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4.10.10. 큰아이―마음 한 마디



  편지를 쓸 적에 얼마나 길게 써야 할까. 말을 할 적에 얼마나 꼼꼼히 들려주어야 할까. 인문학 강의는 무엇을 알려줄 만한가. 이래저래 살필 적에 늘 한 가지이지 싶다. 우리가 무엇을 알려주고 싶다면, 콩을 언제 심고 도라지를 언제 캐며 모과를 언제 딸는지쯤 알려주면 되지 싶다. 아이와 함께 부를 노래를 생각하고, 집 둘레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헤아리며, 밤에 무슨 꿈을 꾸면서 고이 쉴까 하고 살펴야지 싶다. 일곱 살 첫째 아이가 아버지한테 준 선물을 두고두고 되읽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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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94



삶을 배우는 사람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7.6.25.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도 배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나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더 배우지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야 배우고,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배울까요.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고, 학교에 다녀도 안 배울까요.


  학교가 있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스스로 배운다면, 학교라는 곳은 왜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교가 있을 때에만 배우고 학교가 없을 때에는 안 배운다면, 우리 삶은 무엇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불가사의하군. 저 둘은 그날의 운세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밤이 되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왜 검증도 하지 않고 믿을 생각부터 할까?’ (10쪽)

-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나에게 뭐가 좋은 일이고 뭐가 나쁜 일일까?’ (16쪽)

- “야단을 치지 않으면 리포트를 못 쓰나? 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가? 그러면 뭣 때문에 대학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군. 대학이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오는 거라네.” (84쪽)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고즈넉하면서 싱그럽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숲에서 부는 바람은 우리 몸을 따사롭게 감쌉니다.


  바람은 아침저녁으로 다릅니다. 바람은 낮밤이 다릅니다. 뭍에서 부는 바람과 섬에서 부는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모두 다릅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람을 잘 읽어서 알아야 합니다.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바람내음을 잘 헤아려서 알아야 합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은 물빛을 읽습니다. 들일을 하는 사람은 들빛을 읽습니다. 물일을 하기에 물빛을 읽을 뿐 아니라, 흙내음을 함께 읽습니다. 냇물이나 바닷물은 물만 맑대서 맑지 않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나무가 우거지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골짝물이나 빗물 따라 고운 흙이 냇바닥이나 갯바닥으로 찬찬히 흐를 때에 비로소 냇물과 바다가 싱그럽습니다.


  한편,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흙내음이나 풀내음뿐 아니라 빗소리와 바람결을 모두 읽습니다. 들과 숲은 풀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쬐면서 들과 숲이 푸릅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모든 넋과 숨결을 읽을 때에 비로소 들도 숲도 물도 바다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 불확실한 것에 왜 인간은 몇 천 년이나 좌우되고 있을까요?” “누구나 불안하니까 남의 입을 통해 보증을 받고 싶은 게 아닐까요?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요.” “현실감이 없어도 말입니까?” (24쪽)

- ‘당신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쁘다. 그래.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수 천 년 전부터 내가 지금 느낀 기쁨, 그런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아득히 먼 별들을 서로 이어 신화를 만들어 내고, 태양이나 달, 나무나 바람, 삼라만상에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도 모른다.’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그린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7) 스물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배움길을 멈추지 않는 유택 교수는 어릴 적부터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고, 젊은이였을 적에도 언제나 새롭게 배우려는 넋이며, 나이가 들어 손녀를 보는 때에도 한결같이 새롭게 배우려는 숨결입니다.


  그런데, 유택 교수네 아버지는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한테 삶이나 살림이나 숲이나 들은 거의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지 싶어요. 아마, 유택 교수네 아버지도 몰랐으니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을 테며, 마음이나 눈길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못 가르치거나 안 가르쳤겠지요.


  누군가 유택 교수한테 텃밭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유택 교수는 처음에는 여러모로 쓴맛을 보거나 잘 안 될 테지만, 어느새 흐름을 깨우치고는 즐겁게 밭일과 논일을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 “어린이도 빨간 불일 땐 기다려야지. 어른들도 빨간 불일 때 건너는 사람이 있단다. 아무리 행동이 어른스러워도 겉모양이 어린아이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법이야.” (39쪽)

- “나는 어른이란 논리적인 두뇌를 갖추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 아버지가 전하려 했던 뜻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지금도 감정적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단다.” (62쪽)



  배우려는 사람은 언제나 배웁니다. 공부를 해야 하거나 학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밝히고 싶기 때문에 배웁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배웁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를 바라면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 싶기에 배웁니다. 1등이나 2등이 되려는 뜻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따사롭게 보듬고 싶어서 배웁니다.


