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크는 아이들 -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자라는 숲 속 유치원 이야기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 지음, 나카무라 스즈코 그림, 은미경 옮김 / 파란자전거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숲에서 크는 아이들
- 글 : 이마이즈미 미네코, 안네테 마이자
- 그림 : 나카무라 스즈코
- 옮긴이 : 은미경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3.24.)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4 ― 골목집 꽃밭길과 숲속 학교
 : 독일에는 《숲에서 크는 아이들》이 있네


 〈1〉 초등학교 교과서 ‘자연 사랑’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만들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생활의 길잡이》라는 교과서를 보았습니다. 교과서 한 권을 본다고 해서,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 샅샅이 살필 수 없습니다. 다만, 살갗이라도 핥을 수 있을까요.

 7단원 ‘자연 사랑’을 펼칩니다. 첫 주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까닭을 알아봅시다”입니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고, “우리가 지구 환경을 보전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쪽에서는 “나무를 심자!”는 제목으로 글 하나 싣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체 차량의 37%에 해당하는 약 2백만 대의 차량이 디젤 자동차이니 그만큼 공기 오염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고 말하면서.

 나무를 심는다고 공해 문제가 풀릴 턱이 없지만,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나무를 어디에 심을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서는 “공기 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로수를 많이 심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가로수로 과일 나무를 심는다면 거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교과서로서는 온힘을 다해 밝힌 ‘더러워진 공기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 셈이라 하겠으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인지 낱낱이 들어서 말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가로수를 많이 심”자고 교과서는 말합니다만, 거리나무는 누가 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심을 수 있나요? 자동차 북적이는 길거리 어디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아스팔트를 깨고? 거님길 돌판을 깨고?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를 뽑고? 길거리에서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는 있을까요?


.. 아이들은 모두 물놀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페릭스도 정원에서 있는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자주 하지요. 그런데 냇물에서의 물놀이는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입니다. 파블로나 베스는 벌써 장화 신은 발로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냇가에 들어갔네요 ..  〈25쪽〉


 우리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 어느 곳에도 ‘아이들이 나무를 심을 만한 조그마한 땅뙈기’는 없습니다. 동네 골목길에도 나무를 심을 자리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산다고 할 수 있는 아파트 꽃밭에 나무를 심을 틈이 있을까요? 다세대주택이 바글바글 몰려 있는 비탈길 동네에 나무 심을 빈 땅이 있을까요?


.. 집에서는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할지 항상 아빠하고 엄마가 정하지만, 숲속 유치원에서는 뭐든지 다 같이 결정합니다 ..  〈29쪽〉


 ‘자연 사랑’ 단원에서는 “장바구니 사용하기”도 말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갈 때에 비닐 봉지 한두 개씩만 절약한다면, 우리 나라 전체로 볼 때에 엄청난 양이 절약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가실 때에 꼭 장바구니를 가져가도록 말씀드리는 것도 작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잣거리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일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늘 장바구니뿐 아니라, 헌 비닐봉지를 갖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잣거리를 거닐며 하나둘 사들이는 찬거리나 푸성귀나 먹을거리 어느 것도 ‘가게에서 비닐랩을 씌워 놓았’습니다. 벌써 한 번 비닐랩에 씌워진 물건을 살 때 비닐봉지 하나 적게 쓰는 일도 우리 삶터를 지켜 주는 좋은 일이곤 합니다. 하지만 비닐랩은 어쩌지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 족발이나 다른 먹을거리를 주문해 먹을 때, 밥집에서는 비닐랩을 얼마나 씌워서 가져다주는지요.

 우리 스스로 줄일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만, 정작 크게 마음쓰고 바꿔야 할 곳, 뿌리깊은 골칫거리를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들 몸짓은 그저 헛시늉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더욱이, 저잣거리에 물건 사러 가는 사람을 오로지 ‘어머니’로만 못박은 대목이 껄끄럽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살피면서, ‘집안일은 어머니(여자) 몫, 집안에서 아버지(남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는 몫’으로 나눠져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 그뿐인가요? 나무열매들도 빨강, 파랑, 검정 다채로운 빛깔을 뽐냅니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선명한 황록색 잎사귀들이 아름답게 펼쳐 있습니다. 새의 깃털처럼 우아한 이 땅꼬마 풀고사리들이 숲속에서는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 냅니다.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숲은 단순히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네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모여 숲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  〈34쪽〉


 초등학교 교과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고등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설마…….

