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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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5월, 전민조 선생 전시회를 보고 난 뒤 쓴 글입니다. 이래저래 검색을 해 보다가, 이 좋은 사진책 하나가 제대로 빛을 못 받고 있구나 싶어서, 예전에 써 두었던 소개글을 살짝 붙여 봅니다.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고, 우리 삶터를 살가이 돌아보는 눈길을 쓰다듬어 주는 사진이 묻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간직한 '섬' 사진
- 전민조 사진책 <섬>을 보다



<1> 고무신을 신은 사람들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서해안 백령도, 홍도, 소흑산도, 성남도, 진목도, 대마도, 소마도, 라매도, 조도, 관매도, 여서도, 우도, 연화도, 연대도, 수우도, 오륙도, 울릉도, 독도… 들을 두루 다닌 전민조 님 사진책이 나오고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에 있는 전시장에서 조촐한 강연자리도 있었습니다.

사진책은 진작에 눈빛 출판사 인터넷 누리집에서 소식을 들었고, 성균관대 앞 <풀무질>에서 책방 아저씨와 함께 구경했지만, 아직 사 놓지 않았습니다. 전민조 님 강연자리에서 말씀을 들은 뒤, 그날 그 자리에서 사면 책에 서명을 해 준다고 해서요.

사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맨 처음으로 우리를 반기는 사진은 어린 계집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풀로 엮은 자리에 눕혀 놓고 재우는 모습입니다. 동생은 궁둥이가 트인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풀자리(짚이 귀하고 가난한 집에서는 들과 산에서 나는 풀을 베어다가 자리를 엮었다고 합니다) 옆에는 누나가 신는 듯한 검정 고무신과 어린 동생이 신는 듯한 꽃신이 흩어져 있습니다. 둘이 있는 풀자리 앞 돌담 위에는 까만 돼지가 둘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벽에 차례차례 걸린 사진을 봅니다. 하나같이 수수한 옷차림에 얼굴 까맣고 눈 맑은 사람들 모습입니다. 섬사람들 사진인 터라 사진이 찍힌 곳도 바다나 바닷가, 갯벌, 배 위나 배 둘레입니다. 섬에서는 텃밭 하나도 소중하기에 손바닥 만한 밭 하나도 일구려고 힘쓰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렇게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을 보니, 거의 다 고무신을 신습니다. 맨발인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은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좀더 거슬러 올라간 옛날엔 고무신도 드물고 짚신이 훨씬 많았겠죠?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고무신을 신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일할 때만 신었는데 이제는 서울로 갈 때도 고무신을 신습니다. 한동안 고무신과 제 발이 맞지 않아 뒤꿈치가 긁히고 살갗이 벗겨졌지만, 이제는 하루 내내 고무신만 신고 다녀도 발이 긁히거나 아프거나 다치지 않습니다. 어느새 고무신과 제 발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야윈 소를 먹이는 아이


사진책 <섬> 겉을 수놓은 사진은 바다가 보이는 섬 들판에서 풀을 먹이는 아이 모습입니다. 등에는 자기 키 만한 지게를 진 아이도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소는 눈이 퀭해 보이는데 등이 칼날처럼 곧습니다. 갈비뼈도 보입니다. 배가 홀쭉하군요. 섬사람들도 배불리(또는 마음껏 많이) 먹기 어려웠을 테니, 이 섬사람들이 기르던 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고 보니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넘겨보았을 때 '살이 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모두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합니다. 먹을거리가 많지는 않았어도 서로 나누며 살았기에 이렇게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해 보일까요? 다시 사진책을 넘기며 옷차림을 주욱 살피니 입성도 비슷합니다. 옷도 신도 몸도 비슷한 이들은 마찬가지로 비슷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방에서 살아갑니다.

어린 계집아이가 홀로 툇마루에서 밥을 먹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숟가락도 한 손으로 꼬옥 쥐지 못하는 어린 아이인데, 살이 통통합니다. 그렇다고 살이 찐 몸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살짝 통통한 편입니다. 보리밥에 물만 반찬으로 먹는 아이인데도 몸이 이러하군요. 먹는 밥은 넉넉하지 못해도, 넉넉한 바다와 공기와 물과 바닷것이 있기 때문일까요?

고깃배가 가득가득 넘쳐서 돌아왔습니다. 어른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잡은 고기들을 부려 놓습니다. 그 옆에 발가벗은 사내아이도 일손을 거듭니다. 이어지는 사진에서도 발가벗은 아이가 나옵니다. 반바지만 입은 아이하고 갯벌에서 놀다가 사진 한 장 찍혔습니다. 반은 발가벗은 채로 엄마가 일하는 시늉을 하는 아이도 보입니다. 어머니처럼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싶은지 텅 빈 바소쿠리를 이고 엄마 앞에서 길을 이끕니다. 그 뒤로는 엄마가 있고, 그 뒤로는 어린 누나가 머리에 짐을 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뭍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섬 안에서 맴돌지만, 이 섬에서도 저희들끼리 즐겁고 놀고 즐겁게 어울리며 즐겁게 일을 합니다(그렇지만 늘 '즐겁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바쁠 때면 그지없이 고단하고 고달픈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제 밥값을 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자기 몸에 맞는 지게를 지고 땔감이고 풀베기고 무엇이고 해야 할 테니까요). 요새로 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만한 나이에도 어른과 함께 일을 하고,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 삶터를 오롯이 들여다보기


전민조 님이 담은 '섬 사진'에 드러나는 모습은 섬사람들 삶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삶입니다. 뭍이건 섬이건 가릴 것 없이 보통으로 우리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보통으로 살아온 사람은 우리 자신이 살아온 자취를 남기지 못합니다. 남길 틈도 없고, 남길 만한 장비(사진기, 필름 따위)도 없습니다. 어쩌면 전민조 님처럼 사진기자가 되어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영영 잃어버리거나 잊혀진 모습이 되었을 '우리들 삶터 사진'이에요.

사진책 <섬>은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빛이 바래는 한편, 도시사람들 구경거리와 놀이터로 무너져 버린 섬 모습을 아직은 깨끗한 채로 있을 때를 비추어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고이 남은 몇 안 되는 소중한 발자취이자 생활문화 역사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섬사람들 삶으로 좀더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대목. 전시회 사진과 사진책 사진에는 미처 들어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섬사람들 살림살이, 집안 구석구석,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고된 일을 하는 모습이 좀더 낱낱이 드러나지 못했다는 대목이 아쉽습니다. 일하는 어른들 모습도 좀 멀찍이 떨어져서 살펴본 구경꾼 눈이라는 대목도 보입니다.

그러나 전민조 님을 다른 구경꾼하고 똑같이 여길 수 없습니다. 지금은 잠깐 들렀다 가지만 앞으로 다시 찾아올 뭍손님입니다. 섬에서 섬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아니지만, 살갑게 찾아와 부드럽게 손을 맞잡고 한 밥상에서 보리밥을 나눠 먹는 고맙고 반가운 뭍손님입니다. 섬에서만 사느라 뭍 소식을 모르고 뭍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뭍 소식과 뭍 세상을 차근차근 일러 주는 이야깃손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섬 소식과 섬 세상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 주는 사랑손님이 되기도 할 테고요.


.. 수평선을 바라보며 염소와 송아지를 모는 귀여운 아이들, 물동
이와 땔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소녀들과 아낙네들의 표정은 너
무나 평화로웠다 .. <전민조 님 말>



강연자리에서 전민조 님은 "어린이를 천사로 봤어요. 꾸밈이 없어요. 그런데 세상에 훌륭한 사람들은 꾸밈이 많아요. 각색이 되고 조작이 되고… 어린이들이 어른한테 표정을 꾸미고 해서 만들 수 없잖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섬사람들 얼굴에서 느낀 평화로움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지 싶습니다. 남 앞에서 꾸미거나 가릴 것이 없이 착하게 사는 모습, 서로 살가운 이웃으로 여기며 길손한테도 밥상 하나 차려 주는 마음씀, 이런 평화로움이겠지요.

