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 ㅣ 생각하는 숲 5
셸 실버스타인 지음,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5



생각하며 자라는 어린이

―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

 쉘 실버스타인 글·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1.1.30.



  아이들은 언제나 무엇이든 스스로 지으면서 놉니다. 어떤 아이라도 마음으로 온갖 이야기를 스스로 지으면서 놉니다. 아무것도 짓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아이는 어버이한테 무엇인가 얽매였거나, 집 둘레에서 이 아이를 억누르는 무엇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이는 나뭇가지 하나로 무엇이든 짓습니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를 놀리면서 무엇이든 짓습니다. 아이는 말 한 마디로 무엇이든 짓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생각힘을 키우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보살피거나 가르치려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씩씩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지 않을래요? 싸게 파는 코뿔소가 한 마리 있어요. 팔랑이는 두 귀에 엉금엉금 걷는 네 발, 반갑다고 살랑대는 꼬리가 그만이에요 ..  (3쪽)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는 슬픕니다. 생각이 막힌 아이는 괴롭습니다. 생각을 열지 못하는 아이는 고단합니다.


  장난감을 많이 갖추어야 잘 놀지 않습니다. 즐거워야 잘 놉니다. 여러 학원을 뛰어야 잘 놀지 않습니다. 홀가분해야 잘 놉니다. 학교를 다녀야 동무를 사귀면서 잘 놀지 않습니다. 어버이부터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어야 잘 놉니다.


  너무 많은 어른들은 아이한테 ‘사회를 알려준다’면서 학교에 넣습니다. 이는 참 잘못된 짓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사회입니다. 도시이기에 사회가 아니고, 학교이기에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어디나 사회입니다. 시골도 사회요 조그마한 마을도 사회입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회에 있으니, ‘사회 때문에’ 아이를 학교에 넣는다고 여긴다면 큰 잘못입니다.



..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때리려고 하면 코뿔소가 말려 줄 수도 있답니다 ..  (28쪽)





  아이를 학교에 넣을 생각이라면, 아이가 무엇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배우러 가는 곳입니다. 사회를 겪으려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버이도 교사도 생각을 잘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괴롭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 온 아이들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즐겁게 노는 하루를 누려야 합니다. 즐겁게 놀면서 스스로 생각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학교는 무슨 짓을 하는가요? 우리 사회에서 학교는 입시지옥과 시험공부 아니고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학교에서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 없고, 학교에서 사랑을 나누거나 보여주는 일도 없습니다. 교사 가운데 학교에서 아이한테 참사랑을 들려주거나 알려주거나 보여주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지요? 교과서 수업이 아닌 사랑나눔을 헤아리는 어른은 몇이나 있는지요?



.. 고함을 쳐도 가만히 있어요. 아마 모두들 코뿔소에게 홀딱 반할 거예요 ..  (52∼54쪽)



  쉘 실버스타인 님이 빚은 그림책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시공주니어,2001)를 읽습니다. 코뿔소를 왜 사야 하는지, 또는 왜 싸게 사야 하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냥 코뿔소이고 그냥 싸게 살 뿐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그예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놀이요 삶이며 웃음이고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낳은 어버이를 비롯해서 둘레 어른들이 함께 놀기를 바랍니다. 돈벌이에 그만 매이고, 텔레비전은 제발 끄고, 책은 좀 덮고, 자가용에서는 부디 내려서,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면서 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코뿔소를 싸게 사라고 살며시 말을 겁니다. 어른들은 그저 ‘돈으로 뭔가를 사’려는 생각뿐이고, 게다가 ‘돈도 많으면서 더 싸게 사’려는 마음뿐이니까요.


  이제, 모든 실마리를 풉니다. 어른들은 아이처럼 돈을 벌어서 쓸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아이처럼 생각을 짓고 삶을 가꿀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아이처럼 놀이하듯이 일을 할 노릇입니다.


  손을 뻗어서 나무를 쓰다듬어요. 손을 내밀어 풀잎을 어루만져요. 그리고, 이 손으로 아이들 볼을 살살 문지르다가 까르르 웃고 달려요. 4347.10.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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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낳는 사진책



  사진책을 하나 읽다가 문득 그림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다 그리고 보니,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그림으로 빚었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다. 사진이란 노래이다. 곱게 흐르는 결이 온누리를 따사로이 감돌면서 우리한테 찾아오는 노래가, 곧 사진이다.