 두렵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면서 지식을 외워야 할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짜여져 있는지 들춰보기 두렵습니다. 아니, 이 두려운 교과서로 열두 해씩이나 제도권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되어 있는 틀에서 찌들고 시들면서 싱싱함을 잃어가는데, 싱싱함을 잃어가는 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두렵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사회에 나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어떤 일을 어떤 자리에서 할까요.


.. 천천히 먹고 여유 있게 쉬었기 때문인지 페릭스는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야, 이제 놀아야지! 그런데 장난감도 없는데 뭘 하지?’ 집이라면 정원 모래밭에서 놀아도 되고 트럭이나 미니카 같은 장난감도 있지만, 숲속에는 나뭇잎과 나무, 풀, 나뭇가지, 흙, 돌멩이 같은 것밖에 없습니다. 새로 온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  〈42쪽〉





 〈2〉 골목집 꽃그릇


 도서관 일을 마치는 저녁나절, 사진기 하나를 들고 골목길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도심 정화 재개발 사업’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밀려나거나 무너질 판에 놓인 여느 사람 살림집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놓습니다. 시와 개발업자는, 골목집 사람들한테 ‘입주권’이나 ‘이주 비용’을 도와준다고 말하지만, 입주권이 있다 한들, 골목집 사람들은 ‘새로 지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없습니다. 아파트 값도 치러내지 못하지만, 관리비 낼 만한 형편도 아닙니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골목집에서는, 많지 않은 돈으로도 달세를 내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며 오순도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집 사람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던 조그마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면, 이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자리를 마련해 어떻게 먹고사나요. 시나 개발업자 눈으로는 지붕 낮고 꾀죄죄해 보이는 게딱지집일지 모르지만, 이 게딱지집에 사는 이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하고 넉넉한 궁궐입니다. 한 사람한테는 발 뻗고 개운하게 잘 수 있는 방 한 간, 새힘을 얻을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부엌 한 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여기에, 제 먹을거리 얼마쯤 손수 마련할 수 있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 주차장에는 부모님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과 같이 페릭스 엄마는 자동차를 타고 왔고, 베스 엄마는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왔지요. “자동차보다 수레 달린 자전거가 더 멋져.” 페릭스는 베스의 자전거가 부러웠습니다 ..  〈48쪽〉


 골목집 사람들은 시멘트로만 뒤덮인 길바닥 한켠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그러모아 내놓습니다. 헌 스티로폼 상자도 알뜰히 모아 놓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 흙을 한 주먹씩 퍼 온 다음 헌 꽃그릇과 스티로폼 상자에 차곡차곡 모읍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놓고, 때때로 당신들이 눈 똥오줌도 모아서 작게 두엄더미를 만들어 꽃그릇 흙과 섞곤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골목길 바닥에는 흙 한 줌 없지만, 날마다 푸른 새숨을 내뿜어 주는 싱그러운 꽃밭길로 다시 태어납니다.


.. 아이들은 낙엽을 모아서 땅바닥에 늘어놓고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색을 칠하지? 도대체 누가 이런 모양을 만드는 걸까. 숲의 요정일까?” 페릭스가 물었습니다. “나무 스스로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만든단다. 나무는 살아 있기 때문이지. 사람이나 동물처럼 말야.” ..  〈73쪽〉


 지난 4월부터 올망졸망 터져나온 꽃망울이 시월을 넘기며 마지막으로 노랗고 붉은 꽃내음을 남깁니다. 드문드문 있는 거리등불 어두운 골목을 거닐면서도 풀냄새와 꽃냄새를 느낍니다. 무릎을 꿇어 풀하고 키높이를 맞추고 꽃하고 눈높이를 맞춥니다. 사진 찍던 손을 거두어 꽃잎을 쓰다듬습니다. 가로세로 50센티미터를 겨우 넘을 만한 작은 꽃그릇에서 나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한두 평 될까 말까 한 작은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서 발그스름하게 익어 가는 감을 올려다봅니다. 저 감나무는 저 집하고 역사를 함께했을까요? 저 작은 집을 마련한 분이 ‘우리도 이제 우리 식구들 따숩게 지낼 집 하나 마련했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에 어린나무 얻어와 마당 한켠에 심어서 이렇게 키워냈을까요?