  배움이란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가르침도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말 한 마디를 배울 적에는 티가 없습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말 한 마디를 가르치면서 티가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오직 사랑과 믿음이 감돕니다.





- “유택이는, 유택이는 어중간한 걸 이해 못해.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말 ‘뒷면’에 있는 의미를 모르는 거야. 사람의 더러운 부분을 몰라. 열등감을 이해 못해.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걸 몰라.” (136∼137쪽)

- “글쎄, 너는 영리하지도 않고 요령도 없지만, 눈앞에 있는 문제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맞서니까, 학교 공부를 넘어서, 언제나 평생,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계속하겠지.” (142∼143쪽)



  삶을 배우는 사람은 착합니다. 늘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늘 사랑을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이에요. 그러니, 삶을 배우는 사람은 늘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하루를 지을 테니, 이녁은 늘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답겠지요.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둘레 누구나 착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 착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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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61. 그림을 바닥에 펼쳐 2014.10.10.



  쪽그림을 그린 사름벼리가 방바닥에 쪽그림을 죽 펼친다. 하나하나 보라면서 손으로 콕콕 집어서 가리키고는, 아버지 쪽에서 잘 볼 수 있도록 돌려놓는다. 그림을 그리면서 몹시 즐거웠구나. 네 마음을 담은 그림을 방바닥에 펼쳐놓고 바라보니, 아버지도 즐겁다. 이 그림을 우리 집 창호종이문에 살며시 붙이면 한결 즐거운 노래가 흐를 테지. 아이들 손길로 가꾸는 집이란 얼마나 예쁜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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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4.10.10. 작은아이―그림종이 물감판



  누나가 마당 평상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산들보라는 누나가 남긴 종이랑 물감판을 손에 하나씩 쥔다. 해가 기우니 집으로 들어와 마루에서 그리려 한다. 아직 그림돌이로 나아가지는 않는 산들보라이지만, 머잖아 누나와 함께 그림순이·그림돌이로 하루를 누리겠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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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덧셈 - 1942년으로 떠난 시간 여행 ㅣ 카르페디엠 33
제인 욜런 지음, 구자언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7



누가 전쟁을 일으키는가

― 악마의 덧셈

 제인 욜런 글

 구자언 옮김

 양철북 펴냄, 2013.4.29.



  아주 어릴 적에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처음 받은 뒤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미사일과 총알이 날거나, 전투기나 폭격기가 하늘을 가르거나, 잠수함이나 군함이 바다를 헤치는 일만 전쟁이 아닙니다. 총질에 칼부림이 있어야만 전쟁이 아니고, 탱크가 논밭과 숲을 짓밟아야만 전쟁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골목에서 힘센 아이가 힘여린 아이를 두들겨패는 짓조차 전쟁입니다. 학교에서 ‘어른이라는 교사’가 아이를 때리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거친 말을 뱉어내는 일도 전쟁입니다. ‘어버이라는 사람’이 이녁 아이를 때리거나 큰소리로 꾸중하는 일도 전쟁입니다.


  몇몇 전쟁 미치광이가 일으키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똑같이 전쟁이 도사리기 때문에, 이를 전쟁 미치광이가 살살 건드릴 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싹을 심어서 키우기 때문에, 그예 전쟁이 터지고 우리 스스로 총알받이가 됩니다.



..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이젠 지긋지긋해요.” 한나는 차에 올라타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따사로운 4월 햇살 탓인지 한나의 얼굴은 발그스름했고, 젤리빈과 부활절 사탕을 먹어서 입안은 끈적거렸다 …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난리지? 전부 다 옛날 일이잖아. 이젠 더 이상 강제수용소 따윈 있지도 않은데 왜 자꾸 입에 올리는 거야? 정말 혼란스러워. 나는 친구들이 할아버지를 만날까 봐 걱정돼. 할아버지가 친구들에게 소리 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이라도 하면 어떡해? 댄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고함치지도, 전쟁을 얘기하지도 않잖아?” ..  (6, 15쪽)



  한국 정치에서 엿볼 수 있는 군사독재자가 여럿 있습니다. 군사독재자 숫자는 그야말로 한 줌조차 안 됩니다. 이들이 총이나 칼이나 탱크를 거머쥐었다고는 하지만, 온 나라 사람이 함께 들고 일어나면, 이들은 꽁무니가 빠져라 미국으로 내뺐을 테지요.


