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글을 고쳤습니다. 살도 붙이고, 어색한 곳을 다듬어서 확 다시 썼습니다. (2007.12.9.)


 이 책 하나 7 ― 외국인노동자를 만나 보셨나요?
 : 이란주, 《말해요, 찬드라》를 몇 번 거듭 읽으며



 〈1〉 몽골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를 만나다


 책을 읽는다고 이 넓은 세상을 얼마나 알 수 있으랴 싶습니다만, 책읽기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요즘 읽는 책 가운데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다산글방,2001)가 있습니다. 한 번 읽을 때 열 쪽이나 스무 쪽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펼치는 쪽마다, 이 나라에 어렵게 들어와서 온갖 차별과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으면서 죽을 고생을 하는 사람들 모습이 환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책을 조금 읽다가 덮습니다. 낮밥으로 찌개 하나 끓이면서 읽습니다. 기계가 잘못되어서 손가락이 잘려도 산업재해를 해 주지 않고, 더욱이 기계도 손보지 않아서 다른 외국인노동자가 그 기계를 쓰다가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는데, 공장주는 기계를 그냥 그대로 두며 다른 외국인노동자를 부려서 쓴다는 이야기를 봅니다.


.. 일도 잘하고 싹싹해서 공장식구들도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노이’가 이듬해 가을에 프레스에 오른손을 찍혀 몽땅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손목 부근에서 잘렸으니 아예 손이 없어져버렸다. 노이는 그 회사에서 2년 가까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알아서 해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장은 산재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세금을 내지 않아서 사업자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속 사고처리를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사고난 후 한 달 만에 회사를 팔아넘기고 달아나 버렸다. 더구나 상담소에서 합의를 보자고 연락했을 때는 일부러 자기 이름을 새로 바뀔 사장 이름으로 알려줘서 우리를 골탕먹이기도 했다. 외국인 친구들 중에는 자기가 일하는 회사 이름이나 사장 이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새로 온 사장은 ‘나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모른 척했다 ..  〈17쪽〉


 한국땅에서 일어난 온갖 푸대접과 괴롭힘과 따돌림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혀서 보여주는 사례모음,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백서》를 읽다가 덮고는,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라는 책을 펼쳐 봅니다. 벌써 두 번 읽었는데, 다시 한 번 집어들어 펼칩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일하면서 ‘왜 한국사람이 외국사람 편을 드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아파하는, 그러면서도 이주노동자나 이 나라 노동자나 똑같은 사람인데, 모두들 똑같이 대접을 받으며 사람다운 꿈과 마음을 키워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믿음을 나누는 사람인 이란주 씨가 발로 뛰면서 부대낀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 책, 《말해요, 찬드라》.


..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좀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 부부는 또 어쩌려고 여기서 아기를 낳았을까 싶은 마음에 한편으로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살면서, 그것도 불법체류하면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한국이라는 나라는 남들과 다른 얼굴색을 하고는 절대 살 수 없는 나라가 아닌가.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겪게 되는 따돌림과 상대적 빈곤감은 평생 큰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을 본국으로 순순히 보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정부는 부모의 불법체류를 묵인하고 아이들만 출국시킬 수 없다면서 아이들을 내보내 주지 않고, 온 가족이 다 같이 고통을 겪도록 묶어둔다 ..  〈29쪽〉


 저는 우리 말과 헌책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한답시고 깝죽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늘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입니다. 헌책방에 뭐가 있느냐고, 구닥다리 책이 쌓여 있는 허름한 헌책방 따위는 머잖아 사라져 버릴 곳이 아니냐는 말을 듣습니다. 사람들 다 잘 알아서 쓰는 한국말 아니냐고, 뭐가 깨끗한 말이고 뭐가 알맞는 말이고 뭐가 얄궂은 말이며 뭐가 틀린 말이냐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냥저냥 값싸게 사들일 수 있는 헌책방 전화번호만 있으면 되지, 무슨 헌책방 나들이를 따로 하고 그런 걸 글로 끄적이고 사진으로 찍느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계화 시대를 거스르는 엉뚱한 짓을 하는 너는 고리타분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느냐는 손가락질도 받습니다.

