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태일 / 돌베개 / 1988년 10월
평점 :
절판



(ㄱ)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돌베개,1998.11.1.
(ㄴ) 어머니의 길 / 돌베개,1990.11.30.



― 이 책 하나 27 : 쉰아홉 살이 된 전태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와 《어머니의 길》


 

 〈1〉 11월 13일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2003년 10월에 첫 호를 내고 어느덧 48호까지 나왔습니다. 상업만화와 학습만화만이 판치는 우리 나라에서, 아이들과 부모들과 교사들이 자기 마음밭을 다스리는 줄거리를 담은 만화잡지이면서도 정기독자를 4천 사람 남짓 모아서 꾸려가고 있으니 놀라우면서 반가운데, 이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꾸준하게 실려 온 만화로 〈태일이〉(최호철 그림)가 있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해 오다가 1970년 11월 13일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서 숨을 거둔 전태일 님 이야기를 다룬 만화입니다. 이 만화 〈태일이〉는 얼마 앞서 낱권책으로 묶여 1권과 2권이 선보였습니다(돌베개 펴냄, 한 권에 1만 원씩). 《전태일 평전》이 있고, 어린이가 읽는 동화책 《청년 노동자 전태일》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어, 요즘 아이들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쉬 생각해 보기 어려운 1960∼70년대 모습을 그림으로 함께 느끼고 돌아볼 수 있는 만화책이 나왔으니 참으로 뜻깊으며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만화를 이어싣는 잡지 《고래가 그랬어》 살림은 그다지 좋지 못해서, 주주 모으기를 한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http://gyuhang.net)

 오늘은 11월 13일, 바로 전태일 님이 다락방 옷공장이 빼곡히 늘어선 청계천 골목길에서 몸뚱이에 불을 붙이고 숨을 거두면서 ‘노동자가 누려야 할 세 가지 큰 권리’를 외치며 한 줌 재가 된 날입니다. 이때는 전태일 님 나이 스물둘. 그야말로 꽃나이입니다. 꽃나이이지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저물었습니다. 아니, 꽃송이가 뚝 끊어져 버렸습니다.


.. 이미 의사의 진단은 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입원실에서도 별다른 치료를 해 보지 못하고 거의 방치해 두다시피 했다. 저녁이 되면서 태일이는 기력이 탈진해 가는지 잠잠하게 누워 있었다.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듯하더니 눈을 뜨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배가 고프다…….” 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소리인가! 죽어가는 자식의 마지막 한 마디가 ‘배가 고프다’는 말이라니. 에미로서 생전에 잘 먹이고 잘 입히지는 못했을망정 죽는 순간까지도 배고픔을 달래 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  《이소선-어머니의 길》 35쪽


 뚝 끊어져 버리는 꽃송이는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제 꽃잎을 떨구지 않았습니다. 꽃송이가 통째로 끊어져 버렸지만, 고픈 제 꽃잎에 양반을 빨아들이기보다 다른 꽃잎들한테 양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땅에 뚝 떨어지면서도 책갈피 사이에 남는 꽃잎이 아닌, 그 몸뚱이 그대로 썩어가며 땅으로 돌아가 다른 꽃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거름으로 바뀌었습니다.


 〈2〉 15 : 8


 쉰아홉 해. 쉰아홉 살. 1948년에 태어난 전태일 님이 살아 있다면 쉰아홉입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 여느 노동자로 일했다면 머잖아 정년퇴임으로 일터를 물러나야 하는 나이입니다. 전태일 님이 숨을 거둔 뒤, 살아남은 이소선 어머님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물리쳤습니다. 돈으로 아들 주검을 사려는 공권력 앞에서 떳떳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님과 남은 님한테 떨어지는 것은 ‘돈’이 아닌 ‘싸움’.

