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6. 알못 못알



  누구나 그때그때 배울 이야기를 따라서 낱말 한 자락이 찾아온다. 좋거나 나쁜 낱말이 아닌 배울거리인 낱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나한테 온 낱말”을 고요히 돌아보고서 차분히 짚을 적에 스스로 길을 연다.


  ‘알못’이라는 낱말을 예전에 처음 듣고서 “알꼴로 둥근 머리인 못”인가 하고 갸우뚱했는데 “알지 못하다”를 줄인 낱말이라고 해서 빙그레 웃었다. 대못·잔못이 아니었구나.


  아이들은 ‘안’이나 ‘못’을 앞에 놓는다. 아이들 말씨라면 ‘못알’이다. “못알 = 못 알다 = 모르다”이다. 오랜 우리말씨라면 ‘못알’이라 해야 알맞은데, 워낙 오늘 우리가 스스로 우리말씨를 잊은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못알이라서 알아가고 알아보고 알아들으려고 하는 아이라면, 먼저 못알에서 ‘알’로 나아가서 ‘알깨기(알아차리기)’로 거듭난 사람이 ‘어른’이다. 아이어른은 한 사람 몸마음에 나란히 있다. 두 빛인 넋과 얼이 한덩이로 밝기에 ‘숨’이다. 이 숨을 살리기에 ‘사람’이고, 사람이 서로 살리는 숨결이 ‘사랑’으로 넘어간다.


  좋고나쁨과 옳고그름을 다 놓아야 비로소 삶을 느끼고 보고 배운다. 배우는 길에 서기에 가만히 익힐 틈을 낸다. 배우고서 익히는 틈과 짬을 누리기에 눈을 뜬다. 눈을 뜨기에 철이 들고, 철이 들면서 찬찬히 나이를 머금으니 바야흐로 어른이란 이름으로 일어선다. 나이를 알맞게 머금으며 무르익는 사람을 지켜볼 수 있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논다. 아이는 어른 곁에서 놀이랑 노래를 누리고 짓는다. 어른은 아이 곁에서 일이랑 살림을 돌보고 나눈다.


  모르기에 배우는 길에 선다. 하나를 알기에, 이 하나를 씨앗으로 새로 묻고서 즐겁게 다시 배우는 길을 걷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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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4. 돼지



  ‘고기돼지’가 아닌, 우리에 갇힌 돼지가 아닌, 들이며 숲을 가로지르면서 아름다이 노래하는 돼지를 만나거나 사귀면서 함께 하루를 짓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렇게 믿던 사람이 무시무시한 칼이나 도끼를 들고서 저한테 다가와 마구 휘두르니, 돼지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요. 누가 사람 목을 무서운 칼이나 도끼로 내리치려고 하면, 사람도 “사람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숨을 거둘 테지요. 우리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아닌 “돼지가 풀숲에서 고르릉고르릉 기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살림길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더 많이 먹으려고 더 모질게 좁고 어둡고 답답한 우리에 가두어서 착하고 상냥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고기돼지라는 길은 끝내기로 해요. 느긋하며 아늑할 뿐 아니라 착하고 참하면서 곱게 숲을 같이 누리는 따사로운 길을 나아가야지 싶어요. 사람을 사람답게 보려면 나무를 나무답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개미를 개미답게 마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를 돼지답게 끌어안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돼지는 노래하고 싶습니다. 돼지는 멱을 따이고 싶지 않습니다. 돼지는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돼지는 좁은 잿바닥(시멘트바닥)에 갇힌 채 흙도 풀도 나무도 꽃도 없는 곳에서 찌꺼기로 배를 채울 생각이 없습니다. 돼지는 풀잎을 사랑해요. 돼지는 풀벌레하고 동무하면서 놀고 싶어요.



