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10.29.
《말씨, 말투, 말매무새》
한성우 글, 원더박스, 2024.6.30.
겨울은 아니나 겨울 코앞이라고 알리는 아침바람을 마신다. 틈틈이 해가 나오지만 구름이 짙게 깔리면서 가랑비가 듣는다. 두 아이는 엊저녁부터 아버지더러 일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저 앉아서 받아먹고, 설거지도 하지 말라고, 푹 쉬라고 말씀한다. 여태 ‘일로 쉬는 길’을 살아왔기에, 집에서 집일을 안 하자니 낯설다. 그렇지만 곁님과 아이들 잔소리야말로 기꺼이 듣고서 따를 노릇이다. 잘 쉬고서 낮에 고흥읍으로 간다. 가볍게 저잣마실을 한 뒤, 고을책숲(고흥군립도서관)에서 어린이하고 글놀이꽃 일곱걸음을 편다. 오늘은 ‘매’라는 낱말로 첫머리를 열고서 ‘맨날·지키는 말’ 두 가지로 쪽글을 함께 쓴다. 누구나 언제나 ‘더 많이’ 들으려 하기에 더 알지 않는다. 작은씨 한 톨과 같은 낱말을 곰곰이 들여다볼 틈을 낼 적에 비로소 눈뜨면서 스스로 온빛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찾는다.
《말씨, 말투, 말매무새》를 읽었다. 책이름에 ‘말씨·말투(-套)’를 나란히 적는데 같은말을 되풀이한 셈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쓰는 말을 헤아리려면 ‘말씨·말빛·말매무새’라든지 ‘말결·말끝·말숨·말길·말넋·말얼·말새’처럼 여러 낱말을 짚을 수 있다. 우리는 ‘말’을 다루면 된다. ‘언어(言語)’가 아닌 ‘말’과 ‘말씀’과 ‘말씨’가 서로 어떻게 닮으나 다른지 살피고서, 어떻게 다가가고 닿는지 읽어내면 된다. 더 낫거나 나쁜 말이란 없는 줄 먼저 받아들일 수 있어야 말꼬를 튼다. 바꿔야 하거나 걷어내야 할 말이 아닌, 풀어내고 품어서 녹이면서 익힐 낱말만 있는 줄 맞아들일 수 있어야 말살림을 북돋운다.
말지기(언어학자)가 따로 있는 일이란 어정쩡하다. 이제는 온누리 온곳에 꾼(전문가)만 넘친다. 지난날에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살림꾼’이었는데, 이제는 ‘살림-’이 톡 빠진 채 ‘-꾼’으로만 치닫는다. 보라, 살림을 잊거나 팽개치거나 떼어놓고서 꾼(전문)으로만 한 가지를 파고드는 이들은 외곬로 빠지거나 사로잡힌다. ‘법·경제·과학·교육·종교·예술·문학·철학’이라고 하는 하나만 외길로 달려가느라, 누구나 스스럼없이 함께하며 “살리는 사람인 사이”를 못 보거나 안 보거나 잃는다.
바닷일을 하는 사람이 바닷말을 지었다. 흙일을 하는 사람이 흙말을 지었다.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집말을 지었다. 옷을 짓는 사람이 옷말을 지었다. 집을 짓는 사람이 집말을 지었다. 그런데 예부터 바다이건 흙이건 집이건 그저 모든 사람이 하나하나 짚으면서 찬찬히 아우르는 온일 가운데 하나이다. 옛사람은 빠른길도 달구지도 누리길(인터넷)도 안 썼지만, 구태여 멀리 마실을 안 다녔지만, 집과 마을과 들숲메바다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모두 읽어내고 알아내고 나누면서 이야기로 물려주었다.
말지기(언어학자)는 나쁘지 않다. 그저 말지기라는 꾼일(전문작업)을 하기 앞서 집안일부터 하면 된다. 집안일을 즐겁게 도맡는 살림꾼으로 살아내면서, 아이를 손수 돌보고 사랑하는 어버이로 살아가노라면, 말 한 마디에 흐르는 빛과 씨와 새와 결과 숨과 꽃과 길을 부드러우면서 아름답게 풀어놓을 만하다. 꾼일만 하느라 집일부터 등질 적에는 허울좋게 꺼풀을 씌우는 말치레·말잔치만 하다가 어영부영 끝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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