 참말, 저는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참말, 이란주 씨 같은 이는 왜 ‘외국인노동자 권리’를 찾아 주려고 애쓸까요?


.. 법무부 출입국에서 하는 일 중에 아주 웃기는 일이 많은데, 그 중 으뜸이 단속과 벌금에 관한 것이다. 불법체류자가 자진출국하겠다고 나서면 그 사람이 불법체류했던 기간을 계산해서 벌금을 내라고 한다. 대략 한 달에 10만 원 꼴이어서 1년이면 100만 원, 2년이면 200만 원 가량이 된다. 안 가겠다고 꼭꼭 숨어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 붙잡아다 강제출국시키면서도 스스로 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벌금 안 내면 못 간다고 도로 내보낸다. 벌금 낼 돈 없으면 가서 벌어 오라고 돌려보내는 곳이 바로 출입국사무소였다 ..  〈87쪽〉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일입니다. 제가 일하는 시골에서 서울로 가려고 시골 버스역에 갔을 때 몽골 노동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이가 몽골사람인 줄, 몽골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퍽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는데 그이 몸에서는 알쏭달쏭한 고약한 냄새가 났고, 마치 노숙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기에, 낮부터 술을 마셔서 저러는가 싶었지요.

 아무튼, 그러려니 하면서 책을 읽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시골 버스역에서 표파는 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저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 서울 가는 버스 타니까, 저 사람이 타는 버스 타면 돼요!” 하고 말을 합니다. ‘뭐여?’ 하는 마음으로 그쪽을 쳐다봅니다. 표파는 곳 아주머니는 저를 보면서, “이 (몽골) 사람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놓쳐서 한 시간을 더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 버스가 올 때 알려줘서 타게 해 줘요.” 합니다. “네, 그러지요.” 하고 대답합니다. 조금 뒤, 버스역에 함께 붙어 있는 택시 타는 곳에 있는 택시기사 한 사람이, “어이, 몽골! 택시 타고 가!” 하고 소리지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아저씨는 아무 말을 않고 손만 휘적휘적 내젓습니다. ‘아하, 몽골사람이었구나. 어쩐지.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 아저씨한테 반말지꺼리야?’


.. 대한민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외국인력을 수입해서 저임금에 부리다가 쓸모없어지면 고장난 기계를 던져버리듯 본국으로 내쫓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과 국제질서를 논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 이래도 우리가 마음 편히 미국을 욕할 수 있겠는가? ..  〈103쪽〉


 서울 가는 버스가 들어옵니다. 몽골 아저씨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입니다. 부랴부랴 버스기사한테 ‘잠깐만 기다려 주셔요’ 하고 차를 잡아 놓고는, 버스역 둘레를 두리번두리번 살핍니다. 이 몽골 아저씨는 어디로 갔담? 아이고, 저 구석에 서 있네. 헐레벌떡 뛰어갑니다. “아저씨, 이 버스 타야 해요. 또 놓쳐서 한 시간 기다리려고요? 어서 가요.”

 빈자리를 찾아서 몽골 아저씨가 앉습니다. 저는 짐보따리가 많아서 다른 빈자리로 가서 앉습니다. 책을 읽으며, 꾸벅꾸벅 졸며, 서울에 닿습니다. 이제 버스에서 내릴 때. 이제 서울에 왔는데, 몽골 아저씨는 어찌할는지?

