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이야기 - 소년한길 어린이문학 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어린이책 이야기
- 글쓴이 : 이오덕
- 펴낸곳 : 소년한길(2002.7.30)
- 책값 : 13000원


.. 쫄아들고 찔리고 하면서 산다면 그것은 감옥살이다. 그까짓 대학교 졸업을 하면 뭣 하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모두가 잘 어울려 같이 살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나? 이 훌륭한 말, 훌륭한 철학, 아이 입에서 나온 이 귀한 말을 모든 어머니들이 듣고 깨달아야 하겠다 ..  〈35쪽〉


 이오덕 선생님이 쓴 어린이문학 비평에는 ‘작품 소개’나 ‘작품 비평’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삶, 사회, 문화, 삶터 이야기가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면 좋을 모습, 우리 스스로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비틀리거나 잘못된 길을 가는 안타까운 모습 이야기가 함께 있습니다.


.. 좋은 말이란 것은 아이들도 잘 알 수 있는 말, 아이들의 말이란 뜻이다. 동화나 소년소설은 아이들의 말로 쓰는 문학이다 ..  〈100쪽〉


 문학은 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평도 말로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말로 가르칩니다. 그래, 우리 삶에서 ‘말’이란 아주 중요해요. 무슨 일을 어디에서 누구하고 어떻게 하든 반드시 있어야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바로 이렇게 중요한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찬찬히 가려서 쓰려고도 않습니다. 너무 엉뚱하게, 잘못되게 쓰고 있습니다.


.. 아이들에게 주는 작품을 제대로 보려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잘 알아야 할 것이고,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주어야 하나 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없이 작품을 읽게 되면 그 작품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도 된다. 그리고, 문학작품에 관한 이론을 늘어놓은 글을 읽는 것은 참고가 될 수도 있지만, 어려운 말로 된 논리를 머리에 놓어 놓는 것은 대단히 해롭고 어리석은 일이다 ..  〈163∼164쪽〉


 어른문학 비평이든, 어린이문학 비평이든 누구나 해야 합니다. 문학을 읽은 사람이라면, 문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수만이? 전문비평가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야지요. 문학을 즐기는 사람 모두, 글을 읽을 수 있는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학도, 문학비평도 한 걸음 나아가 우리 삶을 찬찬히 담는 아름다운 자리로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곧, 문학을 빚어내는 사람은 자기가 쓰려는 작품을 왜 쓰고 누가 읽도록 쓰며 쓰는 자신은 얼마나 즐거운가를 깨닫고 느껴야 합니다. 문학을 읽히는 사람은 왜 읽히려 하고 무엇을 어떻게 누구한테 읽히려 하는지를 생각해야겠지요. 비평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것이지요.

 덧붙여, 어른문학 비평이나 어린이문학 비평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루는 작품’만 다를 뿐이지, ‘문학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문학이 우리한테 어떤 값어치를 하고 어떤 즐거움을 선사하고 어떻게 다가오는가를 헤아리는 매무새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이리하여 어린이문학 비평을 알뜰하게 열어젖힌 이오덕 님 책은, 어린이문학 비평으로만이 아니라 어른문학을 헤아리는 데에도 길잡이가 됩니다. 문학비평뿐 아니라 문학을 즐기며 살아가는 우리들 마음가짐을 추스르는 데에도 보탬이 됩니다. 꼭 책이란 것을 즐길 때뿐 아니라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건 우리들 몸가짐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은가를 펼쳐 보여주는 고마운 말씀으로도 자리잡아요. (4339.4.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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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 -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 존 버거 & 장 모르 도서
존 버거 지음, 장 모르 사진, 차미례 옮김 / 눈빛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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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제7의 인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옮긴이 : 차미례
- 펴낸곳 : 눈빛(2004.11.11)
- 책값 : 12000원


 지난주 목요일, 몽골에서 우리 나라로 일하러 온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시골 버스역으로 갔습니다. 버스가 언제쯤 오는가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한뎃잠이(노숙자)나 부랑자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가방 하나 들고 버스역 둘레를 서성거리더군요. 나중에야 이이가 서울로 가는 버스를 한 대 놓치고(한글을 읽을 줄 몰라서, 서울 가는 버스인 줄 못 알아보았지요. 옆에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고) 있던 몽골 노동자인 줄 알았습니다.


