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순이 15. 가을잎 비질순이 (2014.10.29.)


  후박나무는 가을이나 겨울에는 가랑잎을 거의 안 떨구지만 곧잘 톡톡 떨군다. 마당을 거닐다가 가랑잎을 보면 손으로 주워서 나무 둘레로 옮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빗자루를 꺼내어 마당을 슥슥 쓸기도 한다. 마당을 쓸던 비를 한쪽에 두고 부엌으로 들어와 밥을 짓는 사이, 우리 집 살림순이가 슬그머니 큰 비를 단단히 잡으며 비질놀이를 한다. 살림순이는 비질을 꽤 잘 한다. 네 살 적부터 이 빗자루로 눈도 쓸고 가랑잎도 쓸었다. 석석 소리가 노랫가락처럼 울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남녘·북녘 갈린 한국에서 책이란



  한국이라는 나라로 본다면, 남녘과 북녘이 갈립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른 금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안 보입니다. 높이 높이 올라갈수록 금은 흐릿합니다.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바라보면 금은커녕 어떤 것도 안 보입니다.


  이 땅을 밟으면서 나들이를 하더라도 마음은 하늘을 날면서 널리 바라볼 수 있으면, 둘 사이를 가르는 ‘금’이란 그저 금이지, 아무것도 가를 수 없으리라 느껴요.


  남녘과 북녘은 서로 다른 사회 얼거리요 정치 얼거리입니다. 교육 얼거리나 경제 얼거리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같아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다르고, 고장말은 다르지만, 서로 말로 나눌 수 있는 생각은 같습니다. 사회·정치·교육·경제·문화라고 하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마음·사랑·삶’이라는 넋으로 서로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생각은 아주 넓고 깊습니다.


  남녘에서는 온갖 책이 쏟아집니다. 남녘에서는 아름다운 책도 나오지만, 돈벌이를 다루는 책도 엄청나게 나옵니다. 남녘에서는 사랑스러운 책도 나오지만, 돈만 끌어모으려고 하는 책도 나옵니다. 북녘은 어떠할까요? 북녘에서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책이 곧잘 나올 테지만, 사회나 정치나 교육이나 경제나 문화라는 울타리에 가로막히는 일도 잦습니다. 다만, 북녘에서는 남녘과 달리 돈벌이를 다루는 책이나 돈만 끌어모으려고 하는 책은 안 나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책도 북녘에서는 안 나와요.


  남녘 책마을을 살펴보셔요. 동네책방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책방에서도 ‘대학입시 교재’가 가장 넓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남녘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대학입시 교재’로 온통 짓눌려야 해요. 이런 남녘에서 어린이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은 어떤 몫을 맡을 만할까요. 이런 남녘에서 겨우 입시지옥을 벗어난 젊은 넋은 어떤 ‘어른문학’이나 ‘어른인문학’을 누릴 만할까요.


  삶은 오롯이 책입니다. 사랑으로 가꾸는 삶이든, 사랑으로 못 가꾼 삶이든, 모두 오롯이 책입니다. 삶을 읽을 수 있으면 삶을 바꿉니다. 삶을 읽는다면 삶을 슬기롭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남녘에 있는 이웃은 ‘대학입시 교재’를 손에서 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녘에 있는 이웃은 ‘대학입시 교재가 되기 앞서, 숲에 있던 나무’인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녘에 있는 이웃은 ‘삶에서 태어나는 책’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비와 숲과 풀을 읽는 밝고 또렷한 눈썰미를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북녘이 한자리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손길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요 몇 달 사이에

내 나름대로 즐기던 놀이가 있다.


'끝(한계)'은 어디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어느 만큼 나아갈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앞으로 어느 만큼 나아갈 수 있을까.

글이란 무엇이고

글쓰기란 무엇일까.


무엇보다

나는 왜 이런 '일(경험)'을 맞아들이려 하는가?


곰곰이 돌아본다.

어떤 응어리가 나한테 있구나 싶다.

이 응어리를 풀려고

무언가 붙잡을 생각이 있기도 했다고 느낀다.


이제

조용히 생각한다.


처음에는 한 달 100꼭지,

다음에는 한 달 200꼭지,

그러고 나서 한 달 300꼭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한 달 300꼭지를 쓰고 난 뒤로는

설마 400꼭지도 쓸 수 있나 궁금했는데,

쓰고 보니 400꼭지뿐 아니라

어쩌면 500꼭지도 될 수 있구나 싶다.


지난 9월에 400꼭지를 넘어선 뒤

이제 글을 쓰면서

숫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뭐랄까,

이제껏 내가 해내지 못하거나 생각조차 못하던

어떤 밥짓기(요리)를 해낸 느낌이랄까.