그런데 1970년대 첫머리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두루 평화로움을 잃었습니다. 이 '평화로움을 잃음'은 바로 오래된 봉건통치 사회를 거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몇몇 독재정권까지 이어오는 동안 짓밟히고 짓눌리고 시달리느라 마음이 다치고 곪고 병들어 버린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생겨 버린 사회이자 삶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세상이 팍팍하고 사람들 마음씀도 거칠어질 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민조 님이 찾아다닌 섬에서 만난 사람들한테서 느낀 수수함과 살가움은 사진마다 고이 남고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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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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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고쳤습니다. 살도 붙이고, 어색한 곳을 다듬어서 확 다시 썼습니다. (2007.12.9.)


 이 책 하나 7 ― 외국인노동자를 만나 보셨나요?
 : 이란주, 《말해요, 찬드라》를 몇 번 거듭 읽으며



 〈1〉 몽골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를 만나다


 책을 읽는다고 이 넓은 세상을 얼마나 알 수 있으랴 싶습니다만, 책읽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요즘 읽는 책 가운데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가 있습니다. 한 번 읽을 때 열 쪽이나 스무 쪽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펼치는 쪽마다, 이 나라에 어렵게 들어와서 온갖 차별과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으면서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들 모습이 환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책을 조금 읽다가 덮습니다. 낮밥으로 찌개 하나 끓이면서 읽습니다. 기계가 잘못되어서 손가락이 잘려도 산업재해를 해 주지 않고, 더욱이 기계도 손보지 않아서 다른 외국인노동자가 그 기계를 쓰다가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는데, 공장주는 기계를 그냥 그대로 두며 다른 외국인노동자를 부려서 쓴다는 이야기를 봅니다.


..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공장식구들도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노이’가 이듬해 가을에 프레스에 오른손을 찍혀 몽땅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손목 부근에서 잘렸으니 아예 손이 없어져버렸다. 노이는 그 회사에서 2년 가까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알아서 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장은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세금을 내지 않아서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사고처리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사고난 후 한 달 만에 회사를 팔아넘기고 달아나 버렸다. 더구나 상담소에서 합의를 보자고 연락했을 때는 일부러 자기 이름을 새로 바뀔 사장 이름으로 알려줘서 우리를 골탕먹이기도 했다.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자기가 일하는 회사 이름이나 사장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새로 온 사장은 ‘나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모른 척했다 ..  〈17쪽〉


 한국땅에서 일어난 온갖 푸대접과 괴롭힘과 따돌림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혀서 보여주는 사례모음,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를 읽다가 덮고는,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라는 책을 펼쳐 봅니다. 벌써 두 번 읽었는데, 다시 한 번 집어들어 펼칩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일하면서 ‘왜 한국사람이 외국사람 편을 드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아파하는, 그러면서도 이주노동자나 이 나라 노동자나 똑같은 사람인데, 모두들 똑같이 대접을 받으며 사람다운 꿈과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믿음을 나누는 사람인 이란주 씨가 발로 뛰면서 부대낀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책, 《말해요, 찬드라》.


..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좀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 부부는 또 어쩌려고 여기서 아기를 낳았을까 싶은 마음에 한편으로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면서, 그것도 불법체류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한국이라는 나라는 남들과 다른 얼굴색을 하고는 절대 살 수 없는 나라가 아닌가.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겪게 되는 따돌림과 상대적 빈곤감은 평생 큰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을 본국으로 순순히 보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부모의 불법체류를 묵인하고 아이들만 출국시킬 수 없다면서 아이들을 내보내 주지 않고, 온 가족이 다 같이 고통을 겪도록 묶어둔다 ..  〈29쪽〉


 저는 우리 말과 헌책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한답시고 깝죽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입니다. 헌책방에 뭐가 있느냐고, 구닥다리 책이 쌓여 있는 허름한 헌책방 따위는 머잖아 사라져 버릴 곳이 아니냐는 말을 듣습니다. 사람들 다 잘 알아서 쓰는 한국말 아니냐고, 뭐가 깨끗한 말이고 뭐가 알맞는 말이고 뭐가 얄궂은 말이며 뭐가 틀린 말이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냥저냥 값싸게 사들일 수 있는 헌책방 전화번호만 있으면 되지, 무슨 헌책방 나들이를 따로 하고 그런 걸 글로 끄적이고 사진으로 찍느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계화 시대를 거스르는 엉뚱한 짓을 하는 너는 고리타분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느냐는 손가락질도 받습니다.

 참말, 저는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참말, 이란주 씨 같은 이는 왜 ‘외국인노동자 권리’를 찾아 주려고 애쓸까요?


.. 법무부 출입국에서 하는 일 중에 아주 웃기는 일이 많은데, 그 중 으뜸이 단속과 벌금에 관한 것이다. 불법체류자가 자진출국하겠다고 나서면 그 사람이 불법체류했던 기간을 계산해서 벌금을 내라고 한다. 대략 한 달에 10만 원 꼴이어서 1년이면 100만 원, 2년이면 200만 원 가량이 된다. 안 가겠다고 꼭꼭 숨어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 붙잡아다 강제출국시키면서도 스스로 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벌금 안 내면 못 간다고 도로 내보낸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가서 벌어 오라고 돌려보내는 곳이 바로 출입국사무소였다 ..  〈87쪽〉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일입니다. 제가 일하는 시골에서 서울로 가려고 시골 버스역에 갔을 때 몽골 노동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이가 몽골사람인 줄, 몽골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퍽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는데 그이 몸에서는 알쏭달쏭한 고약한 냄새가 났고, 마치 노숙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기에, 낮부터 술을 마셔서 저러는가 싶었지요.

 아무튼,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읽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시골 버스역에서 표파는 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저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서울 가는 버스 타니까, 저 사람이 타는 버스 타면 돼요!” 하고 말을 합니다. ‘뭐여?’ 하는 마음으로 그쪽을 쳐다봅니다. 표파는 곳 아주머니는 저를 보면서, “이 (몽골) 사람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놓쳐서 한 시간을 더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 버스가 올 때 알려줘서 타게 해 줘요.” 합니다. “네, 그러지요.” 하고 대답합니다. 조금 뒤, 버스역에 함께 붙어 있는 택시 타는 곳에 있는 택시기사 한 사람이, “어이, 몽골! 택시 타고 가!” 하고 소리지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저씨는 아무 말을 않고 손만 휘적휘적 내젓습니다. ‘아하, 몽골사람이었구나. 어쩐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 아저씨한테 반말지꺼리야?’


.. 대한민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외국인력을 수입해서 저임금에 부리다가 쓸모없어지면 고장난 기계를 던져버리듯 본국으로 내쫓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과 국제질서를 논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 이래도 우리가 마음 편히 미국을 욕할 수 있겠는가? ..  〈103쪽〉


 서울 가는 버스가 들어옵니다. 몽골 아저씨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입니다. 부랴부랴 버스기사한테 ‘잠깐만 기다려 주셔요’ 하고 차를 잡아 놓고는, 버스역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이 몽골 아저씨는 어디로 갔담? 아이고, 저 구석에 서 있네. 헐레벌떡 뛰어갑니다. “아저씨, 이 버스 타야 해요. 또 놓쳐서 한 시간 기다리려고요? 어서 가요.”

 빈자리를 찾아서 몽골 아저씨가 앉습니다. 저는 짐보따리가 많아서 다른 빈자리로 가서 앉습니다. 책을 읽으며, 꾸벅꾸벅 졸며, 서울에 닿습니다. 이제 버스에서 내릴 때. 이제 서울에 왔는데, 몽골 아저씨는 어찌할는지?

