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올리는 헌책방 발자취
: ‘추억’을 넘어 ‘현실’로 힘쓰는 헌책방 삶터




 저는 올 사월에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와서 사진책 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었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린이책 도서관’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이 드문드문 있고, 이렇게 외치는 분들 가운데 자기 집 한쪽 방을 트거나 따로 방을 얻어서 그동안 자기가 모아 온 어린이책으로 조그맣게 ‘지역 어린이책 도서관’을 여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 모두 이 조그마한 어린이책 도서관을 제대로 굽어살피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 한다면, 번듯한 건물이나 수십 수백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춘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가까이 찾아가며 책을 쉴 수 있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갈 수 있고, 도서관에서만 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마을마다 다른 문화와 사회를 고이 지키고 가꾸면서 튼튼히 이어나갈 수 있는 터전입니다. 도서관 만든다며 수십 수백 억을 들여 새 건물을 지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 돈을 푼푼이 나누고 쪼개어, 마을마다 크고작은 ‘지역 사랑방’ 구실을 하는 터전이 달세 걱정 않도록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책 도서관도 드물지만, 어른책 도서관도 드뭅니다. 아이들이 쉴 곳도 없지만, 어른들도 쉴 곳이 없어요. 길을 거닐다가 다리쉼을 할 만한 나무걸상 하나 제대로 마련된 곳이 어디에 있을까요? 여름이라면 모르지만, 겨울에는 차가운 돌걸상에 앉을 수 없어요. 플라스틱 걸상도 그렇지요. 인천에도 서울에도 광주에도 대구에도 부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과 밥집과 술집은 있어도, 손바닥만한 동네 쉼터가 없어요. 나무그늘을 느낄 수 있는 텃밭도 마당도 사랑방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또 무엇이 없을까요? 제가 느끼기로는, 시골에서 마을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골목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은 차츰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기 앞서, 동네 새책방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동네 헌책방은, 동네 새책방이 곳곳에 많이 있어서, 동네사람들이 자기 마음밭을 일구는 책을 부지런히 사서 보는 문화가 이루어져 있을 때 비로소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립니다. 한 사람이 자기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서 읽은 책을 기꺼이 내놓아 주어야 헌책방에 헌책 하나 깃들이거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동네 새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습니다. 동네 새책방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참고서와 자습서만 살 뿐입니다. 참고서와 자습서는 책일까요? 학습지는 우리 마음밭을 고이 가꾸어 줄까요? 동네 새책방을 동네 책 문화로 이끌지 않거나 이끌지 못하는 우리들은, 우리가 살가운 보금자리로 여겨 살고 있는 동네를 메마르고 팍팍한 곳으로 나뒹굴게 합니다. 동네에 나무그늘 하나 제대로 없는데, 어찌 동네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거나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을까요? 온통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만 가득한데, 어찌 아이들이 뛰놀 수 있을 테며, 어른들이 막걸리 사발 주고받으며 세상 부대끼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요새 아이들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인터넷게임에만 빠진다고들 합니다만,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이 ‘우리 말 문화를 망가뜨린다’고도 합니다만, 아이들을 방구석으로 내몰고, 아이들이 방구석에서 인터넷게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닥달한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닐까요? 아이들이 뛰놀 골목길이 없는걸요.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추스르고 더 넓은 세상을 헤아려 볼 책을 만날 수 있는 책쉼터인 동네 새책방과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고 있는걸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헌책방을 왜, 어떻게, 언제, 얼마나 자주 다녔을까요? 헌책방만이 아니라 동네 새책방에는 얼마나 자주 찾아갔을까요? 우리는 동네 새책방이나 헌책방을 찾아가면서 어떤 책을 만났고, 어떤 책으로 우리 가슴을 적셨으며, 어떤 책으로 여태껏 느끼지 못한 새로움을 맛보며 세상 톺아보는 눈길을 가다듬었을까요?

