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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문학 - 모두가 일구고 누구나 누리는 너른 마당
강경주 외 지음 / 곳간 / 2024년 12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4.1.
인문책시렁 410
《살림문학》
김대성 엮음
강경주와 13사람
곳간
2024.12.31.
열네 사람이 열네 삶으로 보내는 하루를 추스른 《살림문학》을 읽습니다. 열네 사람은 우리말을 쓰는 나라에서 살고, 경상도 어디쯤에서 지내지만, 열네 가지 삶입니다. 열네 사람이 한마을에 살더라도 열네 삶이게 마련이고, 한자리에 모여서 배우거나 이야기하더라도 열네 목소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 다른 삶인 줄 자꾸 잊어갑니다. 배움터를 오래 다닐수록 차림새와 매무새뿐 아니라 마음까지 닮아가고, 일터에 오래 머물수록 솜씨와 눈길뿐 아니라 몸짓까지 닮아갑니다.
다만 아무리 닮더라도 다르지요. ‘닮다’는 ‘같다’가 아닌, ‘담되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배움터나 일터에 오래 머물수록 ‘닮아가는 모습’을 떨치고서 ‘나답게’ 나아가는 길을 그리곤 합니다.
말끝 하나가 다를 뿐이어도, 바로 낱말 하나부터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스스로 바꾸는 삶과 배움길입니다. 어느 곳(학교)만 배움터일 수 없습니다. 집부터 배움터이고, 마당과 마을과 골목이 배움터이며, 들과 숲과 바다와 하늘이 온통 배움터입니다. ‘학교·수업·강좌’라는 배움터에 얽매일수록 오히려 못 배우는 굴레입니다. 집과 마을과 들숲바다라는 삶터를 품을수록 스스로 배우는 길입니다.
고작 온해(100년) 앞서만 해도, 임금과 글바치와 벼슬아치와 나리를 뺀, 온나라 99.9푼에 이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집과 옷과 밥과 말과 마음을 스스로 지었습니다. 따로 배움터를 안 다닌 수수한 사람들은 손수 집밥옷을 지었고, 말과 마음을 지으면서, 아이한테 사랑이라는 씨앗을 물려주는 길을 걸어왔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은 손수 집밥옷을 짓는 사람이 0.1푼이 될 동 말 동하면서, 말과 마음을 손수 짓는 사람도 0.1푼이 될까 말까 합니다.
《살림문학》에 흐르는 글은 대수롭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를 스스로 추슬러서 적기에 대수롭습니다. 우리 삶은 다른 글바치(기자·작가)가 귀담아듣거나 눈여겨보거나 담아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 스스로 글살림꾼으로 서면서 손수 적으면 됩니다. 요즘 잘못 퍼지는 말 가운데 하나는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인데,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가장 맛있는 밥이란, 손수 지은 푸성귀와 낟알과 열매를, 손수 거두고 손질해서 손수 차려서 누리는 밥”입니다.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여기면, “남이 쓴 글과 책”이 우리 삶을 빛내는 길잡이라고 잘못 여기고 맙니다. 우리 삶에 길잡이로 삼을 글은 “훌륭한 어른이 쓴 글과 책”이 아닌 “우리가 손수 사랑으로 일구어서 스스로 쓴 글”입니다. 손수 밥을 짓는 길을 열 노릇이고, 손수 옷을 짓거나 기우는 살림을 익힐 노릇이고, 손수 집을 짓거나 손보는 살림을 배울 노릇입니다. 글쓰기와 책쓰기도 누구한테서 따로 배우기보다는,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배우고 익히고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살아가는 하루란, 늘 지켜보고서 다시 기다리는 오늘이지 싶습니다. 목빠지게 기다리더라도 오히려 안 오는 듯싶고, 문득 잊어버리면서 하루하루 살림을 이으면 어느새 눈앞에 마주한다고 느낍니다. 어느새 겨울이 저물듯, 어느덧 셋쨋달로 넘어오듯, 이윽고 넷쨋달로 접어들듯, 차분히 흐르는 해와 바람을 맞이하면, 모두 풀리면서 바뀌어 갈 테지요.
서두르기에 섣부르고 어설픕니다. 느긋하기에 좀 느릴 수 있지만 느슨하면서 넉넉하게 살림을 짓습니다.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잠자리에서 꿈씨앗으로 삼을 글입니다. 잘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 작은씨앗으로 삼아서 작은살림을 가꾸는 작은손길을 누리면 넉넉할 책입니다.
