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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 우리어린이 자연그림책, 도시 속 생명 이야기 2
이태수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 글/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우리교육(2005.9.30)
- 책값 : 9800원
우리들 사람도 자연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연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있지, 사람만 달랑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과학자는 자연을 사람힘으로 다스리려고 애를 쓰고, 어떤 과학자는 자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끼리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도 합니다.
제가 죽은 뒤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세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살' 수도 있습니다. 무슨 약을 먹는다면 말이지요. 그래, 이럴 때,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는 약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예전에, 그러니까 이제 갓 열 살 남짓 할 만큼 어릴 적에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살 수 있는 약'을 만들거나 찾고 싶다고 꿈꾸었습니다. 중국 아무개 왕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1000년을 살고 1만 년을 살면 무엇무엇을 해야지… 하고도 꿈꾸었고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서 무엇무엇을 해야지… 하는 꿈도 꾸었습니다.
언뜻 보면 부질없는 헛꿈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철없는 사람으로서 품음직한 꿈이기도 하지 싶습니다. 아무튼, 이런 마음, 나 혼자 안 죽고 언제까지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내 자신을 `자연 가운데 하나'라고 느끼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는 이웃이나 동무나 식구를 제대로 거들떠보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살려면 같이 살아야지, 나 혼자만 안 죽으면 되나요? 이리하여 이제는 죽음을 꿈꿉니다. 너무 오래 살지 말자고, 일찌감치 죽자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살 만큼만 살자. 더도 덜도 말고 나한테 주어진 만큼 살자'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군말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군소리 좀 늘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림책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를 이야기하자니 이런 군소리가 없고는 도무지 이 책 이야기를 못할 것 같았어요. 이 그림책은 아파트로 숲을 이룬 어느 도심지 툇마루 창가에 둥지를 튼 황조롱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황조롱이 식구는 어쩌다가 아파트숲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 집 툇마루 창가에 둥지를 틀었고, 마침 그 그림쟁이는 이런 새나 벌레나 꽃이나 나무를 찬찬히 그림으로 담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실제로 자기가 보고 겪은 황조롱이 식구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았어요.
풀이나 나무라고는 아파트를 새로 지을 때 돈 주고 옮겨다 심은 것밖에 없는 곳에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흙이고 땅이고 다 뒤덮은 곳에서, 나뭇가지 하나, 먹잇감 하나 찾기 어려운 그 아파트숲에서 황조롱이는 새끼를 치고 길러냅니다. 그리곤 떠나지요.
사람만 살겠다고 만든 아파트숲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파트숲 한켠에 어렵사리 자리를 얻어서 사는 `사람 아닌 목숨', 사람과 똑같이 `자연 가운데 하나'인 목숨이 있습니다. 이 짐승들 목숨은 우리 사람 목숨하고 저울로 달았을 때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나올까요?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요?
글쎄, 잘 모르겠지만 둘 모두 똑같지 않을까요? 누가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할 것 없이 말입니다. 아파트 툇마루 창가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든 참새가 둥지를 틀었든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한 새입니다. 그 새 가운데 비둘기가 `닭'처럼, 아니 `사람이 고기닭으로 길들여 버린 그 닭'처럼 바닥에 떨어진 모이만 찾아 먹는다고 해도 똑같이 소중한 새입니다. 일자리와 잘곳을 잃은 한뎃잠이가 길바닥에서 뒹굴어도 모두모두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듯 말입니다.
그림책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를 즐기면서 우리들 사람 목숨, 자연 목숨, 사람 삶터, 자연 삶터를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사람만 살아도 좋은 세상인지, 사람이 자연과 함께 오순도순 지내면 좋은 세상인지 느긋하게 되새기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