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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빡이면 어때 ㅣ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마빡이면 어때
- 글ㆍ그림 : 쓰치다 노부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20.)
- 책값 : 8000원
― 왜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아이들한테 읽히나?
: 쓰치다 노부코, 《마빡이면 어때》를 보면서
〈1〉 수수한 이야기 하나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주인공 데코는 일요일 아침 머리를 자릅니다. 어머니가 손수 잘라 줍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뺀 집안 식구들이 아이 머리를 보면서 ‘이마가 너무 넓다’면서 하하호호 웃습니다. 집안 식구들 웃음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웃음일 텐데, 아이로서는 마을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여깁니다. 이리하여 몸이 움츠러들고 모든 일에서 짜증만 쌓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이런 아이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못 헤아렸는지 모르고, 어쩌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어려움을 풀어나가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아이 오빠도 동생을 감싸기보다는 짓궂게 놀리기를 즐길 뿐입니다. 다만, 아이 언니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려 냅니다. 그리하여 아이는 훤하게 드러난 그 이마도 괜찮은 이마가 될 수 있다고, 아니 예전 이마보다 훨씬 괜찮은 이마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 언니는 대단한 요술을 부리지 않았으나, 그 마음씀 하나와 작은 물건 하나로 동생 마음뿐 아니라,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동무들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참 수수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네요.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참으로 잘 잡아챘네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일본사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문득,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이 어릴 적에 겪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일을 겪으며 잔뜩 심통을 부렸는데, 자기 언니가 ‘그 어린 나이로서는 요술을 부렸다’고 느낄 만한 어떤 일 하나를 해 주었고, 그 일 덕분에 여태까지 즐겁게 잘 살아오고 있어서, 언니와 어머니와 식구들과 동무들한테 이런 자기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림책을 빚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형과 제 머리는 늘 어머니가 깎아 주셨습니다. 머리 깎는 집에 갈 돈을 아낄 셈이었지요. 없는 살림에 머리 깎을 돈까지 쓰기란 얼마나 힘들었던가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집 어머니들도 당신 딸아들 머리를 손수 깎아 주었습니다. 머리 깎는 가위는 몇 없어서, 가위 하나로 온 동네 어머니들이 서로 빌려 가면서 깎곤 했습니다. 머리집 머리가 아닌 어머니 머리라서 우둘투둘 깎인 아이도 있어서(제 머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서로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눈썹 위로 싹둑 하고 많이 깎는 까닭이라면, 머리가 눈을 찌르기 때문이지요. 훤히 드러나는 자기 이마를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라면, 또 이렇게 훤한 이마를 놀리는 동무들이라면, 사람을 겉모습으로 먼저 살피는 마음이 벌써부터 물들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좋고, 살이 통통하면 통통한 대로 좋으며, 머리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습니다. 서로를 생긴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는 이런 데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아 주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머니가 좋은 뜻에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고 해도, 아이가 바라는 머리 모양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지요.
〈2〉 아쉬움
퍽 괜찮다고 느낀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몇 번 다시 넘겨보다가 덮으며 생각합니다. 일본땅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은 여러모로 많이 즐겁고 재미있을 만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한국땅 아이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을 아이들한테 읽혀 주거나 보여줄 한국 어머니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글쎄, 저는 이 그림책을 한국땅 어머니들한테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썩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책을 보면서 곳곳에서 아쉬웠습니다.
먼저, ‘마빡이’라는 이름이 아쉽습니다.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아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따서 책이름으로 삼고, 책 곳곳에 ‘마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펴낸 일본에서는 《데코짱》이라고만 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고 말하듯 그림책에서도 ‘마빡이’를 말하면 훨씬 잘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하겠지만, 익살꾼 유행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마빡이’가 참 잘 붙인 이름이라 하겠지만,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잘 붙인 이름으로 이어갈까요? 그때 아이들은 ‘마빡이’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번역 그림책을 한두 해만 아이들한테 읽힐 생각은 아니겠지요?
다음 아쉬움으로, 나오는 사람들 이름. 주인공은 일본 이름인 ‘데코’를 쓰지만, 마을 가게 이름이며 유치원 이름이며, 유치원에서 어울리는 동무들 이름이며 모두 한국 이름입니다.
― 경아, 세은, 대현, 주희, 순화, 고은, 연우, 성은, 가람, 금미, 혜원, 정화
왜 주인공 아이만 일본 이름을 쓰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모습이며 학교 모습이며 아이들 놀잇감 모습이며 집안에서 할아버지와 부모님들 모습이며 모두 ‘일본 문화와 사회’임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데코’라는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본사람 이름임을 천천히 알아갈 텐데, 갑자기 마을 분위기나 유치원 동무들 이름을 이렇게 한국 이름으로 바꾸어 놓으면 더 헷갈리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이런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얄궂게 쓰고 만 낱말과 말투들. 몇 가지 다듬어 봅니다.
┌ 데코의 머리를 잘라 준대요
└→ 데코 머리를 잘라 준대요
토씨 ‘-의’를 붙였지만, 책 뒤쪽에 보면 “데코 이마”로 적은 대목이 보입니다. “데코 이마”로 쓰듯이 “데코 머리”로 써야 알맞습니다.
┌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 시장 나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이렇게 하면 어때?