 내릴 때 가만히 살펴봅니다. 몽골 아저씨는 버스기사한테 묻습니다. “동대문 어떻게 가요?” 버스기사는 “동대문? 동대문은 지하철 타고 가면 되지.”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몽골 아저씨는 어리벙한 얼굴로 서 있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다른 손님들은 모두 자기 갈 곳으로 갑니다. 버스기사도 버스를 빼려고 다른 곳으로 갑니다. 몽골 아저씨 혼자 남습니다. 아저씨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더니 사람들이 많이 걷는 쪽으로 따라갑니다. 몽골 아저씨 뒤를 따라갑니다. 어깨를 오른손으로 살짝 잡으면서 아저씨한테 묻습니다. “어디로 가셔요?” “동대문 가요.” “어떻게 가는 줄 아셔요?” “몰라요. 택시 타고 가면 되겠죠.” “네? 아이고, 택시 타고 가면 돈이 얼마나 나오는 줄 알아요?” “몰라요. 나 돈 있어요. 택시 타고 갈 돈 있어요.”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러죠. 지하철 타면 800원인데, 택시 타고 가면 5000원도 넘게 나와요. 지하철 타는 것보다 거의 열 배나 비싸요.” “나, 길 몰라요. 그리고 택시 타고 갈 돈 있어요.” 에구, 택시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이러다가 바가지라도 쓰고 엉뚱한 데 내려주면 어떡하려고.


.. 다른 한국인 직원들에게는 날짜가 되면 어김없이 돈을 주면서, 우리에게만 월급 줄 돈이 없어서 그러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한번은 참다 못한 우리들이 월급을 주지 않으면 일도 않겠다고 버텼다. 사장은 주먹을 코앞에 갖다 대고 일을 안 하면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위협을 했다. 나중에 사장은 내가 너희들에게 줄 돈을 아껴서 다른 회사를 하나 샀노라고 자랑을 했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들을 다 데리고 안산까지 가서 새로 샀다는 공장을 구경시키기도 했다 .. (올리) 〈164쪽〉


 “아저씨, 제가 가는 길에 내려 드리면 되니 지하철 타고 가요.” “택시 타도 되는데…” 아저씨를 달래어 지하철을 타기로 합니다.

 “지하철 타 본 적 있어요?” “한 번, 있어요. 처음 서울에 와서 의정부에 갈 때.” “한글은 읽을 줄 아셔요?” “(씩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며) 몰라요. 말은 조금 배웠어요.” “동대문에 가서는 아는 사람 있어요?” “네, 거기서 내려서 동생한테 전화하면 돼요. 동생이 한국사람한테 시집와서 서울에 살고 있어요.”


.. “예? 힘든 거요? 힘들지요. 그래도 월급만 잘 나오면 괜찮아요. 많이 일하면 돈 많이 받으니까…”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가구공장 일은 어지간한 노동자들이면 피하는 일이다. 임금이 조금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일이 너무 고되 골병든다고들 한다. 그 일을 하루 열네 시간 반 동안, 그것도 한 달에 보름 이상이면, 일요일을 뺀 나머지 날은 거의 다 밤 한 시까지 일했다는 이야기였다. 몸이 무쇠라도 견디지 못할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절대 문제삼지 말아 달라고 했다 ..  〈196쪽〉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몽골 아저씨와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이분이 ‘아저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몽골에서 혼인을 하고 식구를 남겨 놓고 왔는지, 어쩐지 모르니까요. 그냥,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에 아저씨라고 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처음 봤을 때는 틀림없는 노숙자로 보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이분이 충북 음성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일할 때는 컨테이너 따위 움막에서 잠을 잤을 테고 씻을 곳이 넉넉하지 않았을 테니, 이런 차림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저씨가 한국이 아닌 몽골 시골집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그예 시골사람으로만 보이는 수수한 차림이었을까요.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일 년, 일 년 됐어요. 처음엔 의정부 있는 데서 일했는데, 돈 안 줘서 여기로 왔어요. 그런데 여기서도 돈 안 줘서 다른 데 가려고 동생 아는 곳으로 가요.” “서울에 사람 참 많지요? 어지럽지 않아요?” “사람 많아요.”


