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크로우는 알고 있었다 … 숲속에 들어오면 언제나 생기가 도는 것을 새삼 느꼈다 … 숲은 히코리가 바느질해서 입을 만한 예쁜 옷감들로 가득했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장밋빛, 황금빛, 주홍빛, 적갈색의 보드라운 잎들이 많았다. 뽀송뽀송한 이끼도 땅에 붙어 자라는 복슬복슬한 것부터 깃털처럼 털이 솟아 길게 나부끼는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었다 ..  (14, 35, 46쪽)


  천 해를 살고 이천 해를 살며, 때로는 오천 해를 살기도 한다는 나무는 아주 천천히 자랍니다. 백 해를 살기에도 빠듯하다는 사람으로서는 천 해나 이천 해를 어림하기도 어렵겠지요. 나무가 자라는 백 해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사람은 있기나 할까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이 낳는 아기도 퍽 천천히 자랍니다. 소나 사슴이 낳는 새끼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섭니다. 이와 달리, 사람이 낳는 아기는 처음 서기까지 한두 해가 걸리고, 선 다음 걷기까지 또 제법 걸려요. 서고 걷는다 해서 다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밥과 집과 옷을 건사하려면 퍽 기나긴 해를 보내야 합니다.


  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제법 긴 나날을 보냅니다. 나무씨 한 톨을 심어 보셔요. 씨앗에서 싹이 트면서 꽃이 피기까지 몇 해쯤 걸리는지 지켜보셔요.


  오래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아끼고 보살피며 사랑해야 합니다. 갓난쟁이한테 사랑을 쏟듯 나무한테 사랑을 쏟습니다. 나무한테 사랑을 바치듯 갓난쟁이한테 사랑을 바칩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우람하게 가지를 벌리는 나무요, 천천히 자라면서 아름답게 우뚝 서는 사람입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짙은 그늘과 푸른 숨을 나누어 주는 나무요, 천천히 자라면서 고운 꿈과 맑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 언제나 놀라는 일이지만, 차가운 날씨에도 낙엽 밑에 숨은 땅속은 얼마나 따듯한지 모른다 … “히코리, 넌 변화가 절실해. 넌 두 해 동안 식료품 가게, 자동차, 난로, 폭풍우를 막을 창문 따위가 필요한 사람들과 살아왔어. 넌 너무 곱게만 자랐어.” … 벌써 11월이다. 히코리는 매일같이 나무 아래로 내려가 단풍 낙엽을 밟으며 즐겁게 돌아다녔다 … 히코리는 불타는 듯한 단풍 빛깔에서 떡갈나무의 장미 빛깔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산 빛깔을 보았다 ..  (23, 33, 54, 56쪽)


  캐롤린 베일리 님이 빚은 이야기책 《미스 히코리》(한림출판사,2013)가 있습니다. 1947년에 미국에서 뉴베리상을 받았다고 하는 작품이니 퍽 오래된 책입니다. 한국말로는 1979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다만, 1979년은 아직 때일렀지 싶어요. 한국에서 사랑스러운 독자를 만나기에는 1979년은 퍽 어려웠지 싶습니다. 1947년 작품을 1979년에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웠던 한국입니다.


  그러면, 1979년에서 서른네 해 지나 2013년에 한글판이 다시 나온 《미스 히코리》는 바야흐로 제대로 읽힐 만한 책일까요. 이제 한국에서는 이 책에 서린 빛과 꿈과 사랑을 알뜰살뜰 받아먹을 만할까요.


.. 여름철에는 산머루들이 둑을 따라 넝쿨로 자라났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숲속 동물들이 따먹을 수 있도록, 어린 나무들과 키 큰 고사리, 옻 덩굴들이 짙은 보라색 포도송이 뒤에 숨어 자랐다 … 히코리는 스케이트를 타고 상쾌한 겨울 세상을 설렁설렁 돌아다녔다. 나무껍질과 장미 꽃잎을 질겅질겅 씹기도 하고 … 달력을 보지 못하면서 잊었던 계절 감각을 되살리면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  (91, 96, 97쪽)


  《미스 히코리》를 읽으면 시월 언저리에 ‘산딸기를 따먹는(23쪽)’ 이야기가 나옵니다. 멧딸기가 시월에 익는다구? 좀 안 맞지 않나? 미국에서는 시월에도 멧딸기가 익나? 여러모로 생각해 보는데, 이 책에 나오는 딸기는 멧딸기가 아닌 산딸나무에서 맺는 열매가 아니랴 싶습니다. 멧딸기는 여름 문턱에 익는 열매요, 산딸나무는 가을 언저리에 익는 열매입니다. 풀처럼 우거져서 맺는 딸기와 나무로 자라며 맺는 딸기는 갈래가 다릅니다. 《미스 히코리》를 한국말로 옮긴 분은 시골에서 살지 않기도 하고, 시골살이를 잘 모른다고 옮긴이 말에서 밝힙니다. 그러면, 이런 대목에서는 출판사에서 찬찬히 짚고 살펴서 가다듬어 주어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미스 히코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숲에서 살아가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숲내음과 숲빛과 숲살이를 제대로 밝히거나 보여주지 못하면, 이 작품을 한글판으로 옮기는 뜻이나 보람이 없습니다.