‘것’을 붙여서 말을 늘여뜨립니다. 요즘 어른이나 아이나 다들 이런 말투를 씁니다. 자꾸자꾸 퍼집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처럼도 씁니다.
┌ 자, 귀여운 이마로 변신!
└→ 자, 귀여운 이마로 바뀌어라!
┌ 으, 얼굴 심하다
└→ 으, 얼굴 너무한다
요즈음 아이들도 ‘변신합체로봇’을 좋아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장난감을 쥐어 주고 싶어하며, 어떤 말과 글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 거울 속 이마에는
└→ 거울에 비친 이마에는
┌ 언니 주문이 진짜 통했나 봐요
└→ 언니 주문이 진짜 들었나 봐요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나 몸이 비칩니다. “거울 속에 내가 있네” 하고 말할 수 있으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자면, “거울에 비친 이마”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 마빡이 주문은 점점 퍼져 나가서
└→ 마빡이 주문은 조금씩 퍼져 나가서
‘점점(漸漸)’이나 ‘점차(漸次)’나 ‘차차(次次)’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라 해서 쓰면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이 예부터 써 온 토박이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차츰-자꾸-꾸준히-지며리’ 들이 있음을.
또다른 아쉬움을 들자면,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는 2000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7년에 번역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합’니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밥상 앞에 앉아 신문이나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데코네 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 일을 돕’습니다. 그 옆에서 데코네 오빠는 ‘자기 아버지처럼 밥상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합니다. 주인공 훤한 이마 문제를 언니가 풀어 준 아침 모습에서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아버지 되는 분은 늦잠을 잔 뒤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을 테고, 양복을 차려입고(이때에도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 주고 옷을 입혀 주고) 회사에 가겠지요. 그 뒤 어머니는 할아버지 수발을 한 다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저녁 찬거리를 사겠지요.
이야기 무대는 ‘옛날이 아닌 지금’입니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집식구들 모여 있는 자리라든지, 서로 맡은 일이라든지 이렇게 그려야 했을까요. ‘여자 = 부엌데기’, ‘남자 = 바깥양반’이라는 낡은 틀을 그대로 이어가야 했을까요. 한 번쯤은 깊이 돌아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더 있습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에 담긴 줄거리나 느낌이나 뜻이나 즐거움은, 그림책 작품으로 보자면 참 괜찮구나 싶은데, 우리가 굳이 이런 일본 그림책까지 한국말로 옮겨서 펴내야 할까 싶어요. 다양성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일본 그림책을 번역하는 일이란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만한 깊이와 너비를 담은 그림책쯤이라면, 한국 그림책 작가가 우리 터전과 아이들 문화를 헤아리며 스스로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생활 이야기 그림책’조차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요? 출판사에서는 ‘손쉽게 번역하는 길’만 좇을 생각인가요?
그림책 번역은 다른 번역보다 품이나 시간이 적게 듭니다. 금세 옮겨서 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 하나를 창작하자면, 제대로 된 그림책 하나 빚어내자면, 아이들이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할 만한 그림책 하나 엮어내자면, 그림을 그려내는 분도 짧지 않은 시간을 땀흘려야 하고, 출판사 편집자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편집을 하면서 품을 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게다가, 애써 펴낸 창작 그림책이 두루 사랑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알 길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 그림책 작가가 못 빚을’ 만한 이야기책도 아니요, 우리 둘레에도 참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감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번역하는 한편으로, 또는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는 한편으로,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나 그림책 작가가 되고픈 젊은이를 알아본 다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우리 형편에 맞게 그려 보면 어떨까요?’ 하고 주문을 하고 자료를 대어 주면서 창작을 불태울 수 있게끔 뒷배해 주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먹고살아야 하기에, 먹고사는 길을 헤아려 ‘좀더 많이 팔릴 만한 책’, ‘계약금과 인세 낸 돈을 거두어들일 만한 책’을 빨리빨리 번역해 내는 일은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내서는 우리 아이들 앞날이 밝을 수만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나름대로 꿋꿋하게 발판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지붕을 튼튼히 마련할 수 없잖습니까. 뿌리가 깊은 나무여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부터 보는(아이들만 보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보는 책이 어린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한 나라에 태어나 한 사람으로 커 가는 어린이들 마음에 자그마한 씨앗을 심거나 어린나무를 심어서 앞으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도록 옆에서 손을 내미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한테나 굴뚝같겠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는 ‘좋은 그림책 만 권’이 반가울까요?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날마다 여러 번씩 읽어 줄 ‘수수한 그림책 열 권’은 안 반가울까요? 아이들한테는 더 많은 책보다는 더 많은 부모 사랑이 애틋합니다. 그림책을 엮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좋은 책’을 베풀어 주려는 마음보다는, ‘수수하고 멋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으면서 피와 살이 될 수 있는 밥과 같은 책을 딱 한 가지’ 베풀 수 있으면 좋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나으리라 봅니다.
돈 많은 부자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가 아니니까요. 책으로 둘러싸인 아이가 행복할까요? 펴내는 책 가짓수가 많은 출판사가 좋은 책을 펴내는 곳일까요? 일본책 이름 《데코짱》을 《마빡이면 어때》로 이름을 고쳐서 낸 이 그림책은, 별 다섯 만점에서 넷 반을 주고 싶으나, 이 책을 번역해 낸 마음씀과 움직임을 헤아렸을 때에는 둘 반만 주고 싶습니다. (4340.10.25.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