 제 어린 날을 뒤돌아봅니다. 제 어린 날은 책하고는 담을 쌓은, 아니 책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날입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있었으나, 월부 책장사한테 사들인 전집 몇 가지가 있었을 뿐이고, 이 책은 우리 형이 보라고 들여놓았습니다. 저는 마냥 골목길 놀이가 좋았고, 골목길 동무들하고 온갖 놀이를 하며, 대나무로 낚싯대 만들어 갯벌로 낚시하러 가기를 즐겼습니다(제 어릴 적까지는 망둥이 낚시를 곧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가 낮에 밥 먹으로 잠깐 돌아온 뒤 다시 저녁까지 뛰어놀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숨바꼭질을 하며 박쥐하고 벗삼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집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전집 책이 불쌍해 보여서, 또 어머니 꾸지람을 듣기도 해서, 또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하기도 했고, 독서부장 맡은 계집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조금 있어서, 더듬더듬 몇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헌책방 추억을 떠올리자니, 그냥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헌책방이 참 많았다”는 것뿐. 어린아이한테는 책이고 뭐고는 눈에 안 들어오고 온통 놀잇감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머리통이 조금 굵어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눈을 뜹니다. 참고서와 교재를 값싸게 사고팔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 아니었음을, 참고서 팔이로 돈을 버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지만, 우리 눈길이 학습지에서 풀려날 때 바야흐로 책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짐을 처음 살갗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독일말 참고서 하나를 사고 책값을 셈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뒷통수를 자꾸 긁어대는 무엇인가 있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학습지 아닌 여느 인문사회과학책’들이 책시렁에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군요. 흠칫 놀랍니다. 아, 지금 내가 셈치르는 이 녀석은 책이 아니구나, 진짜 책이 저기 있구나.

 고개를 떨구고 참고서를 가방에 쑤셔넣습니다. 한 달 뒤,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와, 여섯 시간 남짓 안쪽 구석에 박혀서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후비는 책, 내 가슴을 파고드는 책, 내 모자라고 못난 눈길을 나무라면서 한손을 내밀어 붙잡아 일으켜 주는 책,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날마다 한 그릇씩 고운 목숨을 선사해 주는 책.

 추억이 어릴 틈 없이 현실로 찾아온 헌책방입니다. 그래도 추억 하나 끄집어내 본다면, “좋은 책 하나 손님들한테 건네줄 수 있으면 저희들 보람이지요. 뭐, 우리들이 세상에 이름을 내려고 헌책 파나요?” 하고 살며시 웃던 헌책방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문 사회면 한 줄짜리 기사 ‘궂긴 소식’으로도 실리지 못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시고,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손전화 가게며 빵집이며 술집이며 닭집이며 들어서던 일들 …… 이랄까요.

 서울 청계천과 인천 배다리와 부산 보수동과 전주 홍지서림 골목과 대전 원동 저잣거리와 청주 중앙로 들에는 아직 크고작은 헌책방거리가 드문드문 남았습니다. 서울 골목골목에서 적잖은 헌책방들이 허리띠 졸라매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신촌을 중심으로 열 군데 남짓 헌책방이 점점이 모였습니다. 모두들, ‘추억’으로 끝날 수 없는 ‘현실’로, 우리 삶으로 헌책방 문화를 지키며 가꾸고자 낮은 자리에서 말없이, 다소곳이 힘쓰고들 있습니다.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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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요츠바랑! (1권∼ ) (2007년 10월까지 6권이 번역됨)
- 그린이 : 아즈마 키요히코
- 옮긴이 : 금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2004.8.30∼ )
- 책값 : 한 권에 4000원씩



 웃음을 잃어버린 분이라면 이 만화를
 [살가운 만화 28]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1〉 지구한테 적


 일을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무언가 답답할 때면 집어드는 만화책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은 만화책인 《요츠바랑!》. 이 녀석은 한 번 손에 쥐면 끝까지 안 보고는 다시 놓기 힘듭니다. 마지막까지 다 본 뒤 ‘아, 아직 연재가 안 끝났지. 뒷편은 언제 번역되나?’ 하는 생각에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1권부터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또다시 1권부터 보기도 하며 여러 번 되풀이 봅니다.


 “에이, 요츠바였구나.”
 “아! 예쁜이 언니다!”
 “아사기야, 아사기.”
 “아 싸게.”
 “아사기.”
 “오늘은 뭐야? 무슨 볼일?”
 “후카한테 한 마디 해 주려고 왔어!”
 “에헤, 어째 또 재밌겠네. 근데 후카는 지금 나가고 없거든.”
 “이구우? 그럼 어쩔래…?”  1권 〈98∼99쪽〉



