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
린다 실베르센 외 지음, 김재민 옮김 / 맥스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좋은 넋으로 맞이할 좋은 삶
 [환경책 읽기 21]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



- 책이름 :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
- 글 : 린다 실베르센, 토시 실베르센
- 옮긴이 : 김재민
- 펴낸곳 : 맥스미디어 (2009.7.30.)
- 책값 : 12000원



 (1) 나무한테 붙이는 이름


 환경책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돕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는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겠다 싶은 이야기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233쪽에 이르니,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공공 도로의 일부분과 결연을 맺어서 깨끗이 관리하는 ‘고속도로 결연 맺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과 결연을 맺은 고속도로롤 쾌적하고 넓게 만들려는 노력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길 위의 쓰레기를 줍는 노력은 하고 싶어질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 나라에서 우리네 길에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면 무언가 달라질 수 있으려나요. 관청에서 길마다 이름을 붙여 이 길을 알뜰히 사랑하자고 외친달지라도 이 길마저 마음쓰지 않을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을는지요. 삶이 바쁘고 살림이 팍팍한 가운데 사랑을 잊거나 믿음을 잃는 오늘날 이 나라가 아닌지요.

 굳이 김춘수 시인 작품 〈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느 꽃이든 풀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내가 내 사랑과 믿음을 담아 이름 하나 붙여서 부를 때에는 사뭇 다르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이라지만 달개비, 물봉숭아,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꾀꼬리, 부엉이, 뻐꾹새, 멧돼지, 생쥐, 미루나무, 오동나무, 무화과나무 …… 같은 이름을 하나하나 되뇔 때에는 “저 꽃”이나 “이 나무”라 읊을 때하고 사뭇 다르기 마련입니다.

 골목길에서 자동차를 씽씽 모는 ‘어른’들이 참말 어른이 맞다면, 골목길을 거니는 할매 이름이 어떻게 되고 골목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되는 줄 알 때에도 섣불리 자동차를 씽씽 몰거나 빵빵거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름을 알 때에는 빵빵 울리더라도 인사를 하려고 울립니다. 이름을 알거나 한식구이거나 이웃이라 할 때에는 빠르기를 늦추고 창문을 내려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네거나 차에 함께 타자는 말이라고 하기 마련입니다.

 고속도로이든 국도를 달릴 때이든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내 옆이나 앞을 달리는 차가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는 자동차라고 할 때에, 또는 내 살가운 벗님이나 이웃이 모는 자동차라고 할 때에, 이때에도 서로 빠르기를 겨루거나 윽박지르듯 휘저으며 앞지르려고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 어쩌면 가장 친환경적인 행동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하느냐일 수도 있다. 가까운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말고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지붕에 태양열판을 설치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 친환경 삶을 사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간단하다. 줄이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 한 번 더 생각하기, 사지 않기. 이 다섯 가지 약속만 기억하면 여러분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 ..  (33, 52쪽)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행정을 하는 분들은 으레 ‘실업 대책’을 세운다 말하고 ‘서민 대책’을 내놓는다 이야기합니다. 대단히 커다란 돈을 들여 ‘일자리 만들기’를 한다고 외칩니다. 일자리를 한두 가지 아닌 수십만 수백만 가지를 만든다고들 떠벌이는데, 수십만 일자리이든 수백만 일자리이든, 이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할는지는 거의 살피지 않습니다.

 이집트사람 하산 화티 님은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라는 책에서 ‘맹장수술을 하는 의사가 모든 사람 배를 똑같은 자리 똑같은 크기 똑같은 손놀림으로 갈라 맹장을 다스리는 수술을 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는 공동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에도 모든 사람 살림살이와 생각과 삶을 다 다르게 헤아리며 다 다른 집을 지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애써 이러한 말을 빌지 않더라도 정치나 행정을 하는 분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나와 네가 다르고, 너와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서로 다른 삶을 꾸리며, 서로 다른 살림살이를 일구어요. 서로서로 배움이 다릅니다. 서로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 다 다른 사람들한테 오직 똑같은 일자리를 수십만이나 수백만을 만들어 선물하듯이 내려준다고 하는 일은 무슨 뜻이나 보람이 있으려나요. 참다운 일자리라 할 만한가요.


..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농장을 버리고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 20세기에는 다양한 곡물을 번갈아 재배했다. 이는 다른 종류의 곡식으로 땅속 영양분을 높여 토양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 이제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먹이 피라미드 아랫부분에는 가스, 기름, 석탄, 비료, 농약, 유전자 변형 식품, 수많은 기계 그리고 자연에 대한 무관심 등이 구성하고 있다 ..  (64, 81쪽)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다닐 때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짐승을 마주해야 합니다. 큰 짐승과 작은 짐승이 골고루 차에 치여 죽고, 훨씬 많은 풀벌레가 어마어마하게 차에 치여 죽습니다.

 자전거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함께 읍내 장마당을 다녀오던 어느 날, 옆을 스치는 자동차들 소리가 하도 시끄러운 나머지, 수레에 타던 아이가 “빠방 시끄러!” 하고 소리질렀습니다. 조용하며 호젓한 시골길을 자전거수레에 타고 함께 달릴 때에는 “좋아! 좋아!” 하고 외치는 아이인데, 읍내에 가자며 국도를 달려야 할 때에는 퍽 괴로운가 봅니다.