 내릴 때 가만히 살펴봅니다. 몽골 아저씨는 버스기사한테 묻습니다. “동대문 어떻게 가요?” 버스기사는 “동대문? 동대문은 지하철 타고 가면 되지.”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몽골 아저씨는 어리벙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손님들은 모두 자기 갈 곳으로 갑니다. 버스기사도 버스를 빼려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몽골 아저씨 혼자 남습니다. 아저씨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더니 사람들이 많이 걷는 쪽으로 따라갑니다. 몽골 아저씨 뒤를 따라갑니다. 어깨를 오른손으로 살짝 잡으면서 아저씨한테 묻습니다. “어디로 가셔요?” “동대문 가요.” “어떻게 가는 줄 아셔요?” “몰라요. 택시 타고 가면 되겠죠.” “네? 아이고, 택시 타고 가면 돈이 얼마나 나오는 줄 알아요?” “몰라요. 나 돈 있어요. 택시 타고 갈 돈 있어요.”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러죠. 지하철 타면 800원인데, 택시 타고 가면 5000원도 넘게 나와요. 지하철 타는 것보다 거의 열 배나 비싸요.” “나, 길 몰라요. 그리고 택시 타고 갈 돈 있어요.” 에구, 택시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이러다가 바가지라도 쓰고 엉뚱한 데 내려주면 어떡하려고.


.. 다른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돈을 주면서, 우리에게만 월급 줄 돈이 없어서 그러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한번은 참다 못한 우리들이 월급을 주지 않으면 일도 않겠다고 버텼다. 사장은 주먹을 코앞에 갖다 대고 일을 안 하면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위협을 했다. 나중에 사장은 내가 너희들에게 줄 돈을 아껴서 다른 회사를 하나 샀노라고 자랑을 했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들을 다 데리고 안산까지 가서 새로 샀다는 공장을 구경시키기도 했다 .. (올리) 〈164쪽〉


 “아저씨, 제가 가는 길에 내려 드리면 되니 지하철 타고 가요.” “택시 타도 되는데…” 아저씨를 달래어 지하철을 타기로 합니다.

 “지하철 타 본 적 있어요?” “한 번, 있어요. 처음 서울에 와서 의정부에 갈 때.” “한글은 읽을 줄 아셔요?” “(씩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며) 몰라요. 말은 조금 배웠어요.” “동대문에 가서는 아는 사람 있어요?” “네, 거기서 내려서 동생한테 전화하면 돼요. 동생이 한국사람한테 시집와서 서울에 살고 있어요.”


.. “예? 힘든 거요? 힘들지요. 그래도 월급만 잘 나오면 괜찮아요. 많이 일하면 돈 많이 받으니까…”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가구공장 일은 어지간한 노동자들이면 피하는 일이다. 임금이 조금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일이 너무 고되 골병든다고들 한다. 그 일을 하루 열네 시간 반 동안, 그것도 한 달에 보름 이상이면, 일요일을 뺀 나머지 날은 거의 다 밤 한 시까지 일했다는 이야기였다. 몸이 무쇠라도 견디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절대 문제삼지 말아 달라고 했다 ..  〈196쪽〉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몽골 아저씨와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이분이 ‘아저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몽골에서 혼인을 하고 식구를 남겨 놓고 왔는지, 어쩐지 모르니까요. 그냥,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에 아저씨라고 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처음 봤을 때는 틀림없는 노숙자로 보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이분이 충북 음성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일할 때는 컨테이너 따위 움막에서 잠을 잤을 테고 씻을 곳이 넉넉하지 않았을 테니, 이런 차림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저씨가 한국이 아닌 몽골 시골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그예 시골사람으로만 보이는 수수한 차림이었을까요.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일 년, 일 년 됐어요. 처음엔 의정부 있는 데서 일했는데, 돈 안 줘서 여기로 왔어요. 그런데 여기서도 돈 안 줘서 다른 데 가려고 동생 아는 곳으로 가요.” “서울에 사람 참 많지요? 어지럽지 않아요?” “사람 많아요.”


.. “예? 불법체류자라구요? 불법체류자 주제에 무슨 학교요?” 교육청에 처음 문의를 했을 때 들었던 대답이다. “아무리 불법체류 상태라도 어린이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권리요? 그거야 내국인이거나 합법적인 경우를 얘기하는 거지, 불법체류는 규정이 없어요.” “정식 입학이 안 되면 청강생으로라도 받아 줄 수 없나요?” “우리 나라에는 청강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교육청을 상대로, 이런 실랑이가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항상 결과는 마찬가지로 ‘안 된다’였다. 교육부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지금으로서는 규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  〈48쪽〉


 그런데 동대문에 내려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갈 곳은 ‘동대문’이 아니라 ‘동대문운동장’입니다. 몽골 아저씨가 동생하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생 사는 곳’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하긴, 서울이 어떻게 생겨먹은 땅인지 하나도 모르는 몽골 아저씨한테는 ‘동대문’하고 ‘동대문운동장’하고 어떻게 다른 지 가리기 힘들겠지요. 또, 다 같은 동대문 아니냐고 생각할 테고.

 전철역에서 내려 주면 될까 싶었으나 그게 아니게 되니, 저도 시간 빼기가 빠듯해집니다. 어쩔까 어쩔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약속 늦는 일은 할 수 없지, 미안하다고 손전화 문자를 보내고, 아저씨와 함께 길을 찾기로 합니다. 여기까지 함께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으니까요. 더욱이 몽골 아저씨로는 처음 발을 디뎌 보는 서울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없고요.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면서 “아무 데나 내려도 되지 않았나?” 하시는데, 참참참. ‘아저씨요, 그러다가 길 옴팡 잃고 동생도 못 만나면 어쩌려구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도 없으니 동생이 여기까지 찾아올 수도 없잖아요? 이궁.’


.. 박 기자는 그때까지도 사무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우리 상담소 활동가가 아니라 기자라고 밝히니까 사장이 반색을 하더라고 했다. 자기들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으니 현실을 잘 살펴 달라고 하더란다. ‘월급도 많이 받는 놈들이 이제 벌 만큼 벌어서 아쉬울 게 없으니까 문제 일으켜서 벌금 안 내고 가려고 수작 부리는 거다, 월요일 오전까지 일 잘하던 애들이 왜 그러겠느냐, 저기 같이 온 단체에서 사주해서 파업까지 하는 것 아니냐, 나는 정말 동생들이라고 생각해서 뭐든 원하는 거 있으면 다 해 줬는데 정말 야속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사업 좀 키워 보려고 이것저것 투자하다 보니까 임금 좀 못 줬다, 뭐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냐, 애들한테 욕도 좀 했다, 우리끼리도 욕 잘하지 않느냐, 그게 뭐 그렇게 잘못한 거냐, 그리고 애들이 일 잘 안하고 그러면 엉덩이 좀 걷어찰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대수냐, 다른 회사에서도 노무관리 다 그렇게 한다, 괜히 나라에서 외국인들 고용 못하게 하니까 한 오십만 원만 줘도 일 잘할 애들에게 우리는 백만 원씩이나 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업이 어려운 거 아니냐, 우리도 이 사업 정말 하기 힘들다’ 박 기자가 들은 이야기를 대충 추려 들어도 그 정도였다. 도대체 기대할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  〈234∼235쪽〉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골목을 걷고 헤매고 한 끝에 가까스로 ‘가야 할 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몽골 아저씨 말로는 “여기에 오라고 했어요. 여기 있으면 된대요.” 몽골사람다운 느긋함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대충 어디로 와 있으면(시간을 따로 잡지 않고), 언제가 되든 그리로 몽골 아저씨를 데리러 온다는 소리일까요? 저보고 ‘이제 가도 된다’고 하지만, 차마 그냥 갈 수 없습니다. 함께 서서 기다립니다. 가방을 열어 떡 한 봉지를 꺼냅니다. 참으로 먹으려고 챙겨 두었던 떡입니다. 반을 뚝 떼어서 한 덩이를 아저씨한테 건넵니다. “아저씨도 점심 못 드셨지요? 떡이라도 드셔요.”