.. (다람쥐) 스코랄은 히코리 열매 머리를 먹은 걸 후회했다. 그 뒤로 스코랄은 착실해졌다. 해마다 충분한 열매들을 모은 뒤에 겨울을 나고, 하루 세 끼 식사 이외에 간식을 먹지 않았다 … 히코리는 스스로 이렇게까지 높이 올랐다는 데 놀랐다. 그러나 이 늙은 사과나무는 가지가 구부러진 곳도 비틀린 곳도 두루두루 잘 자랐다. 히코리와 더불어 오래 살았던 큰 가지와 잔가지 모두 고향처럼 느껴졌다 ..  (160, 162쪽)


  우리는 누구나 나무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아파트마을 한복판에서 살더라도 늘 나무 기운을 얻어 살아갑니다. 나무가 베푸는 숨을 마시고,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로 만든 책을 읽으며, 나무로 짠 책걸상을 씁니다. 시멘트로 집을 짓더라도 나무판을 대어 시멘트를 붓습니다. 나무가 없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나무를 깎아 연필을 쓰다가 볼펜이 나왔습니다. 나무로 불을 때며 겨울을 났습니다. 나무로 집을 지어 오래오래 살았으며, 나무가 베푸는 온갖 열매를 맛나게 먹으면서 목숨을 건사했어요.


  능금도 배도 복숭아도 귤도 포도도 모두 나무가 베푸는 선물입니다. 열매만 따로 있지 않아요. 열매가 맺도록 나무가 우뚝 섭니다. 능금을 먹을 적에 능금알만 먹지 않아요. 나무가 능금알한테 베푼 고운 사랑을 먹습니다. 배 한 조각을 먹을 적에도 배알한테 나무가 베푼 너른 사랑을 먹습니다.


..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네. 이번 봄에는 접목을 한 적이 없거든. 더군다나 매킨토시의 늙은 나무에다 누가 하겠냐고.” 앤은 큰 가지에 걸터앉아, 꽃이 핀 접목 가지를 살살 만져 보았다. ‘이건 히코리랑 닮았잖아. 목까지는 비슷해. 하지만 히코리한테는 머리가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계속 자라나면 혹시 사과도 열릴까?” 앤이 큰 소리로 물었다. “열리고말고!” ..  (172쪽)


  《미스 히코리》에 나오는 ‘히코리’는 능금나무 가지를 잘라서 히코리 열매를 머리로 삼아 꽂은 인형입니다. 히코리 인형은 시골에서 놀던 아이한테 알뜰한 동무입니다. 그런데, 히코리와 함께 놀던 동무는 어버이 손에 이끌려 도시로 떠나요. 시골은 겨울에 너무 추우니 도시로 갔는지, 아니면 도시에 있는 학교로 보내려고 아이를 도시로 데려갔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숲인형 히코리는 홀로 덩그러니 시골에 남습니다. 히코리는 저랑 놀던 아이가 도시로 간 줄 모릅니다. 까마귀가 히코리한테 이런 이야기를 알려준 뒤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미스 히코리》는 숲인형 히코리가 홀로서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줘요.


  추운 겨울날 히코리는 나뭇잎과 이끼로 손수 바느질을 하며 모자도 짓고 옷도 짓습니다. 숲인형답게 나뭇잎옷을 입습니다. 숲인형인 만큼 숲에서 살아가는 여러 이웃과 사귀고 온갖 동무를 하나둘 만납니다.


  그런데, 애써 겨울나기를 하고 봄을 맞이하던 어느 날, 숲인형 히코리는 머리통을 잃습니다. 살가운 이웃이 되어 지낸 다람쥐가 배고픈 나머지 그만 숲인형 히코리 머리통을 톡 떼어내 와작와작 깨물어 먹습니다.


  숲인형 히코리는 머리통을 잃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머리통을 잃은 뒤 새로운 마음이 자랍니다. 숲인형 히코리는 ‘능금나무 가지’와 ‘히코리 열매’가 붙은 숨결이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모로 ‘예쁘게 보이는 인형’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숲인형으로서는 서로 다른 숨결인 능금나무와 히코리가 붙으니 ‘균형이 깨진 셈’이라 할 수 있어요.


  머리통을 잃은 숲인형은 비칠걸음으로 어디론가 갑니다. 숲인형 머리통을 깨물어 먹은 다람쥐는 덜덜 떱니다. 아무리 배고프다 하더라도 살가운 동무 머리통을 왜 먹었는지 돌아보면서 뉘우칩니다. 머리통이 사라진 숲인형은 ‘능금나무 가지만 있는’ 몸으로 천천히 걸어 늙은 능금나무 앞에 섭니다. 그러고는 척척 능금나무 우듬지까지 올라갑니다. 우듬지에 닿은 뒤 따사로운 봄볕을 느낍니다. 그동안 미처 못 알아채던 포근함을 깨닫습니다. 무엇일까요. 숲인형 마음속에서 무엇이 터져나오려 할까요.


  숲인형은 머리를 늙은 감나무 한켠에 척 박습니다. 늙은 감나무 우듬지 한켠에 구멍이 있었는데, 이 구멍이 바로 숲인형 ‘능금나무 가지’가 깃들 품이라고 느낍니다.


  겨울이 끝납니다. 도시로 갔던 아이가 돌아옵니다. 아이는 저랑 놀던 인형을 찾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늙은 능금나무 꼭대기에 있는 ‘내 인형과 꼭 닮은 나뭇가지’를 봅니다. 무엇보다 이 나뭇가지에 고운 능금꽃이 피었고, 이 나뭇가지에 고운 능금꽃이 피면서, 늙은 능금나무에도 소복소복 푸지게 능금꽃 물결이 일렁입니다. 숲인형은 꽃이 되었습니다. 꽃이 된 숲인형은 말갛게 웃습니다.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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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2014-02-2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만든 편집자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을 잘 새겨두겠습니다. 그리고 번역해 주신 선생님과 얘기 나눠 다음번에 찍게 되면 꼭 고쳐 넣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숲노래 2014-02-27 05:26   좋아요 0 | URL
이 예쁜 동화책이 언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오래도록 기다렸기에 아주 즐겁게 읽었어요. 아마 이 책을 읽을 여느 독자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아갈 테니, '산딸기'와 '산딸나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시골에서 만나는 이웃 가운데에도 '산딸나무 열매'를 모르는 분이 무척 많아요. 환경운동을 하거나 생태 관련 일을 하거나 농민회 일을 하는 분들조차 산딸나무 열매를 모르시기도 하더라구요.