 아니, 괴로울밖에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괴롭습니다. 고달픕니다. 자동차를 모는 분들은 누구나 괴롭다고 느끼지 않을 뿐더러, 사람과 자전거가 괴로운 줄 깨닫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이 자동차가 수많은 짐승과 벌레를 치거나 받거나 깔아뭉개 죽이는 줄을 느끼지 못해요. 자동차는 움직이기만 해도 숱한 목숨을 죽입니다.

 이런 판에 고속도로이든 국도이든 시골길이든 골목길이든, 이 길마다 이름을 붙인다 해서 무언가 나아질 낌새가 없는 한국땅입니다. 아마, 길에 이름을 붙이며 아끼거나 사랑하자 한다면, 한국사람들은 ‘이 길은 내 차만 대야 하니까 다른 차는 얼씬도 말라구!’ 하는 소리만 지르지 않겠느냐 싶어요.


..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재활용할 종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자, 눈을 감고 1억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나무들이 베어져 우리들의 우편함을 채우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편함에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온갖 전단, 광고지, 상품 안내 책자를 찍기 위해 (미국에서 2000년대 첫머리에 해마다) 1억 그루의 나무를 베고 있다 ..  (101쪽)


 사랑이 무엇인지 차츰 잊고 맙니다. 믿음이 어떠한 줄을 나날이 잃고 맙니다. 사랑을 잊은 채 너무 바빠맞게 살아가는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잃은 채 더없이 많은 돈을 꼬옥 움켜쥐면서 한결 돈에 목말라 하는 요즈음 이 땅 이 겨레입니다.

 사랑으로 낳은 아이한테 이름을 붙이지만, 정작 내 아이가 사랑스레 꿈을 꾸며 무럭무럭 자라도록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되지 못합니다. 내 아이한테 붙인 이름에 걸맞도록 아름다이 꾸리는 삶이 아니라, 대학바라기에 목매다는 삶입니다. 대학바라기에 목매다는 삶을 들여다보면, 나중에 ‘내 아이가 어른이 될 때’에 도시에서 어버이보다 돈 많이 버는 큰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대학바라기 아닌 사랑바라기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큰회사바라기 아닌 믿음바라기는 이슬처럼 흩어집니다. 꿈바라기는 어디에도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2)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


 우리 아이가 세 살 나이를 열한 달째 보냅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아이는 세 살을 마감하고 네 살로 접어듭니다. 세 살 나이 아이하고 열한 달째 함께 살아가는 요즈음 비로소 느끼는데, 예부터 사람들은 익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어버이들은 당신 아이가 세 살 무렵이면 벌써 어린이집에 맡깁니다. 세 살이든 두 살이든 한 살이든 똑같습니다만, 이 아이한테 첫 버릇이 붙어 여든 나이까지 곱게 이어가도록 마음과 몸을 쓰지 못합니다.

 아이가 더 좋은 보금자리에서 더 좋은 여러 가지를 누리도록 하겠다면서 애 아빠나 애 엄마 모두 돈버는 일자리에 붙잡힙니다. 돈을 벌어야 아이 옷도 장만하고 집삯도 치르며 먹을거리를 장만한다지요. 돈을 벌어야 맛난 바깥밥도 사먹고 아이 학원삯을 내며 자동차 굴릴 기름값을 마련한다지요. 돈을 벌어야 뭐도 하고 뭐도 하며 뭐도 한다지요.

 그러니까, 어버이들은 어버이 노릇이 아닌 돈벌이 노릇만 합니다. 돈벌이 노릇은 썩 잘 한다 여길는지 모르나 어버이 노릇은 거의 못한다 할 만합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보여주는 모습이란 ‘우리 엄마랑 아빠는 돈을 버느라 나하고 함께 있을 겨를이 없어’입니다. 아이가 세 살일 때부터, 아니 아이가 두 살이고 한 살일 때부터 애 엄마랑 애 아빠는 집 바깥을 떠들면서 아이 또한 제 집을 살가운 보금자리로 여기지 못하게끔 내몰고 맙니다.


.. 미국에서는 매년 1만 5천 개의 식품이 개발되고 있는데, 그중 75%가 가공된 사탕, 조미료, 시리얼, 빵, 음료수, 유제품 같은 것이다 … 중요한 것은 건강한 유기농 음식의 섭취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이지, 갑자기 모든 것을 바꾸는 게 아니다. 올바른 식단을 선택하고 유기농 음식을 구입해서 조리하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여러분의 식습관은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또 음식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주변 환경도 따라서 변할 것이다. 바쁜 일에 치여 패스트푸드만 고집하거나 무조건 값싼 음식을 찾는다면, 여러분은 결국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탄소발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  (61, 69쪽)