.. 귀를 기울여 보니 나뭇잎들이 스치며 사락사락 속삭이는 소리, 바람이 낙엽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은 퍼드덕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도 들렸고요.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다정다감한 숲의 너른 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했습니다. 아침에 엄마한테 혼났던 것도, 친구들과 싸운 것도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  〈76쪽〉


 시골에 갈 때마다, 산에 갈 적마다 흙을 한 봉지씩 담아 와서 옥상에 텃밭을 마련한 분들을 봅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한두 해에 걸쳐서 흙을 조금씩 모아 오셨고, 이렇게 모은 흙으로 옥상 텃밭을 일굽니다. 흙과 함께 벽돌도 하나둘 모았습니다.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당신들 손으로 꾸민 옥상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서 당신들 밥상에 올려놓고도 남을 만큼 됩니다. 고추농사를 짓는 텃밭이 되었다가는 콩농사를 짓는 텃밭이 됩니다. 어느새 3층 다세대집을 웃자랄 만큼 키큰나무가 된 오동나무를 보면서, 이야, 오동나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컸구나, 하고 놀랍니다.


.. 다른 아이들도 뒤영벌이 다시 꽃에 살포시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설레는 맘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곤충을 쓰다듬어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왠지 뒤영벌과 친구가 된 것처럼 모두 기분이 좋았습니다 ..  〈125쪽〉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집안에 들여놓고(또는 툇마루에 내놓고) 지냅니다. 골목집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나무며 집밖에 내놓고 지냅니다. 생각해 보면, 아파트는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꽃밭이 있으나, 이 꽃밭은 관리인이 꽃나무 몇 가지와 잔디를 모셔 놓는 자리이지, 상추나 시금치나 무나 배추를 심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골목집은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밖에 없습니다. 집안이 좁으니까요. 골목집 바깥 꽃그릇에는 온갖 푸성귀와 꽃이 자랍니다. 그러나 이 푸성귀를 뜯어 가는 사람이 없고, 예쁜 꽃이 자랐다고 해서 꽃그릇을 훔쳐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 숲은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으며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답니다 ..  〈122쪽〉


 달동네 집을 죄 밀어내고 번듯번듯 높직높직 올려세운 아파트 옆을 지나갈 때면 몸이 움츠러듭니다. 아파트 둘레는 ‘아파트사람들 자가용’이 들락거리기 좋도록 길을 닦았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느라 걷기 안 좋습니다. 게다가 씽씽 내달리기까지 합니다. 빵빵거리기도, 앞등 불빛을 깜빡거리거나 사람 눈높이로 쏘기도 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몸을 활짝 폅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는 조용한 골목길. 드문드문 옛날 나무전봇대를 만납니다. 인천에 터잡은 중국사람들 살림집을 봅니다. 예전에 틀림없이 다른 살림집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계단짬에 잠깐 앉아 다리를 쉽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달동네 언덕받이입니다. 그다지 멀잖은 곳에 바다가 보입니다. 도심지 살림집과 길거리 등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기불은 언제까지 켤 수 있을까요.





 〈3〉 우리 어른들은 무슨 학교를 바라는가


 《숲에서 크는 아이들》은 독일에 있는 ‘숲속 유치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아이들은 시멘트나 쇠붙이 따위로 지은 딱딱한 건물이 아닌, 부드럽고 무른 흙과 풀이 있는 숲에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배웁니다.

 참 부럽습니다. 우리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교육 터전입니다. 지금 우리한테 숲이 얼마나 남아 있나요? 온누리 구석구석 아파트를 짓는다며, 지역자치정부는 공장을 세워 돈벌이를 해야 한다면서, 인천시장만 해도 그나마 남은 몇 안 되는 곳까지 파헤쳐 경제자유도시니 영어도시니 뭐니 만든다고, 여기에다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를 때 쓸 경기장이니 선수촌아파트니 지하철 2호선이니 또 짓는다고 어마어마하게 공사판 법석을 피웁니다.

 지금은 국제공항이 들어섰지만, 이 자리는 오랜 소금밭이었습니다. 도시사람들이 좋아하는 ‘조개구이’에 쓰이는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 드넓은 갯벌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앞바다는 망둥이도 잡던 곳이었으며, 몇 만 마리에 이르는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로지 사람 좋을 대로만 생각하면서 날짐승과 바닷짐승 보금자리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아이들이 함께 누리고 즐길 ‘바다 놀이터’ 또한 빼앗은 셈입니다. 가까이 보면 인천사람이지만, 인천 둘레 바닷가로 놀러와서 갯벌과 밀물썰물 달라짐을 느끼면서 자기 마음에 깃든 자연을 키울 남녘나라 사람들 삶터를 잃었어요.


.. 아이 엄마는 냇가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짐작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  〈49쪽〉


 《숲에서 크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속 학교’는 돈으로 닦아세우거나 올려세울 수 없는 학교입니다. 돈을 들일 까닭도 없는 학교입니다.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으면, 우리 생각을 돌려놓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학교이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알뜰히 돌보거나 가꿀 수 있는 학교입니다.