.. “예? 불법체류자라구요? 불법체류자 주제에 무슨 학교요?” 교육청에 처음 문의를 했을 때 들었던 대답이다. “아무리 불법체류 상태라도 어린이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권리요? 그거야 내국인이거나 합법적인 경우를 얘기하는 거지, 불법체류는 규정이 없어요.” “정식 입학이 안 되면 청강생으로라도 받아 줄 수 없나요?” “우리 나라에는 청강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학교를 상대로, 교육청을 상대로, 이런 실랑이가 수도 없이 벌어졌지만 항상 결과는 마찬가지로 ‘안 된다’였다. 교육부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지금으로서는 규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  〈48쪽〉


 그런데 동대문에 내려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갈 곳은 ‘동대문’이 아니라 ‘동대문운동장’입니다. 몽골 아저씨가 동생하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생 사는 곳’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하긴, 서울이 어떻게 생겨먹은 땅인지 하나도 모르는 몽골 아저씨한테는 ‘동대문’하고 ‘동대문운동장’하고 어떻게 다른 지 가리기 힘들겠지요. 또, 다 같은 동대문 아니냐고 생각할 테고.

 전철역에서 내려 주면 될까 싶었으나 그게 아니게 되니, 저도 시간 빼기가 빠듯해집니다. 어쩔까 어쩔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약속 늦는 일은 할 수 없지, 미안하다고 손전화 문자를 보내고, 아저씨와 함께 길을 찾기로 합니다. 여기까지 함께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으니까요. 더욱이 몽골 아저씨로는 처음 발을 디뎌 보는 서울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없고요.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면서 “아무 데나 내려도 되지 않았나?” 하시는데, 참참참. ‘아저씨요, 그러다가 길 옴팡 잃고 동생도 못 만나면 어쩌려구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도 없으니 동생이 여기까지 찾아올 수도 없잖아요? 이궁.’


.. 박 기자는 그때까지도 사무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우리 상담소 활동가가 아니라 기자라고 밝히니까 사장이 반색을 하더라고 했다. 자기들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으니 현실을 잘 살펴 달라고 하더란다. ‘월급도 많이 받는 놈들이 이제 벌 만큼 벌어서 아쉬울 게 없으니까 문제 일으켜서 벌금 안 내고 가려고 수작 부리는 거다, 월요일 오전까지 일 잘하던 애들이 왜 그러겠느냐, 저기 같이 온 단체에서 사주해서 파업까지 하는 것 아니냐, 나는 정말 동생들이라고 생각해서 뭐든 원하는 거 있으면 다 해 줬는데 정말 야속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사업 좀 키워 보려고 이것저것 투자하다 보니까 임금 좀 못 줬다, 뭐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이냐, 애들한테 욕도 좀 했다, 우리끼리도 욕 잘하지 않느냐, 그게 뭐 그렇게 잘못한 거냐, 그리고 애들이 일 잘 안하고 그러면 엉덩이 좀 걷어찰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대수냐, 다른 회사에서도 노무관리 다 그렇게 한다, 괜히 나라에서 외국인들 고용 못하게 하니까 한 오십만 원만 줘도 일 잘할 애들에게 우리는 백만 원씩이나 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사업이 어려운 거 아니냐, 우리도 이 사업 정말 하기 힘들다’ 박 기자가 들은 이야기를 대충 추려 들어도 그 정도였다. 도대체 기대할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  〈234∼235쪽〉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골목을 걷고 헤매고 한 끝에 가까스로 ‘가야 할 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몽골 아저씨 말로는 “여기에 오라고 했어요. 여기 있으면 된대요.” 몽골사람다운 느긋함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대충 어디로 와 있으면(시간을 따로 잡지 않고), 언제가 되든 그리로 몽골 아저씨를 데리러 온다는 소리일까요? 저보고 ‘이제 가도 된다’고 하지만, 차마 그냥 갈 수 없습니다. 함께 서서 기다립니다. 가방을 열어 떡 한 봉지를 꺼냅니다. 참으로 먹으려고 챙겨 두었던 떡입니다. 반을 뚝 떼어서 한 덩이를 아저씨한테 건넵니다. “아저씨도 점심 못 드셨지요? 떡이라도 드셔요.”