  그렇지만, 군사독재자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아주 많은 이들이 일제부역을 했습니다. 혼자 먹고살려고 일제부역을 해요. 함께 어깨동무를 해서 함께 잘사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가난한 한국에 달러를 끌어들이겠다’면서 베트남 이웃을 모질게 때려잡는 짓을 한국 젊은 사내가 저질렀습니다. 아직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쟁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무렵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거나 베트남사람을 죽인 한국 젊은이도 제대로 뉘우친 적이 없습니다.


  1980년 전라도 광주에서 여느 사람들을 마구 때려잡아 죽인 이들은 얼마나 뉘우쳤을까요. 군사독재자를 아버지로 둔 딸은 얼마나 뉘우쳤을까요. 군사독재자 곁에서 권력을 누린 이들한테 ‘뉘우침’이라는 낱말이 있을까요.


  이웃과 동무를 죽인 이들은 으레 ‘빨갱이’라는 이름을 입에 붙입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빨갱이만 없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 바람대로 모두 죽일 노릇입니다. 모두 죽여서,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도 없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사람도 없고, 버스나 전철을 모는 사람도 없고, 발전소를 지키는 사람도 없고, 오직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행정을 하는 ‘빨갱이 아닌 그네’들만 남으라고 할 노릇입니다.


  우리 사회 어느 한쪽에서 자꾸 ‘빨갱이’라는 말을 함부로 주워섬기는 이들은 언제나 한 가지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신분사회와 계급사회로 단단하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아래쪽이 될 여느 사람들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위쪽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아래쪽 사람들은 고분고분 총알받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위쪽에서 물건을 새로 만들면 아래쪽 사람들이 고분고분 사들여서 쓰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아래쪽 사람들은 위쪽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할 뿐입니다.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니 총칼을 만들어서 짓밟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죽이려 합니다. 종이 되어 굽신거리도록 할 뜻으로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와 계급사회뿐 아니라 대학졸업장으로 옥죄고, 은행계좌로 옥죌 뿐 아니라, 서울 강아랫마을 값비싼 아파트로 옥죕니다.



.. 할아버지 집에 가면 온통 벨 할머니 가족들 사진만 있고, 윌 할아버지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고모할머니가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바로 사진인 셈이지. 우리의 기억 속에만 새겨져 있을 뿐이란다. 우리가 죽으면, 전부 사라지겠지.” … 한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교실에서 나누었던 토론들을 더 많이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죽음의 수용소와 화장터에 대해서. 잔인한 나치와 잔인하게 죽어 간 6백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모르는 것이 무서운 걸까 ..  (60, 99쪽)



  전쟁은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 스스로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이룹니다.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평화란, 사랑스러운 삶으로 이룹니다.


  평화는 탱크나 총칼로 이루지 않습니다. 탱크나 총칼은 전쟁을 하려고 만든 무기, 그러니까 전쟁무기입니다. 평화를 이룰 적에는 무기를 안 씁니다. ‘평화무기’란 없습니다. 평화에서는 오직 한 가지 사랑만 나누지요. 다시 말하자면 ‘평화사랑’일 뿐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켜서 ‘빨갱이 사냥’을 일삼는 이들 때문에 무섭다고요? 무서우면 어떡해야 할까요? 전쟁 미치광이하고 똑같이 ‘빨갱이 사냥’을 함께 해야 하나요? ‘빨갱이 사냥’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제주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이 나라 골골샅샅에서, 끔찍한 죽임이 판칠 적에, 전쟁 미치광이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참말 무섭다면, 무서움을 내려놓고, 그네들이 바라는 대로 죽어 주면 됩니다. 모두 죽어 주면 됩니다. 그네들이 대통령도 하고 기자도 하고 교수도 하고 의사도 되고 하라면서 다 죽어 주면 됩니다. 그래서, 그네들끼리 도시를 지어서 살라 하면 됩니다.


