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저녁을 먹은 뒤 쉬하러 앞밭에 나갔습니다. 앞밭이라고 하지만 제가 사는 집 앞에 있는 밭이지 제가 가꾸는 밭은 아닙니다. 다른 분이 가꾸는 밭입니다. 저는 하루에 한 번쯤, 밭두렁이든 산기슭이든 논두렁이든 자리를 옮겨 가며 한 번씩 쉬를 합니다. 한 자리에서 자꾸자꾸 쉬를 보면 안 좋겠지만, 어쩌다가 한 번 누면 괜찮겠지요.

 부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긁다가 등짝이 너무 아파서 불을 끄고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스캐너가 돌돌돌 굴러가는 소리, 잠깐 켜 놓은 노래테이프 소리. 드러누운 채 내다 보이는 초승달. 아, 그렇구나, 아까 쉬하러 나갈 때에도 초승달을 보았지. 내일부터 다시 추워진다는데, 이렇게 그믐으로 다가갈수록 날이 추워지는가?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헌책방 나들이를 하러 서울에 갈 참인데, 꼭 시골집을 비울 때만 날이 추워지네. 그러면 시골집 물이 다시 얼어붙을 수 있는데, 참, 안 맞네.

 깊은 밤, 둘레에는 아무 불빛이 없고, 제가 깃들인 자그마한 집 작은 방 작은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이웃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있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초승달빛도 밝습니다. 참 밝아서 시골길이 훤히 보입니다. 별자리를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이런저런 별자리가 하늘에 새겨져 있는 듯합니다. 마침 저 멀리까지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고요한 밤이군요. 거룩한 밤이군요.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이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켭니다. 멈춘 스캐너에 필름을 다시 얹고 돌립니다. 열린 창문으로 밤바람이 솔솔 들어옵니다. 책으로만 가득한 이 조그마한 방에 꾸역꾸역 머물러 있을 책먼지도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갈까요. 싱그러운 바깥바람이 이 자그마한 방으로도 스며들까요. 어느덧 동지를 지났으니, 이제부터 하루하루 밤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겠네요.

 동지만 지나면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합니다. 날 춥기는 그대로이거나 더 추워지기도 하지만, 밤이 짧아지니까요. 낮이 길어지니까요. 또다시 새해가 밝아오네요.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질수록 어서어서 한 해 갈무리를 해야겠다고 바지런을 떨게 되는데, 다시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질 때면,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뀝니다. 요사이 내린 눈은 이제 다 녹았습니다. (4339.12.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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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마음을 함께 느끼니 책이 좋다
 [책이 있는 삶 1] 우리 가슴을 울리는 책을 찾아보자


 지지난달 밤, 《마더 존스 자서전》(평민사,1978)을 다 읽었습니다. 참 좋은 책인데 여러 달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읽었습니다. 몸이 고단한 날은 책을 읽다가 곯아떨어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책을 읽느라 다른 일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마더 존스란 사람은 1830년에 태어나 1930년까지, 꼭 100 해를 산 분입니다. 이름은 ‘메어리 존스’이고, 미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해서 이름 앞에 ‘어머니(마더,mother)’란 말을 붙였다고 해요. ‘마더 데레사 수녀’처럼 말이에요. 우리 나라에는 전태일 님 어머님한테 이런 이름을 붙여 ‘이소선 어머님’이라 합니다.

 그 마더 존스가 1923년 어느 날, 버지니아 지사를 찾아갔답니다. 이 버지니아 지사는 지사로 지낸 스물세 해 동안 미국에서는 ‘가장 서민을 생각하는 정책’을 펼친 사람이라고 하는군요(마더 존스 말로는). 찾아간 까닭은 감옥에 애꿎게 갇힌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그저 ‘파업’을 했다는 까닭만으로 경영주들이 고용한 사설 보안관과 군인에게 붙잡혀 옥살이를 여러 달째 하는 가녀린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그네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겠다며 지사를 찾아갔대요(그때 나이는 93살이었겠군요).


.. “지사님 들어 보세요. 무슨 소리가 들리지요?”
그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아뇨,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그들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어요. 아내와 어린애들은 먹을 것도 없이 울고 있어요”
“조사해 보겠읍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킬 것임을 알았다 ..  〈236쪽〉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모두 풀려났답니다. 지사로서는 그런 일이 ‘돈 많은 경영주’들이 몰래 하는 짓이라 하나하나 알아채기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그런 애꿎은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풀어 주려 애썼답니다.

 아무튼 버지니아 지사도 지사이고, 마더 존스도 마더 존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마더 존스가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하는 대목에서요.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로 들었거든요. 그런 목소리를 들었기에, 울음소리를 들었기에 아흔셋이라는 참으로 늙은 할머니 몸으로도 그네들을 돕고자 나서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참 젊은 나이이고, 참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며, 돈도 퍽 넉넉하다고 할 수 있어요(한 달에 50만 원 넘게 번다면). 그런데 우리들은 무얼 하나요? 무슨 소리를 듣나요?