 냠냠 우걱우걱. 한참 기다리는데 올 사람은 오지 않고. 아마 동생 분도 어디에서 일을 하는데, 마무리를 짓고 나와야 해서 늦는 듯. 동생 분과 몇 번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알려줍니다.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이제 저는 가도 될 듯. 동생하고 만나는 자리까지 지켜야 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지만, 손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 분 목소리로는, 이제 괜찮겠구나 싶습니다. 아무쪼록, 부디, 제발이지, 아저씨가 동생을 잘 만나서 길에서 더 헤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보다도 앞으로는 ‘일삯 떼먹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주면서 푸대접하지 않는 공장’을 찾아서 땀흘려 일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저씨와 동생이 흘린 땀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일하면서 몸이 다치지 않기를, 고향나라로 돌아가는 날 웃을 수 있기를, 한국땅까지 찾아와서 공장을 찾아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서 이루려는 꿈을 잘 마무를 수 있기를…….


 〈2〉 ‘외국인’노동자가 아니라 똑같은 ‘노동자’이겠지요


.. “한국이 우리 사랑을, 우리 가족을 인정하고 받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  〈38쪽〉


 자전거를 달립니다. 시간 약속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마에서 볼따구를 타고 목덜미로 내려와 등줄기에 줄줄 흐르며 젖어드는 땀을 느끼며 생각합니다. 아까, 몽골 아저씨와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으로 갈 때였습니다. 아저씨는 갑자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고 웃으면서 말을 건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나 싶어서 “네? 네? 무슨 말씀이셔요?” 하고 묻는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다들 뭘 물으면 ‘몰라 몰라’만 하는데,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합니다. 아하, 아마도, 몽골 아저씨가 어디로 가려고 길을 물어 보면, 한국말이 서툰 이분 말을 대충 넘겨듣고는 “어디로 가셔요.” 하고는 휙 가 버리거나 아예 말대꾸도 않고 지나갔는가 보네요. 몽골 아저씨는 서툰 목소리로 “한국 좋은 나라예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 그 ‘천사 같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외국인에게 그처럼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것일까 ..  〈54쪽〉


 몽골 아저씨더러 “지하철 타고 가면 돼.” 하고 아예 말을 깐 채 이야기하던 고속버스 기사는 어릴 적부터 ‘외국인노동자를 보는 눈길’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겠지요.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며 반말 찍찍 내뱉던 그 택시기사도, 당신이 살아오는 동안 ‘외국인노동자든 한국인노동자든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는 눈매’를 다독이지 못했겠지요.

 몽골 아저씨가 아닌 미국사람이나 프랑스사람이었더라도 이렇게 반말로 함부로 이야기했을까요. 그때에도 귀찮다는듯이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았을까요.


.. 경찰은 사망사건 자체보다는 그 주변에 있는 불법체류자를 검거하는 일에 더 관심을 보였다 ..  〈112쪽〉


 문득, 몽골 아저씨 전화번호라도 하나 받아 적어 놓을 것을, 그냥 왔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언제가 될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아저씨가 한국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가기 앞서 한 번쯤 더 만나서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한국사람과 한국 사회와 문화와 부대끼면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들을 수 있다면 제 자신도 미처 못 느끼거나 모르고 있을 ‘치우치거나 얄궂은 생각’을 깨닫는 한편, 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몽골 아저씨이지만 서로서로 좋은 사람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 오마이뉴스에 띄웠던 파업 동영상과 아침신문에 보도된 내용 때문에 언론에서 엄청난 취재경쟁을 벌였다. 기자들은 타결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너무 늦게 온 것을 안타까워했다. 언론에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것이 ‘불법체류노동자들의 첫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었다. 이미 작년에도 한 차례 파업이 있었으니 첫 번째가 아니라고 알려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여튼 내용이 뭐든지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언론은 말릴 수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는 언론이 ‘이런 파업이 앞으로는 일반화될 것이다’라고 섣부른 전망을 내놓는 통에 영 거북스러웠다 ..  〈240쪽〉


 퍽 많은 사람들이 몽골이라는 나라에, 또 티벳이라는 나라에, 또 인도라는 나라에, 또 파키스탄과 네팔이라는 나라에, 성지순례라든지 여행이라든지 영혼을 찾는 나들이라고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갑니다. 이때 몽골로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제가 한국땅에서 만난 몽골 외국인노동자와 똑같은 차림과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며 ‘참 평화롭구나, 수수하고 고와 보이는구나.’ 하고 말할까요.

