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올리는 헌책방 발자취
: ‘추억’을 넘어 ‘현실’로 힘쓰는 헌책방 삶터




 저는 올 사월에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와서 사진책 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었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린이책 도서관’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이 드문드문 있고, 이렇게 외치는 분들 가운데 자기 집 한쪽 방을 트거나 따로 방을 얻어서 그동안 자기가 모아 온 어린이책으로 조그맣게 ‘지역 어린이책 도서관’을 여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 모두 이 조그마한 어린이책 도서관을 제대로 굽어살피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 한다면, 번듯한 건물이나 수십 수백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춘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가까이 찾아가며 책을 쉴 수 있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갈 수 있고, 도서관에서만 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마을마다 다른 문화와 사회를 고이 지키고 가꾸면서 튼튼히 이어나갈 수 있는 터전입니다. 도서관 만든다며 수십 수백 억을 들여 새 건물을 지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 돈을 푼푼이 나누고 쪼개어, 마을마다 크고작은 ‘지역 사랑방’ 구실을 하는 터전이 달세 걱정 않도록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책 도서관도 드물지만, 어른책 도서관도 드뭅니다. 아이들이 쉴 곳도 없지만, 어른들도 쉴 곳이 없어요. 길을 거닐다가 다리쉼을 할 만한 나무걸상 하나 제대로 마련된 곳이 어디에 있을까요? 여름이라면 모르지만, 겨울에는 차가운 돌걸상에 앉을 수 없어요. 플라스틱 걸상도 그렇지요. 인천에도 서울에도 광주에도 대구에도 부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과 밥집과 술집은 있어도, 손바닥만한 동네 쉼터가 없어요. 나무그늘을 느낄 수 있는 텃밭도 마당도 사랑방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또 무엇이 없을까요? 제가 느끼기로는, 시골에서 마을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골목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은 차츰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기 앞서, 동네 새책방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동네 헌책방은, 동네 새책방이 곳곳에 많이 있어서, 동네사람들이 자기 마음밭을 일구는 책을 부지런히 사서 보는 문화가 이루어져 있을 때 비로소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립니다. 한 사람이 자기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서 읽은 책을 기꺼이 내놓아 주어야 헌책방에 헌책 하나 깃들이거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동네 새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습니다. 동네 새책방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참고서와 자습서만 살 뿐입니다. 참고서와 자습서는 책일까요? 학습지는 우리 마음밭을 고이 가꾸어 줄까요? 동네 새책방을 동네 책 문화로 이끌지 않거나 이끌지 못하는 우리들은, 우리가 살가운 보금자리로 여겨 살고 있는 동네를 메마르고 팍팍한 곳으로 나뒹굴게 합니다. 동네에 나무그늘 하나 제대로 없는데, 어찌 동네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거나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을까요? 온통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만 가득한데, 어찌 아이들이 뛰놀 수 있을 테며, 어른들이 막걸리 사발 주고받으며 세상 부대끼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요새 아이들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인터넷게임에만 빠진다고들 합니다만,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이 ‘우리 말 문화를 망가뜨린다’고도 합니다만, 아이들을 방구석으로 내몰고, 아이들이 방구석에서 인터넷게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닥달한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닐까요? 아이들이 뛰놀 골목길이 없는걸요.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추스르고 더 넓은 세상을 헤아려 볼 책을 만날 수 있는 책쉼터인 동네 새책방과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고 있는걸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헌책방을 왜, 어떻게, 언제, 얼마나 자주 다녔을까요? 헌책방만이 아니라 동네 새책방에는 얼마나 자주 찾아갔을까요? 우리는 동네 새책방이나 헌책방을 찾아가면서 어떤 책을 만났고, 어떤 책으로 우리 가슴을 적셨으며, 어떤 책으로 여태껏 느끼지 못한 새로움을 맛보며 세상 톺아보는 눈길을 가다듬었을까요?

 제 어린 날을 뒤돌아봅니다. 제 어린 날은 책하고는 담을 쌓은, 아니 책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날입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있었으나, 월부 책장사한테 사들인 전집 몇 가지가 있었을 뿐이고, 이 책은 우리 형이 보라고 들여놓았습니다. 저는 마냥 골목길 놀이가 좋았고, 골목길 동무들하고 온갖 놀이를 하며, 대나무로 낚싯대 만들어 갯벌로 낚시하러 가기를 즐겼습니다(제 어릴 적까지는 망둥이 낚시를 곧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가 낮에 밥 먹으로 잠깐 돌아온 뒤 다시 저녁까지 뛰어놀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숨바꼭질을 하며 박쥐하고 벗삼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집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전집 책이 불쌍해 보여서, 또 어머니 꾸지람을 듣기도 해서, 또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하기도 했고, 독서부장 맡은 계집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조금 있어서, 더듬더듬 몇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헌책방 추억을 떠올리자니, 그냥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헌책방이 참 많았다”는 것뿐. 어린아이한테는 책이고 뭐고는 눈에 안 들어오고 온통 놀잇감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머리통이 조금 굵어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눈을 뜹니다. 참고서와 교재를 값싸게 사고팔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 아니었음을, 참고서 팔이로 돈을 버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지만, 우리 눈길이 학습지에서 풀려날 때 바야흐로 책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짐을 처음 살갗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독일말 참고서 하나를 사고 책값을 셈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뒷통수를 자꾸 긁어대는 무엇인가 있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학습지 아닌 여느 인문사회과학책’들이 책시렁에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군요. 흠칫 놀랍니다. 아, 지금 내가 셈치르는 이 녀석은 책이 아니구나, 진짜 책이 저기 있구나.

 고개를 떨구고 참고서를 가방에 쑤셔넣습니다. 한 달 뒤,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와, 여섯 시간 남짓 안쪽 구석에 박혀서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후비는 책, 내 가슴을 파고드는 책, 내 모자라고 못난 눈길을 나무라면서 한손을 내밀어 붙잡아 일으켜 주는 책,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날마다 한 그릇씩 고운 목숨을 선사해 주는 책.

 추억이 어릴 틈 없이 현실로 찾아온 헌책방입니다. 그래도 추억 하나 끄집어내 본다면, “좋은 책 하나 손님들한테 건네줄 수 있으면 저희들 보람이지요. 뭐, 우리들이 세상에 이름을 내려고 헌책 파나요?” 하고 살며시 웃던 헌책방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문 사회면 한 줄짜리 기사 ‘궂긴 소식’으로도 실리지 못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시고,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손전화 가게며 빵집이며 술집이며 닭집이며 들어서던 일들 …… 이랄까요.

 서울 청계천과 인천 배다리와 부산 보수동과 전주 홍지서림 골목과 대전 원동 저잣거리와 청주 중앙로 들에는 아직 크고작은 헌책방거리가 드문드문 남았습니다. 서울 골목골목에서 적잖은 헌책방들이 허리띠 졸라매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신촌을 중심으로 열 군데 남짓 헌책방이 점점이 모였습니다. 모두들, ‘추억’으로 끝날 수 없는 ‘현실’로, 우리 삶으로 헌책방 문화를 지키며 가꾸고자 낮은 자리에서 말없이, 다소곳이 힘쓰고들 있습니다.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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