 그리고 누군가가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하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 때,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 주고, 똑바로 눈을 맞대고 들으면서, 함께 일을 풀자고 다짐할 수 있는가요?

 책 한 권을 읽어도 온몸과 온마음을 다해서 읽어야 좋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를 듣는 거예요. 울음과 웃음을 듣는 거라고요. 이 세상 곳곳에 있는 울음소리를 듣고 웃음소리를 듣는 거지요. 그래서 나 혼자만 잘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갈 삶을 생각하는 겁니다.


 〈밥 한 그릇〉

 나더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한마디로 대답하리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병들어 본 사람은 알리
 병들어 밥을 먹지 못해 본 사람은 알리
 밥 한 그릇 삭혀서 똥을 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행복이라는 걸.
 사랑도 싸움도 그 다음이다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게 해준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해준
 놀랍고 큰 힘,
 그 힘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앎은
 그 다음이다.
 나는 믿는다 그 힘을.
 그 힘 앞에 깨끗이 무릎 꿇는다.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정영상 님이 죽은 뒤 나온 유고시집 5《물인듯 불인듯 바람인듯》(실천문학사,1994)에 나오는 시 하나입니다. 저는 이 시 하나 때문에 이 시모음 한 권을 샀어요.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무릎을 쳤고, 시인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어 봅니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돈 몇 푼으로 얻을 수 있는 밥 한 그릇이 아니에요. 농사지은 분들 피땀이 서려 있습니다. 해와 물과 바람과 땅이 어우러져 있어요. 나락에게는 자기 몸을 바치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먹고 있어요. 돈을 먹는 게 아니라 생명을 먹으며 우리 생명을 이어가요.

 아. 시 하나를 읽으며 이런 걸 느낄 수 있다니. 그래서 이런 시를 듬뿍 담은 시모음을 만나서 찬찬히 읽는 맛은 그 무엇과도 견주기 어렵습니다.


 [엄마] 으아아앙!
 [아이] 왜 울어 엄마? 무슨 일 있는 거야?
 [엄마] 지난 여름에 비해 올해는 체중이 너무 늘어서 비키니를 입으면 흉측해 보여!
 [아이] 지구 인구의 반은 먹을 게 없어서 단지 1그램도 살찌지 못하는 판국에, 엄마는 부끄러워서 위로 받으려고 그런 말이나 하고…… 너무한다는 생각 안 들어?


 어젯밤 ‘끼노’란 아르헨티나 만화가가 그린 《마팔다》(아트나인,2004) 7권을 보았습니다. 7권을 여는 만화 가운데 둘째 편에 “엄마가 비키니 수영복을 못 입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마팔다는 엄마가 살쪄서 비키니를 못 입는 걱정보다는, 가난한 나라에서 굶고 있는 가녀린 사람들 걱정을 하라고 한 마디 툭 쏩니다.

 《마팔다》란 만화는 1964년∼1973년에 아르헨티나 만화잡지와 일간지에 이어실렸다고 합니다. 무정부주의, 인본주의, 세계평화, 사랑과 믿음과 평등, …… 여러 가지를 말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런 사상보다는 ‘한 칸 한 칸에 담는 뼈있는 이야기’가 이 책을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지난 여름에 비해 올해는 체중이 너무 늘어서 비키니를 입으면 흉측해 보여!”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연속극이나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에 어떤 말을 넣으면 좋을까요?

 참 좋다고 할 만한 책, 읽어서 가슴 뿌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라면 그 다음 대목, 마지막 넷째 칸에서 우리 가슴으로 파고들거나 뒷통수를 칠 뿐 아니라, 우리가 옳고 착하고 아름답게 생각하며 살아갈 길을 밝혀 줍니다. 이런 데에서도 책을 읽는 맛을 담뿍 느낄 수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요?

 미처 몰랐거나, 제대로 몰랐던 일을 알아가면서 ‘아,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면서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걸 깨닫고 팔을 걷어부칠 줄 아는 일은 아닐까요? 콩 한 쪽도 나눠 먹듯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나누는 일은 아닐는지요?

