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1.2.20.
 : 따뜻한 날 논둑 달리기



- 날이 많이 풀린다. 그렇지만 우리 집 물은 아직 안 녹는다. 더 따뜻해야 하며, 해가 더 높아야 한다. 이제 좀 물이 녹아 물 길으러 다니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아마 따스한 봄비가 내려야 비로소 물이 녹지 않을까. 봄비가 올 때까지는 물 긷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 따스한 날, 따스한 볕을 받으며 자전거를 달리면 아이도 한결 좋아하리라 생각하며 자전거수레를 꺼낸다. 아이는 자전거 탄다며 좋다고 춤을 춘다. 두꺼운 겉옷을 입힐까 하다가 속에 여러 벌 껴입었으니, 수레에서 이불 덮으면 괜찮겠거니 생각한다.

- 해가 들지 않는 멧기슭에는 눈이 고스란히 남지만, 해가 비치는 자리에는 눈이 다 녹았다. 따스한 바람결을 느끼면서 논둑길을 달린다. 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가 아이보고 노래 좀 불러 달라 하지 않았지만, 아이 스스로 신나니까 노래를 부른다. 아이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면 저절로 싱싱한 노래를 들을 수 있구나.

- 내리막에서는 아이가 “아빠, 달려? 시원해!” 하고 말한다.

- 마을 어귀 보리밥집까지만 찾아가서 달걀 열 알이랑 한두 가지 까까를 산다. 아이는 음성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 준 깨끼옷을 입었다. 설날이 지난 지 한참이지만, 아이는 설날이랑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옷’이요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벼리 사 주셨어요.” 하고 외면서 춤을 춘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지난 설날부터 읍내 장마당이 다시 선다. 주말께에 장마당이 서면,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장마당 마실을 다시 해 볼 수 있겠구나 싶다. 조금씩 조금씩 이 마을 저 마을을 자전거수레를 달리면서 아이한테 따순 시골바람 내음을 느끼도록 해 주고 싶다.

- 집에 닿으니 등판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날이 참 따뜻해지긴 따뜻해졌구나. 오늘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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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2.15.
 : 장갑을 안 끼어도 되다



- 날이 풀린다. 이제부터는 자전거를 탈 때에 장갑을 안 끼어도 된다. 장갑을 안 끼어도 손이 얼지 않는다. 그러나, 또 모르는 일인 만큼 장갑을 챙겨 낀다. 아무리 폭한 날이 되었달지라도 자전거를 달릴 때에는 겉옷을 한 벌 더 입고 장갑도 끼어야지.

- 그동안 아주 꽁꽁 얼어붙은 날씨였고, 아버지는 집살림 하느라 고단해서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못 태웠다. 집 물이 얼었기에 물 뜨고 빨래하러 멧중턱 이오덕학교를 오르내리다 보니까, 좀처럼 짬을 내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아이하고 자전거놀이를 아예 못할 수 있겠구나 싶어, 몸이 더 고단하거나 지치더라도 자전거를 태우고 놀아야겠다고 생각한다.

- 아이는 함께 놀아 주는 어른들이 반갑다. 잘 놀아 주는 언니나 오빠들이 반갑다. 아이 어버이라면 아이가 잘 먹고 잘 입으며 잘 자도록 돈을 벌어야 하기도 할 테지만, 무엇보다 함께 놀고 심부름을 요모조모 시키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몸가짐을 다스리도록 이끌어야지 싶다. 집에 자가용이 있어 어디이든 휭휭 내달리는 일이라 해서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웬만한 곳은 자전거에 수레를 달아 아이랑 함께 자전거마실을 한다면 훨씬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자전거수레를 여러 해 쓰다가, 나중에 아이가 훌쩍 자라면 앞뒤로 나란히 타는 자전거를 몰 수 있고, 아이가 더 자라면 따로 자전거를 타도록 이끌면서 함께 길을 달릴 수 있겠지. 자전거를 타는 어버이여야 아이도 자전거를 타지, 자전거를 타지 않는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자전거 타기를 이끌 수 없다. 환경사랑이나 기름 걱정 때문에 타는 자전거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면 즐겁고 기쁘며 아름답다고 내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니 타는 자전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을 어귀 보리밥집에 닿는다. 아빠 몫으로 보리술 한 병을 산다. 아이와 아이 엄마 몫으로 얼음과자를 하나씩 산다. 통밀건빵이랑 달걀을 산다.