이 책을 옮겨 주신 분은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쓰시면서 '요즈음 읽은 어느 번역 동화책'보다 말투라든지 이야기가 참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삶에서 겪지 못하는 일'은 풀어서 옮겨내기 어려운 대목이 있어요.

옛날 책 그림도 예쁘지만, 지난해 봄에 이 책을 새롭게 내놓아 주시면서, 그림도 새롭게 다시 그려 주셨기에 이 책이 한결 빛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둘레에 아이들 돌보며 책 읽히는 이웃들은 으레 '학교생활 이야기 동화책'만 많이 읽히지만, <미스 히코리>와 같은 동화책이 널리 알려지고 읽히면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느낌글을 쓰면서 '책 줄거리'는 거의 안 쓰곤 했는데, 일부러 이 느낌글에서는 글끝에 '늙은 능금나무를 살리는 인형' 이야기를 길게 적어 보았어요. 다른 독자님들도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하도록 고운 빛을 누리시면 참 좋으리라 꿈꿉니다.

고맙습니다.

appletreeje 2014-02-2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저도 꼭 읽고 싶네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02-27 05:30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이렇게 새로 나온 줄 오래도록 몰랐기에, 그저 저는 1979년 옛날 판만 만지작거리곤 했어요. 옛날 판을 놓고 '사라진 책' 이야기를 쓸까 했었는데, 마침 '사라진 책' 이야기를 쓰려 할 즈음에 검색해 보다가, 새로 나온 줄 알아채고는 즐겁게 읽어서 이렇게 느낌글을 쓸 수 있었어요~
 
마녀배달부 키키 1 - 홀로서기를 시작한 키키 마녀배달부 키키 1
가도노 에이코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권남희 옮김 / 소년한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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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7

 


마음을 적시는 고운 노래 한 가락
― 마녀 배달부 키키 1
 가도노 에이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권남희 옮김
 소년한길 펴냄, 2011.10.25.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가 있습니다.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면, 어린 마녀 키키가 새로운 삶터를 찾아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데, 어린 마녀 키키가 내려앉은 삶터는 커다란 도시입니다. 만화영화에서는 커다란 도시를 온갖 빛깔로 보여줍니다. 원작인 동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테두리에서 만든 만화영화일 테지만, 원작에서 엿보이는 사람들 눈빛과 삶빛은 만화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녀 키키는 ‘도시가 좋아’서 도시로 가지 않아요. ‘바다가 가까우면서 숲이 있고 사람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는 마을’을 꿈꿉니다. 그런데, 만화영화에서는 이러한 삶빛과 사랑빛보다는 고빗사위라든지 도시 물결이 드러나도록 꾸몄어요.


.. 재채기약을 만드는 마법은 아무래도 키키의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성미가 급해서인지 약초를 길러서 잎과 뿌리를 잘게 다져 푹 삶는 일은 아무리 배워도 잘하지 못했지요. “이렇게 또 하나의 마법이 사라져 버리는 건가.” … 키키는 엄마가 마녀니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게 될 거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 “마녀인 나도 모른다는 게 이상하지만, 캄캄한 밤과 정적이 사라진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조금이라도 밝거나 소리가 나면 산만해져서 마법을 잘 사용할 수 없다고.” ..  (13, 17, 28∼29쪽)


  사람은 저마다 다르니, 같은 원작을 놓고서 저마다 다른 만화영화를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달라, 같은 시골에서 살더라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그리겠지요.


  그런데,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다루는 아주 커다랗고 뜻있는 대목을 너무 덜거나 뺐어요.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읽으면, 어린 마녀 키키가 어머니한테 들려주는 “엄마, 나 좀 생각해 봤는데 마녀는 말이야, 빗자루만 타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아. 물론 배달 일을 하다 보면 바빠서 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걸어 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230쪽)?”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데, 이런 이야기가 만화영화에는 안 나옵니다. 어린 마녀가 하늘을 나는 기쁨과 바람노래와 숲내음을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가 하는 이야기가 동화책에 한결같이 흐르는데, 막상 만화영화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어린 마녀가 홀로서기를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지만, 이 줄거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마녀가 살아온 곳은 ‘시골’이요 ‘숲’이었다고, 키키네 어머니 고키리 씨가 키키한테 이야기해 줍니다. 마녀들은 숲이 노래하는 곳에서 온갖 마법을 쓰면서 아름답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지구별이 자꾸 달라지면서 문명이 생기고 기계가 늘면서, 마녀들이 마법을 하나둘 잃거나 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키키네 어머니가 키키더러 ‘너무 복닥거리는 도시’로는 가지 않기를 바란 까닭도 이 때문이겠지요. 너무 시끄러운 곳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너무 바쁜 나머지, 마녀도 다른 이웃도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너무 바쁘지 않은 사람일 때에 비로소 마녀를 돌아볼 수 있고, 이웃도 제대로 살필 줄 압니다. 바쁜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일 때에 마녀뿐 아니라 작은 풀벌레와 숲짐승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아직 어린애구나. 하지만 빗자루는 장난감이 아냐. 언젠가 엄마 빗자루도 낡을 거야. 그럼 그때, 키키 마음에 드는 걸로 해. 그때는 너도 어엿한 마녀가 돼 있을 테니까.” … “키키, 성가시게 자꾸 말하는 것 같지만 마을은 잘 골라야 해. 가게가 많다거나 흥청거린다거나,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느낌으로 결정하는 건 신중히 다시 생각해 봐야 해. 큰 마을에는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뿐이니까.” … 키키의 고향 사람들은 마녀와 사는 걸 기뻐해 주었습니다 ..  (24∼25, 31, 49쪽)


  도시 한복판에서는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기 어렵습니다.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 나무노래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도시 한복판에 서면 나무가 노래를 하는지 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떠드는 소리와 손전화 소리가 그득합니다. 나무를 쳐다볼 틈이 없고, 나무를 떠올릴 말미가 없습니다. 골목에서도 우악스럽게 달리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마음을 못 놓습니다. 늘 조마조마하지요. 늘 바쁘지요. 늘 어지럽지요. 늘 어수선하지요.


