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나무 초피알은 붉게



  열매가 익는 흐름을 지켜본다. 여러 해 물끄러미 지켜본다. 마당 한켠에 나무가 있으니 날마다 새삼스레 들여다보고, 날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열매란 얼마나 천천히 단단하면서 야무지게 익는가 하고 헤아린다.


  하루아침에 반짝 익는 열매는 없다. 감도 무화과도 여러 날 지긋이 기다린다. 아니, 여러 날이 아니라 한 달을 기다리고 달포를 기다린다. 처음 알이 맺힌 뒤 푸른 빛깔이 가시고 붉은 빛이 감돌기까지 한참 기다린다. 이동안 우리는 입이 아닌 눈으로 열매를 먹는다. 손이 닿으면 살며시 쓰다듬고, 손이 안 닿으면 나무 둘레에 서서 눈을 감은 뒤에 코로 냄새를 맡는다.


  감나무 곁에 서서 감알 냄새를 맡는다. 모과나무 곁에 서서 모과알 냄새를 맡는다. 초피나무 곁에 서서 초피알 냄새를 맡는다. 나무마다 냄새가 다르고, 열매마다 냄새가 새롭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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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호박이 뽕나무에



  우리 집 호박이 뽕나무에 대롱대롱 달렸다. 뽕나무 가지가 휘겠구나. 이렇게 크고 단단한 녀석이 달렸으니. 뒤늦게 알아채고는 폴짝 뛰어서 낫으로 석둑 끊는다. 풀밭으로 턱 떨어진 호박은 다치지 않는다. 스스로 싹을 틔우고 덩굴을 뻗은 호박은 곳곳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지난해에는 꽃만 실컷 피우더니 올해에는 열매를 여럿 내준다. 고마운 아이들이다. 그나저나 뽕나무 우듬지 언저리에 호박꽃이 하나 더 있으나, 나무가 고되겠구나 싶어 호박덩굴을 낫으로 다 자른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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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은 어떻게 낮은 곳에 있는가. 풍경을 이루는 우리 삶이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어떻게 낮은 곳에 있는가. 우리를 다스린다고 하는 저들은 우리를 밟고 높이 올라서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를 다스린다고 하면서 정작 밟고 올라선 저들은 높은 곳에 있는가? 지구별에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을까? 풍경을 이루는 우리들은 이 땅을 밟고 섰는데, 이 땅이 아닌 사람을 밟고 선 높은 자리에서는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이야기를 낳고, 땅이 아닌 사람을 밟고 선 사람은 권력을 낳는다.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사랑을 낳고, 땅이 아닌 사람을 밟고 선 사람은 이름값을 낳는다.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꿈을 낳고, 땅이 아닌 사람을 밟고 선 사람은 돈을 낳는다. 이희재 님이 그림으로 들려주는 《낮은 풍경》이라는 이야기책은 ‘땅을 밟고 삶을 가꾸는 사람’이 이룬 아름다운 숨결을 찬찬히 보여준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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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풍경- 이희재의 스케치여행
이희재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7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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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98. 가을내음 책숨 (2014.9.30.)



  여름에는 나무그늘에 평상을 놓아도 더웠지만, 가을에는 햇볕을 고스란히 쬐는 데에 평상을 놓아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외려 햇볕이 반가우면서 포근하기도 하다. 겨울에도 햇볕을 고스란히 쬐는 평상을 한껏 누릴 수 있겠지. 가을내음을 찬찬히 마시는 책숨을 누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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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짝맞추기 놀이



  산들보라는 누나 곁에서 논다. 누나가 조금만 다른 데로 가도 우는 소리를 내면서 누나 곁에 붙는다. 산들보라한테 누나가 없었으면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찰싹 달라붙었을 테지. 큰아이 사름벼리가 지난날에 으레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찰싹 달라붙으면서 놀던 모습이 얼핏설핏 떠오른다. 산들보라는 누나가 함께 놀지 않아도 그저 누나가 곁에 있으면 된다. 솜사탕을 먹을 때에 쓰던 작대기를 둘 서로 맞대면서 논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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