 참말, 우리 터전에서는 숲속 학교란 꿈꾸기 어려운 곳이라 할 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조금은 남아 있잖아요. 숲속 학교뿐 아니라 ‘바다 학교’를 가꿀 수 있고, ‘들(논밭) 학교’와 ‘산 학교’를 껴안을 수 있어요.


.. 요즈음 엄마 아빠와 함께 숲에 산책하러 가는 일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숲은 아무리 가도 물리지 않는 곳이니까요. “저건 전나무, 저건 가문비나무예요.” 페릭스는 아빠에게 가르쳐 주기 바빴습니다. “어떻게 아니?” 아빠는 언제나 신기해 하며 물었습니다 ..  〈136쪽〉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돈’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바다 학교든 찾아내어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일류대학교 졸업장’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들 학교든 돌보며 지킬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풋풋한 젊음을 키워 가는 아이들한테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산 학교든 어깨동무하며 웃고 뒤놀 터전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4340.10.21.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한 아침 2007-11-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번역한 책을 이렇게 리뷰해주시니 새롭고 기쁩니다. 제 블로그에 이 글을 옮겨 놓겠습니다.

숲노래 2007-11-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은 참 좁네요 ^^;;;
어줍잖은 글 읽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도서관에서 띄우는 글]
 3 ― ‘책 싸게 사는 길’ 여쭙는 님이시여



 사람들이 묻는다.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묻는다. 아니,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글을 남기며 묻는다. 인터넷새책방에 책소개 글을 띄워서 5만 원짜리 상품권에 뽑히라는 둥, 여러 인터넷새책방을 두루 살피며 마일리지와 쿠폰을 어떻게 주는가를 살피라는 둥, 이런저런 도움말을 들려준다.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댓글을 남기면서.

 어떤 책을 사고 싶기에 싸게 사고 싶을까. 자기가 바라는 책은 얼마짜리 책이기에 값싸게 사고 싶을까.

 책을 싸게 사면 좋을까. 좋다면 무엇이 좋은가.

 책을 싸게 사면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책을 싸게 사면, 그 책에 담긴 줄거리를 한껏 넉넉하게, 한결 속깊이 헤아리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책을 엮어내어 파는 책마을 사람들은 왜 쿠폰을 붙이는가. 인터넷새책방은 왜 마일리지를 쌓아 주는가. 이들은 왜 책소개 글을 띄워 주었다고 몇 만 원에 이르는 선물을 베풀까.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올려진 ‘묻기’ 글에 엉뚱한 댓글을 남기는 나. “저는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책에 적힌 값대로만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을 싸게 사는 길은 모르겠네요. 님께서는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보다, 그 책을 살 수 있도록 알바를 하시는 편이 좀더 슬기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분들 가운데 절반 조금 웃돌 만큼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헌책방에서 책을 값싸게 사는 이들이, ‘자기가 헌책방에서 사서 읽은 책’을 헌책방에 되팔려 할 때에는 무척 아까워한다. ‘2000원 주고 산 책’이라면, 이 책을 헌책방에 되팔 때 얼마쯤 받을 수 있을까? 얼마쯤 받아야 알맞을까?

 헌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이 싸서 좋다’면, 자기로서는 참으로 자기 마음밭을 추스르거나 가꾸는 데에는 썩 좋은 책까지는 안 찾는다는 소리인가. 책을 살 때 헤아리는 첫 번째 잣대는 그저 ‘싼 책값’ 때문인가. 그래서 자기 마음이며 머리며 몸뚱아리며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고 해도, ‘비싼 책값’이면 도리질을 칠 생각인가. 그러면, 얼마쯤 되는 책값이 싼 편이며, 얼마쯤 되는 책값이 비싼 편일까.