  이런 데에서 숲노래를 누가 생각할까요. 이런 도시에서 숲빛을 누가 살필까요. 이런 도시에서 숲사랑과 숲삶을 누가 꿈꿀까요.


.. 키키는 겨우 한 움큼의 햇살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바꾼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감동했습니다 … 부드러운 봄바람이었습니다. 얼굴에 그 바람을 맞는 순간, 키키는 돌처럼 딱딱했던 기분이 스르륵 풀리는 걸 느꼈습니다 … “하늘을 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오소노 씨가 날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  (38, 68, 91쪽)


  시골에서 지낸다고 숲노래를 듣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도시에 있는 자동차 못지않게 시끄러운 경운기와 트랙터가 있습니다. 경운기가 한 번 지나가면 그야말로 귀가 따갑습니다.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요. 경운기가 지나가면 새가 지저귀거나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모두 짓밟습니다.


  소를 부리며 들일을 하던 옛 흙일꾼은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풀과 흙을 만졌습니다. 소가 풀을 뜯는 곁에서 들일을 하던 옛 흙일꾼은 풀벌레가 날며 나비가 춤추는 바람을 마시면서 풀과 흙을 보살폈습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기계를 만지고 기름내음을 맡습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비닐을 만지고 농약을 다룹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텔레비전을 보고 소주를 들이붓습니다. 숲을 아끼려는 흙일꾼이 자꾸 자취를 감추어요. 숲을 돌보려는 흙일꾼이 시나브로 사라집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시골을 아끼며 흙을 만지려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좀처럼 안 나타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시골로 가서 흙을 만지겠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거의 없습니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이 가운데에 “내 꿈은 농사꾼이에요!” 하고 말하는 아이가 있나요? 농업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 가운데 “나는 즐겁게 흙을 만지겠어요!” 하고 노래하는 아이가 있나요?


.. 세찬 바람 속에서도 물 속에서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부드럽고, 심지가 단단하고, 강한 빗자루를 염두에 두고 나뭇가지를 골랐습니다 … 키키와 지지는 가게로 돌아가려고 다시 하늘을 날았습니다. “키키, 사례는 받았어?” 지지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즐거운 경험을 했는데 더 이상 뭘 바라.” … “이거 조개껍데기지? 바다는 이런 색이니?” 고키리 씨가 물었습니다. “응, 그 조개는 새벽 바다 색깔과 닮았네.” ..  (109, 213, 229쪽)


  동화책 《마녀 배달부 키키》(소년한길,2011)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린 마녀 키키는 학교를 안 다녔습니다. 어린 마녀 키키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면서 늘 사랑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받고 나누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일구었습니다.


  어린 마녀 키키는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마녀 집안 피’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합니다. 마녀 아닌 ‘여느 사람’인 또래 아이들은 모조리 학교를 다닙니다. 또래 아이들은 모조리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될는지 몰라요. 마녀 키키는 마녀 집안에서 이어온 대로 마녀가 돼요.


  하늘을 날지요. 마을사람을 마음으로 따사로이 돌보는 일을 하지요. 이웃사람 누구나 꿈을 잃지 않도록 북돋우고, 사랑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요.


.. “키키, 꼭 돌아와야 해. 우린 이웃집에 마녀가 살아서 정말 행복하단다.” … 언제부터 천방지축 말괄량이 빗자루가 이렇게 능숙하게 날게 된 걸까요. 키키는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 “엄마, 나 좀 생각해 봤는데 마녀는 말이야, 빗자루만 타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아. 물론 배달 일을 하다 보면 바빠서 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걸어 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 걸어 다니다 보면 싫어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 오소노 씨를 만난 것도 걸어가다였어. 그때 슬퍼하면서 날기만 했더라면 난 어떻게 됐을지 몰라.” ..  (224, 225, 230쪽)


  마음을 적시는 고운 노래 한 가락을 듣습니다. 긴긴 겨울이 저물고 새봄이 찾아들려는 요즈막, 우리 시골집 둘레로 온갖 노래가 새롭게 퍼집니다. 긴긴 겨울날, 우리 집 처마 밑 빈 제비집에 살짝 깃들던 딱새 두 마리는 다시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가끔 처마 밑으로 찾아와서 노닐곤 하는데, 딱새는 딱새 노래를 곱게 베풀어 줍니다. 박새도 참새도 까치도 까마귀도 멧비둘기도 저마다 새삼스레 노래를 들려줍니다. 누렁조롱이도 고운 노래를 들려주고 해오라기와 청둥오리도 맑은 노래를 들려주어요.


  곳곳에서 씩씩하게 움트는 봄꽃 따라 천천히 푸른 빛으로 물들면, 이 푸른 들판마다 풀벌레가 하나둘 깨어나겠지요. 겨우내 잠들던 풀벌레는 새봄에 새빛으로 예쁜 이야기를 속삭이겠지요. 사월이 지나면 제비가 돌아와 제비 노래를 들려줄 테고요.


  우리 이웃들이 가끔은 자가용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빌어요. 천천히 거닐면서, 아이 손을 잡고 골목을 겉고 들길을 거닐면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하늘숨을 마실 수 있기를 빌어요. 들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목청껏 맑은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빌어요.


  대중노래를 불러야 노래가 되지 않아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스스로 일노래 사랑노래 자장노래 놀이노래를 불렀듯이,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스스로 가락을 짓고 노랫말을 붙여서 우리 삶을 노래 한 가락으로 밝힐 수 있어요. 삶노래를 사랑스레 부르면서 활짝 웃을 수 있어요. 4347.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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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미워해 보리 어린이 2
요시모토 유키오 지음, 김리혜 옮김 / 보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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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6

 


돌멩이에 맞은 아이
― 왜 나를 미워 해
 요시모토 유키오 글
 김미혜, 황시백 옮김
 보리 펴냄, 1995.1.31.