 애 엄마랑 애 아빠가 집에 붙어서 세 살 아이를 보듬자면 퍽 힘듭니다. 살림살이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다른 집은 어떠한지 모르나, 우리 집은 애 아빠가 온갖 집일을 도맡아야 해서 언제나 머리가 핑핑 돕니다. 그러나 애 엄마가 몸과 마음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인 까닭에, 애 아빠는 집 바깥을 섣불리 나다니지 못합니다. 애 엄마가 튼튼한 사람이었다면 애 아빠는 책방을 다니느니 책을 더 많이 사서 읽는다느니 골목마실을 더 오래 즐긴다느니 사진을 훨씬 신나게 찍으러 다닌다든지 하면서 집안에 머물 겨를이 퍽 줄어들겠다고 느낍니다. 애 엄마가 여린 사람이다 보니 아이뿐 아니라 엄마까지 함께 보듬어야 하고, 이러다 보니 내내 집안에 붙어서 집일을 하며 아이랑 복닥입니다. 아주 마땅히 하루 끼니는 다 집에서 손수 장만합니다. 올여름 드디어 우리 식구 모두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긴 뒤 처음으로 해 본 텃밭 일구기는 엉터리로 마감했는데, 이듬해부터는 텃밭을 조금이나마 알뜰히 일굴 수 있으면, 우리 집 밥차림은 차츰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애 아빠가 이 일도 더 마음을 기울여 잘 해내야겠지요.

 참 힘겹고 참 벅차며 참 괴롭다 할 만한 하루 살림입니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잠을 잘 잡니다. 하도 지치니까요. 다만,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울 때에 ‘난 오늘 밥벌이가 될 만한 일을 얼마나 했나’ 돌아보면서 적이 슬픕니다. 그렇지만 ‘이런 가운데에도 글조각 몇 끄적였다’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오늘 하루 ‘아이 사진 몇 장 찍었다’면 고맙게 헤아립니다. 돈이 될 글이나 사진은 아니지만, 우리 살붙이 이야기를 적바림한 글과 사진을 하나하나 갈무리할 수 있는 삶이면 고맙습니다. 산골집 우리 아이가 꽃순이 하루를 보내고, 찍새 흉내 하루를 보내며, 빗자루질 따라하기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작은 담요를 둘둘 말고 논다든지, 인형을 품에 꼬옥 안고 논다든지, 그림종이에 아메바(작은 동그라미)를 잔뜩 그리며 노는 모습을 쳐다보며 재미납니다. 아이가 세 살을 마음껏 보내는 이 하루하루를 이 자그마한 산골집에서 복닥복닥 북적북적 부대끼는 삶이 조촐합니다.

 웃고 울고 찡그리고 노래하는 온갖 모습을 어버이로서 가슴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나날이란 하늘이 내려준 고마운 보배요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 여러분이 건강하고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 푸르른 세상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행동은, 심지어 그것이 무관심이나 부정적 생각으로 인한 것이라 해도 반드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 물론 친환경적인 식습관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인스턴트식품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고 비싼 유기농 제품을 구입해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 하지만 그 결과 여러분은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된다 ..  (82, 83쪽)


 이듬해 봄에 둘째가 태어난다면 첫째 아이는 제 어버이랑 둘째 아이한테 어떻게 마주할는지 퍽 궁금하지만, 궁금해 하지 않아도 환히 알 만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첫째 아이한테 마주하는 내 삶 그대로 이 아이는 세 살 나이에 고스란히 생각과 마음과 믿음과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제 동생한테 베풀 테니까요. 아이 어버이가 골을 자주 부리거나 찌푸린 낯으로 아이랑 잘 안 놀아 준다면, 이 아이는 제 동생한테 똑같은 모습을 보여줄밖에 없습니다. 아이 어버이가 활짝 웃고 떠들면서 아이 손을 맞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함께 산을 타고 들을 거닐며 자전거를 탄다면, 이 아이는 제 동생한테 제 모든 사랑과 믿음을 물려줄밖에 없어요.

 아이는 누구나 제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는데, 아이가 가진 밥그릇에 밥을 담는 몫은 어버이입니다. 밥그릇은 있으나 밥그릇에 밥을 담아 주지 않으면 아이는 목숨줄일 잇지 못합니다. 어버이 된 우리들은, 그러니까 내 배가 아프며 낳은 아이가 있어야만 어버이가 아니요, 아이 있는 집하고 이웃하거나 동무하면 모두 어버이인데요, 이렇게 어버이 된 우리들은 아이 밥그릇에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와 고기를 비롯해 고운 사랑과 따순 사랑과 맑은 사랑과 빛나는 사랑을 담아 주어야 합니다. 착한 믿음과 참된 믿음과 너른 믿음과 씩씩한 믿음 또한 담아 주어야 해요.


..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다른 일반 제품에는 석유나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동물 실험까지 하는 회사는 과연 친환경 회사일까? ..  (126쪽)


 하루에도 아이 이름을 수백 번쯤 부릅니다. 날마다 수백 번쯤 부르는 아이 이름이기에 아이한테 아무 이름이나 섣불리 붙이지 못합니다.

 날마다 수없이 생각하고 떠올리는 아이요 집식구입니다. 날마다 수없이 생각하고 떠올리는 아이요 집식구인데, 내 아이와 집식구를 아무렇게나 마주할 수 없습니다.

 자연사랑이라 한다면 날마다 수없이 마주하고 부대끼는 자연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환경사랑이라 한다면 내내 붙어 보듬으며 껴안는 환경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자연사랑이 아닙니다. 나라에서 돈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어마어마한 토목건설(4대강 사업)이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토목건설을 가로막겠다는 외침 또한 자연사랑이나 환경사랑일 수 없어요.