 머리속에 지식만 집어넣는 일은 ‘책읽기’가 아닙니다. 그건 용두질(자위행위)이라고 생각해요. 책읽기란 지식을 익히는 일을 넘어서 우리 마음에 살뜰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아로새기는 일이에요. 생각을 아로새기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삶에 받아들여서 자기 깜냥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길이고요. 그래서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목소리를 들으려고요,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들으려고요. 가슴으로 파고드는 한 마디를 듣고, ‘어, 지금 내가 뭘하고 있지? 어디에 있지?’를 느끼려고요. (2004.6.11.처음 씀 /2006.12.26.고쳐 씀)

***
요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이 많고 “책을 읽자”는 운동도 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일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고 좋기도 하지만, 중요한 본질을 놓치지 싶어요. 그냥 무턱대로 “책을 읽자”고 하기보다는, 책을 읽으니 이렇게 좋더라, 이런 것을 함께 나누는 책을 읽자고 넌지시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뜻에서 이런 기획글을 꾸준하게 써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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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민의신문을 보다가... 참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났구나 싶어서 이런 글도 쓰게 되었습니다. 부디... 사람들이 정신 좀 차리며 살기를.)

돈을 조금만 멀리하면 되는데

 
 돈이 없다고 못살거나 죽을 일이란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돈과 바꿀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와 잘곳이 없으면 못살고 죽겠지요. 돈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돈하고 바꾸어서 쓸 무엇인가’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같은 돈을 갖고도 서울에서 살 때와 시골에서 살 때, 같은 도시라 해도 인천과 대전과 광주와 부산에서 살 때가 다 다릅니다.

  우리는 한 달에 쌀을 얼마쯤 먹을까요. 다른 먹을거리는 얼마쯤 있으면 넉넉할까요. 우리한테 있어야 하는 옷은 몇 벌일까요. 우리가 깃들 집은 몇 평쯤 되면 알맞을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동안 무엇을 얼마나 쓰는가요.

 대학교를 마친 사람과 전문대를 마친 사람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 또는 학교를 안 다닌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가서 받는 일삯은 아직도 적잖이 벌어집니다. 요즘은 얼마쯤이 평균치인지 모르겠는데, 얼추 한 달에 170만 원을 못 벌면 ‘가난한 축’에 든다고도 합디다. 책마을은 이 나라 ‘문화지식’ 계층 가운데 가장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인데, 이들만 해도 대학교 마치고 일터를 잡아서 받는 첫 달삯이나 한 해 지난 뒤 받는 달삯이 170만 원은 넘지 싶어요. 저는 2003년에 책마을을 떠날 때 받은 달삯이 180만 원이 좀 못 되었는데(5년 경력자로서).

  그러고 보니 요새는 웬만한 어느 일터를 찾는다고 할 때, 한 달에 200∼300만 원은 바라겠구나 싶어요. 이런 일삯은 큰기업뿐 아니라 작은기업에서도 비슷할 테지요. 신문사나 방송사는 어떨까요? 〈한국일보〉는 사장인지 회장인지가 몹쓸 짓을 하면서 돈을 왕창 울궈먹고 직원들한테 일삯도 안 준다고 하며,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다른 신문과 견주어 적은 일삯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적다’는 숫자가 얼마쯤일 때 적을까요? ‘많다’고 하면 얼마쯤일 때 많을까요?

  제가 보기로는 조금도 ‘진보’나 ‘민주’나 ‘개혁’하고는 가깝지 않다고 느끼는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입니다만, 이 나라 적잖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매체를 ‘진보-민주-개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뭐, 이 두 가지 매체는 그냥 언론매체일 뿐이지, 진보나 민주나 개혁을 앞에 내걸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느끼요. 왜냐하면, 두 가지 매체가 직원들 일삯을 주고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에 들어가는 돈을 재벌회사, 정부한테 받는 광고삯으로 많이 채우니까요.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아무리 기사로 떠들면 뭐합니까. 한국수력원자력 광고를 잘만 싣는데. 삼성재벌을 아무리 기사로 비판하면 뭐합니까. 삼성광고 떨어지면 신문사 문닫을 텐데. 케이티엑스 비정규직 문제를 기사로 한두 번 써 보아야 뭐합니까. 허구헌날 케이티엑스 비싼 광고 잘만 싣는걸요. 양담배 광고만큼은 싣지 말아야 한다는 독자들 비판을 한 마디로 뚝 자른 채, 외려 더 큼지막하게 싣는 〈한겨레21〉을 보셔요. 우리 세상을 좀더 올바른 쪽으로, 나은 쪽으로, 아름다운 쪽으로 가꾸도록 힘을 모으려 한다면, 또 우리들 모두가 올바름과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느끼면서 저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힘껏 일어나서 부대끼고 애써 일하도록 이끌려 한다면, 돈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이란 없어야 합니다. 신문을 돈 주고 사서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누구보다 독자들 눈과 목소리가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독자들이 내는 신문값보다 재벌이 던져 주는 뭉칫돈이 더 크기 때문에 이렇게 돈바라기로 나아갈까요.