 냠냠 우걱우걱. 한참 기다리는데 올 사람은 오지 않고. 아마 동생 분도 어디에서 일을 하는데, 마무리를 짓고 나와야 해서 늦는 듯. 동생 분과 몇 번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이제 저는 가도 될 듯. 동생하고 만나는 자리까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손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 분 목소리로는, 이제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아무쪼록, 부디, 제발이지, 아저씨가 동생을 잘 만나서 길에서 더 헤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보다도 앞으로는 ‘일삯 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주면서 푸대접하지 않는 공장’을 찾아서 땀흘려 일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저씨와 동생이 흘린 땀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일하면서 몸이 다치지 않기를, 고향나라로 돌아가는 날 웃을 수 있기를, 한국땅까지 찾아와서 공장을 찾아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이루려는 꿈을 잘 마무를 수 있기를…….


 〈2〉 ‘외국인’노동자가 아니라 똑같은 ‘노동자’이겠지요


.. “한국이 우리 사랑을, 우리 가족을 인정하고 받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  〈38쪽〉


 자전거를 달립니다. 시간 약속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마에서 볼따구를 타고 목덜미로 내려와 등줄기에 줄줄 흐르며 젖어드는 땀을 느끼며 생각합니다. 아까, 몽골 아저씨와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으로 갈 때였습니다. 아저씨는 갑자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고 웃으면서 말을 건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싶어서 “네? 네? 무슨 말씀이셔요?” 하고 묻는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다들 뭘 물으면 ‘몰라 몰라’만 하는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합니다. 아하, 아마도, 몽골 아저씨가 어디로 가려고 길을 물어 보면, 한국말이 서툰 이분 말을 대충 넘겨듣고는 “어디로 가셔요.” 하고는 휙 가 버리거나 아예 말대꾸도 않고 지나갔는가 보네요. 몽골 아저씨는 서툰 목소리로 “한국 좋은 나라예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 그 ‘천사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외국인에게 그처럼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것일까 ..  〈54쪽〉


 몽골 아저씨더러 “지하철 타고 가면 돼.” 하고 아예 말을 깐 채 이야기하던 고속버스 기사는 어릴 적부터 ‘외국인노동자를 보는 눈길’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겠지요.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며 반말 찍찍 내뱉던 그 택시기사도, 당신이 살아오는 동안 ‘외국인노동자든 한국인노동자든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눈매’를 다독이지 못했겠지요.

 몽골 아저씨가 아닌 미국사람이나 프랑스사람이었더라도 이렇게 반말로 함부로 이야기했을까요. 그때에도 귀찮다는듯이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았을까요.


.. 경찰은 사망사건 자체보다는 그 주변에 있는 불법체류자를 검거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였다 ..  〈112쪽〉


 문득, 몽골 아저씨 전화번호라도 하나 받아 적어 놓을 것을, 그냥 왔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언제가 될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저씨가 한국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가기 앞서 한 번쯤 더 만나서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한국사람과 한국 사회와 문화와 부대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들을 수 있다면 제 자신도 미처 못 느끼거나 모르고 있을 ‘치우치거나 얄궂은 생각’을 깨닫는 한편, 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몽골 아저씨이지만 서로서로 좋은 사람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 오마이뉴스에 띄웠던 파업 동영상과 아침신문에 보도된 내용 때문에 언론에서 엄청난 취재경쟁을 벌였다. 기자들은 타결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너무 늦게 온 것을 안타까워했다.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불법체류노동자들의 첫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이미 작년에도 한 차례 파업이 있었으니 첫 번째가 아니라고 알려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여튼 내용이 뭐든지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은 말릴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언론이 ‘이런 파업이 앞으로는 일반화될 것이다’라고 섣부른 전망을 내놓는 통에 영 거북스러웠다 ..  〈240쪽〉


 퍽 많은 사람들이 몽골이라는 나라에, 또 티벳이라는 나라에, 또 인도라는 나라에, 또 파키스탄과 네팔이라는 나라에, 성지순례라든지 여행이라든지 영혼을 찾는 나들이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갑니다. 이때 몽골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제가 한국땅에서 만난 몽골 외국인노동자와 똑같은 차림과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참 평화롭구나, 수수하고 고와 보이는구나.’ 하고 말할까요.

 네팔에서는, 파키스탄에서는, 인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버마에서는, 필리핀에서는, 베트남에서는 어떠할까요.


.. ‘한국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냐, 한국인이 얼마나 미우냐’ 언니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제발 그런 대답을 좀 해 줬으면 싶은지, 자꾸 그렇게 물어 봤다. 그러나 언니는 딱 잘랐다. “경찰은 미워.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그 한 마디뿐이었다. 더 이상 캐내기를 단념한 기자가 이번엔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언니는 머리를 다시 매만져 깔끔하게 뒤로 묶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활짝 핀 라일락꽃 아래로 가서 섰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  〈178쪽〉


 저마다 제 고향나라에서는 평화롭고 수수하고 곱게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느낍니다. 한국땅에 와서 ‘가장 푸대접받고 일삯도 싼 거친’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마치 ‘낮은 사람’인 듯, ‘못사는 사람’인 듯, ‘가난한 사람’인 듯 잘못 알거나 느끼지 싶습니다.


..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만 특별한 배려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국적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모든 법과 사회규범 적용이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나 국가권력이 ‘민족차별 행위는 곧 범죄행위라는 상식’을 지녔더라면 ..  〈125쪽〉


 남녀를 차별하는 눈길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하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눈길은 자연 삶터와 짐승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하고, 자연 삶터와 뭇 짐승을 차별하는 눈길은 학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할 테고, 학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은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이 되기도 하고,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은 시골사람이나 농사꾼과 공장노동자를 차별하며, 이렇게 차별하는 눈길은 우리 문화를 업신여기는 한편, 고유한 자기 삶을 못 찾고 돈-이름-힘에 끄달리면서 흔들리고 헤매이는 몸가짐이기도 하지 싶습니다.


.. 영세사업주들은 모두가 노동허가제가 실시되어 합법적인 외국인 고용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주장은, 실제와는 전혀 다르며, 연수제도 운영을 통해 나오는 온갖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술책임이 분명하다. 위에서 말한 연수생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외국인력을 수입해서 저임금에 부리다가 쓸모없어지면 고장난 기계를 던져버리듯 본국으로 내쫓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과 국제질서를 논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 이래도 우리가 마음 편이 미국을 욕할 수 있겠는가? ..  〈103쪽〉


 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자 인격체로 생각한다면 함부로 반말로 대꾸하거나 손찌검을 할 수 없겠지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비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건널목을 마음놓고 건너며 도서관이고 극장이고 느긋하게 찾아갈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놓겠지요. 남녀차별이 아닌 남녀평등 사회라면 뒷간 크기만 남녀 똑같이 할 것이 아니라, 여자가 볼일 볼 자리를 좀더 많이 마련해 놓을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우리 말과 글을 아끼지 않으니,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올바르게 쓰는 일을 떠나서 깨끗하고 알맞고 손쉬운 말과 글을 안 쓰면서 서양말과 한자말에 그토록 빠져들며 어려운 글을 쓰지 싶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높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일삯을 차별해서 주니까 해마다 입시병이 도져도 고쳐질 낌새가 없어요. 이런 우리 사회이니, 이런 나라 이런 땅에 돈을 벌겠다며 찾아오는 외국인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푸대접을 받고 괴로워하며 가슴아픈 일을 겪는구나 싶습니다. (4339.5.22.달./4340.12.9.고쳐씀.ㅎㄲㅅㄱ)


- 책이름 : 말해요, 찬드라
- 글쓴이 : 이란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2003.5.15.)
- 책값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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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편지 - 농부시인 류기봉의 포도밭에서 꽃피운 인생 이야기
류기봉 지음, 김현호 사진 / 예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포도밭 편지
- 글쓴이 : 류기봉 / 사진 : 김현호
- 펴낸곳 : 예담(2006.8.28.)
- 책값 : 9800원


 이 책 하나 10 - 포도밭 편지
 : 한국땅에서 농사꾼은 쓸모없는 사람?