 아주 마땅한 노릇이에요. 어마어마한 토목건설을 막아내야 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다른 크고작은 자리에서는 슬픈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토목건설 하나 막아낸달지라도 환경사랑을 못 이룬 셈입니다. 토목건설을 막아내는 사람으로서 생협운동을 하지 않거나 텃밭 일구기에 마음 쏟지 못하거나 ‘무언가 제대로 이 나라 삶터를 옳고 바르게 건사하는 길’을 함께 걷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토목건설을 끝장내자고 외치는 목소리를 높이기 앞서, 내 옷과 내 식구들 빨래를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와 내 식구 하루 끼니는 어떻게 마련하고 치우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내 보금자리에는 어떤 살림살이를 갖추었으며, 이 살림살이는 어떻게 쓰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자동차를 버려야 이라크에 군대를 안 보낼 수 있다고 말한 권정생 할배 이야기를 어느 만큼 알아들었는지 곱씹어야 합니다.


..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친환경 작가들의 낭독회와 강연을 더 많이 주최하고 환경에 대한 서적을 폭넓게 구비하도록 부탁해 보자 ..  (227쪽)


 책 하나를 읽더라도 환경책 하나를 더 읽는다면 한결 나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환경책 하나를 더 읽기는 읽었으나 참다이 환경사랑을 하지 못한다면 환경책을 더 읽었다 한들 덧없습니다. 환경책 하나 읽은 적이 없다지만, 내 어머니와 아버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 옛날과 머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난날 사람들이 환경사랑을 어떻게 했는가를 찬찬히 톺아보는 가운데 내 하루를 아름답게 여밀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입이 아닌 몸으로 살아낼 하루이고, 책이 아닌 가슴으로 얼싸안을 나날입니다. 거룩한 이름이 아닌 가장 수수한 이름으로 사랑을 하고 믿음을 나눌 내 삶입니다.


 (3) 좋은 삶이 되어 책을 읽는다면


 환경책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를 읽습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인데, 글쓴이 둘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당신 스스로 환경사랑을 삶으로 받아들여 보내는 하루하루를 책으로 고스란히 옮깁니다.

 이 책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보내는 하루를 찬찬히 보여주면서 환경사랑이란 아주 대단한 운동이 아니요 거룩한 삶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내 삶을 더 좋게 일구고픈 마음일 때에 저절로 환경사랑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아이한테 더 좋은 밥을 먹이고플 뿐 아니라 나 스스로 더 좋은 밥을 먹고 싶은데 아무 밥이나 함부로 차릴 수 없습니다. 내 아이가 더 착한 삶을 일구며 더 곱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 아니라 나 스스로 더 착하게 살아가며 더 고운 마음을 품고 싶은데, 아무 일감이나 덜컥 붙잡아 돈만 많이 벌 수 없습니다.

 바라기에 더 제대로 알아봅니다. 더 제대로 알아보았기에 이렇게 알아본 그대로 살아냅니다. 꾸밈없이 살아내니까 저절로 환경사랑입니다.


.. 과거를 돌이켜보자. 과거를 돌아보면 큰 깨달음을 얻는 법이다. 과거에 음식은 인간의 간섭 없이 있었다. 나무에는 과일이 열리고, 들판과 숲에는 짐승들이 있고, 물속에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쳤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식은 인간의 손에 생산되고 운송되고 가공되고 보존된다 ..  (61쪽)


 지난 삶을 돌이키고 오늘 삶을 돌아보며 다가올 삶을 기다립니다. 지난 삶에서 아쉬웠던 대목을 오늘 삶에서 가다듬고, 오늘 삶에서 못 이룬 일을 다가올 삶에서 이루고자 꿈꾸며 기다립니다.

 무슨 목표를 따로 세우지 않습니다. 산을 탄다고 할 때에 반드시 꼭대기까지 올라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거나 벗님과 함께 지내거나 이웃과 함께 어울리는 하루가 그예 즐겁습니다. 산길을 10미터만 걷든 1킬로미터를 걷든 늘 즐겁습니다.

 날마다 좋은 마음으로 잠든 다음, 좋은 마음으로 일어나자고 다짐합니다. 날마다 좋은 말로 아이랑 살붙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날마다 좋은 넋으로 쌀을 씻어 밥을 안치자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좋은 느낌으로 손빨래를 하고, 날마다 좋은 몸으로 자전거수레를 끌어 아이하고 마을 한 바퀴 스윽 돌자고 여깁니다.

 좋은 말을 하면서 살고플 뿐이고, 좋은 얼을 북돋우는 좋은 책을 읽고플 뿐입니다. 값지지 않아도 되고 값있지 않아도 돼요. 오붓하게 나누면 즐겁고, 호젓하게 함께하면 기쁩니다.