 자기가 읽고픈 책을 한 권 장만하고자, 부지런히 일해서, 땀흘리며 일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는 없을까. 갖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터라 슬그머니 도둑질을 해서라도 갖고 싶은가. 갖고는 싶고 도둑질하기도 싫어서, 그 책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 빌린 다음, ‘어, 잃어버렸는데?’ 하면서 안 돌려주고 자기 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느끼는 ‘책을 싸게 사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면,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찾아가서 두 다리가 아프도록 서서 읽는 길이 하나 있다. 다음으로는, 내 다른 씀씀이를 모두 줄이면서, 이를테면 머리를 머리집에 가서 깎지 않고 내 손으로 가위질해서 깎는다든지. 옷을 더는 사지 않고 바느질로 기워서 입는다든지. 또는 이웃사람한테 헌옷을 물려받거나 얻어서 입는다든지. 자가용은 아예 타지도 말고, 대중교통조차도 웬만하면 타지 말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든가 자전거로 다닌다든지. 밥을 밖에서 사먹지 말고 도시락을 챙겨서 먹는다든지.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하지 만다든지. 찻집에서 차를 사 마시지 말고 보온병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 걸상에 앉아서 마신다든지. 비싼 술집에서 술 마시지 말고 가게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마신다든지. 노래방에 가지 말고 집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뜯는다든지. 이러저러하게 돈씀씀이를 줄이고 아낀 돈으로 책을 사는 길, 이 길만큼 ‘책을 싸게 사는’ 좋은 길은 없다고 느낀다.

 뭐, 생각해 보면, 책을 꼭 우리 집 책시렁에 꽂아 놓아야만 하지는 않아. 마음에 담아야 책이 아닐까. 머리에 새겨야 책이 아닐까. 내 두 손에, 내 두 다리에, 내 발바닥에 콱 박혀야 책이 아닐까. 내가 품는 생각에, 내가 움직이는 몸뚱이에, 내 모든 몸짓에 하나로 녹아들어야 책이 아닐까. 책에 담기는 지식 가운데 잊어버리는 것이 있으면 어떠랴. 다시 들춰보지 못하면 어떠랴. 그러면 자그마한 공책을 늘 들고 다니면서, 이 공책에 ‘자기가 읽은 책에서 마음에 와닿은 대목’을 가지런하게 옮겨 적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내 나름대로 반갑다고 생각하는 글귀를 모은 내 책’을 새롭게 엮으면 된다.




 내가 인천 배다리 한쪽 귀퉁이 자그마한 자리에 연 도서관에는 내 나름대로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놓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분 가운데 “여기에 책이 몇 권이나 있어요?” 하고 묻는 분이 으레 있고, 이렇게 묻는 분한테 으레 “책 권수가 그렇게 중요하나요? 그냥 읽고픈 책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읽으시고, 이 책 저 책 죽 둘러보며 반가운 책을 찾아보셔요.” 하고 대꾸한다.

 그러다가 그끄제쯤, 이런 생각 하나가 났다.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 권수를 묻는 분이 있으면, “음, 날마다 꼬박꼬박 세 권씩 읽을 때, 당신께서 서른 해 동안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있습니다.” 하고 대꾸해 볼까 하는. (4340.10.19.쇠.ㅎㄲㅅㄱ)

***
이 글은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 지킴이가 띄웁니다.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있으며, 금-토-일에만 열어 놓습니다. 찾아와서 책을 읽는 값은 따로 받지 않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주 첫머리에 날씨가 확 쌀쌀해지며 가을 없이 겨울로 접어드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나날이 날씨가 풀리며 마치 겨울에서 봄으로 되어 간다는 느낌입니다. 11월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날이건만. 다가오는 11월 날씨는 어떻게 될까요. 12월에는 겨울이 될지 포근한 날이 이어지며 모기와 파리가 끊어지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해마다 뒤죽박죽 날씨로 변덕이 죽을 끓고 있잖습니까. 올봄과 올여름은 지난해와 견주어, 지지난해와 견주어, 지지지난해와 견주어 참 알쏭달쏭 오락가락이었습니다. 장대비가 여러 날 동안 쉬지 않고 퍼붓지 않나, 그러다가 확 맑아지지 않나, 태풍이 몰아닥치다가도 날이 짠 개지를 않나. 어쩌면 우리 나라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뚜렷하게 나뉘어 네 철 네 옷을 갈아입는 산과 들과 내와 바다는 멀찌감치 사라져 버렸을까요. 이름만 남은 범과 곰과 이리와 늑대와 여우입니다. 오소리와 너구리와 족제비와 수달을 어디에서 얼마나 만날 수 있는가요. 참새조차 자취를 감추며 비둘기와 까치만 맴도는 도시에서, 개구리가 왁왁 우는지 개골개골 우는지 꾹꾹 우는지 두 귀로 살펴 들을 수 없는 이 땅에서, 뜸부기며 소쩍새며 헤아려 볼 길 없는 시골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요.

