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rine님의 "가난의 실체"

조지 오웰 님 이야기는, 이분 책 번역을 곧잘 하고 있는 박경서 님이 낸 <조지 오웰>(살림,2005)을 살펴보시면, 퍽 낱낱이 아실 수 있습니다. 넉넉하고 아늑한 삶하고는 평생 거리가 있는 채로 살다가 죽은, 그러니까 죽은 뒤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빛을 본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한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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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2일 화요일, 서울 중곡동 〈가자헌책방〉 아저씨는 수원에 있다는 공안 부서로 또 불려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주어진 죄란 ‘이적표현물 소지 및 판매’. 〈가자헌책방〉 아저씨는 공안 부서 경찰한테 어떤 책이 ‘이적표현물’에 들어가느냐 묻기도 하고, 공안 부서 경찰이 내민 ‘이적표현물 목록’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 ‘레닌’, ‘혁명’, ‘민족’, ‘통일’이 들어가면 거의 모두 이적표현물. 여기에 ‘리영희’라는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책은 가장 끔찍한(?) 이적표현물.

 공안 부서 경찰은 변두리 헌책방 아저씨 재산(책)을 함부로 빼앗아(압수) 간 것으로 모자라 영업방해(출두명령ㆍ심문)에 공갈협박(구속적부심에 소환하겠다)까지 일삼습니다. “현재 출판이 되어 있고, 왜 헌책방에서 약한 사람이나 데리고 와서 그러느냐, 교보나 영풍이나 출판사에 가서 그런 책 출판하지 못하게 해야지, 그런 책이 처음부터 출판 판매가 되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왜 무조건 헌책방에 와서 이런 책들 압수해 가고, 책들 팔지 말라고 그러느냐고. 헌책방이 힘이 없어서 그러느냐고. 이런 책들 다 새책으로 팔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하고 한숨을 쉬는 〈가자헌책방〉 아저씨. 공안 부서 경찰은 2차로 빼앗아(압수) 가려는 책을 헌책방 한켠에 따로 쌓아 놓았습니다. 어떤 책이 걸려들었는지 죽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돌베개), 《인도차이나 현대사》(여래), 《경제학개론》(풀빛), 《80년대 학생운동사》(형성사), 《필리핀 사회와 혁명》(공동체), 《일본 제국주의의 현실》(한마당), 《사회구조와 삶의 질서》(학문과사상사), 《한국자본주의와 사회구조》(한울), 《새로운 사회학의 이해》(나남),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창작과비평사), 《4월 혁명 자료집, 혁명재판》(학민사), 《소련공산당의 해체와 북한사회주의의 진로》(한울), 《장지연,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동아일보사), 《사회과학개론》(백산서당), 《미국재계를 움직이는 9명의 한국인들》(한언), 《일본의 지성이 본 안중근》(경운출판사), 《서양경제사강의》(한울), 《새계공산주의운동입문》(청년사),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이론과현실사), 《사회과학과 철학》(서광사), 《20세기 혁명사상》(동녘), 《대중문학이란 무엇인가》(평민사), 《거대 기계 지식》(생각의나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연구》(친구), 《과학기술혁명시대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중원), 《한국언론의 신뢰도》(한국언론재단), 《정치경제학개론》(한), 《사회계급론》(백산서당), 《자본주의 이행논쟁》(광민사), 《문화의 유형》(종로서적), 《현대 정치와 군부》(현암사), 《사회사상사》(사계절), 《정치적 커뮤니케이션론》(명문당), 《아리랑》(해냄), 그리고 《노자와 21세기》(통나무). (4340.6.13.물.ㅎㄲㅅㄱ)

========[ 다음 사진은, 공안 부서 경찰들이 압수한다는 `불온 이념 도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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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와 일본의 미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17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김순희 옮김 / 소화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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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다도와 일본의 美
- 글 : 야나기 무네요시
- 엮은이 : 구마쿠라 이사오
- 옮긴이 : 김순희
- 펴낸곳 : 소화(1996.3.30.)
- 책값 : 6800원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 학년을 마칠 즈음이면 담임을 찾아가 꼬박꼬박 ‘돌려 달라’고 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 일기장입니다. 담임은 아이들 일기장을 고스란히 모아서 간직하게 되어 있었는지, ‘일기장 돌려받기 바라는 사람?’을 물은 뒤, 따로 바라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살아가는 발자취를 하나하나 모으고 싶은 마음이 짙어서 잊지 않고 챙겼으나, 1학년 것은 미처 못 챙겼지 싶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고 난 뒤, 시험지를 하나도 안 버리고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모의고사 시험지도 차곡차곡 모았고요. 쪽지시험 종이도 모으고 싶었는데, 쪽지시험 종이는 못 챙겼습니다.


