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127) 극도의 1
그 당시 나는 무슨 일에 손을 댔다가 실패를 하고 그야말로 극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박연구-어항 속의 도시》(문예출판사,1976) 93쪽
극도의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 더할 나위 없이 힘들었다
→ 더할 수 없이 쪼들렸다
→ 살림이 몹시 힘들었다
→ 살림이 몹시 쪼들렸다
→ 살림이 찢어지듯 고되었다
→ 아주 힘들게 살았다
→ 무척 고달프고 가난하게 살았다
→ 더없이 가난하게 살았다
…
“더할 수 없는 정도”를 뜻하는 한자말 ‘극도(極度)’에 토씨 ‘-의’를 붙이면서, “극도 + 의 + 생활고” 꼴이 됩니다. “한자말 + 의 + 한자말” 꼴입니다. 한자말이 한자말을 불러들입니다.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의’라는 토씨는 한자말을 자꾸 불러들입니다.
한국어사전에 나온 보기글은, “더할 수 없었다(← 극도에 달하다)”나 “대단히 떨렸다(← 극도로 긴장하다)”나 “몹시 떨다(← 극도로 흥분하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거나, 말뜻 그대로 쓰면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말썽이 될 곳이 없습니다. 4340.10.26.쇠/4347.10.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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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무렵 나는 무슨 일에 손을 댔다가 쓴맛을 보고 그야말로 살림이 몹시 쪼들렸다
“그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다듬습니다. “실패(失敗)를 하고”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쓴맛을 보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생활고(生活苦)를 겪고 있었다”는 “살림이 몹시 쪼들렸다”나 “삶이 힘들었다”나 “살기 참 고되었다”로 손봅니다.
극도(極度) : 더할 수 없는 정도
- 극도에 달하다 / 극도로 긴장하다 / 극도로 흥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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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02) 극도의 2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병은 무슨. 극도의 영양실조였어!”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 “그냥 저절로.”
《싼마오/조은 옮김-사하라 이야기》(막내집게,2008) 43쪽
극도의 영양실조였어
→ 끔찍한 영양실조였어
→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
→ 밥을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했어
→ 못 먹어서 삐쩍 말랐어
→ 그저 굶주렸을 뿐이야
…
‘영양실조(營養失調)’란 “영양소가 모자라 몸이 나빠지는” 일을 가리킵니다. 흔히 쓰는 말이니 그대로 두면서 “끔찍한 영양실조였어”나 “어이없는 영양실조였어”나 “터무니없는 영양실조였어”나 “거의 죽을 뻔한 영양실조였어”처럼 손질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영양실조’를 풀어낸 다음, “몹시 오랫동안 굶주렸어”라든지 “참으로 오래도록 밥을 굶었어”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말도 마, 영양실조였어
어휴,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영양실조였어
‘영양실조’라는 낱말은 살린 채, 앞말을 고쳐 보기도 합니다. 느낌을 살리면서 저마다 다 다른 말씨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참 끔찍하더군, 영양실조였어”로 적기도 하고, “아이구야, 영양실조야 영양실조”로 적기도 하며, “쯔쯔쯔, 영양실조였어”로 적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굶도록 내버려 두다니
그렇게 안 먹였으니 몸이 아프지
밥은 안 먹이고 내버려 두었으니 죽으려고 하지
굶기기만 하니 몸이 저렇게 되지
다시 한 번 ‘영양실조’를 털어낸 다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헤아립니다. 이러면서 조금씩 말투와 말씨를 바꾸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이야기를 엮어 봅니다. 새롭게 쓰고 남달리 쓰기도 하면서 내 느낌을 가장 알뜰히 담아낼 만한 글월은 어떤 모습인지 찾아나섭니다. 4341.11.13.나무/4347.10.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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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프기는 무슨. 못 먹어서 삐쩍 말랐어!” “네가 어떻게 알아냈어?” “그냥 저절로.”
‘대답(對答)했다’ 같은 낱말은 구태여 다듬지 않아도 됩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말했다’나 ‘이야기했다’로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병(病)은 무슨”도 그대로 둘 만하지만, “아프기는 무슨”으로 손볼 수 있어요. ‘영양실조(營養失調)였어’는 “못 먹어서 삐쩍 말랐어”나 “아주 굶주렸어”로 손질해 줍니다. ‘당신(當身)이’는 ‘네가’나 ‘이녁이’로 다듬고, ‘그걸’은 덜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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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82) 극도의 3
‘가릴 선(選)’의 독음(讀音)은 긴소리 ‘선’인데 짧은 소리로 발음해 모두 ‘선호한다’고 하니까 ‘先好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주체성 상실에 무식을 겸해서 극도의 혐오감을 자아낸다
《이수열-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2014) 342쪽
극도의 혐오감을 자아낸다
→ 몹시 볼썽사납다
→ 매우 볼꼴사납다
→ 무척 보기 싫다
→ 아주 어처구니없다
→ 도무지 봐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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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는 한자말 ‘혐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보기글에서 나타내려는 뜻은 “싫어하고 미워함을 자아낸다”는 소리가 되는데, 여러모로 엉뚱한 말투입니다. 껍데기는 한글이지만 알맹이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로는 “보기 싫고 보기 밉다”로 적어야 할 테지요. 그런데 그냥 보기 싫을 뿐 아니라 ‘극도’로 보기 싫다 하니, “무척 보기 싫다”나 “더할 수 없이 보기 싫다”나 “그야말로 보기 싫다”로 적으면 됩니다.
보기 싫은 모습이란 ‘볼썽’이나 ‘볼꼴’이 사나운 모습입니다. 볼썽사납거나 볼꼴사나운 모습은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모습이라면 ‘어처구니없’거나 ‘터무니없’다고 할 만해요. 4347.10.3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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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릴 선(選)’은 읽을 적에는 긴소리 ‘선’인데 짧은소리로 내 모두 ‘선호한다’고 하니까 ‘先好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줏대도 없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몹시 볼썽사납다
“-의 독음(讀音)은”은 “-은 읽을 적에는”이나 “-을 읽는 소리는”으로 손봅니다. ‘긴소리·짧은소리’는 모두 한 낱말입니다. “짧은 소리로 발음(發音)해”는 겹말입니다. “짧은소리로 내”로 바로잡습니다. “주체성(主體性) 상실(喪失)에”는 “줏대도 없고”나 “제 빛을 잃고”로 손질하고, “무식(無識)을 겸(兼)해서”는 “어리석을 뿐 아니라”나 “바보스러울 뿐 아니라”로 손질하며, “혐오감(嫌惡感)을 자아낸다”는 “볼썽사납다”나 “볼꼴사납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