 


  달팽이한테 빨리 달릴 수 있는 발을 달아 주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토끼한테 무시무시한 뿔을 달아 주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잠자리가 사람만큼 커다랗다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작거나 여린 목숨들이 덩치가 커지거나 무서운 이빨과 뿔을 갖추면 이때부터 들볶이거나 시달리지 않을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들 말합니다. 아픈 이웃을 돌보자고들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 어려운 이웃이며, 누가 도와줄 이웃이 될까요. 누가 아픈 이웃이며, 어떤 이가 도와줄 이웃이 될까요. 어려운 이웃한테는 돈을 모아서 건네면 되나요. 아픈 이웃한테는 바퀴걸상을 주거나 어깨동무를 해 주면 되나요.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칩니다. 어른은 아이더러 착하게 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자동차는 골목에서 빵빵거립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골목 놀이터에 자동차를 대 놓습니다. 대학교 마친 사람과 중·고등학교 마친 사람이 일터에서 받는 일삯이 다릅니다. 초등학교만 마치거나 초등학교조차 안 다닌 사람이 들어갈 만한 일터는 아주 드뭅니다. 어느 대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회사에 붙고 떨어지고가 달라지곤 합니다. 얼굴 생김새와 몸매로 사람을 가르곤 하며, ‘미인대회’가 버젓이 있어, 얼굴과 몸매로 사람을 쉽게 푸대접합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공해를 일으킨다고 가르치거나 배우지만, 막상 자동차 배기가스가 사라지도록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배기가스 그득히 나오지만 자가용을 장만하는 사람이 늘어날 뿐, 줄어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고속도로는 자꾸 내지만, 도시와 공장과 골프장과 관광단지를 숲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은 없습니다.


.. 타고난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요징은 고통을 나누어 가지고자 하는 부모 형제와 동무가 있었습니다 …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로 만족을 얻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왜, 아이들은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날 때부터 잔혹한 걸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징을 괴롭힌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게 나쁜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평범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맑은 날에는 야구나 피구 따위를 하면서 사이좋게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아이들이 또 한편으로 약한 아이를 괴롭힙니다. 괴롭히는 것을 즐기고 있는 듯도 했습니다. 마치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  (29, 83∼84쪽)


  어른들은 전쟁무기를 만듭니다. 어른들은 군부대를 크게 키웁니다. 이러면서 평화를 말합니다. 총칼과 폭탄을 잔뜩 짊어진 몸으로 평화를 말합니다. 핵폭탄까지 만들면서 지구 평화를 말하곤 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롭게 살 노릇이요, 전쟁무기나 군대에 들이는 어마어마한 돈으로 지구별이 평화롭도록 하는 데에 쓸 일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어른들 뒤를 고스란히 잇습니다. 아이들이 늘 지켜보는 어른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삶이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입니다.


  농약을 어찌해야 할까요. 농약 때문에 망가지는 흙과 들과 냇물과 바다는 어찌해야 할까요. 농약을 바라는 도시 얼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농약을 쓰고 코팅까지 입혀 번들거리는 과일이 되어야 ‘맛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도시 얼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한겨울에 비닐집에 난로를 틀어 키우는 딸기를 먹는 도시 얼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이른봄에 비닐집에서 거두는 참외와 수박을 먹는 도시 얼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한국에서 거두는 밀은 아주 조금뿐이지만, 사람들은 빵과 라면과 피자와 햄빵과 과자를 아주 많이 사다 먹습니다. 어른이 사다가 아이한테 먹이는 밀가루밥은 얼마나 아이를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사랑하는 손길이 될까요.


  플라스틱 장난감은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까요. 온갖 교과서와 문제집과 참고서는 아이들한테 빛이 될까요.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은 아이들한테 지식이나 슬기가 될까요. 대중문화는 아이들한테 즐거운 놀이가 될까요. 고장말을 몰아내는 표준말은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까요.


.. 나도 ‘어째서 이 아이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중국에서 일본으로 와서) 일본어 공부를 해야만 할까? 중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중국에서 일본까지 오고, 몸도 불편하고 말도 잘 못하는 아이에게, 왜 그런 짓을 할까? 이 아이들은 해코지를 당하려고 일본에 온 건 아닌데.’ … 아이들을 꾸짖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별 생각 없이 했던 해코지가 요징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있는데도, 모두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  (51, 60∼61, 86쪽)


  아침에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포근한 겨울비 내리는 시골집에서 아침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제법 추운 바람이 불 적에는 아침 멧새 소리를 거의 못 들었습니다. 날씨가 포근하니, 갓 이월로 접어들었지만 아침을 깨우는 멧새가 우리 집 둘레에서 지저귀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영어 노래를 베풉니다. 자동차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와 전자제품 소리를 베풉니다. 새와 풀벌레와 나무와 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아이한테 베푸는 어른이 사라집니다. 도랑물 소리와 골짝물 소리를 아이한테 베푸는 어른은 자취를 감춥니다. 장작을 패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소리를 베푸는 어른은 찾아볼 길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가요. 회사원이 되는 아이들은 무엇을 꿈으로 품는가요. 공공기관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가요. 공무원이 되는 아이들은 무엇을 사랑으로 품는가요.


  경제개발은 왜 해야 할까요. 경제개발은 누구한테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마실 물과 들이켤 바람과 먹는 밥이 싱그럽거나 깨끗하지 못하면서 경제개발만 할 적에, 우리 몸과 마음은 얼마나 튼튼하거나 즐거울까요. 민주와 평화가 없이 국가안보만 생각하면 될는지 궁금합니다. 평등과 통일이 없이 교육과 복지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농약을 써야 한다는데, 아이들한테 농약 듬뿍 묻은 곡식이나 열매를 먹으라고 건넬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를 안 마치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아이한테 참고서와 교과서와 문제집을 건네는 어른들 손길은, 참말 아이를 걱정하거나 생각하는 사랑인지 궁금합니다.