 이소선 어머님을 살살 달래며 돈으로 꾀려던 이들은, “그 돈을 다 합치면 종로에 있는 노동청 산재 사무소 옆에 있는 빌딩 큰 것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빌딩을 사서 세를 주고, 한 칸만 가지고 식당을 해서 곰탕이며 도가니탕을 팔면서 사람을 고용하면, 나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자식 대에까지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식당에 노동청 직원들이 매일같이 단골로 다니면 장사도 잘 될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어머니의 길, 50쪽)”는 이야기처럼, 이 나라 모든 노동자한테 고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삶터보다는, 한두 사람만 떵떵거리며 배불리 먹고살 수 있는 평등하지 못한 삶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할까요. 어두운 세상에 한 떨기 꽃잎일망정 거름으로 제 몸을 바친 한 사람 뜻이 이 땅에 스며든 지 서른하고도 일곱 해째 되는 지금 이 세상은. 지금 이 세상은 얼마나 ‘모든 일꾼이 고르게 권리를 누리며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아름다운 세상일까요. 돈이 적다고 권리를 앗기지 않으며, 힘이 없다고 권리가 밟히지 않으며, 이름이 없다고 권리가 내동댕이쳐지지 않는,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놀고 먹고 자고 껴안고 말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논밭이나 텃밭을 가꾸는 한편, 맑은 바람과 따순 햇볕을 쬐면서 지낼 수 있는 세상인가요.


.. 끝날이 인생에 종점이겠지.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아이롱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걸(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사나이 큰 포부를 가지고 인내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지만 정히 못 견디겠다 ..  (1967년 3월 18일)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09쪽


 하루 열다섯 시간을 괴롭게 일하는 노동자가 이 땅에서 사라졌을까요. 참말 사라졌을까요. 관공서와 학교와 큰 공장부터 해서 ‘주 5일노동’을 펼칩니다만, 작은 공장과 작은 일터 노동자들은 얼마나 ‘주 5일노동’ 혜택을 받고 있을까요. 한 주에 닷새 일하면서도 누구나 고르며 알뜰한 권리를 누리며 일한 대가와 대접을 받고 있는지요.


 〈3〉 살아가는 이 몫


 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퍽 따뜻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따뜻했습니다. 한낮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긴소매 입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에 등에 땀이 송송 맺힙니다. 11월을 넘겼는데. 12월이 코앞인데. 올겨울에는 눈송이 구경 한 번 못하고 지나갈지 모르겠습니다.

 미친날씨(기상이변)라고 할 수 있지만, 날씨가 미쳤다면 왜 미쳤을까요. 우리들은 가만히 있는데 날씨만 미칠까요.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 나날이 넓어지는 찻길,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물건들, 새로 쏟아지는 물건 못지않게 넘쳐나는 쓰레기. ‘쓰레기를 줄이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이지만, ‘무엇이 쓰레기이고, 쓰레기 줄이는 삶이란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며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보기 어렵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번화거리를 빼고는 걷는 사람 구경하기 힘듭니다.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기름 먹는 탈거리로 움직이는 우리들입니다. 여름에는 추운 일터, 겨울에는 더운 일터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터, 여름에는 춥고 겨울에는 더운 일터에서 일하는 분들도 ‘노동자’입니다. 이름은 똑같이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정규직’이고 어떤 이는 ‘비정규직’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노동자 권리,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이 자기가 일한 만큼은 알맞게 대접을 받아서 배곯지 않을 뿐 아니라 골고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낡고 허름한 옷을 입어도 똑같은 사람으로 지낼 권리, 가방끈이 짧아도 새 직원 뽑는 자리에서 푸대접을 안 받을 권리, 부자 동네 아닌 서민 동네에 살아도 막개발과 재개발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삶터를 고이 지키며 살아갈 권리, 남자이건 여자이건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똑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권리, 어른이라고 젊은이라고 늙은이라고 어린이라고 어느 한편이 따돌림받거나 업신받지 않을 권리, 무기를 적게 가지거나 안 가지고 있어도 무기 많이 가진 나라한테 시달리지 않을 권리 …… 들을 우리들은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들은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지만 마땅히 못 누리고 있는 권리를 되찾으며 함께 누리고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고 있나요. 마음 기울이기를 넘어서 얼마나 땀을 흘리며 두 손 맞잡으며 움직이고 있을까요.