 에어컨을 틀어 놓은 방에 들어가서 “이 방, 시려워!”, “여긴 겨울이냐?”고 묻는 요츠바입니다. 그러다가 에어컨을 안 틀어 놓은 방에 들어가서 “이 방은 덥네! 에나, 에어컨 아냐?” 하고 묻습니다. 그동안 에어컨이라는 것을 몰랐다가 처음 알게 된 뒤, 그 하나를 알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서 말합니다. 그런데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은 아이(에나)는 요츠바에게 ‘지구온난화’라는 문제가 있기에 되도록 안 쓰려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요츠바는 “에어컨은 나빠? 지구의 적이냐?” 하고 묻는데, 이때 지구온난화 이야기를 해 준 아이가 “어라? 요츠바네는 에어컨 없어?” 하고 물으니 요츠바는 깜짝 놀라며, “어, 없는데! 왜냐면 아빠는 착한 사람이거덩! 에어컨 같은 거 없어! 아마 없을 거야…” 하다가 집으로 확 뛰어갑니다.


 “아빠! 이 집에 에어컨 있어?”
 “오. 에어컨 말이냐! 하긴 할머니네는 없었지. 할아버지가 에어컨을 싫어하셨으니까. 하지만 이 집에는 있지롱! 쨔안! 침실에도 있고 2층에도 있고.”
 “아빠, 우리 편 아니야!”
 “에엑? 어, 어째서 우리 편 아니라는 건데? 어?”
 “지구온난화!”
 “허거덕? 너, 너 그런 것도 알고 있었냐?”  〈1권 107∼110쪽〉


 이때, 요츠바는 자기한테 에어컨을 가르쳐 준 이웃집 큰딸 ‘아사기’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음을 떠올리며, “아사기는 지구의 적이야! 지구온나나! 지구가 뜨거워진단 말이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아사기는 “그러니까, 에어컨으로 지구를 식히고 있는 거야.” 하고 말합니다. 말문이 막힌 요츠바. 이제 요츠바는 무엇을 할까요?


 〈2〉 그네


 신문지국 아저씨가 요츠바네 집에 찾아옵니다. 요츠바네 아저씨는 낯선 사람한테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몇 번씩 다짐하며 낮잠을 잡니다.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고단했나 봅니다. 요츠바는 혼자서 상자 만들기 놀이를 하며 다부지게 집을 지킵니다.


 “안녕, 신문 아저씬데.”
 “예-? 뭐십니까?”
 “응… 아빠나 엄마 계시니?”
 “아빠는 있어요. 엄마는 없어요.”
 “그럼 아빠 좀 불러 줄래?”
 “안 돼요.”
 “에엑?”
 “쉿-.” 〈2권 96∼97쪽〉



 요츠바는 “쉿-.” 하고는 문을 닫습니다. 신문지국 아저씨는 아이가 왜 저러는지 모를 테지요. 아이가 장난치는 줄 알까요? 아니면, 아이네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안하구나’ 하고 말하며 돌아설까요?


 (아빠) 신문 받았더니 이런 걸 주네. 워터월드 초대권.
 (점보-아빠 동무) 오호-.
 (요츠바) 오-! 거기구나?
 (점보) 음? 요츠바, 워터월드 아냐?
 (요츠바) 모르는데.
 (점보) 너,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요츠바) 응? 응. 〈2권 114∼115쪽〉


 멀고 먼 곳에서 큰도시로 살림을 옮겨 온 요치바 네. 요츠바는 놀이터 그네를 처음 보았고, 이 그네가 무언가 궁금해 한참 혼자서 만지작거리다가 머리를 쿵 찧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놀이터 옆을 지나가는 사람한테 저기 뭐 하는 거냐고 묻고는, 그네타기를 배웁니다.

 그네를 타 본 적 없으니, 그네에서 떨어져 본 적도 없겠지요. 아무 생각 없이 그네를 타며 가장 높은 데까지 휙휙 올라가며 재미있어 합니다. 요츠바한테 그네타기를 가르쳐 준 동네 아이는, 이제 됐겠지, 하며 뒤돌아가다가 설마 싶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요츠바는 아주 위험하다고 할 만치 높이 오르락내리락입니다. 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동네아이는 서둘러 “손, 손, 손은 떼면 안 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요츠바는, “손?” 하면서 그네를 잡던 손을 떼고 자기 손을 봅니다. 그 뒤 요츠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 말투


 비디오집에 가서 디브이디를 빌리는 두 사람, 요츠바랑 요츠바네 아빠. 요츠바느 ‘야생동물 시리즈’를 빌리면서, 가게 언니한테 묻습니다. “있지, 그거 재미있어?” “음, 언니는 이거 안 봤지만 아마도 재미있을 거야.” “재밌대. 전에 아빠가 빌린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다던데.”(5권 133쪽)

