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새끼줄 삼듯 (2025.6.30.)
― 서울 〈악어책방〉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보면, “못하는 투성이”인 터라 다시 나서고, “모르는 투성이”이기에 새로 해보고, “모자라는 투성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즐겁게 배우는구나 싶어요. “못하는 나”라서 끝(꼬리)에 서서 밑(꼴찌)을 지켜주다가 어느새 꽃(꼬마)을 피우기도 하고요. 바닥에 있기에 바다를 품으며 일어납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악어책방〉이 있기에, 책집과 둘레를 새롭게 품으면서 느긋이 찾아갑니다. 이제까지 늘 이렇습니다. 동무나 이웃이 살지 않는다면 굳이 어느 마을을 거닐지 않고, 책집이 없으면 더더욱 안 지나갑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란 하나씩 잇는 말이면서, 하나하나 엮는 마음이고, 함께 일구는 생각 한 자락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울리면서 주고받은 말씨 한 톨을 바탕으로 새롭게 꿈을 틔우고, 이 길을 나란히 걷는 동안 어느새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함박눈처럼 함박비가 오고, 함박별처럼 함박볕이 내리쬡니다. 눈도 비도 별도 볕도 언제나 이곳에 함지박마냥 푸짐하게 드리우면서 모두 북돋웁니다.
여러모로 시골꽃이 한결 곱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서울꽃은 매캐하고 어지럽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의젓하게 피어나기에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요. 오늘날 시골꽃은 끔찍한 죽임물을 뒤집어써도 꿋꿋하게 다시 태어납니다.
〈악어책방〉에서 ‘마음글쓰기’를 잇습니다. 마음을 담은 소리이기에 말인데, 요즈음은 어쩐지 마음을 안 담으면서 꾸미는 ‘말흉내’가 늘어나는 듯합니다. 입으로 소리만 내기에 말일 수 없습니다. 손으로 무늬만 그리기에 글일 수 없습니다. 서로 어떤 마음인지 찬찬히 담아야 말글입니다. 함께 일굴 빛씨앗을 가만히 가꿔야 말글입니다. 고이 쓰다듬으며 지필 적에 말글입니다.
아프더라도, 아니 아프기에 기꺼이 받아들여서 품고 풀어낼 적에 누구나 스스로 어른으로 거듭난다고 느껴요. 즐겁기에 웃고, 슬프기에 울며, 이 마음을 우리 손으로 보듬는 사이에 깨어나는 말글입니다.
오랜 낱말 ‘새끼’를 놓고서 말밑풀이를 끝냈다고 여겼는데, 새벽에 뒤적이니 아직 안 끝냈더군요. 아침에 곰곰이 짚으며 비로소 애벌로 말밑풀이를 추슬렀어요. ‘개다’라는 낱말을 놓고서 실마리를 풀어가면 왜 ‘새끼·삿기(새끼오리 + 새끼줄)’ 같은 낱말이 태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새롭게 트며 깨끗하게 파란 하늘마냥, 새롭게 이으며 사랑으로 밝은 사랑이라는 결을 담는 ‘개·개다’입니다.
작은 말씨에 깃든 숲빛마음을 헤아리면서 다같이 포근히 누리기에 사람으로 깨어납니다. 깊어가는 여름은 천천히 겨울로 나아갑니다. 새철로 느긋이 걸어갑니다.
ㅍㄹㄴ
《한 평 반의 행복》(유선진, 지성사, 2020.12.18.)
《150cm 라이프 3》(타카기 나오코/한나리 옮김, 시공사, 2016.1.25.)
#たかぎなおこ #150cmライフ
《꿀!》(아서 가이서트, 사계절, 2011.2.24.첫/2020.5.29.8벌)
#ArthurGeisert #Oink
《나의 속도》(이진경, 이야기꽃, 2025.6.2.)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