.. 아이들은 몸이 불편한 아이를 보면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를 특별한 눈으로 봅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몸이 불편한 사람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니까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이어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아이는 자주 해코지를 당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해코지를 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해코지당하는 사람 눈으로 요징을 보면 요징이 착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요징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기겠다고 한 말은 언젠가 해코지한 아이에 대해 복수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요징의 말에는 아무리 해코지를 당하더라도, 상대방을 용서해 주고, 그래서 동무가 된다면 그 동무들을 즐겁게 해 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씨가 담겨 있습니다 ..  (102, 106, 112쪽)


  요시모토 유키오 님이 쓴 《왜 나를 미워 해》(보리,1995)를 읽습니다. 일본에 있는 ‘일본어 학급’ 교사로 지내면서 만난 ‘어버이 고향은 일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 국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아이들’ 가운데 ‘칭요징’하고 보낸 나날을 돌아보면서 쓴 이야기책을 읽습니다.


  칭요징은 일본사람이면서 중국사람입니다. 칭요징은 중국을 사랑하면서 일본을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칭요징은 그저 사람입니다. 칭요징은 따사로운 숨결입니다. 칭요징은 동무와 이웃 모두 사랑스러운 넋인 줄 느낍니다. 서로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서로 즐겁게 어울리고 싶습니다. 함께 놀고 일하면서 아름다운 빛이 이 땅에 드리울 수 있기를 꿈꿉니다.


  그런데, 일본땅에서 칭요징을 마주하는 일본 어린이는 칭요징한테 돌을 던집니다. 작은 돌 큰 돌 골고루 던집니다. 칭요징은 일본 어린이한테 돌을 마주 던지지 않습니다. 말없이 돌을 줍습니다. 일본 어린이가 저한테 던진 돌을 고스란히 모읍니다.


.. 요징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못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데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 도시아키를 보는 주위 어른들의 눈은 너무나 지나치게 냉정합니다. 어른들은 좀처럼 도시아키의 마음속을 살펴보아 주지 않습니다. 도시아키를 따뜻한 마음으로 보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면 지나친 욕심이 될까요 ..  (150, 159쪽)


  돌을 맞은 아이는 ‘돌을 맞을 만한 까닭’이 있을까요? 가해자인 아이들한테도 ‘핑계로 둘러댈 이야기’가 있을까요.


  학교폭력과 따돌림이 큰 골칫거리라 합니다. 그런데,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이들을 돌보는 어버이는 ‘폭력에 시달린 아이’ 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좀처럼 안 꺼냅니다. 동무를 따돌리는 ‘내 아이’를 꾸짖거나 타이르거나 잘못을 바로잡도록 이끄는 어버이도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합니다.


  가만히 보면, 어른들은 뺑소니 사고를 쉽게 일으킵니다. 어른들은 사고를 내고도 외려 큰소리를 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법을 보면, 모든 법은 어른들 때문에 생깁니다. 어른들이 워낙 거짓말을 하고 남을 괴롭히며 들볶기 때문에 법이 생깁니다.


  아이들 때문에 생기는 법은 없습니다. 갓난쟁이가 징징 운대서 법이 생기지 않습니다. 갓난쟁이가 밥투정을 한대서 법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쉬 마렵다며 풀밭에 쉬를 눈대서 법이 생기지 않아요.


  싸움을 일으키거나 남을 괴롭히는 쪽은 늘 어른입니다. 어른들이 이 사회를 안 아름답게 망가뜨리니 법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이 사회와 나라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을 엉망진창으로 일그러뜨렸기에 법이 있습니다. 모든 어른들 잘잘못 때문에 아이들이 괴롭습니다.


.. 요징은 해코지를 당해도 가만히 참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코지한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 그 사람도 틀림없이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해코지한 아이를 용서했습니다 … 남을 괴롭히는 일 말고는 자신을 만족시킬 길이 없는 아이들은 분명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요징은 그렇게 판단한 것입니다 ..  (183, 184쪽)


  어린 칭요징은 “나는 여러 사람과 동무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다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수화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가 되기 위해섭니다. 보통 사람과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모두 동무로 사귀고 싶습니다(190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칭요징한테 일본말을 가르친 요시모토 유키오 님은 “학교가 지식만을 가르치는 곳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려주는 곳, 학교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9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돌에 맞은 아이가 눈물을 삼킵니다. 돌에 맞은 아이가 ‘돌을 던진 아이’ 마음속에 슬픈 외로움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부디 그 아이 마음에 따사로운 빛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돌을 던진 아이는 두 발을 뻗고 시원하게 잘 만할까요. 돌을 던진 아이는 ‘돌에 맞은 아이’가 얼마나 아프거나 슬픈 줄 알까요.


  학교에서 교사는 어떤 노릇을 하는지요. 교과서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는지요. 교사는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나요. 여느 동네 여느 어버이는 여느 아이한테 어떤 삶을 물려주는가요.


  입시에 얽매인 학교 아닌, 사랑이 자라는 학교가 되기를 빕니다. 입시를 다그치면서 아이들한테 일찌감치 영어를 비롯한 시험공부만 시키는 학교 아닌, 아름다운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가 되기를 빕니다. 시골 아이를 몽땅 도시로 보내는 바보스러운 학교 아닌, 마을마다 마을사람 되도록 가꾸고 돌보면서 사랑스러운 눈빛 되도록 북돋우는 학교가 되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동무한테 돌을 던지는 까닭은, 먼저 학교가 아이들한테 돌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와 교사 모두 아이들한테 돌을 던지면서 ‘스스로 아이한테 돌을 던지는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이라는 돌은 그만 던지고, 아이들을 따사로운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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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었습니다 - 초보 아빠의 행복한 육아 일기
신동섭 지음 / 나무수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22

 


어버이로 살아가는 길
― 아빠가 되었습니다
 신동섭 글
 나무수 펴냄, 2011.3.10.