 가게 언니는 요츠바네 아빠한네 “죄송합니다” 하고 절을 합니다. 요츠바는 아빠가 집에서 요츠바 앞에서 했던 말투를 그대로 배워서, “더럽게 재미없다”를 말합니다. 요츠바는 늘 배웁니다. 늘 모두가 새롭습니다. 늘 모두한테 스스럼없이 굴고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요츠바네 아빠가 여느 때에 “포도는 먹기 어려워” 하고 말했기 때문에, 아빠한테 온 포도 선물을 들고 이웃집에 가서 ‘요츠바가 늘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하고 드리는 자리에서, 요츠바는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이거, 할머니가 보내 줬어. 포도는 먹기 힘들어서 주는 거야.” 하고 말합니다. 딴 생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빠가 늘 하던 말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배워서 말할 뿐입니다.


 (요츠바) 요츠바도 아사기한테 볼일 있어! 아! 담배다 담배는 나쁘니까 안 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근데 아빠도 옛날에는 피웠다고 그랬어. 아빠도 옛날에는 나빴다! 넌 지금 나쁘냐? 왜 담배 피우는데?
 (토라코-요츠바 옆집 아사기 동무) 멋 부리려고.
 (요츠바) 멋지다-. 멋진데, 너! 맘에 들었다요! 〈3권 16~18쪽〉



 어른들은 나어린 아이들한테 반말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말끝에 ‘-요’를 붙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대접해 주면서, 자기들이 높임말로 대접받기를 바라나요. 한편, 아이들이 어른한테 높임말을 써야만 어른이 ‘높아지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몸짓보다 속으로 헤아리는 마음이나 매무새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아무튼, 때때로 요츠바한테 ‘어른한테는 높임말 좀 쓰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요츠바는 높임말을 쓰기도 합니다. 뭐, “맘에 들었다!”고 할 말 뒤에 “맘에 들었다요!”처럼 붙이는 말투이긴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배울 대목이 많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이런 말을 귀담아들을 줄 모르는 한편,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대로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가두거나 맞추려고, 지식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른들이 하는 말은 배울 대목도 적고 재미없기도 하지 않나요? 우리 어른들은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잔뜩 멋을 부리거나 껍데기를 뒤집어씌우거나 검은 속셈을 능구렁이처럼 숨긴 채 말하지 않나요?

 “너 몇 살이야?”
 “나, 나이 많아.”


 만화 《요츠바랑!》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올봄까지 지낸 충주 시골집 둘레에 살던 이웃집 아이한테 들은 말입니다. 이웃집 아이는 자기한테 나이를 묻는 어른들이 하도 많아서 나중에는 귀찮은 나머지, “나, 나이 많아. 묻지 마.” 하고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4〉 만화책 《요츠바랑!》


 이웃집 언니 가운데 하나인 ‘후카’는 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이 모습을 본 어느 날 요츠바는, “자전거 타니까 멋지구나, 후카라도!” 하고 말하며 아빠한테 자전거를 사 내라고 조릅니다(후카가 여느 때엔 안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아빠가 후카를 처음 본 날, 그 집에서 ‘안 예쁜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츠바) 촥― 콰당!
 (공원 나들이 아주머니) 저런. 괜찮아요?
 (아빠) 아, 저 정도는 괜찮습니다.
 (요츠바) (까진 팔꿈치를 보며 울먹울먹)
 (아빠) 뚝! 아줌마한테 요츠바가 얼마나 센지 보여드려!
 (요츠바) (울음을 참으며) 요츠바는 울지 않아!
 (아주머니) 어머, 장하기도 해라. 〈6권 58∼59쪽〉