..


한 가지를 곰곰이 생각한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안 믿으면서

오늘까지 마흔 해를 살았으니,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마흔 해는

나를 즐겁게 믿으면서 가자.


아마 나는 이 한 가지,

내가 나를 믿지 못한 채 굴러온

마흔 해 삶을 그치고 싶어서

요 몇 달 동안

내 나름대로 '글쓰기 놀이'를 즐겼구나 싶다.


홀가분히 털자.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살이 일기 78] 유자 바구니
― 우리 집 살림살이는 나무


  곁님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 주었습니다. 커다란 상자 가득 담긴 김치를 보고는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리 집 뒤꼍으로 갑니다. 우리 집 유자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나무가 아직 그리 안 크고 가지도 많이 안 뻗습니다. 그렇지만 열매가 제법 달립니다. 잘 썰어서 차로 담기에 얼마 안 되는구나 싶지만, 두 집으로 나누어서 선물로 보내자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를 불러 함께 유자를 딴 뒤, 작은 종이상자에 담아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서 부칩니다.

  유자알만 넣으니 선물상자가 살짝 허전해서 굵은 모과알을 둘씩 보탭니다. 굵은 모과알을 둘씩 더하니 선물상자가 제법 도톰합니다.

  덜 여문 유자는 따지 않습니다. 제대로 여물 때까지 여러 날 기다리기로 합니다. 유자나무에 남은 열매를 마저 따면 이 열매를 우리가 건사해서 쓸 수 있을 테지만, 남은 열매도 사랑스러운 이웃한테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 지난해에 심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는 올해에 꽤 잘 자랐어요. 이듬해에는 복숭아알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잘 모르며 제대로 보듬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나씩 다스리고 건사하면서 우리 집 살림살이인 나무를 살뜰히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살림살이란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면, 무엇보다 첫째로 ‘나무’이지 싶습니다. 마당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후박나무도 우리 집 대단한 살림입니다. 후박나무 곁에 있는 초피나무와 동백나무도 우리 집 대단한 살림입니다. 가녀린 장미나무도 우리 집 살림이요, 매화나무와 감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뽕나무와 모과나무도 우리 집 살림입니다.

  열매를 주기에 살림이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풀고, 늘 푸른 그늘을 베풀며, 늘 푸른 노래를 베푸는 한집 숨결이기에 살림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우리 집 나무 곁에 서서 굵직한 나뭇줄기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살살 쓰다듬거나 껴안을 적에 무척 즐겁습니다.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127) 극도의 1


그 당시 나는 무슨 일에 손을 댔다가 실패를 하고 그야말로 극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박연구-어항 속의 도시》(문예출판사,1976) 93쪽


 극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 더할 나위 없이 힘들었다

→ 더할 수 없이 쪼들렸다

→ 살림이 몹시 힘들었다

→ 살림이 몹시 쪼들렸다

→ 살림이 찢어지듯 고되었다

→ 아주 힘들게 살았다

→ 무척 고달프고 가난하게 살았다

→ 더없이 가난하게 살았다

 …



  “더할 수 없는 정도”를 뜻하는 한자말 ‘극도(極度)’에 토씨 ‘-의’를 붙이면서, “극도 + 의 + 생활고” 꼴이 됩니다. “한자말 + 의 + 한자말” 꼴입니다. 한자말이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의’라는 토씨는 한자말을 자꾸 불러들입니다.


  한국어사전에 나온 보기글은, “더할 수 없었다(← 극도에 달하다)”나 “대단히 떨렸다(← 극도로 긴장하다)”나 “몹시 떨다(← 극도로 흥분하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거나, 말뜻 그대로 쓰면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말썽이 될 곳이 없습니다. 4340.10.26.쇠/4347.10.31.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무렵 나는 무슨 일에 손을 댔다가 쓴맛을 보고 그야말로 살림이 몹시 쪼들렸다


“그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다듬습니다. “실패(失敗)를 하고”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쓴맛을 보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생활고(生活苦)를 겪고 있었다”는 “살림이 몹시 쪼들렸다”나 “삶이 힘들었다”나 “살기 참 고되었다”로 손봅니다.



극도(極度) : 더할 수 없는 정도

   - 극도에 달하다 / 극도로 긴장하다 / 극도로 흥분하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02) 극도의 2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병은 무슨. 극도의 영양실조였어!”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 “그냥 저절로.”