.. 연어는 지금과는 달리 댐이나 오염물질 같은 장애물 없이 바다에서 강으로 자유롭게 헤엄쳐 올라갈 수 있었다. 곰, 독수리, 늑대 같은 동물들은 이동하는 연어를 잡아 맛있는 부분은 베어 먹고 나머지 부분은 땅에 버렸는데, 이것이 썩어 천연 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다의 풍부한 미네랄과 영양분이 연어를 통해 곰에게 전달괴거나 거름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했다. 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토양의 영양분이 이동했다. 빗물과 함께 토양 깊숙이 스며든 영양분은 식물 뿌리를 통해 다시 흡수되고, 곤충과 미생물은 이 영양분을 먹고 배설하면서 영양분을 퍼뜨렸다 ..  (62쪽)


 《어머니 지구를 살리는 녹색세대》를 쓴 두 사람은 말합니다. “늘 물 절약을 실천해 온 어머니 덕분에 나는 언제나 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 더욱이 숲에서 살면서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 물이 없으면 식물이 시들고 나무가 죽고 땅이 마르고 동물들이 고통을 받는다. 인디언들이 물을 ‘생명수’라고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92쪽).” 하고. 이 말은 아들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한 말일 수 있으나, 어머니가 당신 어머니(할머니)를 돌아보며 한 말일 수 있어요. 아들은 어머니한테서 배우고, 어머니는 당신 어머니한테서 배웠으며, 당신 어머니는 또 당신 어머니를 낳아 기른 어머니한테서 배웠겠지요.

 좋은 뜻은 고이고이 이어갑니다. 좋은 삶을 차근차근 물려줍니다. 좋은 책 하나란 좋은 뜻을 품고 조용히 살아가는 예쁜 어른들이 자그맣게 일군 땀방울을 받아먹은 아이들이 빚어냅니다. 좋은 책 하나를 맞이해서 즐겁게 읽어 즐겁게 살아갈 기운을 얻자면, 나부터 내 어버이한테서 좋은 넋을 좋은 매무새와 몸가짐으로 이어받을 노릇입니다. (4343.11.2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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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 골목을 헤아려 본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여름을 떠올리는가. 그러나저러나, 어느 살림집이든 대문 앞이 꽃과 풀로 가득하다면, 집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마다 푸른 내음을 즐거이 맡겠지.

 - 2010.8.14. 인천 동구 창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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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신나게 놀다가 곯아떨어진 아이. 아빠한테 귤을 까먹이다가 그만, 큰베개에 엎어진 그대로 잠든 아이. 그래, 넌 참 귀엽구나. 

- 2010.11.19.

 

 덤 : 책 읽는 돼지. 늘 책을 읽으니 하나도 새삼스럽지 않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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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책 읽는 멋진 삶


 재미있게 읽을 책하고 멋지다고 느끼는 책이 같을 수 있으나, 다를 때가 잦습니다. 좋다고 하는 책이 늘 재미있다 할 만하지는 않으며, 훌륭하다 여기는 책이 꼭 좋거나 재미있지 않곤 합니다.

 재미있는 책이랑 좋은 책이랑 훌륭한 책은 서로 다릅니다. 여기에 멋진 책과 고운 책과 예쁜 책 또한 다릅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내가 쥔 책이 어떠한 책인지를 옳게 깨달아야 합니다. 재미있게 읽는 책이라면 참말 재미있게 읽으며 즐겨야 합니다. 좋은 줄거리 담고 좋은 넋 가득한 책이라면 좋은 줄거리와 넋을 기쁘게 받아안아야 합니다. 멋진 책이라면, 이 멋진 책을 쓴 멋진 사람 멋진 삶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이어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는 책이라 해서 반드시 재미있다거나 좋다거나 멋지지는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책이지만, 책으로 놓고 볼 때에는 썩 재미있지 않을 뿐더러 좋거나 멋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어느 한 갈래 책을 좋아하는 일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고, 따져서는 안 됩니다. 다만,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느 책을 좋아한다고 할 때에 이이가 좋아하는 책이 ‘영 재미없는 책’이라 하지만 얼마든지 좋아할 만하고, 좋아할 값이 있습니다. 누가 어느 책을 사랑하거나 아낀다 할 때에 이이가 사랑하거나 아끼는 책이 ‘썩 멋있지 않은 책’이라 하더라도 마음껏 사랑하거나 아낄만 한 값어치가 있어요. 그리고, 책을 즐기는 나 스스로 옳게 느끼고 바르게 깨달을 노릇입니다. 책으로 볼 때에는 그닥 재미있는 책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책 하나로 살필 때에는 그리 멋있지 않은 책이 아니라지만 나로서는 사랑하는 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환경책을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참으로 멋진 환경책이 있고, 무척 훌륭한 환경책이 있는 한편, 아주 좋은 환경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환경책은 그리 재미있지 않기 일쑤입니다. 꽤 재미있으면서 좋은 환경책이 있는데, 제대로 알아보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환경책은 유행이 아닌데, 유행처럼 만들어 내는 출판사가 있고, 유행으로 여기며 소개하는 기자가 있으며, 유행이라 생각하며 한두 권쯤 맛보기로 읽는 책손이 있어요.

 재미가 없더라도 멋진 환경책을 알아보는 눈길을 기를 일입니다. 재미가 있으면서 아름다운 환경책을 곱게 사랑할 줄 아는 손길을 다스릴 노릇입니다. 삶을 아끼고 넋을 보듬으며 말을 살찌울 우리들입니다. (4343.11.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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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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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 주셔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 존 버닝햄,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비룡소,1996)



 잠자리에서 아이하고 나란히 누워 그림책을 읽히는 재미란,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만 맛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로서 이와 같은 재미를 누릴 수 있고,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이지만 이모이든 큰아빠이든 삼촌이든 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재미를 누릴 수 있어요. 낳은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사랑을 듬뿍 나눌 수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사랑을 널리 나눌 수 있어요.