돼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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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운해 雲海


 운해가 장관이었다 → 구름떼가 대단했다


  ‘운해(雲海)’는 “1. 구름이 덮인 바다 2. 바닷물이나 호수가 구름에 닿아 보이는 먼 곳 3. 산꼭대기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다처럼 널리 깔린 구름 ≒ 구름바다”를 가리킨다고 하는군요. ‘구름’으로 고쳐씁니다. ‘구름떼·구름밭·구름무리·구름물결’로 고쳐쓰고요. ‘구름바다·구름같다·구름처럼’으로 고쳐써도 되어요. ㅍㄹㄴ



운해가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 반짝이는 구름을 보면서

→ 반짝이는 구름바다를 보면서

《토리빵 8》(토리노 난코/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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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다발 多發


 사고 다발 지역 → 자주 다치는 곳

 사고가 다발하는 곳이니 → 잇달아 다치는 곳이니


  ‘다발(多發)’은 “1. 많이 발생함 2. 발동기의 수가 많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많다·잦다·자주·자꾸·흔하다’나 ‘또·또다시·다시’로 손봅니다. ‘도사리다·뻔질나다·끊임없다’나 ‘잇다·잇달아·이어가다’로 손보고, ‘여러·여럿’으로 손보면 됩니다. ㅍㄹㄴ



날씨가 험해지면 추락사고가 다발하는 위험한 길이거든요

→ 날씨가 궂으면 자주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길이거든요

→ 날씨가 궂으면 자주 미끄러지는 아슬아슬한 길이거든요

《낙원까지 조금만 더 3》(이마 이치코/이은주 옮김, 시공사, 2005) 124쪽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테러에 문학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요

→ 한꺼번에 일어나는 막짓에 글꽃은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요

→ 곳곳에서 일어나는 주먹질에 글은 어떤 말을 해야 하나요

→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끔찍짓에 글은 무슨 말을 하나요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 96쪽


진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길이 다를지 몰라도, 한꺼번에 일어난다

→ 달리 나아갈지 몰라도, 나란히 일어난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김진아, 바다출판사, 2019) 5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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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문학동네 시인선 183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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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27.

노래책시렁 502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김상미

 문학동네

 2022.12.2.



  모든 순이는 숲을 품고서 태어났습니다. 모든 돌이는 들을 품고서 태어났고요. 숲에서 나무하고 나란히 피어나는 순이라면, 들에서 풀하고 어울리며 깨어나는 돌이라고 느낍니다. 먼먼 옛날부터 까마득히 오래도록 숲숲이에 들돌이였는데, 우두머리가 서고 나라를 일으키는 동안 싸울아비가 불거지더니, 어느새 숲을 잊는 순이에 들을 잃는 돌이로 뒹굽니다.


  숲에서 노래하며 놀이를 짓는 순이입니다. 들에서 일하며 들살림을 짓는 돌이입니다. 둘은 노래하고 일로 만나고, 놀이하고 살림으로 어울립니다. 노래 곁에 일이 있고, 놀이 곁에 살림이 있습니다. 왼발과 오른발로 나란히 걷듯, 왼손과 오른손으로 함께 짓고, 왼눈과 오른눈으로 함께 보듯, 왼귀와 오른귀로 같이 듣습니다.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는 얼핏설핏 굴레(남성가부장권력)에 시달린 티가 곳곳에 남지만, 요모조모 다시금 싹터서 숲을 이루려는 마음을 하나둘 일으키려는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다만, 우리는 “숲이 되어가는 순이”나 “들이 되어가는 돌이”이지 않아요. “숲을 알아보는 순이”에 “들을 찾아보는 돌이”로 돌아가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이 되기에 ‘사랑’을 깨닫습니다.


  숲빛으로 흐르는 노래이기에 ‘순이말’입니다. 들빛으로 넘실대는 노래이기에 ‘돌이말’입니다. 이 별은 숲만 있을 수 없고, 들만 너를 수 없습니다. 들숲메바다가 나란할 노릇이요, 숲들메바다가 하나일 노릇이에요. 숲 곁에 들이 있기에 푸른별입니다. 들 곁에 숲이 있어서 파란별입니다. 우리별은 푸르면서 파랗고, 파라면서 푸릅니다. 오늘 새롭게 여밀 글결이라면, 숲말과 들말을 다시 알아차리면서 차근차근 처음부터 하나씩 새로 가꿀 길이기를 바라요.