 


  배고픈 아이를 보면 따스한 사랑이 피어나서 즐겁게 밥상을 차리는 넋이 바로 어버이로구나 싶어요. 바로 어머니 손맛과 아버지 손맛일 테지요. 다만, 예나 이제나 아직 ‘아버지 손맛’은 거의 없고 ‘어머니 손맛’만 넘치지 싶어요. 사회 곳곳에서 성평등을 말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는 어버이 자리에서 성평등을 즐겁고 아름답게 이루는 분들은 드물지 싶어요.


  너무 길든 탓일까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도무지 성평등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일까요. 게다가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도시락을 싸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모두 급식을 합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도시락을 싸는 젊은이가 아주 드뭅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남이 차려 주는 밥을 돈을 치러 먹는 일’에 길듭니다. 스스로 밥을 차리지 않고, 스스로 설거지를 하지 않아요. 스스로 밥차림을 살피지 않고, 스스로 먹을거리를 마련하지 않아요.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든, 노동자가 되거나 장사꾼이 되든, 어느 자리에서도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지 않습니다. 요새는 밥을 손수 지어서 먹는 회사가 조금씩 늘기는 하지만 아주 적어요. 관공서나 회사나 공장이 많은 곳을 보면 온통 식당들이 줄을 짓습니다. 낮밥 언저리에는 밥집마다 바글거립니다.


.. 병원에서도 제왕절개로 낳았으니 모유 수유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우는 은지에게 분유를 먹이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분유는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자꾸 전화가 와서 “당신들 귀찮아서 그러는 거 아니냐. 모유 수유를 해야 하니 당분간 보리차를 먹여라.”라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신생아에게 보리차를 먹이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본다며 황당해 하더군요 … 정해진 시간밖에 아기를 못 보니 아기가 불편해 하든 말든 간호사가 통유리 앞에 들고 있었던 겁니다. 막상 경험해 보니까 ‘이건 너무 SF적이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26, 29쪽)


  도시락을 싸는 겨를은 아깝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싸느라 들이는 품은 아깝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싸기까지 밥을 차리고 반찬을 마련하는 손길은 아깝지 않습니다. 가시내도 머스마도 밥짓기를 배울 노릇입니다. 밥을 정갈하게 차려 맛나게 먹는 즐거움을 누릴 노릇입니다. 어릴 적부터 밥짓기를 즐겁게 누릴 적에 푸름이를 지나 젊은이 되어서도 밥짓기를 즐겁게 누립니다. 젊은 나날에 밥짓기를 즐겁게 누려야,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밥을 맛나게 차려서 베풀 수 있습니다. 손수 즐겁게 밥을 차린 적이 없이, 어떻게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거나 젖떼기밥을 먹일 수 있겠어요. 스스로 즐겁게 밥을 차리는 매무새를 익히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밥을 어떻게 마련하겠어요. 우리 어버이가 나이가 들어 할매 할배가 되면, 우리가 어버이한테 밥을 사랑스레 차려서 나눌 수 있어야지요. 어린 아이와 늙은 어버이 모두 한테 따스한 밥 한 그릇 나눌 수 있는 몸가짐이어야지요.


  곧,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건사할 때에 삶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즐겁게 다스릴 적에 어버이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사랑스레 물려주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밥과 옷과 집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받기만 하다가, 차근차근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천천히 배웁니다. 아이들은 밥상에 수저를 놓습니다. 아이들은 빈 밥그릇을 치웁니다. 아이들은 접시를 들어서 나릅니다. 아이들은 행주질과 걸레질을 합니다. 아이들은 설거지를 거들고, 이런 심부름과 저런 집일을 돕습니다.


  즐겁게 도우며 즐겁게 웃어요. 기쁘게 거들며 기쁘게 노래해요. 하나씩 배우고 둘씩 사랑합니다. 셋씩 익히며 넷씩 꿈꾸지요.


.. 아기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은지는 넘어지면 바로 울지 않고 힐끗 엄마나 아빠를 쳐다보더군요. 이때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은지야∼” 하면서 달려가면 은지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울음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켜보며 “어 넘어졌네. 손 털고, 무릎 털고.” 그러면 은지도 울지 않고 흙을 털어낸 뒤 다시 걸어갑니다 … 솔직히 말하면 아픈 은지를 데리고 연기 가득한 숯불구이 집에도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보다 가까운 사람은 부모입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가 그랬듯 감기나 복통, 설사, 열, 땀띠 등 비교적 가볍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증상은 아이 상태를 가장 잘 아는 부모가 주치의가 돼서 다스리는 게 정말 아기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61, 81쪽)


  겨울밤이 고즈넉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앞서 오줌그릇에 눈 오줌을 마당 한켠 나무 둘레에 뿌립니다. 우리 집 나무들이 아이들 오줌을 틈틈이 받아먹으면서 튼튼하게 자라기를 빕니다. 우리 집 나무들이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아름답게 뿌리내리기를 빕니다.


  푸른 바람은 나뭇가지를 스치고 마당을 감돕니다. 푸른 숨결은 풀잎마다 맺히고 풀숲에 깃든 풀벌레가 노래로 바꾸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 집 나무가 있어 즐겁고, 우리 집 나무를 누리면서 아이들이 뛰놀 수 있으니 기쁩니다.