살림하는 이는 글 쓸 시간이 없고, 글을 쓰는 이는 살림을 꾸릴 시간이 없다 여겨왔지만 손수 살림을 꾸리는 이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대성/8쪽)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거북이가 차도를 건너는 것부터 비정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차 안의 어색하고 불편했던 침묵이야말로 너무나 비정상이었다. (이지원/41쪽)
글은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지나온 경험과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것이었다. (공윤경/93쪽)
달리기가 힘들었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 보니, 나만의 속도가 아닌 강요된 속도와 경쟁, 대열 이탈에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박진이/163쪽)
서면에서 전포동 산을 넘어 문현동까지 걸어서 다니거나 돌아서 다니며 자주 걷던 어린 시절도 보냈다. 약하게 태어나 자주 앓고 아팠고 누워 있었던 (더) 어린 시절을 났지만 그렇게 자주 뛰어다니며 건강을 만들어 간 게 아닐까 싶다. (노연정/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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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문학》(김대성·강경주와 12사람, 곳간, 2024)
막연하고 두루뭉술하게 다가올 때가 많으니
→ 두루뭉술할 때가 잦으니
→ 두루뭉술하곤 하니
18쪽
저마다가 꾸리는 살림엔
→ 저마다 꾸리는 살림엔
23쪽
진주텃밭에서는 생활재를 최대한 포장하지 않고 판매한다
→ 진주텃밭에서는 살림살이를 되도록 싸지 않고서 판다
25쪽
화해를 통해 지난 감정은 새로운 감정으로 바뀐다
→ 손을 잡으면서 묵은 마음은 새로운 마음이 된다
→ 서로 녹이면서 묵은 마음은 새롭게 바뀐다
37쪽
딸들이 건조한 말투로 팩트를 날렸다
→ 딸이 까끌하게 바른말을 한다
→ 딸이 심드렁히 참말을 한다
→ 딸이 지겨워하며 속을 찌른다
40쪽
눈을 맞춰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 눈을 가볍게 맞춘다
→ 눈을 가볍게 찡긋한다
45쪽
중간중간 아이는 계속 훌쩍인다
→ 사이사이 아이는 내내 훌쩍인다
→ 아이는 이따금 훌쩍인다
→ 아이는 틈틈이 훌쩍인다
45쪽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 방방이에서 신나는 노래에 맞춰
→ 붕붕이에서 신나는 가락에 맞춰
51쪽
자리를 이동함으로써 공놀이는 끝난다
→ 자리를 옮기면서 공놀이는 끝난다
→ 자리를 옮기며 공놀이는 끝난다
53쪽
몇 자 후기를 적고 보니
→ 뒷글을 좀 적고 보니
→ 뒷얘기를 적고 보니
70쪽
갱년기 증상이 심할 때는 떨어지는 낙엽도
→ 고갯길이 모질 때는 떨어지는 잎도
→ 늙고개가 힘들 때는 가랑잎도
157쪽
수업 중이던 선생님과 샤바샤바 후 나를 나오라 지목했다
→ 가르치던 길잡이와 뒷일을 하고서 나를 나오라 했다
→ 가르치던 샘님과 알랑거리고서 나를 나오라 가리켰다
173쪽
횡단보도와 육거리를 지나
→ 건널목가 엿거리를 지나
180쪽
여전히 비염처럼 알 수 없는 과민반응이 찾아와
→ 오늘도 코앓이처럼 알 수 없이 뾰족해서
→ 아직 코머거리처럼 알 수 없이 날이 서서
193쪽
분노를 삼키기 위해 과격한 근력운동도 했다
→ 불길을 삼키려고 마구 몸을 썼다
→ 불을 삼키려고 사납게 힘을 썼다
193쪽
차분하게 매트 위에 앉아서
→ 차분하게 깔개에 앉아서
→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서
194쪽
문해력, 리터러시를 이야기하는 요즘
→ 글눈, 글읽기를 이야기하는 요즘
→ 글귀, 풀이눈을 이야기하는 요즘
→ 글눈길, 읽꽃을 이야기하는 요즘
→ 한글읽기, 풀이꽃을 얘기하는 요즘
201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