 졸린 아이가 어서 잠들 수 있도록 불빛을 살짝 어둡게 하고는 함께 눕습니다. 아이는 더 놀고 싶거나 말을 하고 싶은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종알종알 두런두런 합니다. 아무래도 그대로 고이 잠들지 못하겠구나 싶어, 엊그제는 《가을 아이》(이와사키 치히로 그림)를 읽었으니 오늘은 《겨울 아이》를 읽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겨울 아이》는 보드라운 수채그림이다 보니 흐릿한 불빛으로는 그림 나누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빠 혼자 실컷 보다가 제자리에 꽂아 놓습니다. 이번에는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를 집어서 펼칩니다. 첫머리를 “플럼스터 씨와 플럼스터 부인이라는 기러기 부부가 있었습니다(3쪽).”로 엽니다. 음, 이 대목을 우째 읽나 걱정합니다. 도무지 우리 말이 아닌 말로 첫머리를 열기 때문입니다. “기러기 부부인 플럼스터 아저씨와 플럼스터 아줌마가 있습니다.”쯤으로는 적바림해야 할 텐데요. 우리들이 ‘이웃집 부부’를 일컬을 때 어떻게 말을 하나요. 함부로 ‘아무개 씨’ 하고 부르는 일은 없습니다. 어른들끼리는 이렇게 부르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달라요.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헤아린다면, 또 어른이라 할지라도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한다면, ‘이웃집 부부’를 가리키는 부름말을 달리 적바림해야 알맞습니다. 그나저나 기러기라 하면서 꽤나 뚱뚱해 보여 ‘기러기인데 너무 뚱뚱하다. 이렇게 뚱뚱해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는 말로 고쳐 읽고 다음 쪽으로 넘깁니다.

 다음 쪽에는 꽃이 나오고 알을 품는 어미 기러기 뒤편으로 노오란 해가 보입니다. 5쪽 그림에서는 기러기 부부가 제법 날씬해 보이는군요. 그래요. 기러기라 한다면 이쯤 되어야 날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다음 쪽에서는 얄궂다 싶은 낱말이 두 군데 보입니다. 그림으로 보기에는 하나도 메마르거나 거칠지 않으나, “황량(荒凉)한 늪지(-地)에서 살았습니다(4쪽)”라고 나옵니다. 크고작은 꽃이 소담스레 핀 그림임을 살핀다면, “조용한 늪가에서 살았습니다”로 고쳐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5쪽에는 “가끔씩 쉿쉿거렸습니다”라는 글월이 나오는데 ‘가끔’으로 고쳐야 합니다. ‘가끔씩’은 틀린 글월입니다.

 아이는 5쪽에 나오는 해 그림을 보며 자꾸 ‘달’이라고 말합니다. 으음,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달일 수 없습니다. 아이 볼을 살살 꼬집으며, 녀석아 너 달이 아무리 좋아도 모두 달이라고만 하면 어떡하니, 이 노랗고 동그란 그림은 해야, 하고 말합니다.

 10쪽에 이르자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가 비로소 나옵니다. 모두 다섯 남매인 보르카네인데, 보르카는 홀로 깃털이 없습니다. 처음 태어날 때부터 깃털이 없다는군요. 저런, 기러기한테 깃털이 없으면 어찌 날지? 어찌 헤엄치지? 그나저나 10쪽에서도 “플럼스터 씨와 플럼스터 부인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같은 글월을 “플럼스터 아저씨와 플럼스터 아줌마는 걱정이 되었습니다”로 고쳐 주어야겠습니다. 서양 그림책이나 문학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으레 ‘아무개 부인(婦人)’처럼 옮기는 분들이 있는데, 혼인한 여자를 일컫는 부름말로는 ‘부인’이 아닌 ‘아줌마’나 ‘아주머니’를 적어 넣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정말(正-) 드문 경우(境遇)인데(10쪽).” 같은 글월은 “참으로 드문 일인데.”나 “참말 드문데.”로 손질합니다.

 다음 쪽을 펼칩니다. 기러기 아주머님이 뜨개질을 합니다. 아, 뜨개질을 하네요. 우리 집 애 엄마도 한창 뜨개질을 하는데. 둘째를 몸에 밴 뒤로는 뜨개질에 마음을 쏟습니다. 몸이 무거우며 힘들고, 마음 또한 무겁고 고단한 애 엄마는 뜨개질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립니다. 문득문득 느끼는데, 나라밖 그림책을 보노라면 어머니나 아가씨나 아이가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저씨나 총각이 뜨개질을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저도 뜨개질은 잘 못합니다. 그림책에만 나오는 모습이라 여길는지 모르지만, 나라밖 사람들도 ‘옷을 사 입히곤’ 하는 가운데, ‘집에서 손수 뜨개질을 해서 옷을 마련하여 입히곤’ 합니다. 어느 집에서나 흔한 삶이고, 누구한테서나 쉬 찾아보는 삶이에요. 그림책이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라서 깃털옷을 마련해 주려고 뜨개질을 한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언제나 뜨개질을 하고, 누구나 뜨개질을 즐기는 삶이기에, 이 그림책에도 살포시 ‘뜨개질 살림살이’가 묻어납니다. 뜨개질 살림살이가 묻어나지 않는 나날이라면, 아마 이 그림책 펼침새는 ‘플럼스터 아줌마’가 저잣거리 마실을 하면서 깃털옷을 돈 주고 사 입히는 흐름으로 되었겠지요. 그나저나 13쪽에서도 세 군데를 손질해야 합니다. 먼저, “깃털을 짜기 시작(始作)했습니다.”는 “깃털을 짭니다.”로 손질하고, ‘물론(勿論)’은 ‘다만’으로 손질하며, “회색(灰色) 털옷”은 “잿빛 털옷”으로 손질합니다.