.. 동지는 모두 5권의 노트에 일기를 남겼다. 그런데 분식 직후, 조선일보사에서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며 가져갔는데, 일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예리한 면도칼에 의해 잘려나가 없어져버린 채 되돌아왔다. 이후 동지의 가족은 1년 여에 걸쳐 없어진 일기를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게다가 1978년 어느 날에는 동지의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일기장 3권을 집을 뒤져 도둑질해 간 일도 일어났다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머리말


 2007년 우리 세상을 헤아리면서 1970년 우리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자,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다시 펼쳐 봅니다. 옆에 나란히 꽂아 놓고 있던 《어머니의 길》도 다시 펼쳐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ㅇ씨가 낸 《사회부 기자》(1977)라는 책에 실린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 나는 우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일기장을 어디서 찾아낼 수 없을까? 그것만 찾아낸다면 통쾌한 스쿠프가 될 텐데…. 뭔가 있긴 있을 텐데….” 나는 추리, 상상 속에서 혼자 특종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든 상상이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 말이다. “여기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취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주위 상황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나는 부의금 방명록을 먼저 체크해 보기로 했다. 누가누가 와서 얼마씩이나 내고 갔는가부터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시체실 한쪽 테이블에 청년이 두 명 앉아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명단을 쭉 훑어봤으나 이렇다 할 지명인사는 없었다. 명단을 모두 막 훑어보고 난 순간, 그 방명록이 낡은 대학노우트였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나는 섬뜩해졌다. 청색 비닐 커버의 대학노우트. 직감적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다를까. 대학노우트를 한 장 펼쳐보니 무언가 잔뜩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틀림없다.”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뭐요?” 나는 부의금 접수를 맡은 20대 청년에게 귀엣말로 슬쩍 물었다. 주위에는 동료 기자들이 쉴사이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일이 일기예요.” “어?” 나는 무조건 그 노우트를 움켜쥐었다. “잠깐 좀, 봅시다.” “누구신데요?” “나가 보면 압니다.” 부의금이 적힌 대학노우트를 코우트 호주머니에 움켜넣고 내가 먼저 앞장을 서 시체실을 나왔다. 그 청년은 죽은 태일 군의 사촌형이라고 했다. “태일 군의 집으로 갑시다!” 짚차는 급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청년은 얼떨결에 차에 올라탔으나 자신이 탄 차가 신문사 짚차란 사실을 미처 몰랐던 모양이었다 ..  《사회부기자》 41∼43쪽


 조선일보 사회부기자 ㅇ씨는 전태일 님이 살던 집까지 찾아가서 남은 일기장까지 손에 얻습니다. 뒷날 일기장이 전태일 님 남은 식구한테 돌아왔지만 잘려진 곳이 있는 채 돌아왔다고 합니다. 누가 어떤 일을 했을까요? 사라진 글쪽에는 무슨 이야기가 실려 있었을까요?


..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 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 저 착하디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요.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137쪽


 일기장은 칼질이 되기도 하고 도둑맞기까지 했습니다. 아니, 일기장에 앞서 전태일 님은 벌써 흙으로 돌아가고 없습니다. 일기장이 칼질이 되고 도둑을 맞았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 넋과 뜻을 잊지 않습니다. 더욱 깊이 새깁니다. 땅에 뚝 떨어지고 만 꽃송이인 전태일 님은 세상에 없어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떠난 이가 못 다한 일을 이어가고 모자라다고 해도 꿋꿋하게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헌법이 있고, 노동법이 있고, 평등권이나 자유권이니 기본권이니 생존권이니 있습니다. 종이에 또렷하게 새겨진 법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법이 있으니 나라에서는 무엇보다도 나라에서 세운 법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얼마나 ‘종이에 적힌 법’을 지키고 보듬고 있을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법이 없더라도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온힘을 쏟아야 옳습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다고 해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부리는 일이 없어야 하고, 헌법이 없어도 누구나 고른 권리를 두루 누릴 수 있어야 하며, 기본권이나 평등권이라는 말이 없어도 누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들볶거나 등처먹는 일이란 없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조퇴를 하는 사람한테도 똑같은 일삯이 주어져야 합니다. 나어린 일꾼이라고 해서 나이든 사람과 견주어 반토막 일삯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름난 작가라고 글삯을 더 챙겨 주고 이름없는 작가라고 글삯을 떼어먹는 일이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줌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 전태일 님이 외친 목소리는 틀림없는 ‘노동 3권’입니다. 그러면 이 노동 3권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 세 가지 권리일까요. 이 권리를 누려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 우리 대표들은 노정국장실로 갔다. 노정국장한테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이냐고 다그쳤다. “여러분의 요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주장에는 얼버무리기만 했다.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시오.” “이렇게 집단적으로 와서 행동하는 것은 불법이니 빨리 철수하세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 무턱대고 쫓아낼 궁리만 했다. 그 말에 욱하고 화가 뻗쳤다. “이봐요, 노정국장! 당신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근로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 아니요? 감독소홀로 근로자가 죽어나자빠져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근로자들이 여기저기에서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회사에서는 해고시키고 폭력배를 동원해서 사람을 두들겨패고, 상급노조에서는 제명이니 유령노조니 하는 야비한 수법으로 탄압을 하고 있는데, 노동청에서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요? ..  《어머니의 길》 308쪽