- 거의 스무 날 만에 아이를 자전거를 태웠다. 날이 춥기도 했다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레에 앉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흘깃흘깃 뒤돌아보면서 참 미안하다고 느낀다. 아이는 추운 날이어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니까, 아버지 스스로 더 기운을 내고 더 마음을 써서 함께 자전거마실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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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무지개 상가 1
김의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작은 동네 작은 사람들이 좋아
 [만화책 즐겨읽기 25] 김의정, 《떴다! 무지개 상가 (1)》



 작은 동네 작은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떴다! 무지개 상가》 1권을 봅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나라를 보자면, 대한민국은 경제가 몇 위이고 뭐가 몇 위이고를 따지지만, 찬찬히 내 삶터로 내려와서 내 보금자리를 돌아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작은 동네에서 작은 사람들로 살아갑니다.

 큰 동네 큰 사람들이 아닌 우리 삶입니다. 작은 동네 작은 사람들인 우리 삶이에요. 나부터 작은 동네 작은 사람입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 또한 작은 동네 작은 사람이에요.

 서로서로 잘 나거나 못 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순도순 지내며, 툭탁툭탁 다투기도 하다가는, ‘다 사람 사는 일’이라고 여기며 너그러이 감싸거나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 삶을 애써 큰 동네 큰 사람이라고 높일 까닭이 없습니다. 나로서는 작은 동네 작은 사람으로 머물고 싶지 않고, 남보다 큰 동네에서 살며 남보다 큰 사람으로 살고프다 꿈꿀 수 있어요.

 그렇지만, 큰 동네 큰 사람이든 작은 동네 작은 사람이든, 꼭 한 번 주어지는 목숨입니다. 내 어버이한테서 딱 한 번 선물받아 꾸리는 삶입니다.

 내 삶에서 서른일곱 나이는 딱 한 차례 흐르다가 지나갑니다. 스물일곱 나이도, 열일곱 나이도, 일곱 나이도 오직 한 차례만 흐르다가 지나갑니다. 두 번이나 세 번 보낼 수 없는 열여덟, 스물여덟이에요. 싫거나 못마땅하기에 서른이나 마흔을 훌쩍 건너뛸 수 없어요. 누구나 똑같이 누리는 삶입니다. 누구나 고르게 맞아들이는 나이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동네 작은 사람입니다. 내가 선 작은 동네를 느끼면서 작은 동네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나 스스로 꾸리는 삶을 돌아보면서 내 삶을 글이나 그림이나 만화나 사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저기 혹시, 여기가 별로 즐거운 추억의 장소는 못 되니까 무조건 달아나려는 건 아니야?” “뭐,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여기는 아버지 땜에 숨막혀 했던 기억밖에 없는 곳이니까. 하지만 내가 여길 벗어나려는 게 그것 때문만은 아냐. 나는,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 이런 구석탱이 동네에 틀어박혀서 매일같이 사진관 문이나 열고 닫으면서, 매번 틀에 박힌 똑같은 사진이나 찍어대셨지. 난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이 현실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74∼75쪽)
- “정말 가긴 가네. 조만간 송별회나 한번 하자고.” “잠깐 있다 가는 건데요, 뭘. 그런 거 안 해 주셔도 돼요.” “자네야 그럴지 몰라도 우리한테 풀꽃사진관은 잠깐이 아니지 않은가.” (77쪽)


 이름이 남는다 해서 한결 돋보일 삶이 아닙니다. 이름을 못 남긴다 해서 슬플 삶이 아닙니다. 돈을 더 번다고 훨씬 좋은 삶이 아닙니다. 돈을 얼마 못 벌었으니까 참 못난 삶이 아닙니다.

 즐거이 태어나서 즐거이 살다가 즐거이 죽는 목숨입니다. 즐거이 사귀다가 즐거이 어우러지며 즐거이 헤어지면서 즐거이 눈을 감는 목숨입니다.