 그끄제 시골집에 와서 오늘로 나흘째. 나흘 동안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시골집으로 오는 길에 택배기사와 전화로 이야기 나누었을 때를 빼고는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고, 얼굴 마주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딱히 연락해 올 사람이 없고, 저도 굳이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테지요.


.. 체험농장의 포도나무들이 획일적으로 똑같은 모양을 하고서 같은 방법으로 열매를 맺고 가지를 뻗으면 아이들의 상상력도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아버지는 그것을 이미 30여 년 전부터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포도나무를 야생의 숲처럼 자연스럽게 가꾸면 아버지 당신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풍부한 상상력을 심어 주리라는 것을 ..  〈161쪽〉


 그제는 밥할 물을 길러 윗마을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윗마을 개는 강아지일 때부터 봐 왔건만 제가 물을 다 긷고 내려갈 때까지 거칠게 짖어댑니다. 못 올 사람이 왔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반갑다고 짖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쓰는 물은 다 얼어붙어서 언제 녹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올겨울에는 두 번이나 녹은 적 있습니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인데, 두 번째로 녹고 다시 얼어붙은 뒤로는 아직 안 녹네요. 아마 봄까지는 이렇게 될 듯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겨울이잖아요.


.. 포노나무가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보고 농부의 게으름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짧은 생각이다. 획일적이려면 개성을 억눌러야 한다. 억누르면 그만큼 자연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포도나무에 스트레스가 많으면 포도 맛이 시어진다. 스트레스 없이 자란 포도가 빛깔과 향기가 좋고 맛도 훨씬 달다 ..  〈133쪽〉


 다음주쯤 다시 서울 나들이를 할까, 다다음주쯤 서울 나들이를 할까 헤아려 보고 있습니다. 국도에서 차에 치여 죽은 짐승들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찍었다는 분 작품이 1월 30일에 선보인답니다(영화이름은 〈어느 날 그 길에서〉, 보여주는 곳은 광화문 일민미술관 5층 영상미디어센트 미디액트 대강의실. 저녁 19시 30분). 그때 가 볼까 싶기는 한데, 시골에서는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가 없어 퍽 고달픕니다. 뭐, 시골에는 도서관도 없고 변변한 책방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시골에 영화 볼 곳이 없고 책 볼 곳이 없다고 해서 메마르거나 팍팍한 삶터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극장과 책방이 없어도 논과 밭이 있고 산과 내가 있으니까요. 차소리 적거나 없고 멧새소리를 반갑게 들을 수 있습니다. 달과 별도 가득가득 올려다볼 수 있고, 밤마다 느끼는 달빛도 참 좋아요. 다만, 요새는 시골마다 흐르던 조그마한 도랑을 다 시멘트로 발라내어 가재도 사라지고 도랑물도 구경할 수 없습니다. 도랑에서 노는 아이 또한 없어요. 어쩌면 도랑에서 놀 아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시멘트로 물골을 새로 트는지 모릅니다.


.. 아버지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온힘을 다해서 이주한 땅을 개간했으나 이 땅도 얼마 못 가 다른 사람 명의로 넘어가 버렸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개간비도 못 받고, 아버지 소유의 포도나무까지 다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 주고서야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었다 ..  〈31쪽〉


 요즈음 시골 읍내나 면내, 또는 살림집 모여 있는 마을 다리께나 네거리께에는 노란 깃발이 펄럭입니다(도시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깃발이 없는 곳도 있지만, 깃발에는 모두 같은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한미 FTA 저지” 또는 “한미 FTA 반대”. 한미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을 맺으면, 도시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고 하듯이 ‘한국 농촌은 싸그리 무너집’니다. 하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고 있는 지금이라고 더 낫지 않아요. 벌써 여러 열 해 동안 시골사람들은 도무지 사람답게 살 수 없을 만큼 형편이 나빠졌거든요. 시골에서 살 만하다면 왜 도시로 떠날까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넉넉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다면 왜 농사짓기를 그만둘까요. 스스로 농사꾼이 되겠다고 하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있나요. 도시에서 그럭저럭 돈벌며 살다가 시골에 땅 사고 집 사고 ‘귀농’한다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일을 이어받아 농사꾼이 되려는 이도, 스스로 처음부터 소작농부터 해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 이도 없습니다. 아주 드물게 몇 사람 있을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무슨 협정을 맺고 안 맺고하고는 거의 인연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얼거리가 이렇게 뒤틀려 있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셔요. 명절때와 김장철에만 곡식과 채소와 열매 값이 조금 오릅니다. 그러나 그런 때가 지난 뒤에는 어떻지요? 스무 해 앞선 때하고 지금하고 곡식 값이 얼마나 달라졌는가요. 그동안 물건값이 얼만큼 올랐고, 배며 능금이며 귤이며 무며 배추며 감자며, 값이 어떻게 되어 있나요. 적어도 1997년에는 도시 저잣거리에서 애호박 하나 값하고 전철삯하고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애호박 하나 값과 전철삯은 얼마나 벌어졌나요. 더욱이 애호박 값이라 해도 도소매상을 거쳐 우리들이 저잣거리에서 사는 값이지, 농사꾼들이 받는 값이 아닙니다.


.. 직업란에는 ‘농업’이라고도 써 넣었다. 그러자 딸내미가 “아빠, 창피해! 아빠 직업을 농업이라고 쓰지 말아요” 하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농업이란 글씨를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웠다. “그럼 여기다 뭘 써 넣어야 하니?” 하고 내가 묻자, 바로 “시인, 시인은 농부보다 덜 창피하잖아”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65쪽〉


 저는 시골에 살지만 농사는 안 짓습니다. 농사지을 땅도 없지만 농사짓는 재주도 없고, 다른 할일이 있어서 그렇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농사짓는 분들은 늘 옆에서 지켜보고 농사꾼들 이야기도 늘 듣습니다. 뭐, 시골에서 시골사람들 이야기 말고 무슨 이야기를 듣겠어요.

 아무튼. 시골에서 지내면서 주소를 바꾸고 무슨 서류를 떼고 하면서 ‘직업’ 적는 자리를 보노라면, 어디에서든 ‘농사꾼’이나 ‘고기잡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어디에도 농사꾼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고기잡이를 하는 분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피라도 뽑을라치면, 딱히 동그라미 그릴 자리가 없어서 ‘무직’이나 ‘기타’나 ‘자유업’ 따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합니다. 적어도 ‘농수산업’이라는 직업 칸도 하나 마련해 놓아야지 싶은데. 어쩌면, 이 나라에는 농수산업에 몸바쳐 일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미자유무역협정 따위도 함부로 맺는지 모릅니다.


.. 포도농사를 짓는 내가 보기에 제일 미운 사람은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만 쏙 빼먹는 사람이다. 나는 포도를 맛있게 먹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포도를 팔고 싶지 않다. 내 포도밭에 와서 알만 쏙 빼먹고 껍질을 밭에 버리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것은 포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포도를 대단히 무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농사를 지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  〈92쪽〉


 저는 바깥밥을 사먹을 때곤, 누구네 집에 놀러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을 때곤, 밥그릇을 깨끗이 비웁니다. 차려 놓은 반찬도 되도록 남김없이 먹습니다. 어릴 적부터 밥버릇을 그렇게 들였거든요. 바깥밥을 사먹거나 술안주를 먹다가 남으면, 가방에 미리 챙겨놓고 있는 반찬통이나 비닐봉지에 고이 담아서 집으로 가져갑니다. 찌개나 비빔밥을 먹을 때 함께 넣고 먹습니다. 서른세 해 살아오며 몸에 밴 이런 밥버릇을 따로 돌아보지는 않았어요. 으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농사꾼들이 당신들 삶을 돌아보며 적바림한 글을 몇 꼭지 읽으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나 아버지나 농사꾼 딸아들입니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저한테 가르친 밥버릇이란 농사꾼 밥버릇일 테지요. 밥알 하나도 소중히 여기라는 밥버릇, 반찬 한 점도 고맙게 여기라는 밥버릇, 그런 밥버릇이었을 테지요.

