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2.17. 철바보
어른이라는 몸을 입은 분한테 ‘철바보’라는 낱말을 쓰면, 스물 가운데 열아홉이 못 알아듣는다. 이분들한테 “철새가 어떤 새인 줄 아시나요?” 하고 여쭈면 으레 ‘안철수’ 씨를 떠올리며 웃는다.“"안철수 씨는 우리나라 벼슬꾼 가운데 아이를 어질게 돌볼 뿐 아니라 아이가 하는 말에 귀기울이면서 배우는 줄 아시나요?” 하고 여쭈면 스물 가운데 열아홉이나 스물 모두 다 모른다고 한다.
안씨는 ‘철수’가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인 “대화(이야기) + 타협(손잡기)”이라는 길을 몸소 보이는 거의 하나뿐인 사람이다. 다만 안씨도 잘못하거나 못 보는 대목이 있다. 안씨도 아직 시골을 모르고, 책도 덜 읽었고, 백신이 얼마나 사나운지 모르며, 푸른길(환경정책)이나 우리말길이나 글살림길을 너무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안씨를 눈여겨보되, 아이하고 지내는 살림길을 눈여겨볼 뿐, 이분이 아직도 한참 헤매는 벼슬질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아이라는 몸을 입은 사람한테 ‘철바보’라는 낱말을 쓰면, 열 가운데 대여섯은 바로 알아듣고, 너덧은 조금 생각해 보고는 이내 알아듣는다. 아이들한테 ‘철새’를 물으면, 제비나 기러기나 고니나 청둥오리나 여러 새이름을 떠올린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철 + 새’라는 낱말만 바라보고, ‘철새’를 가리키는 ‘철’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네철을 일컫느냐고 되물으면서 놀란다. 여기에 ‘철들다·철없다’라는 낱말을 곁들이면 아이들은 어느새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철새, 되게 대단한 새네!” 하고 조잘조잘 수다판이 벌어진다.
누가 철없을까, 누가 철을 모를까?
어른이라는 몸을 입고서 책깨나 글깨나 힘깨나 말깨나 돈깨나 이름깨나 주무르는 분들은 ‘문해력’이 있을는지 모르나, 이분들은 말빛과 말씨와 말넋과 말결과 말눈과 말길과 말살림과 말사랑이 도무지 없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우리말빛’을 느끼고 듣고 익히면서 ‘우리말꽃’을 피우는 ‘우리말씨’를 가꾸고 사랑하는 하루이면 곱고 즐겁다.
부산마실을 하며 네 군데 책집에 들러서 서른 자락쯤 새로 샀고 틈틈이 읽는다. 어느 책은 애틋하고, 어느 책은 허울스러운데다가 거짓말이 가득하고, 어느 책은 옮김말씨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창피하고 갈피를 못 잡는다. 어느 책은 아이들이 먼먼 뒷날 태어나고 자라는 길에 물려줄 만하다면, 어느 책은 참 부끄러워 불태울 만하지만, 그저 모셔놓고서 거울로 삼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여름에 춥도록 ‘집과 쇠(자가용 및 대중교통)’를 얼리는 나라와 사람들이 철바보이다. 겨울에 덥도록 집과 쇠를 달구는 나라와 사람들이 철딱서니없다. 여름에 땀흘려 걷고 일하기에 어질다. 겨울에 손발이 얼고 고드름이 맺히는 보금자리이기에 철든 슬기롭다.
너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 셋을 늘 마음에 담고서 말씨와 글씨를 일구고 나눌 줄 알기에, 철들어가고 무르익어간다. 너는 철사람인가, 아니먼 철바보인가, 나는 겨울새와 여름새를 얼마나 동무삼는 보금자리인가, 어느덧 겨울철새가 날아오른다. 먼먼길을 새끼새를 앞장세우고서 옛터로 돌아간다. 바야흐로 여름철새가 잎샘바람을 타고서 날아오려고 한다. 아듭히 먼먼 바닷길을 씩씩하고 다부지게 가를 줄 알며, 새끼새를 사랑으로 돌보아 가르쳐서 이 먼먼 길을 돌아갈 줄 아는 철새란 "철을 알고 읽는 새"이다.
우리는 철바보 아닌 철사람이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철없는 죽음굿을 멈추고서 살림노래로 보금자리부터 사랑으로 보살피는 참어른으로 이 하루를 살아갈 일 아닌가?
철노래를 부른다. 철씨를 심는다. 철꽃을 품는다. 철글을 쓴다. 철이웃을 바라본다. 철살림을 짓는다. 다음달 부산에서도 ‘이오덕 읽기 모임’을 철눈으로 나누는 푸른자리를 그린다. 나는 이야기씨를 심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오늘을 그린다.
ㅍㄹㄴ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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