 이제 기러기 보르카는 어머니한테서 깃털옷을 받습니다. 보르카도 헤엄치기를 익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르카네 언니 오빠는 보르카를 놀립니다. 깃털 없이 옷을 입었다면서 놀립니다. 가만히 누워 그림책을 함께 보는 아이한테 말합니다. ‘너한테 동생이 태어났을 때 이렇게 놀리지 않겠지? 동생이 뭘 잘못해도 함부로 놀리면 안 돼요.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해 주듯이 너도 동생을 사랑해 주어야 해요. 엄마 아빠가 너한테 밥을 먹여 주듯이, 너도 동생한테 밥을 먹여 주어야 해요. 엄마 아빠가 너를 업어 주듯이, 너도 동생을 업어 주어야 해요.’

 아프거나 힘들거나 힘이 여린 동무나 동생이라면 마땅히 감싸거나 돌보거나 더욱 사랑해야 할 텐데, 보르카네 언니 오빠는 참 못되었습니다. 게다가, 보르카네 엄마랑 아빠랑 너무 바쁜 탓에 보르카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할 뿐더러, 보르카네 언니 오빠가 보르카를 따돌리는 줄 깨닫지 못하는군요. 외로운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마음이 좁은 아이들을 다스리지 못할 만큼 무슨 일에 그리도 바빠야 할까요. 15쪽에서도 몇 군데 글월을 손질해야 합니다. “이제 어린 기러기들은 날기와 헤엄치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는 “이제 어린 기러기들은 날기와 헤엄치기를 배웁니다.”나 “이제 어린 기러기들은 날기와 헤엄치기를 배울 때가 되었습니다.”로 손질하고, “상당(相當)히 뒤처졌지요.”는 “몹시 뒤처졌지요.”로 손질합니다. 15쪽 한켠에는 ‘상당히’라 나오다가 곧바로 ‘몹시’라고도 나옵니다. 알맞게 잘 쓴 대목이 있으나, 제대로 못 쓴 대목이 나란히 있군요. 16쪽에서는 “날은 점점(漸漸) 추워지고”라 나오는데 “날은 차츰 추워지고”나 “날은 자꾸 추워지고”로 손질합니다. “먹이 구(求)하기가”는 “먹이 얻기가”로 손질해 줍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힐 때에는 이래저래 얄궂다 싶은 글월은 모조리 손질해서 읽습니다. 책에 적힌 그대로 읽힌다 해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아이가 어릴 적부터 얄궂은 글월을 익숙하게 듣도록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림책을 읽으며 볼펜으로 죽죽 줄을 긋고는 새 낱말이나 글월을 적어 넣습니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 아빠가 읽어 주지만, 나중에 아이가 스스로 읽을 나이가 되면, 옳고 바른 글월을 스스로 소리내어 읽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옛말에도 있듯이, 세 살 버릇이 여든을 가잖아요. 세 살 적 듣는 말이 여든까지 갑니다. 바로 우리 아이가 옛말에 일컫는 세 살입니다. 세 살 아이가 좋은 그림책 하나를 아빠랑 함께 읽으면서 좋은 글월과 좋은 목소리와 좋은 잠자리에서 좋게좋게 맞아들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좋은 마음을 가꾼다고 느낍니다.

 다음 쪽을 넘깁니다. 그림책을 읽는 아빠는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언니랑 오빠들, 또 엄마랑 아빠는 보르카를 내버려 두고 저희끼리만 날아가겠다고.

 참말 모두들 보르카만 두고 날아갑니다. 보르카는 외롭고 슬퍼 홀로 웁니다. 그러다가 마음씨 좋은 개하고 뱃사람을 만납니다. 다시금 마음씨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마음씨 너그러운 동무를 처음으로 만납니다.

 보르카를 낳고 기른 어버이 또한 마음씨가 나쁜 기러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더욱 따뜻하고 너그러이 품에 안지 못했습니다. 제 아이한테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서, 어찌 제 아이를 잊고는 따뜻한 곳을 찾아 날아갈 수 있나요. 고작 깃털옷 한 벌 뜨개질해서 마련한 다음 싹 잊을 수 있나요.

 보르카는 외로운 가운데 홀로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혼자서 씩씩하게 살아가며 드디어 마음과 뜻이 맞는 사랑스러운 벗을 만납니다. 물보다 짙은 피라지만, 물만큼 짙지 못한 피가 되었어요. 앞으로 보르카가 좋은 짝꿍을 만나 새 보금자리를 튼다면, 그때에 보르카는 어떠한 삶을 꾸리려나요. 보르카가 어린 날 맞이했듯이 살아가려나요. 보르카가 어린 날 모질게 겪은 만큼 한결 따사로우며 너그러운 매무새로 살아가려나요. 보르카를 잊어버린 어버이랑 언니 오빠는 앞으로 어떠한 삶을 일구려나요. 혼자서 춥고 외로워 벌벌 떨다가 죽을지 모르는데, 이렇게 한식구를 쉬 잊어버리는 기러기들이 꾸릴 삶은 어떤 모습이려나요.