 요새는 농약이다 뭐다 하고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능금 한 알, 배 한 알 먹을 때에도 껍질을 두껍게 잘라내야 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맷부리나 수건으로 쓱쓱 먼지만 닦아낸 뒤 껍질째 다 먹습니다. 농약이 묻었다면 껍질에만 묻겠어요. 속알까지 배어들지. 껍질에 농약성분이 더 많다고 하는데, 껍질을 안 먹어도 도심지 자동차 배기가스 마시는 일을 생각하면 쌤쌤입니다. 정수기 물을 마시고 먹는샘물 사마신다고 더 깨끗한 물일까요.


.. 메뉴판을 펼쳤다.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커피 한 잔에 1만 5000원. 맥주 한 병도 1만 5000원이었다. 순간 나는 빠르게 셈을 했다. 포도가 얼마인가. 한 송이에 1000원이다. 도매시장에서는 500원을 받는다. 그렇다면 포도 열다섯 송이와 커피 한 잔 값이……. 아내도 입이 딱 벌어져 있었다. 잠시 열애 분위기에 젖어 있던 우리 부부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 윤시내의 열애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는 왜 이렇게 비싼 걸까? … 다방에 있느냐, 카페에 있느냐에 따라서 커피 값을 달리하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갤러리에 있으면 예술작품이 되는 것처럼 커피 한 잔을 고급 카페에서 마시면 문화가 되는 것이다 ..  〈156쪽〉


 요즘은 새벽 두어 시까지 글을 씁니다. 깊은새벽에 일을 마치고 불을 끄면 창밖이 환하게 느껴집니다. 요 며칠 내린 눈 덕분에, 또 반달이 된 달빛으로. 며칠 더 있으면 보름달이 되어 더 환해질 테지요. 그때까지 눈이 안 녹고 있으면 훨씬 환할 테고요.

 곰곰이 생각하니,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짐승들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저 같은 사람보다 도시사람들이 애써 찾아가서 보면 좋겠다 싶습니다. 저야 늘 보는 주검이고 늘 안타까이 생각하는 주검이니까요. 그런데 도시사람들이 이런 영화가 하는 줄이나 알는지. 또, 이런 영화가 한다고 할 때 몸소 찾아가서 보려고 할는지. 이 영화를 본다 한들 무엇을 느끼고 자기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보려고 애쓰기나 할는지. (4340.1.2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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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에 처음 쓴 글인데, 다시 읽으면서 몇 가지 고칠 대목이 눈에 뜨여서 이래저래 손을 보았습니다. 해묵은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나, 몇 군데 도매상 부도 이야기를 빼면, 지금 생각해도 아직까지 하나도 좋은 쪽으로 달라진 모습이 없다고 느끼기에 걸쳐 봅니다. 이 글을 쓰던 2004년에는 미처 몰랐는데, 뒷날 홈쇼핑에 책이 몇 % 마진으로 들어가는가를 안 뒤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홈쇼핑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숫자를 살짝 바꾸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숫자 나눗셈을 해 보시면, 홈쇼핑에 들어가는 책값 마진을 얼추 헤아려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홈쇼핑 문제는 이런 어마어마한 마진만이 아닙니다. 홈쇼핑 업체한테 주는 돈이며, 중앙일간지 여러 곳에 틈틈이 실어 주어야 하는 광고값, 그리고 여러 가지... 홈쇼핑은 돈 놓고 돈 먹기 장사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 많은 어머님들은 텔레비전 홈쇼핑을 보며 그런 책들을 아주 손쉽게 카드결제를 하며 사들입니다.


 출판사여, ‘돈’ 생각보다는 ‘첫마음’을…
 [책이 있는 삶 4] 출판사와 독자가 함께 어울릴 길을 찾자


 〈1〉 영국 헤이온와이와 파주를 생각해 본다


 인터넷을 누비다가 며칠 앞서 재미있는(저한테만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신문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파이낸셜뉴스〉 10월 20일치 기사인데, 영국에 있는 ‘헤이온와이’ 마을을 찾아가 헌책방 마을을 만든 리처드 부스를 만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리처드 부스는 한국 기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한국에서도 지금 저희 헌책방 마을을 모방해 파주출판단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헤이 온 와이는 파주출판단지처럼 새롭게 건물을 신축한 것이 아니라 옛날의 집을 약간 리모델링해서 전통을 살렸기 때문에 성공했지요.” ..


 얼마 앞서 ‘어린이책’이라고 하는 도매상이 부도 났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부도날 것을 미리 안 몇몇 출판사에서는 미리 책을 빼고 돈을 거둬들였고, 힘과 돈이 있는 큰 출판사는 ‘자기들 책만 빼오고 피해만 되찾으면 그만’이라는 투로 나서고 있어서 중간 크기와 작은 크기 출판사들은 더욱 어렵고 피해가 큽니다(〈한겨레〉 10월 15일치 기사에도 나옴).

 자, 이 두 가지를 잘 생각해 봅시다. 큰 도매상이었던 ‘어린이책’이 부도가 나면서 많은 출판사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한편으로, 지금 파주에서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 출판사가 줄을 잇습니다. 새 건물을 크게 짓는 출판사 가운데에는 이번에 적잖은 돈을 부도로 날린 곳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좋을까요? ㄴ출판사 사장은 파주출판문화단지를 두고 “출판사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만의 천국”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파주로 들어가자면 땅을 사거나 땅을 빌리기만 해서는 안 되며 자기 출판사 건물을 새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기본 투자비를 내야 하는데, 그 돈은 웬만한 출판사 여러 달치 매출과 맞먹거나 그보다 훨씬 큰 돈입니다. 더구나 서울과 파주로 출퇴근하는 직원에게 일삯도 더 주어야 하고, 교통삯이나 먹고자는 일도 골칫거리입니다. 인건비를 주지 못해서 쩔쩔 매는 출판사도 있는 한편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만의 천국”을 짓는 모습이 바로 우리네 책마을 모습입니다.


 〈2〉 출판사는 ‘책장사’가 아니다


 책은 팔라고 만드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팔려고만 하는 목적’으로 만드는 물건이 책은 아닙니다. 책은 애써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을 값과 뜻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값과 뜻이 없이 만드는 책은 한낱 공산품, 그러니까 공장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내는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값과 뜻이 있는 책을 만들어내어 많은 사람들이 널리 읽고 좋은 뜻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재미있어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출판사마다 처음 책을 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닐까요?

 그런데 요새 어떤 일도 있는 줄 아십니까? 매출도 높고 직원도 많고 책도 잘 파는 출판사들이 ‘홈쇼핑’으로도 나아가면서, 엄청나게 싼값으로 ‘퍽 괜찮다고 할 만한 책’을 무더기로 팔고 있습니다. 요즘 홈쇼핑으로 파는 그 책들을 가만히 살피면, 나온 지 여러 해 된 책들로, 일반 책방에서는 ‘제값(정가)’대로 팔다가 인터넷서점 할인율이 너무 높아(20∼40%) 요즘은 에누리해서 파는 책입니다(낱권은 정가, 전집은 에누리). 그런 책을 이보다 훨씬 싼값으로 팝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아니, 왜 이런 일을 할까요?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좋은 책을 손쉽고 값싸게 사서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참말로 그럴까요?