  뭐, 돈에 팔린 언론매체를 미워할 마음 없습니다. 싫어할 마음 없습니다. 다만, 딱합니다. 불쌍합니다. 가엾군요. 슬픕니다. 안타깝네요. 안쓰러워요.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요. 그저 혀를 끌끌 찰 뿐입니다. (4339.12.15.쇠.ㅎㄲㅅㄱ)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42025

한겨레, 돈 되면 뭐든지 한다?
FTA홍보책자 배포, 입시설명회 개최 등 구설수
언론노조 “한겨레 브랜드 이미지 좀 먹는 일”
2006/12/15
김고종호 기자 kkjh@ngotimes.net

한겨레가 최근 정부의 한미FTA 협상 홍보책자를 자사 신문에 끼워 배포해 파문이 이는 등 언론 매체의 이익 창출 행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가 제작하여 한겨레를 통해 배포된 한미FTA 홍보책자.
FTA체결지원위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가 제작하여 한겨레를 통해 배포된 한미FTA 홍보책자.

한겨레는 지난 8~9일에 걸쳐 ‘더 넓은 시장 더 높은 미래를 위한 항해가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B5 크기 8쪽 분량의 홍보책자를 자사 신문에 끼워 독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책자는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위원장 한덕수ㆍ이하 체결위)가 제작한 것이었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오늘> 12일자 기사에 따르면 체결위는 모두 20만 부를 한겨레에 제공했으며 배포비로 약 1500만∼2000만 원 가량을 한겨레에 지불했다고 밝혔다. 이 돈은 국민의 세금이 집행된 것이다.

2천만 원에 FTA홍보지를 자임?

그동안 신문사의 지국이나 판매국의 자체 판단 아래 아파트 분양 광고나 백화점 광고지 등이 일부 신문에 삽지되어 배포된 적은 있으나 정부 홍보물이 이런 방식으로 배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는 13일 성명을 통해 “금도를 넘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노조는 “신문 배달망이 정부의 한미FTA 홍보망으로 이용됐다는 게 본질”이라며 “단순한 해명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한겨레의 사과문 게재를 촉구했다.

‘한미FTA저지 시청각ㆍ미디어분야 공동대책위원회’도 14일 성명에서 “독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한미FTA의 장밋빛 홍보책자를 배포하고 돈을 챙긴 한겨레신문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한겨레가 스스로 독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의 신문 배달망을 이용한 한미FTA 홍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체결위 관계자는 “이후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집행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도 “이제 갓 걸음마를 떼고 있는 신문유통원을 통해 한미FTA 홍보물을 배포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TV, 라디오, 신문, 전광판 등 온갖 매체를 통해 한미FTA를 홍보하고 나서면서 언론계 내부에서도 광고 게재를 두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각 언론들은 국민의 혈세를 광고비로 쓰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기사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광고를 게재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많은 인터넷매체들도 한미FTA 홍보 배너 광고를 눈에 거슬릴 정도로 비중 있게 배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기사 논조에 배치되는 광고,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오마이뉴스
기사 논조에 배치되는 광고,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논술 광풍에 편승한 입시설명회도

한국언론재단이 펴내는 <신문과방송> 11월호는 ‘교육보도, 교육장사’라는 제목의 집중점검 기획을 통해 경향, 동아,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등 여섯 개 일간지에서 별지로 교육섹션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는 입시를 위한 학습 정보 전달이 주목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섹션의 콘텐츠 생산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교육 종사자들이었다.

해당 섹션의 기사들 말미에는 제공자 표시의 명목으로 사설학원들의 로고가 들어가고 있어 간접광고 의심을 받고 있다. 또한 이 섹션에는 사설 입시학원ㆍ교재 업체들의 광고가 집중적으로 게재된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논술 교재’를 필요로 하는 수험생 학부모들을 독자로 유인할 수 있고, 광고도 유치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특히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논술 광풍으로 인해 언론들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사실 이 ‘논술 광풍’도 언론 보도가 학생ㆍ학부모들의 초조함을 유발해 나온 현상이다. 최근에는 인터넷매체들도 비슷한 콘텐츠를 강화하는 추세다. 프레시안의 경우 ‘2007 대학특집’ 코너를 통해 사설 입시학원과 손잡고 논술대비전략 등 입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이 강연했던 논술설명회 광고.
한겨레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이 강연했던 논술설명회 광고.

안경숙 미디어오늘 기자는 <신문과방송> 기획을 통해 “신문사가 논술 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교육 시장의 이상 열기를 부추기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안팎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단체 ‘학벌없는사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한 네티즌이 ‘한주이’라는 이름으로 “홍세화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가 논술설명회에서 강연하여 결국 아이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논술 광풍에 한 역할을 했던 부분에 대해 학벌없는사회 측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해명을 요구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이면서 한겨레 시민편집인을 맡고 있는 홍세화 씨는 지난 10월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서울에서 보름에 걸쳐 개최된 ‘한겨레와 초암이 함께 하는 2008학년도 대입&논술 성공 전략 설명회’에 참석하여 ‘논술과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바 있다. 이 자리에는 사설 입시학원의 강사들도 참석해 특강을 진행했다. 언론사가 전국을 돌며 입시전략 설명회를 개최한 셈이다.