  깊은 밤에 고즈넉한 바람을 찬찬히 쐬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곁님과 함께 시골살이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골빛을 먹습니다. 나한테 아이들이 없을 적에 이렇게 씩씩하게 시골로 와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나한테 아픈 곁님이 없었어도 이처럼 다부지게 시골로 와서 살림을 꾸릴 만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과 곁님이 있어 내 손은 늘 일하는 손이 됩니다. 네 식구 오순도순 지내는 시골집에서 내 손은 늘 물을 만지면서 쉬지 못하는 손이 됩니다. 그런데, 늘 일하고 쉴 겨를이 없는 터라, 이런 이야기와 저런 생각이 자꾸자꾸 샘솟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밥내음 이야기를 떠올리고, 빨래를 하면서 빨래빛 이야기를 생각해요. 걸레질을 하고 비질을 하며 이불을 털고 말리는 동안 하늘숨과 풀숨을 되새깁니다. 어떤 물을 마시고 어떤 바람을 들이켤 적에 몸과 마음이 튼튼할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그리고, 신동섭 님이 아버지로서 쓴 《아빠가 되었습니다》(나무수,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 한동안 이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요즘은 은지가 눈을 뜨고 있을 땐 딴 생각은 아예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저도 함께 ‘노니까’ 시간도 빨리 가고 놀이도 다채로워지더군요 … 그 뒤로 오이, 당근, 미역줄기 등을 치발기로 사용했습니다. 또 삼겹살 먹을 때 싸먹는 각종 쌈은 물론 냉이, 질경이, 쑥 등 길가에서 자라는 풀도 틈만 나면 먹어 보게 했습니다 … 은지는 동생을 반기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눈을 만지려고 하기에 “은지야, 눈 만지면 아파, 다른 데 만질 때도 살살 만지는 거야.”라며 최대한 부드럽게 설명했더니 은지도 알겠다는 듯 “살살” 그러며 쓰다듬고 뽀뽀를 하더군요 ..  (108, 119, 218쪽)


  《아빠가 되었습니다》는 ‘아빠 육아일기’라 할 만합니다. 또는 ‘아빠 육아 수필’이라 할 만합니다. ‘아빠 육아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글쓴이 신동섭 님은 아버지가 되었기에, 이 보람과 즐거움과 고단함을 차근차근 글과 사진으로 풀어냅니다.


  그러면, 신동섭 님이 아이하고 보낸 나날은 오직 아이만 생각하던 삶이었을까요? 갓난쟁이 입에 당근과 오이와 미역줄기(미역귀 아닌 미역줄기를 주었다는군요)를 물렸다고 하는데, 아이 입에만 당근과 오이와 미역줄기가 들어갔을까요? 아이가 없던 삶에서도 이렇게 하루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 아기를 재우다 보면 세상이 얼마나 소움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층간 소음부터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까지 모든 소리가 평소와 달리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제가 걸을 때 발바닥과 장판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발에 찍찍이를 붙이고 다니는 것 같더군요 … “그럼 악어가 무서워 붕붕이가 무서워?” “붕붕이가 무서워.” “아빠 차도 무서워?” “응” 악어는 은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입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아나 봅니다 ..  (140, 263쪽)


  아이한테도 부드럽게 말할 적에 즐겁고, 어른한테도 부드럽게 말할 적에 즐겁습니다. 자동차는 아이들도 무서워 하고, 어른들도 무서워 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는 아이들도 싫고 어른들도 싫어요. 전쟁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싫어요. 사랑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반겨요. 평화와 평등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합니다.


  어른인 우리들이 즐겁게 살아갈 적에 아이들한테도 즐거운 삶 물려줍니다. 어른인 우리들부터 사랑을 꽃피울 적에 아이들한테도 사랑스러운 삶 이어줍니다.


  아이키우기는 힘들지 않습니다. 어른인 내 삶을 아름답게 꾸리면 되는 일이 아이키우기입니다. 아이가 있기에 대단하게 무엇을 더 해야 하지 않아요. 아이를 바라보면서 어른인 내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게 가꾸어야 하는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눈치 아닌 마음을 읽는 삶이듯, 아이 마음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아이하고 나누는 삶이 아이키우기입니다.


  곁님은 회사로 돈을 벌러 가고, 신동섭 님은 집에서 아이하고 살림을 누렸기에 《아빠가 되었습니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책을 덮으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육아 수필’도 좋고 ‘아이 사진’도 좋은데, 조금 더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더 깃들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아이와 지내며 누리는 즐거움이란 ‘그때는 그랬지’ 하고 뭉뚱그려서 들려주는 ‘좋아 좋아 수필’이 아닌, 아이하고 날마다 지지고 볶거나 웃고 떠든 ‘수수한 이야기’에서 피어나지 않나 싶어요.


  아이가 우는 사진을 책에 꽤 많이 실었는데, 아이가 왜 이렇게 자주 울어야 했는지를 더 낱낱이 적으면 훨씬 빛이 나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부쩍 큰 뒤를 헤아린다면 이런 이야기가 더 도움이 되겠지요. 아이가 웃는 사진과 얽혀, 아이가 언제 어떤 말빛을 터뜨리면서 웃음보따리가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수수하고 투박하게 더 들려준다면 훨씬 재미나겠지요. 무엇보다 ‘아이가 살아가며 읊은 말’이 이 책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이와 부른 노래도 그렇게 도드라지지 못합니다. 아이와 먹은 밥도, 아이와 함께 누린 옷과 이불과 집살림도, 이런저런 자잘하거나 자질구레한 삶빛이 바로 아이와 지내는 어여쁜 삶노래가 된다고 느껴요.


  아버지는 혼자서 될 수 없어요. 어머니가 있기에 아버지가 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이 함께 있으면서 다 같이 어버이가 되어요. 아이는 아버지 사랑과 어머니 꿈을 함께 먹으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아버지 노래와 어머니 눈빛을 같이 먹으면서 큽니다. 어버이로서 일구는 삶과 사랑과 꿈을 조금 더 또렷하게, 차근차근 깊고 넓게, 도란도란 사랑스럽게 들려줄 수 있으면 이 책이 그야말로 알찬 육아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벼운 ‘육아 수필’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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