 지금 우리한테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큰 목표가, 아니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큰 목표가, 아니 ‘남보다 내가 더 많은 돈을 가져야 한다’는 큰 목표가, 아니 ‘나 홀로 1등이 되어 떵떵거리며 지내다가 드문드문 가난뱅이들한테 돈 몇 푼 쥐어 주며 으시대자’는 큰 목표가 이 나라 모든 사람을 휘감고 있습니다. 어른들만 휘감지 않고 아이들도 휘감습니다. 아니, 어른들 스스로 자기를 다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들이 낳아 기르는 딸아들을 서너 살부터 영재와 천재로 만들어 ‘네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서 너 혼자 잘 먹고 잘 되는 길로 걸어가는’ 버릇을 익히게 하도록 채근하고 있습니다.

 문득, 요즈음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어떤 줄거리가 담기나 궁금합니다. 집 앞에 있는 헌책방에 가서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펼쳐 봅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 성장’과 ‘정보화 시대의 생활과 산업’과 ‘우리 겨레의 생활 문화’ 세 가지를 다룹니다. 첫 단원에서는 ‘자유와 경쟁-우리 경제의 발자취-세계 속의 우리 경제-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다루는데, 모두 기업에서 돈 많이 벌고 공장에서 물건 많이 팔고 자동차 대수가 늘어나는 일이 ‘발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6학년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를 펼칩니다. 7단원 ‘자연 사랑’을 보니, 우리 나라에 디젤 자동차가 많아 공기가 많이 더러워진다고, 이 문제를 풀려면 나무를 많이 심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무가 하루아침에 자라지도 않지만, 자동차 줄일 생각은 아예 없고, 정작 공기가 더러워지는 큰 뿌리는 안 짚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꺼내어 펼치다가 제자리에 꽂아 놓습니다. 손이 덜덜 떨립니다. 아이를 낳으면 학교에 보내야 하나요? (4340.10.18.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납니다. 새벽바람이 서늘해 좀더 드러누울까 싶었으나 그냥 일어납니다. 꿈에서 저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갓 올라간 학생입니다. 얼굴에는 아무런 빛깔이 없고 그저 무뚝뚝함만 흐릅니다. 저뿐 아니라 동무들도 마찬가지. 모두들 대학교 들어가기만을 생각하고, 3학년 담임이 된 사람도 처음 교실에 들어와서 우리들한테 하는 말이 ‘너희들 어느 대학교에 가고 싶은지 손을 들어 보라’입니다.

 아이들한테 쪽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기에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세 가지 주의사항이 적혔고, 세 번째 것은 담임선생이 들어와서 말할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다른 것도 하지 말고 자기만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것. 속으로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생각하며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이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니, 이야기라 할 수 없는 중얼거림을 듣습니다. “너희들이 어느 대학교에 가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맨 처음에는 의대를 써라. 그 다음에는 ……” 꿈에서도, 꿈을 깬 뒤로도, 이 소리가 무슨 생각으로 하는 말인지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담임이라는 사람은 한참 중얼중얼 떠들더니, “자, 그러면 묻자. 너희들 가운데 혹시 대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맨 앞에 앉은 녀석이 손을 듭니다. 뒤따라 저도 손을 듭니다. “하나, 그리고 둘이냐?” 하는 중얼거림을 듣다가 잠이 깨었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지, 또 그 뒤로 고3 교실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모르겠습니다. 꿈이기는 하지만 다시 꾸기 싫고, 꿈이 아니라면 몹시 끔찍하겠구나 싶습니다. 남자만 다니는 학교에서 1학년 2학년 3학년 내내 남자 선생만 담임으로 보내야 하는 학교. 현실에서도 제 고등학교 3학년은 남자 선생 담임뿐이었고, 학교도 남학교였습니다. 지난날 칙칙함이 꿈에서도 똑같이 살아나 진저리가 쳐지기도 합니다.

 콩물 한 잔 마시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담벼락에 책을 올려놓고 기지개를 켭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이 제법 많이 보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인 듯하네요.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립니다. 예전에는 밤하늘 별이 훨씬 많았겠지요. 이 도시에서도.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에서 고등학교 3학년 자리에 있는 아이들은 곧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겠네요. 대학교에 가려는 아이들도, 대학교에 갈 마음이 없는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를 준비를 시키고, 내신성적이라는 이름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고, 틈틈이 모의고사를 치러서 ‘교과서 지식을 얼마나 머리속에 잘 간수하고 있는가’를 살핍니다. 아이들은 머리속에 잘 간수하고 있는 교과서 지식에 따라 차례가 매겨지고, 이 차례에 따라 모범생과 문제아이가 갈립니다.