 이제 그림책을 덮습니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아이는 ‘해’하고 ‘달’ 모습만 찾습니다. 아이는 다른 그림책을 볼 때에도 해랑 달을 몹시 사랑합니다. 동글동글한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반토막 달을 보거나 날씬한 달을 보면서도 ‘달’인 줄 압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며 밤마다 달을 보니까 그림책에 나오는 달을 또렷이 깨닫는다 할 텐데, 아이 둘레에서 쉬 마주하는 사람과 삶과 자연과 물건을 그림책에서 마주할 때에 한결 살가우며 가까이 받아들인다 할 만한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에서 제아무리 따사롭고 넉넉한 사랑을 다룬달지라도, 나 스스로 살아가는 보금자리에 사랑이 없다면 그림책은 덧없습니다. 아이와 함께 즐거운 나날이 아니라 한다면, 제아무리 즐거운 나날 가득한 그림책을 읽힌들 부질없습니다. 그림책이든 동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인문책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책으로만 즐거울 수 없고, 책으로만 아름다울 수 없으며, 책으로만 훌륭할 수 없어요. 내 삶부터 즐겁고 아름다우며 훌륭해야 합니다. 나부터 내 보금자리에서 따사롭고 너그러우며 맑게 빛나야 합니다.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는 여러 이야기와 알맹이를 조곤조곤 들려주는데, 이런 얘기 저런 삶을 낱낱이 헤아리거나 곱씹으며 고운 사랑과 너른 믿음을 익히도록 이끄는 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사랑이든 저런 믿음이든 가르치거나 이야기하기 앞서, 부디 내 삶자리에서 내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하고 오순도순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몇 가지 낱말을 더 손질해 봅니다. 18쪽에서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는 “비가 내립니다.”로 손질하고, “떠날 때가 온 거예요.”는 “떠날 때가 왔어요.”로 손질하며, “침침(沈沈)한 하늘”은 “어두운 하늘”이나 “어슴프레한 하늘”이나 “어두컴컴한 하늘”로 손질합니다. 20쪽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始作)했거든요.”는 “비가 내렸거든요.”로 손질하고, 22쪽에서 “기러기라는 걸 알고는, 개는 짖는 걸 멈추고”는 “기러기인 줄 알고는, 개는 더 짖지 않고”로 손질하며, 23쪽에서 “어찌나 피곤(疲困)한지”는 “어찌나 고단한지”나 “어찌나 지쳤는지”로 손질합니다. 24쪽에서 “매칼리스터 선장의 배였습니다.”는 “매칼리스터 선장이 모는 배였습니다.”로 손질하고, “항구를 떠나기로 결정(決定)했습니다.”는 “항구를 떠나기로 했습니다.”로 손질합니다. 26쪽에서 “파울러는 물론(勿論)이고”는 “파울러를 비롯해서”로 손질하고, “곧 친(親)해졌어요.”는 “곧 가까워졌어요.”로 손질하며, “대신(代身)에 맛난 음식을”은 “그리고 맛난 음식을”로 손질합니다. 28쪽에 ‘궁리(窮理)했습니다’는 ‘생각했습니다’로 손질하고, 29쪽에 “선장은 보르카를 울타리 위에 내려놓았습니다.”는 “선장은 보르카를 울타리 안쪽에 내려놓았습니다.”로 손질합니다. 29쪽 그림을 보아도 선장은 팔을 뻗어 보르카를 울타리 ‘안쪽에’ 내려놓는 모습인데, 번역 글월은 ‘위에’로 되었으니 잘못입니다. 31쪽에 “전(全)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는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로 손질하고, “특(特)히, 퍼디넌드라는 기러기가 친절(親切)했습니다.”는 “누구보다 퍼디넌드라는 기러기가 따뜻했습니다.”로 손질하며, 32쪽에 “기러기를 보게 될 겁니다.”는 “기러기를 볼 수 있습니다.”로 손질합니다. 31쪽을 보면, “큐 가든(garden)에는 온갖 이상(異常)야릇한 새들이 다 있었거든요.”라는 대목이 있으나, ‘이상야릇한’이라는 낱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온갖 새들이”나 “온갖 빛깔 새들이”나 “온갖 모양 새들이”라 적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큐 가든’이라는 이름 또한 ‘큐 공원’쯤으로 고쳐야겠지요.

 투박한 듯하면서 투박하지 않고, 어두운 듯하면서 어둡지 않으며, 슬픈 듯하면서 슬프지 않은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라고 느낍니다. 사랑스레 즐길 만한 그림책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레 즐길 수 있도록 1996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 번역을 앞으로 언제가 되든 아무쪼록 차근차근 따사롭게 어루만져 다시 내놓을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도, 이웃도, 자연도, 마을도, 살림살이도, 책도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 주셔요. (4343.11.21.해.ㅎㄲㅅㄱ)


―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존 버닝햄 글·그림,엄혜숙 옮김,비룡소 펴냄,1996.2.1./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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