.. 다례에 빈부의 격차는 없다. 가난한 자라도 ‘차’를 즐길 수 있다.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이 다도에 관한 여러 일이다. 아니 인간의 다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공유라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  〈87쪽〉


 역사를 알 턱이 없었고, 무엇이 문화가 되는지 생각하기 어려웠던 그때였는데, 역사를 배울 때 ‘왕 이름만 외우기’ 시키는 것, ‘전쟁영웅이 무슨 싸움터에서 몇 사람을 죽였는가 자랑 외우기’ 시키는 것이 참 싫었어요. 살수대첩이니 무슨 대첩이니 할 때면, ‘그때 우리 군인들은 얼마나 죽었을까, 또 죽은 이들 남은 식구는 어떠했을까, 또 우리가 죽인 그 적군 병사들은 어떤 사람이고, 그 적군 병사들 남은 식구는 어떤 마음일까’가 떠오르곤 했어요.


.. 진정한 자유에 기인하는 창조미가 아니라 억지로 신기로움을 꾸민 집착의 흔적이라고 생각된다. 집착은 인간을 부자유로 빠지게 한다. 음악 세계에서도 근대에 와서는 소음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것도 자유를 추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기로움으로의 집착에 사로잡힌 폐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192∼193쪽〉


 그래서 꿈을 하나 꾸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살아간 발자취를 알뜰히 모아 놓고, 이것들을 한 자리에 보여주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를 말하겠다고.

 지금 제 책상서랍에는 국민학교 때 쓰던 이름표, 필통, 연필, 공책, 색종이, 판박이, 껌종이, 책받침 들을 비롯해서, 버스표와 전화카드와 야구장 입장권과 편지봉투와 학부모알림쪽지와 중학교 적 보충수업비 영수증과 그때 연예인 사진 오려모은 것 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4340.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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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에 보낸 글입니다. 아마 6월 12일에 실릴 듯합니다.


 《작가들》이라는 잡지 2007년 여름호를 보면, 1991년에 했던 이야기나눔(좌담)이 다시 실렸습니다. 이야기나눔 주제는 ‘인천문화의 재건을 위하여’. “서울이 문화적 활동무대를 제공해 주면, 인천은 언제든지 저버릴 수 있는 하나의 ‘대합실’과도 같은 존재로 격하되기 일쑤였지요 …… 인천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서울 등지로 이주하는 게 하나의 변함없는 유행으로 굳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247쪽)”라 말하는 대목이 보입니다.

 《김광식의 민주기행, 김광식의 아시아기행》이라는 책에, ‘상실의 시대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인천’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는 대학생과 택시기사하고 나눈 이야기가 실렸군요. “대기업의 소유자들과 임원들은 거의 다 서울에 삽니다. 그러니까 인천에 화이트칼라인 사무직노동자와 생산직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이 대종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통시설은 잘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합니다. 계속 타면 익숙해져서 덜 할지는 몰라도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283쪽)” 하는 이야기와 “예전 삼미슈퍼스타가 잘하니까 인기가 대단했습니다만, 김진영 감독을 쉽게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그게 만약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 팀이었다면 가능한 일입니까? 지방 방송국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도 없었어요. 서울 가서 쇼핑하고 서울 텔레비전만 보니까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극장식 스탠드바는 잘되고 자꾸자꾸 생겨납니다.(287쪽)” 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1975년에 인천 중구 송월동 3가 3번지에서 태어나 신흥동 안국아파트에서 고1 때까지 지냈고, 고2부터는 연수동에서 보냈습니다. 대학교 1년은 인천에서 다녔으나 날마다 네 시간 반을 길에서 버리니 고달프고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에 있기 싫어서, 2학년이 되던 해에 집에서 나와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자취를 합니다. 그러고는 인천에 돌아오지 않고 서울에서 삽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썩은 뒤 사회로 돌아온 다음, 대학교 교육도 초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제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에 홀로 안타까워하다가 그만둡니다. 1999년부터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2003년에 충주로 옮겨 이오덕 님 유고 갈무리를 하며 지냈어요. 이 일을 마친 다음 한 해 동안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며 지냈고, 시골에서 마을도서관을 꾸릴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벨서점〉 아주머니한테, ‘그런 도서관이라면 인천에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말씀을 듣고 모든 계획을 바꿔 고향인 인천에 오기로 마음먹고, 지난 4월 창영동으로 살림을 옮기고 6월 1일에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인천으로 돌아온 저를 반긴(?) 소식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중ㆍ동구를 싹 뜯어없애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세운다는 계획. 너비 50m 산업도로가 송림동과 금창동을 싹뚝 잘라버린다는 움직임. 열두 해 만에 돌아온 인천 길이 낯설어 1:5000 정밀지도를 사서 보노라니, 중ㆍ동구는 어디를 보아도 ‘재개발-환경정비 지구’입니다. 그래, 제 도서관은 끽해야 2013년까지 배다리 한켠에서 버티면 다행이겠더군요. 더구나 아시아경기대회 관광객한테 ‘지금 인천 모습’을 안 보이고픈 인천시장 정책까지 붙었으니.