 아이들은 ‘무슨무슨 대학교에 가려 하는가’로 ‘장래희망’을 상담하게 될 뿐입니다.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을 아이라든지, 공장에서 일하려는 아이라든지,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려는 아이라든지,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자기 예술을 가다듬으려는 아이라든지, 온몸을 바쳐 사회봉사나 사회운동을 하고픈 아이라든지, 다 다른 생각과 몸짓을 다 다른 방법으로 펼쳐 나가고자 하는 몸짓과 매무새를 추스르려면 어떻게 하면 더 나을지를 담임 교사와 상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이 ‘개성 넘치는 아이들 모두한테 걸맞게 세상 경험을 들려줄 만한’ 깊이나 너비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시인으로 살고픈 아이한테 ‘그렇구나, 네가 시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머리 맞대며 헤아릴 교사가 있을까요. 버스기사가 되고 싶은 아이한테 ‘그래, 네가 뜻있고 멋진 버스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골똘히 헤아리며 함께 길찾기에 나서 줄 교사가 있을까요.

 대학교를 바라는 아이들한테는 어떠할는지요. 지구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벌레(곤충) 한삶을 헤아리고 싶은 아이가 생물학과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이 아이가 생물학과라는 곳에 가기에 알맞도록 차근차근 도와줄 만한 깊이를 갖춘 교사가 몇 사람쯤 있을까요. 잠자리를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물방개를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가문비나무를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삵을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우리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은 무슨 도움말을 건네고 어떤 도움책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림을 그리고픈 아이한테 입시미술이 아닌 생활미술을 일러 주면서, 스스로 자기 그림감을 찾아나서도록 이끌고, 학원미술이 아닌 자기 그림결을 찾는 그림그리기로 나아가도록 붙잡아 줄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가 있을까요. 사진을 찍고픈 아이한테, ‘오호라, 사진을 찍고 싶다고? 그렇다면 지금 네가 있는 이 학교에서 사진을 찍어 보지 않으련?’ 하고 먼저 나서서, 교실 풍경과 학교 삶을 두루 사진에 담도록 마음을 써 줄 만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가 있을까요. 아니,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삶과 교사들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보여주는 교사는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우리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끼고 보았던 모습을 꾸밈과 거짓과 숨김과 감춤이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힘쓰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진 찍는 교사’란 참말 있기나 할까요. 교사 스스로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부모 스스로 더 깊은 세상을 느끼려 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바라기만을 하면서 그 풋풋하고 싱그럽고 살가운 젊음을 형광등 불빛만 쬐며 허여멀건 얼굴로 늙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생각해 보니,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도 자기들이 다니는 대학교 모습이나 대학생 삶이나 대학교 둘레 사람들 발자취를 사진으로 더듬거나 헤아리는 일은 안 하고 있네요.

 지난밤에 《전태일 통신》(후마니타스,2006)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짤막하게 쓴 글을 그러모은 책입니다. 이 가운데 민종덕이라는 분이 쓴 글을 읽으니, ‘국민학교 졸업장도 없는 전태일한테 명예졸업장(초등학교)을 주려고 하던 뜻깊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글 끝에 ‘졸업장 하나 없이 살아간 전태일’한테 ‘졸업장이 꼭 있어야 했을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는 왜 이리 졸업장 열병에 물들어 있을까를 놓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합니다. 대학교에 돈 많이 바친 어느 재벌총수한테 명예박사학위를 주려 하니 학생들이 반대하더라는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졸업장이 많다고 농사를 잘 짓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차를 얌전하게 잘 몰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사기공갈 안 친다는 법이 없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가난하고 힘겨운 이웃을 알뜰히 사랑하거나 보살피도록 마음을 더 기울이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주정뱅이가 안 되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자기가 땀흘려 번 돈을 사회에 돌려주며 값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동화책을 잘 쓰지 않으며, 사진을 더 잘 찍지도 않고, 만화를 더 잘 그리지도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은 사람이 인문학 책을 더 잘 써내지 않는 한편, 종교를 다룬 책이든 문화를 다룬 책이든 철학을 다룬 책이든 경제를 다룬 책이든, 더욱 속속들이 헤아리며 짚어낼 수 있는 눈길이나 눈높이가 있지 않습니다.