 네팔에서는, 파키스탄에서는, 인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버마에서는, 필리핀에서는, 베트남에서는 어떠할까요.


.. ‘한국이 얼마나 원망스러우냐, 한국인이 얼마나 미우냐’ 언니를 취재하러 온 기자가 제발 그런 대답을 좀 해 줬으면 싶은지, 자꾸 그렇게 물어 봤다. 그러나 언니는 딱 잘랐다. “경찰은 미워. 다른 사람들은 아니야.” 그 한 마디뿐이었다. 더 이상 캐내기를 단념한 기자가 이번엔 사진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언니는 머리를 다시 매만져 깔끔하게 뒤로 묶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활짝 핀 라일락꽃 아래로 가서 섰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꽃잎이 날리고 있었다 ..  〈178쪽〉


 저마다 제 고향나라에서는 평화롭고 수수하고 곱게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느낍니다. 한국땅에 와서 ‘가장 푸대접받고 일삯도 싼 거친’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마치 ‘낮은 사람’인 듯, ‘못사는 사람’인 듯, ‘가난한 사람’인 듯 잘못 알거나 느끼지 싶습니다.


..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만 특별한 배려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국적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체류자격과 상관없이 모든 법과 사회규범 적용이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나 국가권력이 ‘민족차별 행위는 곧 범죄행위라는 상식’을 지녔더라면 ..  〈125쪽〉


 남녀를 차별하는 눈길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하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눈길은 자연 삶터와 짐승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하고, 자연 삶터와 뭇 짐승을 차별하는 눈길은 학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이기도 할 테고, 학력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은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이 되기도 하고,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눈길은 시골사람이나 농사꾼과 공장노동자를 차별하며, 이렇게 차별하는 눈길은 우리 문화를 업신여기는 한편, 고유한 자기 삶을 못 찾고 돈-이름-힘에 끄달리면서 흔들리고 헤매이는 몸가짐이기도 하지 싶습니다.


.. 영세사업주들은 모두가 노동허가제가 실시되어 합법적인 외국인 고용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의 주장은, 실제와는 전혀 다르며, 연수제도 운영을 통해 나오는 온갖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술책임이 분명하다. 위에서 말한 연수생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 외국인력을 수입해서 저임금에 부리다가 쓸모없어지면 고장난 기계를 던져버리듯 본국으로 내쫓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권과 국제질서를 논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자, 이래도 우리가 마음 편이 미국을 욕할 수 있겠는가? ..  〈103쪽〉


 아이들을 어른과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자 인격체로 생각한다면 함부로 반말로 대꾸하거나 손찌검을 할 수 없겠지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비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건널목을 마음놓고 건너며 도서관이고 극장이고 느긋하게 찾아갈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놓겠지요. 남녀차별이 아닌 남녀평등 사회라면 뒷간 크기만 남녀 똑같이 할 것이 아니라, 여자가 볼일 볼 자리를 좀더 많이 마련해 놓을 수 있겠지요. 사람들이 우리 말과 글을 아끼지 않으니,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올바르게 쓰는 일을 떠나서 깨끗하고 알맞고 손쉬운 말과 글을 안 쓰면서 서양말과 한자말에 그토록 빠져들며 어려운 글을 쓰지 싶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높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일삯을 차별해서 주니까 해마다 입시병이 도져도 고쳐질 낌새가 없어요. 이런 우리 사회이니, 이런 나라 이런 땅에 돈을 벌겠다며 찾아오는 외국인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푸대접을 받고 괴로워하며 가슴아픈 일을 겪는구나 싶습니다. (4339.5.22.달./4340.12.9.고쳐씀.ㅎㄲㅅㄱ)


- 책이름 : 말해요, 찬드라
- 글쓴이 : 이란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2003.5.15.)
- 책값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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