 살아남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인 이소선 어머님은 1970년 11월 13일 그날부터 2007년 11월 13일 오늘까지도 꼿꼿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한 줌 재가 된 전태일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으로 남긴 말, “가냘픈 생명체가 계속 병들어가니까, 하루하루 병들어가는 것을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안 보이는 벽살이 우리를 가두고 옥죄고 있어서 그 단단한 벽을 허물기 위해 나는 작은, 아주 작은 바늘구멍이라도 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어머니의 길, 32쪽)”를 지키면서. 아니, 이소선 어머님 스스로 이 땅에서 전태일 님처럼 세상을 부대끼며 살다 보니까, 당신부터도 ‘작은 구멍’ 하나 낼 수밖에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꺼번에 내는 큰 구멍이 아니라, 작은 사람들이 아주 조그맣게 겨우 내고 있는 구멍 하나를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어깨동무하면서 낼 때 비로소 우리 삶터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깨달았기에. (4340.11.13.불.전태일 님 죽은 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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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전민조 사진집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 사진 : 전민조
- 펴낸곳 : 눈빛(2007.10.6.)
- 책값 : 2만 원







 이 책 하나 26 ― ‘기다림’으로 담아낸 한국사람 ‘얼굴 사진’
 : 전민조 사진, 《한국인의 초상 1969-2007》



 〈1〉 우리 동네 사람들


 아침에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라는 작은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 펼친 책에는, “의사는 병 치료에 많은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력이 강한 농작물을 키우는 흙 만들기나 건강한 사람이 자라기 위하여 뱃속 밭 관리방법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69쪽)”라는 이야기가 보여서 밑줄을 긋습니다. 의사들은 병원에서 ‘병을 고치는 법’을 알아서 아픈 이를 다스립니다. 아픈 사람들한테 무엇무엇은 먹으면 안 되고 무엇무엇을 먹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이 먹으면 좋을 무엇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길러지는지, 아픈 사람들이 안 먹어야 할 무엇무엇은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길러서 얻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 인부, 시청앞, 서울, 1972.4.19.


 어젯밤, 동네 구멍가게에서 보리술 두 병과 우유 한 통과 라면 두 봉지를 삽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척척 물건셈을 해냅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까만 비닐봉지에 담으려 하십니다.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아, 비닐봉지에 안 담으셔도 돼요. 가방에 넣어서 들고 가면 돼요.” “다 들어갈까?” “그럼요, 안 들어가면 안고 가면 되고요.”


― 해군 장교, 해군 대구함, 경남 진해, 1971.10.7.


 지난 토요일부터 날마다 도서관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셋이 어울려서 이곳으로 옵니다. 아이들 사는 집은 도원역 뒤쪽 숭의동. 아버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고,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신다고 합니다. 동네에 함께 뛰어놀 또래 동무가 드뭅니다. 여태까지는 셋이서 어떻게 지내 왔을는지. 도서관 전기세 고지서를 살짝 넘겨다보더니, “우와, 어떻게 이렇게 조금밖에 안 나와요? 우리 집에는 삼만 원도 넘게 나오는데.” “우리 집은 오만 원.” “우리 집은 칠만 원.” “우리들(도서관에서는)은 세탁기도 안 쓰고 냉장고도 안 쓰고 텔레비전도 안 써서 그래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두 대인데.” “우리 집은 세 대.”


― 농부, 전북 남원군 대산면 풍촌리, 1982.7.14.


 저녁나절 찾아오는 동네 동무가 있으면, 가끔 도원역 맞은편 2층에 자리한 닭집에 놀러갑니다. 예전에 피시방을 하던 자리에 들어오셨는데, 피시방 시설을 거의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혼자서 부엌일을, 아저씨는 배달일을 합니다. 배달은 늘 밀립니다. 배달이 밀리는 까닭은 하나. 아저씨가 길눈이 많이 어두워, 한 번 배달을 나갔다 하면 소식이 영……. 그래도 주문은 끊이지 않습니다. 늦쟁이 닭집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맛있게 즐깁니다.