 그 출판사들이 참말로 독자들이 ‘손쉽고 값싸게 좋은 책을 사서 보기’를 바랐다면 이렇게 홈쇼핑으로 팔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홈쇼핑으로 책을 파는 일이 나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홈쇼핑에서도 좋은 책을 팔아야 합니다. 다만 ‘알맞는’ 값으로 팔아야지요. 하지만 홈쇼핑을 발판으로 엄청나게 싼값으로 책을 판다면, 그것도 일반 책방에서는 ‘정가(낱권으로 살 때 직접 찾아가는 손님은 정가대로 사야만 합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대로 파는 책을 그처럼 묶어서 싸구려처럼 무더기로 팔면 조그마한 책방은 어떻게 하나요?

 책방 없이도 책을 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일까요? 매출만 높이면 된다는 생각일까요? 독자들이 손쉽고 싼값에 좋은 책을 사서 보아야 했다면, 처음부터 책값을 알맞게 매겨서 책방에서 팔면 그만입니다. 20만 원짜리 책을 홈쇼핑에서 7만 원에 팔면(보기를 들어서), 홈쇼핑으로 그 책을 사는 사람은 좋겠지요. 그렇다면 책방은 어떻게 되죠? 그리고 홈쇼핑으로 나오기 앞서 그 책을 산 사람들은 무엇이 될까요? 독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게 지금 출판사들이 하는 짓이 아닌가요? 처음부터 책값을 7만 원이든 10만 원으로든 맞췄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그 책을 사서 보지 않았을까요? 20만 원짜리 책을 홈쇼핑에 7만 원에 내놓고도 남는 것이 있으니, 이렇게 책을 팔겠지요. 그렇다면 참말로 20만 원이란 책값은 무엇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출판사한테 이익이 남고 독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 갈 만한 알맞는 책값이란 얼마쯤일까요?


 〈3〉 《타쉬》라는 책


 제게는 아주 소중한 책이 두 권 있습니다. 이 두 권은 웬만해서는 얻기 어려운 책입니다. 하나는 1999년 3월 17일에 ‘한국조류보호협회’에서 펴낸 책으로 《한국의 천연기념물》이란 도감입니다. 아, 보통 도감인 것 같은데 이 책이 뭐가 소중하느냐고요? 이 책은 보통 책이 아닙니다. ‘점자책’입니다.

 하나 더. 2002년 1월 20일에 나온 《타쉬》(샘터)라는 책입니다. 아, 《타쉬》란 책도 흔한 책이 아니냐고요? 이 책도 보통 책이 아닙니다. 2001년 12월 20일에 나온 자그마한 《타쉬》는 보통 책이지만, 이듬해 1월 20일에 나온 《타쉬》는 ‘점역판’으로 만든 자그마치 45000원짜리 책입니다.

 ‘샘터’라는 출판사는 지난 1970∼80년대에 박정희 독재정권을 찬양하거나 팔짱 끼고 구경하는 줄거리, 미국을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줄거리를 잡지에 담아 거침없이 펴낸 곳입니다. 이런 대목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잡지와 여러 책을 펴내며 모은 돈으로 ‘새 건물 짓기’나 ‘땅 투자’만 하지 않고, 이처럼 ‘점역판’ 책을 냈다는 대목은 참 놀랍고 반갑습니다. 아니, 우리네 책마을 현실을 돌아볼 때는 무척 훌륭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지난날 우리 삶을 밝힌 훌륭한 인문사회과학 책을 줄기차게 펴내던 ㄱ이란 출판사는 요즘엔 사뭇 다른 책만 펴냅니다. 돈 많이 벌기와 처세술과 재벌 이야기, 부동산, 웰빙, 증권, CEO, …… 이런 책만 펴냅니다. 이런 모습을 본 김규항 씨는 차라리 ‘옛 출판사 이름을 안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만, 참 많은 출판사들이 ‘돈’만 보고 돈만 좇으면서 책을 내고 있습니다. 돈이 있어서 책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한다는 책을 내는 셈이라 하겠는데, 돈이 없어서 책을 사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꿈과 용기와 슬기를 심어 줄 책을 내는 일을 출판사 사람들이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할까요?

 파주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파주에 새로 세우는 건물은 저마다 수십 억이 든 건물입니다. 앞으로 지을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평당 건축비와 건물 짓는 평수를 알아본 바로는). 그 돈을 생각해 봅니다. 구태여 그 많은 돈을 들여서 건물을 새로 지어야 했을까요. 그 많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겉보기로 번듯번듯한 ‘새 집 짓기’ 말고는 없을까요. 파주 책잔치 한마당에 놀러가는 사람들은 ‘수십 억 들인 건물’과 ‘수백 억 들인 출판문화단지’를 구경하는 일이 ‘책 문화를 넓히는 좋은 길’로 생각하는가요?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출판사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요. 이곳을 찾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글쎄,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건물을 수십 억 들여서 지을 돈으로 《타쉬》 점역판이나 《한국의 천연기념물》 점자판 같은 책을 만들어야 알맞지 않을까요. 이런 책 만드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다. 나아가 그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을 값싸게 내놓으면 훨씬 좋습니다. 새 건물을 짓느라 드는 큰돈을 책값에 들씌워서 독자들한테 짐을 지라고 하는 꼴과 같은 지금 모습을 고쳐 나가면 좋겠습니다.


.. 점자는 신기하고, 소중하고 그래요. 일반 글씨를 읽고 쓸 줄도 알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점자를 배웠어요. 보이지 않아도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데, 점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  《눈 밖에 나다》(휴머니스트,2003) 28쪽


 좀 된 일이지만, 지난 2000년에 ‘점자책 만드는 일’을 하는 분을 뵌 적 있습니다. 그분한테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무언가요?” 하고 여쭈니, “출판사에서 원고를 보내 주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기들이 하나하나 타자를 쳐서 점자책을 만들자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몇 권 만들지 못하지만, 원고 파일이 있으면, 아주 손쉽고 빠르게, 더 많이 좋은 책을 점자로 만들 수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자료 유출’이라면서 보내 주지 않는다고 해요. 요즘에도 형편은 마찬가지랍니다.

 출판사에서는 ‘자료 유출’은 걱정하겠지만, 자기네 책이 ‘점자’로 만들어져서 장님도 책을 볼 수 있다면 좋아하겠지요? 그렇다면 돈 많은 출판사들 스스로 ‘새 건물 짓고 땅 투기 하는 데 돈 쓰지 말’고 이런 ‘점자책’을 만들어 줄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출판사에서는 이런 일을 안 해요. 어쩌다 한두 군데, 한두 번 할까 말까입니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책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늘 듣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책이라고 만들어 봐야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사 주지도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독자들이 찾는 책만 펴내면 될까요? 독자들이 찾는 책만 펴내 주면 출판사 어려움도 다 풀릴까요?

 글쎄. 책마을 사람들은 “사람들이 안 찾는다고 어떤 갈래 책을 안 펴낼 수도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해서 그런 책만 펴낼 수도 없”습니다. ‘유행과 시류’를 타는 책을 펴내야 어느 만큼 돈을 만지며 ‘다음에 펴낼 좋은 책’에 돈을 쓸 수 있습니다. 유행과 시류를 안 타는 책을 펴내면 첫판 1쇄도 다 팔기 버거워 빚만 껴안다가 끝내 출판사 문을 닫을 걱정이 큽니다. 하지만 유행과 시류를 타는 책은 출판사 이름을 깎아내리기 마련이고, 한길을 곧게 걸어가며 펴내는 책은 사람들한테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며 아주 느리게 좋은 이름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좋은 이름’만으로 밥먹고 살 수 없잖아요. 또한, 하늘에서 돈이 뚝뚝 떨어지지도 않으니, 유행과 시류를 거스르며 올곧은 책만 펴낼 수도 없고요.