대기업 간접광고 시비, 한겨레의 앞날은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은 <시민의신문> 11일자(679호) ‘기사와 광고의 함수관계’라는 칼럼을 통해 한겨레의 대기업 기사 노출 정도가 광고 크기에 정비례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겨레가 기사에서의 간접광고를 통해 대기업 광고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편집국과 판매국ㆍ광고국의 업무는 분리되어 진행된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된 여러 가지 문제들은 편집국이 추구하는 편집방침ㆍ논조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도 있다. 기업의 특성상 수익을 올려 적자가 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독자들이 조중동도 아닌 한겨레를 구독하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고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김고종호 기자 http://kkjh.siminlog.com 

2006년 12월 15일 오후 17시 1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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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41947

 

아연실색할 기사와 광고의 함수관계
3류 정치소설의 통속적 추리 공식에 ‘염화미소’
2006/12/12
이재영 기자

12월 4일자 '한겨레 신문>'.
한겨레 
12월 4일자 '한겨레 신문'.

지난 4일자 <한겨레>는 참 재밌다. 1면 하단에는 ‘포항공과대학 20년, 포스코와 함께 세계 과학의 중심에 서겠습니다’라는 통광고가 실렸다. 그리고 그 위에는 대기업 전문기자가 쓴 ‘포스코 모든 협력업체 4조3교대 근무 추진’이라는 사이드톱 기사가 실렸고, 17면에는 ‘포스코-협력업체 상생모델 도입’이 한 면 전체를 차지했다. 뭐, 이런 우연이 겹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살펴보니, 30면에 논설위원이 쓴 ‘포스텍과 김호길 박사’가 또 있다.

“미국이 탐내는 과학자였지만… 고국으로 돌아가 이공계 명문대학을 지방에 세우겠다는 결심… 박태준… 포항공대… 아시아 최고 수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4세대 가속기 구상… 대통령은 지원을 약속했지만,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고 있다.” 우연이 참 많이 반복된다.

같은 광고를 실은 같은 날짜의 경향신문에는 포스코 관련 기사가 없고, 조선일보에는 한 개가 있다. 요즘 포스코 홍보실은 기자에게 미팅을 주선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몇 년 전 민주노동당은 홍보 대상 계층 조사, 매체 특성 조사 등을 거쳐 ㄱ신문, ㅈ신문에 광고를 냈다. 며칠 후 두 개의 뉴스가 전해져 왔는데, 그 하나는 <한겨레>가 민주노동당원인 직원들을 징계위에 회부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해진 또 하나의 뉴스는 그 징계위에 광고영업 책임자가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눈에 띄는데…

민주노동당이 한 행동과 <한겨레>가 한 행동, 두 개의 사실을 조합해보니 징그러운 ‘염화미소’가 그려졌다. 그 다음이 궁금하거든, 3류 정치소설의 통속적 추리 공식을 따라가 보라.

요즘 <한겨레>는 ‘기업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에 16개 면을 쓴 11월 30일자 한겨레에는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은 21개의 대기업 광고가 실렸다. 그리고 기사와 광고가 아주 균형감 있고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1면 하단 통광고를 낸 농협은 ‘농협, 농민에 10년째 무료법률지원’ 기사를 받았고, 2면에 50cm짜리 세로 광고를 낸 SK는 네 개의 기사를 받았다.

전면광고를 낸 KT와 삼성물산은 ‘통신사 건설사 등 주특기 살려 맞춤형 봉사’라는 특화된 기사를 얻었고, 마찬가지로 전면광고를 낸 포스코는 특화 기사 대신 다섯 개의 기사에서 언급됐다. 전면광고를 낸 대한생명과 LG전자, 현대모비스도 비슷하게 다루어졌다.

<한겨레>에 실린 광고 크기와 기사 노출 정도는 정확하게 비례한다. 조금 작은 광고를 낸 남양유업, 국민은행, KT&G, GS홈쇼핑, 우리홈쇼핑, 현대산업개발은 기사 안에서 한 차례씩만 인용됐다. 가장 뒷면에 전면광고를 낸 삼성은, 역시 가장 많은 12개의 사회공헌 기사와 ‘장애인 맞춤훈련으로 새삶 찾은 김장중씨’라는 미담성 기사를 얻었다.