  자, 생각해 보셔요. 우리가 독재부역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네들은 ‘일을 시킬 종’이 없겠지요? 그네들이 ‘일을 시킬 종’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그네들이 손수 농사를 지어야 하고, 공장을 돌려야 하며, 버스와 기차를 몰아야 하고, 발전소를 지켜야 하고, 모든 일을 그네들이 스스로 해야겠지요.


  그네들이라고 하는 그네들, 전쟁 미치광이가 왜 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으르렁거리는가 하면, 바로 우리들한테 ‘종살이’를 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종으로 만들어, 기계 부속품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못 깨달아요. 똑같이 기계 부속품이 되고 맙니다. 날마다 쳇바퀴를 돌면서 돈을 벌기만 합니다. 삶은 짓지 못하고 돈만 손에 쥡니다. 날마다 지겨운 출퇴근을 하면서 돈을 벌 뿐, 내 아이조차 제대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한 채 너무 바쁩니다.



.. “넌 이것을 기억해야만 해. 잊어버리는 순간, 네 삶은 정말 끝난 것일 테니까.” 문힌을 하는 펜이 한나의 살을 태웠고, 손목 위에 푸른색으로 J197241이라는 숫자가 새겨졌자 … 작업이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은 수용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막사, 부엌, 병원, 경비병의 집 청소하기, 땔감용 나무 자르고 운반하기 ..  (138, 171)



  제인 욜런 님이 쓴 《악마의 덧셈》(양철북,2013)을 읽습니다. 1942년에 있던 어떤 끔찍한 ‘죽음잔치’를 적은 글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강물이 흘러가도록》이나 《나의 삼촌 에밀리》 같은 그림책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따사로운 사랑을 들려주는 글을 쓰는 분입니다. 이런 제인 욜런 님이 쓴 《악마의 덧셈》은 어떤 책일까요?


  청소년문학 《악마의 덧셈》은 ‘주인공 청소년’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1942년에 가 보도록 해 줍니다. 겉보기로 평화스러운 2000년대 어느 날에 ‘주인공 청소년’이 있도록 하지 않고, 1942년 그무렵 전쟁 미치광이 피바람이 부는 한복판에 ‘주인공 청소년’이 서도록 해 줍니다.



.. “여기에서 사람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되는 것일 뿐이야. 화덕 안에서 화장되는 게 아니라, 그저 ‘처리되는’ 거지. 시체는 없어. ‘쓰레기’, ‘헌 옷’, ‘걸레’만 있을 뿐이야.” “하지만 왜?” 한나가 묻자 이번에는 레예가 대답했다. “왜냐고? 기록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까. 그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거야. 그러니 그런 식으로 처리되어야만 하는 거고.” ..  (177쪽)



  평화를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은 2000년대 이 자리가 아닌 1900년대 지난날에 서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내세우는 바보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몸소 겪어야지 싶습니다. 1800년대나 1700년대 조선 사회에 서면서, 그무렵 권력자가 시골사람을 얼마나 짓밟거나 얕잡거나 괴롭히거나 들볶았는지 몸소 겪어야지 싶습니다.


  궁궐에서 태어나 궁궐에서 살다가 궁궐에서 죽은 ‘임금 한 사람’과 곁에서 임금을 보살피는 수많은 ‘종’은 삶을 얼마나 알았을까요? 흙 한 줌 스스로 만지지 않고도 밥을 먹고 옷을 입은 ‘임금 한 사람’과 곁에서 임금을 보살핀 수많은 ‘종’은 사랑을 얼마나 알았을까요?


  누가 전쟁을 일으킬까요?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가 전쟁 명령을 내리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정치 지도자가 어리석은 짓을 시켜도 꼼짝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가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신분차별과 계급차별을 단단히 세우려고 하는 어리석은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쟁이 자꾸 터지는 까닭은 우리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늘리는 바보짓을 정치나 행정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일삼는 까닭도 우리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평화를 바라고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전쟁과 전쟁무기는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바라는 평화와 사랑으로 하루를 새롭게 지을 때에, 지구별에 따사로운 바람이 붑니다.


  대학교는 학문을 깊이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교는 학력차별과 신분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 구실을 그만해야 합니다. 돈은 즐겁게 벌어서 아름답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이웃과 동무를 괴롭히거나 짓밟는 짓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전쟁을 지우고 평화와 사랑을 씨앗으로 심기를 바랍니다. 4347.10.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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