 아빠가 아무 생각 없이 주절거리는 말도 배우는 요츠바지만, 아빠가 아이를 다부지게 키우고자 북돋우는 말도 잘 받아들이며 배우는 요츠바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둘레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자그마한 것 하나라도 넉넉히 나눕니다. 고마운 선물을 받아서 보답을 하려고 놀이터 풀밭을 뒤져서 네잎 토끼풀을 찾아서 선물해 주고(3권 첫머리), 꽃집에서 한 가득 받아서 남은 꽃을 이웃사람들한테 한 송이씩 나눠 주면서 “언니도 힘내라!” 하고 말합니다(3권 가운데). 자기 욕심, 소유욕, 이익을 생각하는 어른들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또 하지도 않는 일들이겠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 처음부터 간직했으나 차츰차츰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가장 사람답고 올바른 몸가짐이기도 할 테고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 둘레 삶터가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에 따라서 우리 자신 삶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학교를 많이 다녀야만 세상 똑똑하게 잘살 수 있을까요. 머리속에 담은 지식이 많아야만 우리 삶이 한결 넉넉할 수 있을까요. 연봉 높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내 옷차림과 얼굴 생김이 텔레비전 연예인 같이 보여야만 즐거울 수 있을까요.

 늘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어울리고 놀면 즐겁지 않은가요.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할 수 있을 때에는, 모르는 일이 잘못이 아니라 아직 깨우치지 못한 세상을 배우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는 보람이 없는가요.

 느끼는 그대로 배우고, 보는 그대로 느끼며, 있는 그대로 보는 요츠바입니다. 맛이 있으면 맛있다고,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 말합니다. 고우면 곱고, 곱지 않으면 곱지 않다고 말해요.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 어른들은 움찔하고 놀랄 수 있지만, 이내 자기 모습과 형편을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겉치레로 사는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 어른들이 우리 세상을 싱그럽게 웃으며 살고자 한다면, 해맑게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자 한다면, 만화책 《요츠바랑!》에 나오는 요츠바는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남 눈치를 보는 삶이 아닌,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내 뱃속을 더 채우려는 마음이 아닌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만화책 《요츠바랑!》에 나오는 요츠바 같은 아이를 우리 집 둘레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4338.8.8.달.처음 씀/4340.10.28.해.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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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통신 우리시대의 논리 4
전태일기념사업회 엮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전태일 통신
- 엮은이 : 전태일기념사업회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11.13.)
- 책값 : 만 원



.. 점점 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아르바이트로 사람을 채우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파트타임이라는 이름으로요. 시간당 임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일자리입니다. 4대보험이라고 하는 건강보험도, 고용보험도, 산재보험도, 국민연금도 물론 없습니다. 그 시간당 임금도 최저임금에 딱 맞추어 그 이상은 주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일까요? 오히려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까지 다 빼앗긴 채 일하고 있습니다 ..  〈41쪽〉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어 나눌 만한 자리가 얼마쯤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신문에? 방송에? 잡지에? 낱권책에? 교과서에?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포털이라고 하는 곳에 작은 모임이나 방을 마련해서 자기 이야기를 띄울 수 있습니다. 자기가 띄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몇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나 경제나 여러 곳에 두루 ‘영향을 끼칠 만한 매체’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기꺼이 찾아다니며 듣고 담아내는 일이란 몹시 보기 힘듭니다.


.. 강남구청은 주변 아파트에서 보기 흉하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이유를 내겁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궁색한 억지 주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 쓰레기를 치우고 재활용하는 넝마공동체가 없다면 그 처리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  〈133쪽〉


 너무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할까요? 너무 낮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듣지 못할까요? 너무 낮은 자리에서 아파하기 때문에 내려와서 쓰다듬어 주기 힘들까요?

 낮은 자리에서 살면 안 될 까닭이 있을까요? 낮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인가요?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푸대접을 받아야 할 까닭이 있는가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조용하게 공동체를 이루어 지내면 안 되는가요?


..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삼성재벌이 어떠한 방법으로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악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지, 듣고도 믿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  〈267쪽〉


 더 오래 학교를 다녀서 더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학교를 못 다니거나 덜 다닌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졸업장 갯수와 자격증 갯수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자격증과 졸업장 하나 없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은행계좌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사람이라고 해서, 통장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감쌀 대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대목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흐르는 맑은 냇물이 아닌 정수기를 사 주면 될까요. 아이들한테 산과 들과 멧짐승과 들짐승이 아니라, 그림책과 사진책과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여주면 될까요. 아이들한테 따순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졸업장과 대기업 명함과 서울 강남 아파트를 장만해 주면 될까요? (4340.10.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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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올 4월부터 아침 또는 낮 또는 저녁에 틈틈이 동네 골목길 마실을 합니다. 으레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메지만, 사진기를 놓고 다닐 때도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나오지 않을 때면 꼭 ‘이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지만,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일도 좋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발자국이 되어, 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에도 뒷사람들이 살펴보고 요즈음 인천 삶터를 느끼도록 해 줄 테지만, 제 눈으로 비춰지고 제 마음에 담긴 인천 골목길 삶터 모습은, 비록 ‘눈으로 그려 볼 수 있는’ 발자국으로 남지 못할지라도, 제가 만나는 사람들한테 하나하나 펼쳐지겠지요. 사람과 사람으로 부대끼고 복닥이고 어울리는 느낌이 건네지면서.

