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저녁나절, 아무리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빨래를 한다. 한 가지라도. 아니, 한 가지 빨래 말고 무엇이 더 있으랴. 입는 옷가지가 많지 않고, 입는 옷가지들은 단출한 녀석들인데. 오늘 몸이 고단하다고 빨래를 미루면 내일 일을 마친 뒤에는 몸이 안 고단할까. 오늘은 내일과 같고 모레는 글피와 같을 텐데, 그날 입은 옷을 그날 빨지 않으면 하루하루 쌓이며 늘어나는 빨래를 어떻게 짐지워 낼까.
내 몫으로 주어진 빨래를 그날그날 하노라면 하루나 이틀 걸러 빨래감이 없는 때가 있다. 같은 옷을 이틀이나 사흘 내리 입을 때도 있으니까. 이럴 때면 머리 감으며 나오는 물을 빨래할 때에 쓰지 못하니 물이 아깝다. 걸레라도 함께 빤다. 그렇지만 걸레도 깨끗하여 안 빨아 주어도 될 때에는, 그냥 흘려버리는 물이 아쉽다. 어딘가 써 주면 좋을 텐데.
함께 사는 식구가 한 사람 늘며 빨래감이 새로 생긴다. 이제는 날마다 한 가지 빨래쯤은 꼬박꼬박 나온다. 아침에, 또는 저녁에 빨래를 하면서 ‘이렇게 손을 놀리고 움직여 주면 몸이 굳을 일이란 없고, 죽는 날까지 이렇게 조물락조물락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내 몸 어디에 병이 깃들겠는가?’ 싶은 생각. 몸을 놀리지 않으니까,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때그때 할 몫을 다하려 하지 않고 미뤄 두거나 남한테 맡기기만 하니까, 자꾸자꾸 마음이 지치면서 깎여나가고, 마음이 지치거나 깎여나가면서 몸도 무너지거나 흐물흐물거리지 않을까.
새 식구가 된 이가 내놓게 되는 빨래감을 큰 대야에 담고 물을 받는다. 적잖은 빨래감을 보며, ‘저 빨래 언제 다 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느긋하게 하나하나 빨면서, ‘그렇구나. 빨래란, 잔뜩 밀린 것을 치워내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새삼 느끼다. 빨래란, ‘한 벌 두 벌 깨끗해지는 옷을 보며 내 마음도 빨래 따라 깨끗해지는 일’이구나 싶다. 깨끗이 빨린 옷이 한 벌 두 벌 늘면서 내 마음이 차츰차츰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는 빨래만큼 집구석이 환해지는 일이 빨래로구나. (4340.6.7.나무.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