 재개발이 모두 나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공동뒷간 한두 칸 덩그러니 있는 만석동과 인현동에 좀더 넓고 아늑한 공동뒷간 마련해 주는 공사는 반갑습니다. 다만, 새로 올린다 해도 스무 해를 못 버티고 허물어 다시 지어야 하는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50년, 100년도 넘은 지붕낮은 골목집을 죄 쓸어내야 할까요. 제 도서관이 깃든 건물은 1958년에 지은 것이나 아직도 멀쩡할 뿐 아니라 무척 튼튼합니다. 역사가 무엇이고 문화가 무엇일까요. 이처럼 한 자리에 고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과 마을 삶터가 역사요 문화가 아닐는지요. 지금 배다리는 첫째, 이웃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고, 둘째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고, 셋째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가 없는 깨끗함이 있으며, 넷째 서로 조용하고 알뜰히 골목길을 가꾸며 텃밭과 스티로폼 농사를 일구는 재미가 있는 한편, 다섯째 사람 냄새가 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여섯째 자동차가 씽씽 달릴 수 없어 아이들도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고 어르신도 걱정없이 마실할 수 있는 싱그러움이 있습니다. (4340.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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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6-11 17:15   좋아요 0 | URL
인천에서 대학생활을 한 저로서도 동인천-신도림 구간의 국철은 지옥철이라는 말이 딱 맞았죠. 강릉-인천간 버스가 개통되기 전까지의 국철 타기는 실로 끔찍한 기억이네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저녁나절, 아무리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빨래를 한다. 한 가지라도. 아니, 한 가지 빨래 말고 무엇이 더 있으랴. 입는 옷가지가 많지 않고, 입는 옷가지들은 단출한 녀석들인데. 오늘 몸이 고단하다고 빨래를 미루면 내일 일을 마친 뒤에는 몸이 안 고단할까. 오늘은 내일과 같고 모레는 글피와 같을 텐데, 그날 입은 옷을 그날 빨지 않으면 하루하루 쌓이며 늘어나는 빨래를 어떻게 짐지워 낼까.

 내 몫으로 주어진 빨래를 그날그날 하노라면 하루나 이틀 걸러 빨래감이 없는 때가 있다. 같은 옷을 이틀이나 사흘 내리 입을 때도 있으니까. 이럴 때면 머리 감으며 나오는 물을 빨래할 때에 쓰지 못하니 물이 아깝다. 걸레라도 함께 빤다. 그렇지만 걸레도 깨끗하여 안 빨아 주어도 될 때에는, 그냥 흘려버리는 물이 아쉽다. 어딘가 써 주면 좋을 텐데.

 함께 사는 식구가 한 사람 늘며 빨래감이 새로 생긴다. 이제는 날마다 한 가지 빨래쯤은 꼬박꼬박 나온다. 아침에, 또는 저녁에 빨래를 하면서 ‘이렇게 손을 놀리고 움직여 주면 몸이 굳을 일이란 없고, 죽는 날까지 이렇게 조물락조물락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내 몸 어디에 병이 깃들겠는가?’ 싶은 생각. 몸을 놀리지 않으니까,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때그때 할 몫을 다하려 하지 않고 미뤄 두거나 남한테 맡기기만 하니까, 자꾸자꾸 마음이 지치면서 깎여나가고, 마음이 지치거나 깎여나가면서 몸도 무너지거나 흐물흐물거리지 않을까.

 새 식구가 된 이가 내놓게 되는 빨래감을 큰 대야에 담고 물을 받는다. 적잖은 빨래감을 보며, ‘저 빨래 언제 다 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느긋하게 하나하나 빨면서, ‘그렇구나. 빨래란, 잔뜩 밀린 것을 치워내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새삼 느끼다. 빨래란, ‘한 벌 두 벌 깨끗해지는 옷을 보며 내 마음도 빨래 따라 깨끗해지는 일’이구나 싶다. 깨끗이 빨린 옷이 한 벌 두 벌 늘면서 내 마음이 차츰차츰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는 빨래만큼 집구석이 환해지는 일이 빨래로구나. (4340.6.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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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소 2007-06-07 19:13   좋아요 0 | URL
예전엔 몸과맘이 우울하면 부러 손빨래를 하곤 했어요..ㅎㅎ 요즘엔 귀찮고 피곤해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