 달동네 골목길 밤마실을 하면, 저기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고, 깊어가는 밤에 반짝이는 전기불빛 가운데 도드라지는 붉은 십자가, 하얀 십자가가 많이 보입니다. 예배당이 참 많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이런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그러던 지난주, ‘저 예배당 사람들도 설교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환경이 더러워지고 있음을 이야기로 듣고 할 텐데, 왜 밤에도 십자가 불을 켜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길이 어두워서? 깊은 밤에도 동네사람들한테 따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지난 목요일,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한다며 전철길에 오릅니다. 인천에서도 서쪽 끝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 길. 참 멉니다. 걸상이 천이 아닌 쇠붙이로 된 열차가 드문드문 있어서, 이런 열차를 타고 가자면 엉덩이도 시렵지만 기분이 나쁩니다. 누가 불지를까 걱정된다고 전철 깔개를 쇠붙이로 한다면, 버스 깔개와 기차 깔개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요? 비행기는 어떻고? 궁시렁궁시렁 중얼중얼 투덜투덜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그즈음, 양복을 쪼옥 빼입은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긁직한 목소리로 ‘하느님 찬양’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읊습니다. 전철을 함께 탄 옆지기는, 저 아저씨 예전에도 보았다고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읽던 책에 다시 머리를 박습니다. 조금 뒤 책을 덮고 고개를 듭니다. 참사랑이라면, 믿는 사람한테만 축복을 내리는 사랑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한테도 축복을 내리는 사랑일 텐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참사랑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한테 저주를 퍼붓는 사랑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끌지 않으며 더욱 아끼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랑일 텐데, 하는 생각이 꼬물꼬물. 하느님을 믿는다기보다 자기 이익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 사랑을 믿는다기보다 자기 이름과 돈과 힘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다기보다 하느님 말씀을 자기 좋을 대로 풀이해 버리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이 성경이라고 해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외려 ‘하느님 이름’으로 전쟁이 판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4340.10.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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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빡이면 어때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마빡이면 어때
- 글ㆍ그림 : 쓰치다 노부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20.)
- 책값 : 8000원



― 왜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아이들한테 읽히나?
: 쓰치다 노부코, 《마빡이면 어때》를 보면서



 〈1〉 수수한 이야기 하나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주인공 데코는 일요일 아침 머리를 자릅니다. 어머니가 손수 잘라 줍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뺀 집안 식구들이 아이 머리를 보면서 ‘이마가 너무 넓다’면서 하하호호 웃습니다. 집안 식구들 웃음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웃음일 텐데, 아이로서는 마을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여깁니다. 이리하여 몸이 움츠러들고 모든 일에서 짜증만 쌓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이런 아이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못 헤아렸는지 모르고, 어쩌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어려움을 풀어나가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아이 오빠도 동생을 감싸기보다는 짓궂게 놀리기를 즐길 뿐입니다. 다만, 아이 언니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려 냅니다. 그리하여 아이는 훤하게 드러난 그 이마도 괜찮은 이마가 될 수 있다고, 아니 예전 이마보다 훨씬 괜찮은 이마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 언니는 대단한 요술을 부리지 않았으나, 그 마음씀 하나와 작은 물건 하나로 동생 마음뿐 아니라,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동무들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참 수수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네요.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참으로 잘 잡아챘네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일본사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문득,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이 어릴 적에 겪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일을 겪으며 잔뜩 심통을 부렸는데, 자기 언니가 ‘그 어린 나이로서는 요술을 부렸다’고 느낄 만한 어떤 일 하나를 해 주었고, 그 일 덕분에 여태까지 즐겁게 잘 살아오고 있어서, 언니와 어머니와 식구들과 동무들한테 이런 자기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림책을 빚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형과 제 머리는 늘 어머니가 깎아 주셨습니다. 머리 깎는 집에 갈 돈을 아낄 셈이었지요. 없는 살림에 머리 깎을 돈까지 쓰기란 얼마나 힘들었던가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집 어머니들도 당신 딸아들 머리를 손수 깎아 주었습니다. 머리 깎는 가위는 몇 없어서, 가위 하나로 온 동네 어머니들이 서로 빌려 가면서 깎곤 했습니다. 머리집 머리가 아닌 어머니 머리라서 우둘투둘 깎인 아이도 있어서(제 머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서로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눈썹 위로 싹둑 하고 많이 깎는 까닭이라면, 머리가 눈을 찌르기 때문이지요. 훤히 드러나는 자기 이마를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라면, 또 이렇게 훤한 이마를 놀리는 동무들이라면, 사람을 겉모습으로 먼저 살피는 마음이 벌써부터 물들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좋고, 살이 통통하면 통통한 대로 좋으며, 머리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습니다. 서로를 생긴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는 이런 데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아 주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머니가 좋은 뜻에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고 해도, 아이가 바라는 머리 모양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지요.