광고부터였는지 기사부터였는지 또는 기업에서 청탁이 들어온 것인지 신문에서 말을 넣은 것인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영리기업인 <한겨레>가, 재테크 기사 옆에 부동산 분양 광고를 내는 조중동식 경영에서 과히 멀리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재테크’든 ‘사회공헌’이든, 대학교수나 시민운동가의 말씀을 덧붙이든 말든, 광고 이외의 지면은 그저 ‘기사’라고 믿는 상식으로 신문을 보고 싶다.

기사를 기사로 볼 날 오길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간접광고는 한국방송의 고질병 중 하나다. 오죽했으면 최근 방송심의위원들이 모여 간접광고 ‘퇴치’를 결의했을까? 간접광고란 방송의 일반프로그램 안에서 특정인이나 업체, 상품, 사실 등에 대해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말이 간접광고지 프로그램 속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스타들이 특정 상호를 이야기하거나 의상을 착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직접광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사는 안정적으로 광고주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광고주는 공짜로 홍보를 할 수 있으며, 연예인은 짭짤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피해자는 간접광고로 ‘오염’된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시청자일 수밖에 없다.”(간접광고에 오염된 프로그램, 한겨레, 2000년 11월 15일)

이재영
criticme@redian.org

레디앙 기획위원
진보정치연합의 마지막 상근자였고, 민주노동당의 첫 상근자였다.
1980년대에는 수도권과 영남권의 공장에 다니며 노동조합 만드는 일을 했고,
민중당에서 정책 일을 시작한 이래 15년 동안 정책전문가로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을 역임하였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

2006년 12월 12일 오후 15시 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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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빨래


 누구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아무개는 아침 일찍 책을 읽는다는데,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빨래를 한다. 예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빨래를 했지만, 요새 하는 빨래는 예전과 다르다. 간밤에 보일러가 돌아가며 덥혀진 물로 하는 빨래이다.

 이제 곧 낮이 되는데, 지금 내가 일하는 방은 온도가 14도. 요즈음 한낮에는 15도를 넘기기 힘들다. 겨울이니까. 밤에는 11도까지 내려가는데, 11도 밑으로 내려가면 보일러가 돌아가도록 맞춰 놓았기에 이보다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밤에 한두 차례 보일러가 돌아가고, 이렇게 돌아가는 동안 많지는 않아도 더운 물이 조금 생긴다. 이 덥혀진 물이 아깝기에 아침에 빨래를 한다.

 덥혀진 물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따뜻하지는 않다. 하지만 찬물과 견주면 얼마나 호강인가. 내가 찬물 빨래에서 더운물 빨래로 돌아선 지는 얼마 안 된다. 굳이 더운물을 쓰고프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더운물을 쓸 수 없이 살았으니까. 더운물 없는 곳에서 살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2003년 봄까지 살았던 집은 밤에 0도 안팎까지 온도가 떨어져서 이불을 두 겹으로 뒤집어쓰고 누워도 코에서 김이 나오는 곳이었다. 이 집에서는 겨울만 되면 물이 얼어붙어서 더운물 빨래고 찬물 빨래고, 아예 빨래를 못하며 지내기도 했다.

 내일도 아침에 빨래를 하겠지. 겨울이니까. 겨울에는 밤에 보일러가 돌아가고, 보일러 돌아가며 조금 얻은 덥혀진 물을 그냥 버리기에 아까우니까. 물이 조금 넉넉하다면 머리도 감고, 머리 감을 만큼이 안 되면 머리는 그냥 찬물로 감지, 뭐. (4339.12.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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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풍경
김기찬 지음 / 눈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진책
 - 김기찬 님 사진책 《역전 풍경》


- 책이름 : 역전 풍경(서울역 부근 1968~1983)
- 사진찍은이 : 김기찬
- 펴낸곳 : 눈빛(2002.10.1.)
- 책값 : 2만 원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처음 본 때는 2002년. 네 해가 지난 지금, 이 사진책을 다시 펼쳐 봅니다. 성냥팔이 아줌마, 빗장수 할아버지, 호떡장수 아저씨, 생선장수 할머니가 보입니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한 질감이 새삼 느껴집니다. 군데군데 좀 떡이 되거나 허옇게 날아간 곳이 보이네요. 밝고 어두운 곳이 아주 잘 맞은 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사진재주에서는 어느 만큼 모자랄 수 있지만, 사진에 담는 마음과 손길이 살갑거든요.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사람들과 서울역 둘레 삶터가 애틋하거든요. 멀거니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좋군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좋은 사진’만 몰래몰래 찍으려는 손놀림이 보이지 않아 반갑네요. 네 해 앞서 이 사진책을 사 두기 참 잘했습니다. 그때, 이 사진책을 죽 둘러보고 짤막하게 쓴 글이 있는데, 살을 붙이고 다듬어서 새로 이 사진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 -

 김기찬 님 사진책 《역전 풍경》을 보았습니다. 책값 이만 원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었지만(2002년에는) 책방에서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구경하는 동안, 이만 원이 아닌 삼만 원이었어도 사서 볼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산 뒤 혼자서 집에만 놓고 보지 않고, 틈틈이 갖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만나는 동무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장님에게도 보여드리며 좋은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가방이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좋은 사진을 두루 구경시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보람이 훨씬 큽니다.