《싼마오/조은 옮김-사하라 이야기》(막내집게,2008) 43쪽


 극도의 영양실조였어

→ 끔찍한 영양실조였어

→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

→ 밥을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했어

→ 못 먹어서 삐쩍 말랐어

→ 그저 굶주렸을 뿐이야

 …



 ‘영양실조(營養失調)’란 “영양소가 모자라 몸이 나빠지는” 일을 가리킵니다. 흔히 쓰는 말이니 그대로 두면서 “끔찍한 영양실조였어”나 “어이없는 영양실조였어”나 “터무니없는 영양실조였어”나 “거의 죽을 뻔한 영양실조였어”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영양실조’를 풀어낸 다음, “몹시 오랫동안 굶주렸어”라든지 “참으로 오래도록 밥을 굶었어”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말도 마, 영양실조였어

 어휴,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영양실조였어


  ‘영양실조’라는 낱말은 살린 채, 앞말을 고쳐 보기도 합니다. 느낌을 살리면서 저마다 다 다른 말씨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참 끔찍하더군, 영양실조였어”로 적기도 하고, “아이구야, 영양실조야 영양실조”로 적기도 하며, “쯔쯔쯔, 영양실조였어”로 적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굶도록 내버려 두다니

 그렇게 안 먹였으니 몸이 아프지

 밥은 안 먹이고 내버려 두었으니 죽으려고 하지

 굶기기만 하니 몸이 저렇게 되지


  다시 한 번 ‘영양실조’를 털어낸 다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헤아립니다. 이러면서 조금씩 말투와 말씨를 바꾸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이야기를 엮어 봅니다. 새롭게 쓰고 남달리 쓰기도 하면서 내 느낌을 가장 알뜰히 담아낼 만한 글월은 어떤 모습인지 찾아나섭니다. 4341.11.13.나무/4347.10.31.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프기는 무슨. 못 먹어서 삐쩍 말랐어!” “네가 어떻게 알아냈어?” “그냥 저절로.”


‘대답(對答)했다’ 같은 낱말은 구태여 다듬지 않아도 됩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말했다’나 ‘이야기했다’로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병(病)은 무슨”도 그대로 둘 만하지만, “아프기는 무슨”으로 손볼 수 있어요. ‘영양실조(營養失調)였어’는 “못 먹어서 삐쩍 말랐어”나 “아주 굶주렸어”로 손질해 줍니다. ‘당신(當身)이’는 ‘네가’나 ‘이녁이’로 다듬고, ‘그걸’은 덜어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82) 극도의 3


‘가릴 선(選)’의 독음(讀音)은 긴소리 ‘선’인데 짧은 소리로 발음해 모두 ‘선호한다’고 하니까 ‘先好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주체성 상실에 무식을 겸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자아낸다

《이수열-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2014) 342쪽


 극도의 혐오감을 자아낸다

→ 몹시 볼썽사납다

→ 매우 볼꼴사납다

→ 무척 보기 싫다

→ 아주 어처구니없다

→ 도무지 봐줄 수 없다

 …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는 한자말 ‘혐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보기글에서 나타내려는 뜻은 “싫어하고 미워함을 자아낸다”는 소리가 되는데, 여러모로 엉뚱한 말투입니다. 껍데기는 한글이지만 알맹이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로는 “보기 싫고 보기 밉다”로 적어야 할 테지요. 그런데 그냥 보기 싫을 뿐 아니라 ‘극도’로 보기 싫다 하니, “무척 보기 싫다”나 “더할 수 없이 보기 싫다”나 “그야말로 보기 싫다”로 적으면 됩니다.


  보기 싫은 모습이란 ‘볼썽’이나 ‘볼꼴’이 사나운 모습입니다. 볼썽사납거나 볼꼴사나운 모습은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모습이라면 ‘어처구니없’거나 ‘터무니없’다고 할 만해요. 4347.10.31.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가릴 선(選)’은 읽을 적에는 긴소리 ‘선’인데 짧은소리로 내 모두 ‘선호한다’고 하니까 ‘先好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줏대도 없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몹시 볼썽사납다


“-의 독음(讀音)은”은 “-은 읽을 적에는”이나 “-을 읽는 소리는”으로 손봅니다. ‘긴소리·짧은소리’는 모두 한 낱말입니다. “짧은 소리로 발음(發音)해”는 겹말입니다. “짧은소리로 내”로 바로잡습니다. “주체성(主體性) 상실(喪失)에”는 “줏대도 없고”나 “제 빛을 잃고”로 손질하고, “무식(無識)을 겸(兼)해서”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나 “바보스러울 뿐 아니라”로 손질하며, “혐오감(嫌惡感)을 자아낸다”는 “볼썽사납다”나 “볼꼴사납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