― 농촌운동가, 서경원, 전남 함평, 1986.6.13.


 한때 은퇴를 했다가 올여름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신 헌책방 할아버지 한 분 나이는 일흔아홉. 곧 여든입니다. 할아버지는 해방 또는 한국전쟁 즈음부터 헌책을 만져 오셨지 싶습니다. 당신 지난날을 아직 여쭙지 않고 책 구경만 했는데, 다음에는 당신 살아온 이야기도 여쭐까 합니다. 이웃한 헌책방 할아버지는 일흔일곱. 두 분은 일을 마칠 저녁나절이면 소주잔을 부딪히며 지나온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해주에서 나고 자란 일흔일곱 헌책방 할아버지는 당신 옛 고향을 아직도 또렷하게 떠올리면서 술잔을 기울입니다.


― 귀순자, 이웅평, 광화문, 서울, 1983.4.10.


 헌책방 할아버지와 견주면 앳된 아가씨였던 ㅇ서점 아주머니도 스물을 얼마 안 넘긴 나이부터 헌책을 만졌습니다. 그때는 앳된 아가씨였겠지만, 몇 해만 더 지나면 벌써 예순 할머니 나이가 됩니다. 배다리 골목집을 뚫으려는 산업도로 막는 일을 하랴, 책방 살림 돌보랴,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삶이 바로 고운 문화예요’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랴, 하루 한때도 몸 가붓이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는 가슴을 봐야지요. 가슴이 살아 있는지 봐야지요.” 하는 헌책방 아주머니는 우리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좋은 이웃.


― 전경, 신민당 개헌대회, 전주, 1986.6.1.


 조금 앞서 무슨 검사실이라면서 전화가 옵니다. 말끝에 ‘-요’를 붙이기는 하지만, 저기 높디높은 하늘 끝자락에서 낮디낮은 땅 밑바닥을 내리깔면서 읊어대는 목소리입니다. ㅈ일보 기자가 저를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했는데, 그 건 때문에 출석을 해야겠다는 연락입니다. 히유, 이 사람들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좋지만, 어쩌고저쩌고를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는지. 사람을 깔보는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로 들으면서, 이 아저씨는 아침점심저녁으로 어떤 밥을 먹고, 누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으며, 자기 밥상에 차려진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가를 한 번이라도 느낀 적이 있는가 궁금해집니다.


― 법조인, 이회창, 이마빌딩, 서울 종로구, 1996.4.13.


 ㅅ시장에 순대집이 있습니다. 저잣거리마다 한두 군데쯤은 꼭 있는데, 꽤 괜찮구나 싶어서 틈틈이 찾아가는데, 엊그제는 이곳에서 순대국을 한 번 먹어 보았습니다. 순대는 괜찮았으나 순대국은 으으으. 다른 집 순대국보다는 덜 맵고 짰지만(위에 얹은 고추장범벅을 많이 덜어내기도 했으나), 혀와 위에 몹시 자극이 되어 탈이 나는 바람에, 저녁나절 물똥을 누느라 똥구멍이 지지리도 아픕디다. 집에서 우리끼리 해 먹을 때는 혀며 위며 자극이 하나도 안 되는 부드러운 국이나 찌개를 즐기지만, 밖에서 사먹어야 하는 국이나 찌개는 도무지 손을 못 대겠어요. 두렵습니다.


― 수녀, 복선수녀, 샤미나드의 집, 인천 부평구, 2007.7.8.


 서울에서 지낼 때 찾아가던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는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았습니다. 손님 뜸하거나 가게문 닫을 즈음 찾아가면, 혼자 소주 한 잔 드시다가, ‘어, 잘 왔어요!’ 하면서 옆 구멍가게에서 삶은달걀 하나 사 와서 건네면서 ‘한 잔 받으셔요’ 하고 내밀어 주십니다. 자전거집 아저씨는 당신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자전거 연장과 새 연장이 함께 있었는데, “같은 연장인데도 옛날 게 더 쓰기 좋고 잘 들어요.” 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뒤 찾아가는 이 동네 자전거집 아저씨도 ‘자전거 손질 삯’을 안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 “오늘은 내가 손질해 주지만,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집에서 혼자 해 보세요.”