 구석탱이 동네에서 뿌리를 내린다고 내 삶이 구석탱이 삶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슴을 짠하게 울리거나 움직이는 사진’을 찍은 분들은 하나같이 ‘구석탱이 동네’에 깃들거나 찾아와서 사진을 찍습니다. ‘커다란 동네’나 ‘부자 동네’ 사람들 삶을 사진으로 담아 ‘아름답다 느낄 사진을 선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연예인을 사진으로 찍거나 패션사진을 한다는 이들은 커다란 동네 커다란 사람을 담는 셈일까요. 이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는 우리들 수수한 사람들하는 참으로 동떨어진 먼나라 사람일까요. 연예인은 똥을 안 누거나 밥을 안 먹을까요. 대통령은 잠을 안 자거나 하품을 안 할까요.


- “오메, 여기 707호 형님 걸려 있네!” “엉? 내 사진이?” “언제 찍은 거여?” “5년 전 칠순 잔치 때 찍은 사진이네.” “어째 5년 전에 찍은 사진보다 오늘 받은 사진이 더 젊어 보여?” “그러게! 호호호호.” “이 사진이 좀더 자연스러워 보이긴 하네, 그치?” (49쪽)
- “마리가 아버지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사진을) 시작했던 거예요. 물론 아저씨의 반응은 냉담했지만. 그 무렵에 마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가 무슨 사진 공모전에서 상을 하나 받아왔어요. 마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겠다고 잔뜩 들떠 있었죠.” (66쪽)



 굳이 꾸밀 까닭이 없이 살아가는 작은 동네 작은 사람입니다. 애써 잘 보이려 하지 않는 작은 동네 작은 사람입니다.

 만화이든 소설이든 연속극이든, 왕자님이나 공주님 이야기를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크고 까만 비싸구려 자동차를 몰아야 왕자님이지 않습니다. 아이 오줌기저귀를 빤대서 왕자님이 아닐 까닭이 없습니다. 밥순이 집순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기에 공주님이 아닐 까닭이 없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온통 왕자님이고 공주님이면 누가 밥을 하고 누가 옷을 빨며 누가 집을 돌보지요? 밥을 안 먹고 옷을 안 입으며 집살림을 안 돌보아도 괜찮은 내 삶인가요?

 시시껄렁해 보이는 수다로 느낄는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시껄렁해 보이는 수다가 사람을 살찌웁니다. 바로 이 쓸데없는 이야기가 삶을 북돋웁니다.

 오이 하나 밀가루 한 봉지 필름 한 통 책 한 권마다 손때와 손길과 손자국과 손무늬가 남습니다. 한꺼번에 밀어붙여 40층이니 60층이니 하는 높고 비싼 아파트를 숲처럼 올려세워야 멋들어지거나 놀라운 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옹기종기 모여서 크고작은 살림집을 이루어 달동네이든 꽃동네이든 해동네이든 나무동네이든 텃밭동네이든 골목동네이든 복닥이면 아름다운 내 나날이고 내 삶자락입니다.


- “이것도 우리 짐이었던가? 스크랩북? 자기야, 아버님이 생태사진작가셨어?” “뭔 소리야?” “이거 아버님 사진하고 성함 아냐?” “응?” “아버님 맞지?” “아, 응.” “자기도 몰랐던 거야?” “전혀. 생전 처음 보는.” “아버님이 처음부터 사진관을 운영하신 게 아니었구나.” (91∼93쪽)
- (마리 아버지가 젊을 적 일) “여기에 사진관 개업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소문 참 빠르기도 하구먼.” “네? 왜요? 형님 지금 잘 나가고 있잖아요!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왜 포기하시는 겁니까?” “포기는 무슨. 그냥 내 성미에 안 맞을 뿐이야. 몸도 약한 마누라를 어린 것한테만 떠맡기고 좋은 사진을 찍으면 뭘 하겠나?” (97쪽)


 이제 1권이 나온 만화책 《떴다! 무지개 상가》가 2권부터 어떤 사람들 어떤 이야기로 아웅다웅 북적거리는 삶을 보여줄는지 궁금합니다. 거룩하거나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자잘하거나 하잘것없거나 하찮거나 초라한 이야기일지라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크든 작든 내 삶을 담으면 아름답습니다. 잘 났든 못 났든 내 이야기를 나누면 즐겁습니다. 빛나든 어둡든 내 발걸음을 디디면 사랑스럽습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내 얼굴이 가장 귀엽습니다.