ㅍㄹㄴ


모든 꽃은 / 피어날 땐 신을 닮고 / 지려 할 땐 인간을 닮는다 // 그 때문에 / 꽃이 필 땐 황홀하고 /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미스터리/15쪽)


밖에는 비가 내리고 /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 유일한 명분 (밖에는 비가 내리고/16쪽)


깊이깊이 후회해 / 너를 사랑했던 것 /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반성/40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별이 빛나는 밤/57쪽)


오로지 말하고 싶다는 욕망만 있다면 누구든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다. (너에게만 말할게/70쪽)


그동안은 어디든 꼭꼭 숨어 있자. / 큰 놈들은 큰 놈들끼리 어울려 언제나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갈 곳 없는 작은 놈들을 잡아먹고, 또 잡아먹고…… (페루/84쪽)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모두가 죽어버리는 시를 쓰고 싶다 / 아니다. 모두가 다 읽는 시를 쓰고 싶다 / 그 시를 읽으면 죽어가던 것들도 생생히 되살아나는 시를 쓰고 싶다 (시인 앨범 7/94쪽)


+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과거의 풀들을 베어내 무덤을 만드는 사람

→ 지나간 풀을 베어내 무덤을 쓰는 사람

→ 어제 자란 풀을 베어내 무덤을 파는 사람 

12쪽


하루종일 공동묘지 활주로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루내내 한무덤 나래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 하룻내 두레무덤 날개길에서 기다려주는 사람

12쪽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 끝도 없이 만지는 손

→ 끝도 없이 보듬는 손

→ 끝도 없이 비다듬고

→ 끝도 없이 쓰다듬고

16쪽


밤낮으로 태양 대신 낮은 스탠드 불빛 아래

→ 밤낮으로 햇빛 아닌 낮은 불빛에서

20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31쪽


묘하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가장 대신 멋진 댄디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얄궂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기둥 아닌 멋쟁이가 되어 나를 모른 체했다

→ 재밌게도 아버지는 집밖으로 나오면 들보 아닌 겉멋이 들어 나를 모른 체했다

38쪽


나는 어제의 사람 어제의 여자 어제의 사랑 모든 내일의 그림들을 끌어모아 어제의 벽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젯사람 어젯가시내 어젯사랑 모든 이튿날 그림을 끌어모아 어젯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란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다음 그림을 끌어모아 어제란 담에 붙이는 사람

→ 나는 어제인 사람 어제란 순이 어제란 사랑 모든 앞그림을 끌어모아 어제인 담에 붙이는 사람

46쪽


계속되는 사분의삼 박자의 그 리듬 속에서

→ 이어가는 셋얹은넷 쿵덕과 가락으로

→ 흘러가는 넷놓은셋 물결과 가락으로

47쪽


급기야는 통째로 그녀를 삼키려 들 때도

→ 더구나 통째로 그사람을 삼키려 들 때도

→ 게다가 통째로 그이를 삼키려 들 때도

52쪽


종로2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황지우 시선집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횡재다

→ 종로2길 알라딘 헌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주웠다

→ 종로2길 알라딘 손길책집에서 황지우 노래책을 이천구백 원에 샀다. 싸다

57쪽


그때의 그 촉감, 그 흡착력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느낌 그 붙힘을 잊을 수가 없다

→ 그때 그 살결 그 찰싹힘을 잊을 수가 없다

72쪽


잘도 도망치고 도망치다 북두칠성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달아나고 달아나다 주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내빼고 내빼다 일곱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 잘도 발빼고 발빼다 국자별처럼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84쪽


나의 적이 가진 책은 곧 나의 적이다

→ 미운놈이 쥔 책은 나한테도 밉다

→ 싫은놈이 보는 책은 나도 싫다

→ 저놈이 읽는 책은 꼴보기싫다

→ 저 녀석이 쥔 책은 보기싫다

10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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