― 정육점 주인, 김영기, 서울 금천구 독산동, 2006.2.11.


 배다리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길목에 과일장수가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틈틈이 이곳에서 능금이며 배며 땅감이며 사서 먹었는데, 어느 날, 떨이라며 한 바구니에 2000원에 내놓은 능금을 살 때 보니까, 젊은 일꾼이 곯은 능금 몇 알을 슬그머니 끼워넣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맨들맨들 좋아 보이지만, 속에는 곯은 능금을 숨겨 놓다니! 어차피 이 능금을 사 가는 사람이 집에 가면 뻔히 볼 텐데, 이렇게 눈가림을 하면 그 집에 다시 찾아가고 싶을까나.


― 청소부, 정진석, 남구로역 앞, 서울, 2006.2.18.


 동네에서 옷집을 꾸려 온 ㅂ아주머니는 몸이 아파서 일을 오래도록 쉬었습니다. 거의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살아난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아, 머리카락이 곱슬이 되고 몸 이곳저곳 많이 달라졌다는데, 그래도 새 목숨을 얻은 듯이 즐겁다며, 한동안 놓고 있던 옷짓기를 다시 하고픈 꿈을 꾸십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를 부르시더니, “우리 집에 나팔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아침에 한 번 놀러오세요. 저기 개코막걸리 옆집 알지요? 문 똑똑 두드리면 되니까, 와서 꽃도 구경하고 차도 한 잔 해요.” 하고 말씀합니다.


― 위안부 출신 할머니, 길원옥, 주한일본대사관 앞, 서울, 2007.8.29.


 지난 일요일, 사진찍는 전민조 님이 도서관에 찾아왔습니다. 전민조 님은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도 사진기 한 대 들고 도원역 뒤편, 숭의동 달동네를 천천히 거닙니다. 빛빛이 고운 담벽과 빨래와 길에 내놓아 앉는 걸상 들을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그러다가 감 따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만납니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미안하니까 “감 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쭈그렁 늙은이는 안 찍었지? 찍지 마.” 하면서 웃던 아주머니는(할머니였다고 할까. 손주를 보셨을 테니), 당신들이 따던 감을 몇 알 나누어 주십니다.

 











 〈2〉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사진책 《한국인의 초상》을 가만히 넘기며,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떤 얼굴일는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웃한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는지 헤아립니다. 저도 이 동네 분들한테는 살가운 이웃으로 느껴질는지, 그냥 머리 길고 고무신 꿰는 젊은 양반으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만, 지난주 성당 나들이를 하던 날(입교자 신고), 수녀님이 손을 내밀며 “골목길 다니며 사진 많이 찍으시더니, 드디어 우리 성당에도 찾아오셨네. 반가워요.” 하고 활짝 웃으십니다. 언제 제 모습을 지켜보셨는지, 또 그 모습을 잊지 않고 계시는지. “내 이름은 예쁜데 내 얼굴은 못생겼다고들 해요. 하지만 이름은 예쁘니까 잘 기억해 주세요.” 하고 당신을 소개하는 수녀님은 얼굴 주름으로 미루어보건데, 예순은 훌쩍 넘은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글서글하며 시원시원한 이 수녀님을 보고 누가 ‘못생겼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동네 마실을 하면서 수녀님을 볼 때마다 느끼건데, 이분 가슴을 들여다볼 줄 안다면, ‘예쁜 이름이 그냥 예쁜 이름이 아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텐데.


.. 대상 인물이 자기 안에서 소화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  〈추천글 - 한정식〉


 수녀님은 저 같은 사람들이 성당 문을 두드려 주기를 기다리셨을까요. ‘이곳에 오면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많이 얻을 수 있으니 어서 와요’ 하고 잡아당기지 않고, 지긋이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들이 손수 찾아가면,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웃으면서 맞아들이실까요.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기다림이란, 지켜봄하고 한 동아리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켜봄이란 언제나 곁에 있는 일, 곁에 머무르기만 하지 않고 감싸거나 보듬거나 돌보는 일, 마음으로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고 애틋하게 손길을 내밀어 주는 일하고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나이를 먹었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직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사진 찍는 일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진을 찍고 있다가 문득, 문학ㆍ그림ㆍ음악ㆍ연극 등과 사진을 사회적 성과물로 비교해 봤을 때, 사진이 세상을 이미지와 콘텐츠로서 한 그릇에 담는 데에 무엇인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사진을 화랑 벽에 걸기 위한 아름다운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았는가 ..  〈책 뒤에 - 전민조〉