.. 처음 사진에 입문할 즈음에 나의 사진 주제는 행상이었다. 처음부터 행상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출퇴근길에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이 갔다.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풋과일이 잔뜩 담겨진 함지박을 인 아낙네와 어떤 노인은 어깨에 싸리비를 메고 또 어떤 이는 열쇠꾸러미를 가슴에 앞치마 두르듯 두르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한 권 책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주말이면 뛰쳐나갔던 곳이 바로 서울역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역전엔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것은 변함없지만 한두 시간 가만히 서서 들여다보면 30여 년 전 내가 사진기를 메고 처음 드나들던 역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  〈책끝에 붙인 말〉


 〈교보문고〉는 웬만하면 안 갑니다만, 이곳에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들여다보는 곳은 한두 군데 있고, 이 가운데 한 곳이 ‘사진’ 칸입니다. 일 때문에 어린이책 칸도 꼼꼼이 살펴보지만, 책값이 비싸서 좀처럼 사보기 어려운 사진책 칸은 부지런히 둘러봅니다. 짧은 동안에 더 많은 사진책을 구경하려고 애씁니다. 삼만 원짜리 사진책을 그날 하루에 열 권을 본다면 삼십만 원이 굳은 셈이고 스무 권을 보면 육십만 원이 굳은 셈이거든요. 사진책은 한 번만 보고 그치는 일이 없습니다. 으레 백 번 이백 번쯤은 다시 보고 또 봐요. 그렇게 보며 이 사진이 어떻게 나왔고, 사진에 나오는 모습은 무얼 담았는지, 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무얼 생각했는가를 가만가만 짚습니다.

 사진 한 장이 대단해서 그렇게 살피지는 않습니다. 글 한 줄이 대단하지 않듯 사진 한 장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게 있다면 바로 우리들 삶이에요. 그러니까, ‘대단한 우리들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우리들 삶이 지닌 궂거나 좋은 모습을 가리거나 속이거나 감추거나 비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우리한테 새로운 기운과 힘을 준다면, 참으로 훌륭한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찾아봅니다. 아무것 아니고 그냥 한 번 쓱 보고 말면 되는 사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 사진 한 장을 몇 분쯤 그대로 들여다보셔요.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 그리고 온갖 푸나무와 짐승과 자연과 하늘과 땅이 가슴으로 살며시 파고듭니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낯빛이 없는 사람, 찌푸린 사람, …… 온갖 모습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때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지금은 어떠하며 앞으로는 어렇게 달라지고 바뀌는가도 찬찬히 짚어 봅니다.


 - 2 -

 지난주에 〈교보문고〉를 찾아갔을 때, 새로 막 나와서 책꽂이 한쪽에 곱게 자리하고 있는 《역전 풍경》(눈빛,2002)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옆에 있는 보기책(견본)을 펼칩니다.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넘깁니다.

 1969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역을 중심으로 사진쟁이 한 사람이 바라보고 느끼고 부대끼며 담아낸 모습이 펼쳐집니다. 서울역으로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어딘가에서 와서 서울역에서 내려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서울역 둘레에서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을 붙들고 장사를 하는 사람, 1980년대까지 있던 ‘냉차’를 파는 아지매와 그 아지매를 따라 장사 나와서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가는 계집애와 사내애. 비 오는 날 비닐우산을 팔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이 없어 서울역 앞에 멀거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 치마 속으로 들어가 비를 긋는 꼬마. 치마저고리를 벗어서 우산처럼 걸친 할머니, 바지저고리가 젖을까 봐 위로 잔뜩 치켜올리고 걷는 할아버지, 학교가방을 머리 위에 이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꾹 찔러놓고 성큼성큼 걷는 학생,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손수레를 밀며 장사 나오는 아줌마, 추운 겨울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나가는 길손이 껌 한 통 사 주길 기다리는 할머니, 짐자전거에 두 길이 넘는 많은 짐을 묶느라 애쓰는 일꾼들, …….

 내 모습이고 네 모습이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가 간직했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흔한 모습이고 흔했던 모습입니다. 이 사진에 담긴 모습은 1960∼1980년대 모습이지만, 지금은 또 지금대로 2000년대 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모습을 그냥 흘려넘길 뿐, 지나쳐갈 뿐, 붙잡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우리들이라서, 지금 우리 모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들이라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도 마음을 쓰지 않고, 우리 정치나 문화나 경제가 어떻게 뒤집어져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정작 소중한 삶은, 참으로 애틋하고 눈물겹기도 한 삶은 우리 곁에 있는데, 아니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말로 애틋하고 눈물겹기도 한 모습이며, 이런 우리 삶이 차곡차곡 사진에 담겨서 좋은 이야기를 건네거나 나누기 마련인데.