 〈2〉 아쉬움


 퍽 괜찮다고 느낀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몇 번 다시 넘겨보다가 덮으며 생각합니다. 일본땅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은 여러모로 많이 즐겁고 재미있을 만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한국땅 아이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을 아이들한테 읽혀 주거나 보여줄 한국 어머니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글쎄, 저는 이 그림책을 한국땅 어머니들한테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썩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책을 보면서 곳곳에서 아쉬웠습니다.

 먼저, ‘마빡이’라는 이름이 아쉽습니다.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아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따서 책이름으로 삼고, 책 곳곳에 ‘마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펴낸 일본에서는 《데코짱》이라고만 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고 말하듯 그림책에서도 ‘마빡이’를 말하면 훨씬 잘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하겠지만, 익살꾼 유행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마빡이’가 참 잘 붙인 이름이라 하겠지만,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잘 붙인 이름으로 이어갈까요? 그때 아이들은 ‘마빡이’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번역 그림책을 한두 해만 아이들한테 읽힐 생각은 아니겠지요?

 다음 아쉬움으로, 나오는 사람들 이름. 주인공은 일본 이름인 ‘데코’를 쓰지만, 마을 가게 이름이며 유치원 이름이며, 유치원에서 어울리는 동무들 이름이며 모두 한국 이름입니다.

― 경아, 세은, 대현, 주희, 순화, 고은, 연우, 성은, 가람, 금미, 혜원, 정화

 왜 주인공 아이만 일본 이름을 쓰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모습이며 학교 모습이며 아이들 놀잇감 모습이며 집안에서 할아버지와 부모님들 모습이며 모두 ‘일본 문화와 사회’임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데코’라는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본사람 이름임을 천천히 알아갈 텐데, 갑자기 마을 분위기나 유치원 동무들 이름을 이렇게 한국 이름으로 바꾸어 놓으면 더 헷갈리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이런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얄궂게 쓰고 만 낱말과 말투들. 몇 가지 다듬어 봅니다.

 ┌ 데코의 머리를 잘라 준대요
 └→ 데코 머리를 잘라 준대요

 토씨 ‘-의’를 붙였지만, 책 뒤쪽에 보면 “데코 이마”로 적은 대목이 보입니다. “데코 이마”로 쓰듯이 “데코 머리”로 써야 알맞습니다.

 ┌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 시장 나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이렇게 하면 어때?

 ‘것’을 붙여서 말을 늘여뜨립니다. 요즘 어른이나 아이나 다들 이런 말투를 씁니다. 자꾸자꾸 퍼집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처럼도 씁니다.

 ┌ 자, 귀여운 이마로 변신!
 └→ 자, 귀여운 이마로 바뀌어라!

 ┌ 으, 얼굴 심하다
 └→ 으, 얼굴 너무한다

 요즈음 아이들도 ‘변신합체로봇’을 좋아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장난감을 쥐어 주고 싶어하며, 어떤 말과 글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 거울 속 이마에는
 └→ 거울에 비친 이마에는

 ┌ 언니 주문이 진짜 통했나 봐요
 └→ 언니 주문이 진짜 들었나 봐요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나 몸이 비칩니다. “거울 속에 내가 있네” 하고 말할 수 있으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자면, “거울에 비친 이마”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 마빡이 주문은 점점 퍼져 나가서
 └→ 마빡이 주문은 조금씩 퍼져 나가서

 ‘점점(漸漸)’이나 ‘점차(漸次)’나 ‘차차(次次)’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라 해서 쓰면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이 예부터 써 온 토박이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차츰-자꾸-꾸준히-지며리’ 들이 있음을.