 길을 걷다가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을 때는 살며시 옆으로 돌아가서 걷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걷는이를 만나면 딸랑이를 울리지 않고 조용히 빠르기를 늦추었다가 옆으로 비껴가기. 자가용을 몰고 골목길을 가다가 사람이나 자전거가 보이면 빠르기를 늦추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세탁기를 안 쓰고 손빨래 하기. 자가용도 대중교통도 안 타고 걷거나 자전거 타기. 내가 읽었던 좋은 책을 이웃사람한테 선물해 주기. 집에서 손수 지지고 볶고 삶거나 무치거나 마련한 먹을거리를 옆집에 찾아가서 맛보라고 한 접시 내밀기. 이런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학교 시험성적이 높거나 낮거나, 고등학교만 마쳤거나 대학교를 마쳤거나, 얼굴이 예쁘다고 할 만하거나 못생겼다고 할 만하거나, 돈많아 떵떵거리거나 돈없어 쩔쩔매거나, 힘이 세거나 여리거나, 곱고 깨끗하게 차려입거나 대충 아무렇게나 차려입거나, 모두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일들도 기다림일까요. (4340.1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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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일터인 동네 도서관에 놀러오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묻습니다. “남자가 왜 머리를 길러?” 어제는 한 아이가 묻습니다. “아저씨는 면도 왜 안 해요? 면도 좀 해요.”

 우리 나라를 빼고 ‘남자인데 왜 머리를 길러?’ 하고 묻는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린아이들이 ‘남자는 머리가 짧게, 여자는 머리가 길게’로 생각하도록 하는 나라는 어디에 또 있을까요. ‘남자는 수염을 싹 밀어서 턱과 코 밑이 맨들맨들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나라는 어디에 더 있을까요.

 이제 아이들한테 제가 묻습니다. “머리가 길면 남자가 아닌가? 여자는 왜 머리를 기르지? 수염은 왜 깎아야 할까? 수염을 안 깎으면 안 될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로 나선 이들은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여론몰이와 얼굴밀기 말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신문 구석자리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를 찾고, 인터넷으로 끄적이며 훑습니다. ‘여성 정책’이라고 적힌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어느 후보나 여성 정책은 ‘아이 돌보기’ 이야기에서 맴돕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성 몫일까요? 교육이나 문화 몫이, 남자와 여자가 아닌 모든 사람이 마음 기울일 몫이 아닐는지요. 정책이나 공약을 곰곰이 살펴보노라면, 문화를 말하는 후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살림집에서 꾸려 가는 여느 문화’를 말하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예전에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나는야 서민 대통령’이라고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서민으로 이 땅에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서민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요. 서민으로 살 생각이 없기 때문일까요. 신동엽 시인은 1968년 11월에 쓴 〈산문시 1〉에서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막걸리병을 자전거 꽁무니에 싣고 시인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대통령, 소주병을 자전거 짐받이에 묶고 저잣거리 좌판을 하는 할머니네 집에 놀러갈 수 있는 공무원, 줄넘기와 축구공을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 골목길 아이들 놀이터에 놀러갈 수 있는 교사, 이런 사람을 바라는 사람은 현대 사회를 거스르는 바보일는지.