 대통령도 시장도 국회의원도 판사도 모두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이면서 딸이거나 아들입니다. 고운 목숨을 선물하는 사람이면서 고운 목숨을 선물받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삶과 사랑받는 삶 이야기를 조곤조곤 적바림하는 어여쁜 만화로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미더운 사람과 믿음직한 사람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는 아리따운 만화로 마음문을 열면 고맙겠습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 떴다! 무지개 상가 1 (김의정 글·그림,마녀의책장 펴냄,2010.11.30./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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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


 책은 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림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사진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책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나 아무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빈 책’일 수 있습니다. 빈 책을 일컬어 한자말로 ‘공책’이라고 적습니다.

 예부터 이 나라 사람들은 ‘책’이라 할 때 “글로 이루어진 책”만 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을 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글로 이룬 책이면 ‘글책’이고, 그림으로 이룬 책이면 ‘그림책’이며, 사진으로 이룬 책일 때에는 ‘사진책’입니다.

 예나 이제나 ‘글책’이라고 따로 나누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책’이라면 으레 “글로 이루어진 책”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놓고 ‘책’이라 생각하거나 말하기보다는 애써 ‘그림책’이랑 ‘사진책’이라며 앞에 덧말을 붙입니다.

 여느 어른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나 만화로 이루어진 책이나 사진으로 이루어진 책은 ‘읽을 수 없다’는 듯 생각합니다. 그냥 슥 훑으면 다 보는데, 이런 책을 어떻게 ‘읽는다’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런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만화책을 찬찬히 ‘읽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림책이나 사진책을 꼼꼼히 ‘읽는’ 사람도 드뭅니다. “나는 책을 읽기가 싫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책’이라 할 때에 ‘글책’만 책이라고 생각하니까, ‘나 스스로 내가 싫어하는 책이란 글로만 이루어진 책’인 줄을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책은 책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흙은 흙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풀도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풀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내가 책읽기를 좋아한다면 글을 읽기 좋아하는지, 글에 깃든 사람들 생각을 읽기 좋아하는지, 글에 서린 사람들 삶을 읽기 좋아하는지, 글에 담은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읽기 좋아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책읽기를 싫어한다면 책이 어떠하기에 싫으며, 어떠한 책이 싫은가를 곰곰이 짚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물 반찬이 싫은 사람은 나물 반찬이 내 몸에 안 맞아서 싫은지, 풀만 먹으니 싫은지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고기 반찬이 싫은 사람은 고기 반찬을 먹으면 내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에 싫은지, 얼마 앞서까지 펄떡펄떡 뛰던 목숨을 잡아죽여 먹기가 싫은지 또렷이 알아야 합니다.

 풀도 목숨이고 고기도 목숨입니다. 풀만 먹는대서 목숨을 아끼는 삶이 아닙니다. 풀이라는 목숨이 내 몸으로 스며들어 내가 새 목숨과 기운을 얻는 줄 느껴야 제대로 밥을 먹는다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논밭 흙을 일구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멧자락을 신나게 오르내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지런히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기 오줌기저귀나 똥이불을 빨면서 책을 읽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 그대로 글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이란, 우리가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보금자리나 마을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보따리입니다. (4344.2.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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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과 책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손에 들고 읽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강다리 건널 때면 책을 덮습니다. 넓은 한강과 한강 둘레를 뒤덮은 시멘트 건물을 봅니다. 이 시멘트 건물은 뿌연 먼지띠가 곱게 감싸안습니다. 그래서 이곳, 한강을 끼는 서울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사는 사람들은 먼지띠 위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낮하늘, 하얀 별이 가득가득 반짝이는 까만 밤하늘을 볼 수 없고, 보지 못하다가는, 생각도 안 하고 말거나, 잊어버리기까지 합니다. (4339.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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