  그러면 글과 그림은 무엇일까? 글과 그림도 노래일 테지. 영화나 책은 무엇일까? 영화나 책도 노래일 테지. 우리 삶은 무엇일까? 우리 삶도 노래일 테지.


  학교와 마을도 노래이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예술도 노래이다. 무엇이든 다 노래이다. 노래가 아니라면 어느 것이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노래일 때에 모든 것이 되고, 노래일 때에 싱그러운 숨결로 거듭난다.


  사진책을 가만히 되읽으면서 생각한다. 노래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한테 어떤 책이 될는지 생각한다. 노래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진이나 글이나 그림이나 책이라 한다면, 이러한 책이 여러모로 이름이 높거나 잘 팔린다고 할 적에 얼마나 뜻이 있을까 생각한다.


  예부터 어느 겨레 어느 나라에서든, 말은 늘 노래였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은 언제나 노래처럼 흘렀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언제나 노래이듯, 사람이 주고받는 말도 언제나 노래였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은 노래가 아니기 일쑤이다.


  노래가 아니라면 읊지 말아야 한다. 노래가 아니라면 노래가 되도록 가다듬어야 한다. 노래가 아닌 사진이나 책이라면 그예 덮으면 된다. 노래가 흐르는 사진이나 책일 때에 활짝 웃으면서 기쁘게 펼치면 된다. 4347.10.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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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감알 떨어지는 소리



  늦여름과 구월까지는 지붕에 감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도 시큰둥했다. 풋감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월에 감알 떨어지는 소리가 밤에 쿵 들리면 ‘옳거니’ 하고 생각한다. 낮에는 곧바로 뒤꼍으로 가서 감알을 줍는다. 한밤에는 으레 이튿날 아침에 가서 줍는데, 오늘은 한밤이지만 등불을 들고 뒤곁에 가서 두리번거린다. 어느 감알이 떨어졌는지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쿵 소리와 함께 가랑잎을 부스럭부스럭 굴러가는 소리가 어디로 뻗었는지 어림한다. 불을 요리조리 비춘 끝에 찾는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굵고 야무진 새빨간 감알이다.


  이튿날에는 새벽밥을 짓고 나서 새벽길을 나서야 할 듯싶어, 이렇게 한밤에 감알을 줍는다. 아무래도 부산까지 바깥일을 하러 다녀와야지 싶다. 이동안 곁님과 아이들이 밥을 잘 먹고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 다른 감알은 더 안 떨어지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감이 하나둘 떨어져서 즐겁게 주워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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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순이 8. 호박을 찍자 (2014.9.27.)



  아버지가 뒤꼍에서 ‘우리 집 호박’ 큰 덩이를 둘 들고 마당에 내려놓는다. 두 아이는 마당에서 놀다가, “어, 아버지다! 와, 호박이다! 호박 되게 크다!” 하고 외치더니 “야, 사진 찍어야지!” 하면서 사진으로 찰칵찰칵 담는다. 사진순이는 털실로 또 사진끈을 이어서 목에 걸었다. 사진순이가 호박덩이를 사진으로 담으니 사진돌이가 옆에서 “이것도 찍어야지.” 하면서 한 마디 붙인다. “찍었어.” 하고 사진순이가 대꾸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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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77] 큰술·작은술



  어릴 적에 곧잘 부엌일을 거들었습니다. 내가 사내 아닌 가시내로 태어났으면 어머니는 한결 홀가분하게 부엌일을 시키셨을 텐데, 사내로 태어난 터라 부엌일을 덜 시켰으리라 느낍니다. 무엇 좀 도울 일이 없느냐고 여쭈면 으레 “없어.” 하시지만, 도무지 손을 쓰실 수 없을 적에 “도와줘.” 하고 부르시면서 “저기 숟가락으로 소금 큰술로 하나 넣어 줘.” 하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입으로 아이한테 무언가 시킬 적에 ‘큰술’과 ‘작은술’로 부피를 가누셨어요. “두 큰술”이라든지 “작은술 반”이라 말씀하셨지요. ‘큰술’은 밥을 먹는 숟가락입니다. ‘작은술’은 찻숟가락입니다. 어릴 적부터 요리책을 가끔 들추었는데, 요리책에도 으레 ‘큰술·작은술’로 양념이나 간을 맞추도록 이끕니다. 그렇지요. 부엌에서 쓰는 ‘부엌말’입니다. 한국말사전에는 이 낱말이 안 실립니다.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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