 꿈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새벽까지 꾼 꿈을 깬 뒤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그때 꿈속 고3 담임 교사한테 이렇게 읊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가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며 살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동무들 공부하는 데 거슬리지 않게 있고, 없는 사람인 듯 조용히 지낼 테니, 교실에서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이 학교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10년쯤 뒤에 사진책 하나 내고 싶습니다.” (4340.10.17.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월이 얼마가 흘렀든지 다시 돌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기에 헌책방 헌책입니다. 겉이 낡고 더러워졌어도, 판권에 적힌 책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치러야 해도 살 만한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때때로 500원이나 1000원밖에 안 하는 헐값에 살 수도 있는 책이 뜻하지 않게 놀라움과 반가움을 선사하기도 하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사람은 늘 새로 나고 죽지만, 책에 담긴 이야기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행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바로 유행이 되는 밑거름을 건네주는 헌책방 헌책이라고도 하겠네요.


 그러나 모든 헌책방 헌책이 볼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책은 버려지지요. 뭐, 백 해나 이백 해가 지나면 모든 헌책은 옛책 구실이나 값어치를 하긴 하지만, 더구나 돈이 많고 헛간도 널찍해서 간수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조그마한 자리에서 살림을 꾸리는 헌책방으로서는, 책방 임자부터 ‘다시 볼 만한(팔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곤 합니다. 그래, 다시 팔 만한 값어치가 없는 헌책은 거리낌없이 버려요. 버려지지요. 버려야 해요.


 우리 나라 방송풀그림은 어떨까요. 며칠 지난 풀그림은, 한두 달 지난 풀그림은, 한두 해 지난 풀그림은, 대여섯 해 지난 풀그림은, 열 해쯤 지난 풀그림은, 스무 해나 서른 해쯤 지난 풀그림은, 백 해쯤 지난 풀그림은 어떠하지요? 볼 만할까요? 볼 만한 재미나 보람이 있을까요? 다만, 방송풀그림도 아주 오래되거나 묵었다면, 자료로 값어치 구실을 합니다. 어떤 풀그림도 그렇습니다. 어떤 책이라도 무척 오래되었으면 지난날 자료가 되니까요.


 제가 방송풀그림을 그다지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분들 가운데 몇 달 지난 ‘재방송’을 재미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낍니다. 몇 해 묵은 ‘재방송’은 더더구나. 열 해쯤 지난 연속극이나 익살이야기는 어떻지요? 1991년 프로야구 어느 경기 하나를 세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을까요? 1994년 어느 연속극을 한 시간 동안 앉아서 볼 수 있을까요? 인기를 많이 얻었다는 한국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면,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참 재미없네.’ 하는 느낌이 퍽 짙게 듭니다. 〈친구〉라는 영화를,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다섯 해나 열 해쯤 뒤에도 텔레비전에서 틀어 줄까요? 틀어 줄 때 볼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 우리 나라 방송풀그림 눈높이는 ‘재방송으로 보여줄 값어치나 재미나 보람’이 없는 테두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재방송으로 보여줘도 한 해도 못 넘길 만한’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즐겨 찾아서 보는 책들 가운데에도 ‘한 해 지난 뒤’에도 읽고픈 생각이 안 드는 책이 참 많습니다. 지금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지만, 그 책들이 얼마나 그 좋은 자리에 버틸 수 있을까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책들이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머무를까요? 열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를 오늘날 읽을 만할까요? 스무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나 서른 해 앞선 때 베스트셀러는 어떻지요? 요즘 베스트셀러를 열 해 뒤에도, 아니 다섯 해 뒤에도 읽을 만하다고 느낄까요? 그래서 신문에서 ‘아무개 책방 이주 베스트셀러 목록’을 붙이는 일은 참 쓸데없는 일인 한편, 폭력이라고 느껴요. 정작 우리한테 쓸모가 있고 재미도 있으며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 책목록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니까요.

 
 책이든 방송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다른 공연이든 문화든 예술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어느 무엇이든, 지금 곧바로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밥을 좋아합니다. 밥 한 그릇은 지금 곧바로도 제 배를 넉넉히 채워 주고 기운을 북돋워 줍니다. 새힘을 선사해요. 이 밥은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여태껏 얼마나 많은 밥그릇을 비웠을는지. 몇 만 그릇도 넘겠지요. 앞으로도 10만 그릇, 또는 20만 그릇, 또는 30만 그릇을 비울지 모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그릇이요, 지금 이때에도 낮밥이나 저녁밥으로 제게 기쁨을 선사할 밥그릇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영화도, 방송풀그림도, 사진도,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곧바로 즐거울 수 있는 한편, 앞으로도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책을, 영화를, 방송풀그림을, 사진을, 그림을 좋아합니다. 지금 곧바로만 재미있는 책은 싫습니다. 앞으로 좋아질 책도 썩 달갑지 않습니다. 한결같은 책, 꾸준한 방송풀그림, 곧게 이어가는 사진이 좋습니다. (4339.10.25.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