 사진책 《역전 풍경》에 나오는 모습은 아스라한 옛일일까요. 앞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모습일까요. 또, 이런 모습이 옛날 모습이면 어떻고,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면 어떨까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우리 삶이요, 나날이 새로워지는 우리 삶터며, 언제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바삐 움직이는 우리 세상이잖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해묵은 모습이라 할 서울역 둘레 모습, 서울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책 하나는 무엇일까요.


 - 3 -

 고속철도(KTX)를 놓는다며 서울역 너른터를 없앴습니다. 용산역 너른터도 없앴습니다. 너른터가 사라진 자리에는 삐쩍 마른 나무를 돈 주고 사다 심었습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용산역 너른터에서는 풍물마당이 펼쳐지며 사람들이 북적이며 막걸리잔을 부딪히기도 했는데, 이런 놀이판마저 사라졌습니다. 틈틈이 노동자 집회가 있던 역앞인데, 수천 수만에 이르는 노동자 물결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높다랗고 커다란 전자상가 새 건물이 들어섰고, 불빛 번득이는 성탄절 장식이 가득합니다.

 서울역과 용산역 너른터를 없앤 까닭은, 집회를 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꿍꿍이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까닭이야 어찌 되었든, 서울역이고 용산역이고 청량리역이고 하루하루 너른터가 줄거나 사라지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안 둡니다. 서울역이 서울역다웠을 때를 잊어버리고, 우리가 우리다웠을 때를 잊어버립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잊습니다. 그저 코앞에 보이는 얕은 이익에만, 눈손아귀에 쥘 수 있는 돈-이름-힘에만 매달립니다.

 너른터가 사라진 서울역에서, 손바닥만큼 줄어든 좁은터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과 어딘가를 오가는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이제 서울역 앞 너른터는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쉴 수도, 모일 수도, 무엇을 즐길 수도 없이 되었습니다. 쉬고 싶으면 ‘돈 내고 어느 가게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돈 내고 들어가는 가게에도 ‘돈을 펑펑 쓰지’ 않으면 눈치를 주기에 서둘러 일어나야 합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지는 서울역 앞입니다. 서울역 앞에 있던 수많은 헌책방은 자취를 감추어 딱 한 곳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로이 북적이던 1960∼1980년대 서울역은 책도 자유로이 오가며(하지만 못 읽게 하는 책도 많았습니다) 헌책방도 넉넉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기차를 기다리며 헌책방에서 책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헌책방에서 책 하나 살필 틈조차 내다 버린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 앞은 소주 몇 병을 안주 없이 들이키고, 길바닥이고 걸상이고 아무 데나 드러누워 자는 한뎃잠이 차지가 되었습니다. 용산역 앞은 이마트 주차장이 떡하니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돈-이름-힘에 푹 빠지면서 세상 밖으로, 사회 밖으로 내몬 사람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돈 먹는 재벌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임자가 되어 서로 복닥이기도 하고 부대끼기도 하던 서울역이, 어느새 사람 발길 뚝 끊기고 사람냄새 사라지며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뒷골목처럼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는 서울역 사람냄새입니다.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역 사람들 웃음입니다. 앞으로도 이처럼 사진으로만 서울역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을까요? 사진이 아닌 삶으로, 사진에 담긴 얼굴이 아니라 맨눈으로 바라보고 함께할 얼굴은 이제는 끝일는지요.

 지난날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고 할 수 없고, 지금은 안 아름답다고 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아름다움이 어찌 달라질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독재자 세상은 사라졌지만, 먹고살기 팍팍함은 많이 줄었다지만,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우는 세상 또한 어디론가 사라졌고, 먹고살기 수월해진 사람이 늘어났어도 넉넉해진 마음과 살림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즐거운가요? 살 만합니까?

 서울역은 개발독재가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구실로 나다움과 사람다움을 기꺼이 내팽개친 우리들이 무너뜨렸습니다. 사진책 《역전 풍경》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넌지시 이야기한다고 느낍니다. 아니, 말을 걸고 있습니다. 김기찬 님은 우리한테 《골목안 풍경》과 《잃어버린 풍경》을 남겼고, 여기에 《역전 풍경》까지 하나 더 남겼습니다. 김기찬 님이 계실 하늘나라는 사람냄새 가득한 아름다운 곳일는지요? (4335.12.14.흙.처음 씀/4339.12.25.달.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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