 책 한 권으로 넓고 깊은 문화를 나누고, 올곧은 사회 흐름을 잘 살피고 헤아리도록 하고픈 책마을 사람들 꿈은 남김없이 부서지거나 짓밟히고 있습니다. 돈에 울고 독자들한테 울고 자기 자신 때문에 웁니다.


 〈4〉 돈을 벌고자 하면 돈이 멀어진다


 옛말에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은 돈을 못 벌고, 돈을 벌 생각이 없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번다고 했습니다. 돈은 ‘수단이나 방법’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가 돈을 벌면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더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지요?

 책이 좋아서 만들고, 책을 만들어서 많은 이들이 즐거울 수 있다면 보람을 얻는 곳이 출판사가 맞는가요? 그래, 그렇다면, 책 팔아 번 돈은 책 펴내는 데 쓰기 마련이어야 옳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출판사들 가운데 ‘책 팔아 번 많은 돈’으로 ‘다시 책 펴내는 데 돈 쓰는 곳’은 얼마쯤 될까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어떤 곳은 책 팔아 번 돈으로 물장사를 하고, 어떤 곳은 비데 장사를 하거든요. 정치꾼에게 돈을 대는 곳도 있고 건설이나 부동산에 손을 대는 곳도 있습니다. 좀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아주 좋은 일을 하겠다면서 영어교재에 손을 댔다가 털어먹은 곳도 있지만, 영어교재에 손을 대 아주 큰 부자가 된 곳도 있습니다. 좀더 많은 돈을 벌어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지만, 참말로 돈을 많이 번 뒤에는 ‘좋은 일 하겠다는 마음’을 잃어버린 곳도 있어요.

 독자들이 좋은 책을 알아봐 주기 바란다면, 책마을 사람들은 ‘좋은 책 만드는 일’에 온힘을 바쳐야 옳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누구나 손쉽고 값싸고 알뜰하게 책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들만이 기꺼이하거나 사 볼 수 있는 책이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이 책을 사서 봐야 할 사람들은 사서 볼 거야’ 하는 마음으로 펴내는 책이어서도 안 됩니다. 누구나 즐겁게 사서 볼 수 있도록 알맞게 값을 매기고, 보기 좋게 꾸밀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독자들이 책에서 자꾸만 멀어진다고 책마을 사람들마저 ‘책 만드는 첫마음’을 잃어서는 안 되잖아요. 이럴수록 첫마음을 다시 돌아보고 되새기면서 중심이 되는 잣대와 뜻을 차분하고 튼튼하게 지키고 가꿔야 좋잖아요.

 우리는 아직 출판 후진국이라 할 만합니다. 독자들이 선뜻 좋은 책을 잘 알아봐 주는 일은 참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탕이 튼튼하면 그 위에 건물 짓기 좋겠지요. 그런데 그 바탕을 닦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나, 차분하고 느긋하게 애쓰면서, 튼튼한 바탕이 될 알뜰하고 알찬 책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면 독자들도 차츰차츰 움직이고 눈길을 두지 않겠습니까.

 한 걸음 다가갔는데 독자들은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뒷걸음질치지는 맙시다. 그러면 우리가 한 걸음을 더 다가가면 되잖아요. 그래도 꼼짝 않는다면 다시 한 걸음을 다가가요. 그래도 마찬가지라면 또 한 걸음을 다가가면서 책을 펴내는 곱고 아름다운 뜻을 잘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 ‘돈’이 아닌 ‘독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책을 만드는 정성’에 온힘을 쏟으면서 책마을이 참다운 책마을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37.10.29.쇠.처음 씀/4340.1.27.흙.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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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생각
박경화 지음 / 북센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
- 글쓴이 : 박경화
- 펴낸곳 : 북센스(2006.1.16.)
- 책값 : 9500원


 낮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이제 눈은 그쳤습니다. 조용한 밤입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차 다니는 소리도 안 들립니다. 좋습니다. 이 조용함이 좋습니다. 모든 것을 하얗게 덮은 눈을 보면, ‘아, 이제 이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또 꼼짝 못하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히유, 얼어붙은 눈이 녹으려면 또 한참이 더 있어야겠군’ 하는 생각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눈이 마냥 밉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미운 마음이란 없습니다. 겨울이니까 눈이 와야지요. 오더라도 펑펑 와야지요. 펑펑 와서 길이 다 막히고 무릎이 푹푹 잠겨야지요. 겨울인걸요.


-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1급수 맑은 물에만 사는 물고기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다. (34쪽)


 이제 날이 새고 아침이 밝아 오면 길을 쓸고 치우는 손길로 부산할 겝니다. 차 많이 다니는 큰길에는 모래를 뿌린다고, 염화칼슘을 뿌린다고 법석이겠지요. 눈이 오는 날, ‘이야, 흰눈이다. 눈이다. 펄펄 내리는 눈이다!’ 하면서 소리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습니다. 눈싸움을 하자고, 눈사람을 만들자고, 눈놀이를 하자고, 눈사진을 찍자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생각해 보니, 눈이 펑펑 내려 길을 덮어도 사람들 지나다니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걸어다닐 때 조금 미끄럽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렇게까지 미끄러웠는가 모르겠어요. 길을 쓸거나 치워야 한다면, 모두 차가 잘 다니라고 쓸거나 치우지 않을까요?


..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된 중개상과 다국적 기업들은 콩고의 광부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고 국립공원이 얼마나 파괴되었고 고릴라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  〈24쪽〉


 눈이 펑펑 내린 날은 버스도 쉬고 기차도 쉬고 비행기도 쉬고, 모두모두 쉬면 어떨까요. 청소부도 쉬고 구멍가게도 쉬고 신문사 배달직원과 우유 아줌마도 쉬면 어떨까요. 구두닦이도 쉬고 길거리 장사꾼도 쉬고 은행도 쉬면 어떨까요. 먹고살아야 하니 쉴 수 없고, 먹고살아야 하니 차가 싱싱 달릴 수 있게 재빨리 길에 쌓이는 눈을 후다닥 치워야 할까요.


.. 덤은 많이 못 줘도 비닐봉지 인심은 풍년이다. 애써 장바구니를 챙겨 온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대형할인점은 아예 야채와 과일을 따로 포장해서 가격표를 붙여 준다. 때문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도 별 쓸모가 없다. 장을 볼 때마다 찬장에 비닐봉지가 자꾸 늘어간다. 그럴 때마다 비닐봉지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  〈84∼85쪽〉


 아침에 일어나면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불을 끄고 눕는데 창밖에 환합니다. 달빛과 별빛은 없는 밤이지만 온누리를 하얗게 덮은 눈 덕분에 바깥이 환하게 보이는군요. 도시에서도 온 동네 불빛이 다 꺼진다면 세상이 온통 밝고 하얗게 보일 테지요(그럴 일은 없겠지만). 밤에 눈빛이 얼마나 하얀지, 또 밝아 온 아침에 눈이 얼마나 하얀지 느낄 수 있겠지요.


.. 외출해서 차를 기다리고 차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걷는 짧은 시간만 추위를 느낄 뿐이므로 굳이 내복을 챙겨 입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옷맵시에 신경을 쓰는 멋쟁이들은 두꺼운 내복이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한다면 겨울철에 반드시 내복을 입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 ..  〈113∼114쪽〉


 겨울다운 겨울을 잃는 우리들은 봄다운 봄을 잃고 여름다운 여름을 잃습니다. 지난해 가을은 여태까지 맞이한 가을 가운데 가장 ‘가을답지 않은 가을’이었습니다. 하지만 2007년 가을은 지난해보다 더 ‘가을답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우리들 씀씀이는 줄지 않으니까요. 자동차를 사려는 우리 마음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입으로만 ‘가까운 거리는 걷자’고 읊고, 몸으로는 죽어도 안 걸으려고 하니까요. 그러면서 늘 같은 말을 되뇌이겠지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4340.1.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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