 또다른 아쉬움을 들자면,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는 2000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7년에 번역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합’니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밥상 앞에 앉아 신문이나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데코네 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 일을 돕’습니다. 그 옆에서 데코네 오빠는 ‘자기 아버지처럼 밥상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합니다. 주인공 훤한 이마 문제를 언니가 풀어 준 아침 모습에서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아버지 되는 분은 늦잠을 잔 뒤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을 테고, 양복을 차려입고(이때에도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 주고 옷을 입혀 주고) 회사에 가겠지요. 그 뒤 어머니는 할아버지 수발을 한 다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저녁 찬거리를 사겠지요.

 이야기 무대는 ‘옛날이 아닌 지금’입니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집식구들 모여 있는 자리라든지, 서로 맡은 일이라든지 이렇게 그려야 했을까요. ‘여자 = 부엌데기’, ‘남자 = 바깥양반’이라는 낡은 틀을 그대로 이어가야 했을까요. 한 번쯤은 깊이 돌아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더 있습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에 담긴 줄거리나 느낌이나 뜻이나 즐거움은, 그림책 작품으로 보자면 참 괜찮구나 싶은데, 우리가 굳이 이런 일본 그림책까지 한국말로 옮겨서 펴내야 할까 싶어요. 다양성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일본 그림책을 번역하는 일이란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만한 깊이와 너비를 담은 그림책쯤이라면, 한국 그림책 작가가 우리 터전과 아이들 문화를 헤아리며 스스로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생활 이야기 그림책’조차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요? 출판사에서는 ‘손쉽게 번역하는 길’만 좇을 생각인가요?

 그림책 번역은 다른 번역보다 품이나 시간이 적게 듭니다. 금세 옮겨서 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 하나를 창작하자면, 제대로 된 그림책 하나 빚어내자면, 아이들이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할 만한 그림책 하나 엮어내자면, 그림을 그려내는 분도 짧지 않은 시간을 땀흘려야 하고, 출판사 편집자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편집을 하면서 품을 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게다가, 애써 펴낸 창작 그림책이 두루 사랑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알 길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 그림책 작가가 못 빚을’ 만한 이야기책도 아니요, 우리 둘레에도 참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감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번역하는 한편으로, 또는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는 한편으로,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나 그림책 작가가 되고픈 젊은이를 알아본 다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우리 형편에 맞게 그려 보면 어떨까요?’ 하고 주문을 하고 자료를 대어 주면서 창작을 불태울 수 있게끔 뒷배해 주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먹고살아야 하기에, 먹고사는 길을 헤아려 ‘좀더 많이 팔릴 만한 책’, ‘계약금과 인세 낸 돈을 거두어들일 만한 책’을 빨리빨리 번역해 내는 일은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내서는 우리 아이들 앞날이 밝을 수만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나름대로 꿋꿋하게 발판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지붕을 튼튼히 마련할 수 없잖습니까. 뿌리가 깊은 나무여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부터 보는(아이들만 보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보는 책이 어린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한 나라에 태어나 한 사람으로 커 가는 어린이들 마음에 자그마한 씨앗을 심거나 어린나무를 심어서 앞으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도록 옆에서 손을 내미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한테나 굴뚝같겠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는 ‘좋은 그림책 만 권’이 반가울까요?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날마다 여러 번씩 읽어 줄 ‘수수한 그림책 열 권’은 안 반가울까요? 아이들한테는 더 많은 책보다는 더 많은 부모 사랑이 애틋합니다. 그림책을 엮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좋은 책’을 베풀어 주려는 마음보다는, ‘수수하고 멋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으면서 피와 살이 될 수 있는 밥과 같은 책을 딱 한 가지’ 베풀 수 있으면 좋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나으리라 봅니다.

 돈 많은 부자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가 아니니까요. 책으로 둘러싸인 아이가 행복할까요? 펴내는 책 가짓수가 많은 출판사가 좋은 책을 펴내는 곳일까요? 일본책 이름 《데코짱》을 《마빡이면 어때》로 이름을 고쳐서 낸 이 그림책은, 별 다섯 만점에서 넷 반을 주고 싶으나, 이 책을 번역해 낸 마음씀과 움직임을 헤아렸을 때에는 둘 반만 주고 싶습니다. (4340.10.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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