.. 그들은 자기들의 노동을 제공하러 온다. 그들의 노동력은 기성품이다. 이제부터 그 노동력 덕분에 생산에 이익을 얻게 될 공업화된 국가들은 그 노동력을 생성시키는 비용은 전혀 부담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뿐 아니라 중병에 걸린 이민노동자나 너무 늙어서 일할 수 없게 된 이민노동자를 부양하는 경비 역시 부담하지 않는다. 도시화된 국가의 경제에 관한 한 이민노동자들은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이다 ..  〈64∼65쪽〉


 한국에 한 해 동안 있었다는 몽골 아저씨는, 시골(충북 음성과 충주 신니면 쪽)에서 플라스틱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는데, 일감이 없어서 돈을 더 벌 수 없어서 서울에 있는 누이한테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누이는 한국 남자한테 시집가서 살고 있다더군요.


.. (신체)검사를 받은 사람은 가슴과 팔목에 일일이 자기 번호가 잉크로 씌어진다 ..  〈55쪽〉


 몽골 아저씨는 “다들 몰라 몰라 해, 당신, 사람 좋아, 사람 좋아.” 하고 띄엄띄엄 말합니다. 무슨 소리인가는 한참 뒤에 알았는데, 길을 물어 보았을 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이 다들 ‘몰라(요)’ 하고는 가 버린다는 것. 가던 길을 멈추고 길을 알려주는 한편,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함께 길을 찾아 주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는 것.


.. 그의 어머니는 그의 결심에 찬성을 한다. 그것은 가문의 문제이고 가문 전체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이 가는 ‘외국’은 싫어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집 밖으로 걸어나가게 될 때쯤엔, 어머니는 그가 어떻게 태어났던가를 기억해 낸다 ..  〈35쪽〉


 몽골에서 온 아저씨한테 이름을 묻지 않았군요. 참 바보입니다. 이름도 묻지 않다니. 하긴. 그 아저씨는 한국땅에서 ‘외국인노동자’라는 이름 하나만 달랑 받을 뿐, 그 어떤 노동자 대접, 사람 대접은 못 받을 테지요. 어떤 이는 ‘괜히 남의 나라에 와서 노동력을 빼앗는 사람’으로 볼 테고, 어떤 이는 ‘고향을 떠나 돈을 벌어 돌아가려는 사람’쯤으로만 볼 테지요.

 이 아저씨는 제 고향나라인 몽골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수많은 남녘 관광객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찾아가는 ‘관광지 몽골’ 사람 가운데 하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네다섯 해 뒤에는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녘사회 물이 들 대로 들어서. 하지만 남녘 남자한테 시집온 그 아저씨 누이는 앞으로 딱 한 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나라, 겨레가 쓰던 말도 잊을 테지요. 이름도 없이 얼굴도 없이 아무런 자취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겝니다. (4339.4.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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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아름다운가게와 북오프, 그리고 헌책방의 미래.."