 《여성○○》, 《레이디○○》, 《우먼○○》를 비롯해 책방 잡지칸을 울긋불긋 수놓고 있는 여성잡지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즈음 어떤 이야기로 기사를 채우고 있을까요. 여성잡지를 보는 분들한테는 아무나 대통령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여성들이 마음둘 곳은 몸치레 얼굴치레 집치레 밥치레 밤놀이 들이니, 나라일과 동네일은 바깥양반한테 맡겨 두면 넉넉할까요. 아이들은 어머니를 따라 머리집에 놀러갈 때 어머니들 보는 여성잡지를 함께 넘겨다봅니다. (4340.1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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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지 ‘서울로! 서울로!’ 가는 세상입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랐어도 지역에서 문화밭을 일구며 가꾸려는 사람보다는, ‘서울에 가서 이름을 날린다’든지, ‘서울에서 큰돈을 번다’든지, ‘서울에 사람이 많으니 이 무리에 섞이면 힘(권력)을 얻을 수 있다’든지 하면서, 자기 고향땅을 등집니다. 젊었을 때에는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서울에서 복닥복닥 부대끼며 세상을 배운다고도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풋풋한 이십 대 젊은 날을 서울에서 살았군요. 참으로 서울에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서울과 제법 먼 부산이나 대구나 대전쯤만 해도 젊은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천에는 젊은이가 적습니다. 젊은 나이에 인천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든지, ‘어딘가 문제 있다’든지, ‘사고라도 쳤다’고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산타는자전거로만이 아니라, 동네에서 생활자전거 문화를 조촐하고 조용하게 나누려는 모임이 터를 잡기 어려워요. 하지만, 누가 나서서 이런 모임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만들자고 하면서 세 사람이 뭉쳐서 작은 모임을 열었고, 이제는 제법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쌀쌀해지는 날씨에 자전거는 집에 놓고 모임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처음에는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두 번째로는 보리술을 마시러 갑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찾아간 보리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모두들 ‘윽, 이게 뭐야?’ 하고 술잔에서 입을 뗍니다. 보리술에 물을 타도 장난이 아니게 탔고, 김이 빠져도 보통이 아니게 빠졌기 때문입니다. 술집 일꾼을 불러다가 따져도 ‘새 술인데요?’ 할 뿐. 그렇다면, 서른 마흔 쉰 나이까지 살아온 모임 분들이 여태껏 술을 마셔 오면서 보리술 맛도 모른다는 소리일는지.

 즐거웠던 모임이 확 나빠지려고 합니다. 지역에서 지역사람한테 장사하면서 어째 이럴 수 있는지. 그러나 ‘술은 알맞게 마시라’는 하늘 뜻인지 모를 일. 이제 그만 마시고 집으로 가라는.

 한 해 두 해 세 해, 이렇게 술을 마시는 가운데 술맛이 혀에 달라붙어, 냄새만 맡아도, 눈으로만 보아도 술맛이 어떻겠구나 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자전거를 한 해 두 해 세 해, 이렇게 타는 가운데 모두들 손떨림이 줄고 안전하게 즐기게 됩니다. 요즈막에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백 가지 친구 이야기》, 《해와 같이 달과 같이》, 《황새울 편지》 들을 꼭 세 번 되읽었습니다. 앞으로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까지 거듭 읽으면, 줄거리며 글쓴이 뜻이며 더 짙게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며 그려지겠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소개글을 쓸 때, ‘한 번 더 읽어 보고 쓸까?’ 싶어 한 번 더 읽고, ‘두 번 더 읽으면 좀더 나으려나?’ 싶어 두 번 더 읽고, ‘내 안에서 조금 더 삭이자’ 싶어 세 번 더 읽습니다. 이야기문이 솔솔솔 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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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 제법 따뜻했습니다. 아니, 더웠습니다. 그래서 긴팔 웃도리를 벗고 가방에 끼워둔 채 돌아다녔습니다. 반소매 차림으로.

 오늘 낮, 어제만큼 덥지는 않지만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도서관에서 손 비비며 글을 쓰다가 옥상에 올라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파리 구경을 합니다. 얼어죽거나 겨울잠을 자야 할 파리들이 한두 마리 날아다닙니다.

 그제 담가 놓았던 긴바지 두 벌을 빱니다. 찬물 빨래라 손이 시리지만, 얼어붙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차영차 빨아서 햇볕에 널어 둔 다음 도서관으로 내려와서 글쓰기를 다시 하는데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보일러를 돌리면 좋을는지, 아니,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망설입니다. 올겨울은 영 도 아래로 떨어질 날이 있을까요?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라는 책을 읽다가 “흙이 건강하면 벌레나 해충이 끼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에 안 걸리듯 건강하지 못한 흙에 병충해가 붙는 것입니다.(57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지금 우리 삶터는 얼마나 튼튼할까요. 우리 나라 날씨는 얼마나 날씨다울까요. 이런 날씨를 느끼면서(또는 아예 안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몸과 마음은 얼마나 튼튼할 수 있을까요. (4340.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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