헌책방이든 미용실이든 구멍가게든 비디오대여점이든 고기집이든 술집이든 밥집이든 어디이든 다 `장사'를 하는 곳임은 틀림없습니다. 헌책방도 장사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돈 버는 장사'만 하는 곳인지, `돈은 돈대로 벌면서 다른 마음도 함께 나눌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이것은 헌책방뿐 아니라 다른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발소에서 사람 살아가는 자취를 느끼고, 문방구에서 우리가 살아온 자취를 헤아리는 사람이 있고, 밥집이나 술집에서 새삼스러운 맛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요. 헌책방도 장사이지만, <아름다운가게>도 장사이고, 한국땅에도 들어온 <북오프>도 장사입니다. 이들이 `장사'를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면서 물건을 파는 쪽도 `사람'이고, 장사하는 쪽에 가서 물건을 사는 쪽도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 있다는 대목이 바로 `문화'일 테며, 이런 문화를 미시로 보든 거시로 보든, 또 생활문화로 보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재래시장에 가서 살가움을 느끼건 말건, 우리는 그 시장골목에서 `사야 할 물건'을 사면 그만입니다. 그런 한편, 시장골목을 구경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시장골목을 구경하는 재미가 `문화'가 될 테지요. 어쩌면 큼직한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트는 어디를 가나 똑같기 때문에 `다양성 있는 문화'는 없겠지요. 이와 달리 재래시장은 어느 동네 어느 시골을 가나 모두 다르고(요새는 차츰 닮아가면서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지만), 헌책방도 어느 곳을 가나 개성과 `갖춘 책'과 `주인장 성격'이 모두 달라서, 책을 보는 문화 다양성이 참 이래저래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이 다양성을 `조잡한 책을 정신없이 지저분하게 쌓아놓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ㅎ신문 ㅇ기자처럼).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돈벌이'를 하는 것인데, `돈만 벌려고 출판사에서 일하는지', `책 하나 내는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서 돈도 버는지'를 따져야겠지요. 책방(헌책방과 새책방 모두)에서 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돈만 버는 목적'이냐 `돈은 돈대로 벌면서 다른 일도 하느냐'는 중요합니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요. 창작을 해서 책을 내는 사람도 `돈벌이'만을 생각하는가요? 나라밖에서 나온 좋은 책을 우리 말로 번역을 해서 내는 사람도 `돈벌이'만을 생각하는가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교수가 `돈벌이'만을 생각하나요? 헌책방 주인이 책을 사고파는 일, 작가와 번역가가 책을 내는 일, 출판사에서 책 만드는 일, 교사와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똑같은 문화 테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지조각 하나 보이지 않고, 으리으리한 새 건물을 지은 `씨지브이'에서 보는 영화하고,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쓰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하고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비디오로 빌려보는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영화하고 감동이 다르다고 합니다만, 큼직한 화면으로 소리도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보는 `느낌'이 다른 것일 테지, 영화 줄거리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연기하는 모습이나, 화면에 나오는 온갖 모습이 `달라서' 감동이 다르지는 않겠지요.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과 헌책방 주인장과 책손이 얽히는 일과 헌책방이라는 곳, 이런 것을 `장사'인 한편 `문화'로 보면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책만 딥다 파면 무슨 즐거움이 있겠어요? 천재가 되려고 읽는 책이 아니요, 무슨 전문가가 되려고 읽는 책도 아니요, 무슨 귀한 책을 싼값에 캐내어 나중에 한 밑천 보려고 읽는 책도 아닙니다(뭐, 이렇게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좋아서 즐기는 책이듯, 헌책방도 `동네책방이나 도서관처럼' 좋아서 찾아가는 곳이 되기 마련이며, 좋아서 찾아가면서 주인장하고 말문도 틀 수 있고, 그러다가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이러는 가운데 뭐 크고작고를 따질 것 없이, 서로서로 `삶'을 나누게 될 테고, 이런 것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문화'라고 말한다 하여, 이것이 무슨 거창한 어떤 출판머시기거시기라고 보지 않고, 그럴 것도 없고, 그런 것과 잇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가게>는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고, 돈 걱정 없이 수없이 이 나라 구석구석, 그것도 아주 교통(목)이 좋은 자리에 가게를 얻습니다. <아름다운 가게-헌책방 : 뿌리와 새싹>은 집 기증을 받았고, 인테리어와 설비 갖추는 것도 기증을 받았습니다(재활용품으로 자원봉사자가 했다지만, 재활용품과 자원봉사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겠지요). <아름다운 가게>는 이 나라 온갖 유명인사가 다 참여를 하면서 돈과 물건을 거저로 기부해 주는 가운데, 중앙일간지에서 홍보광고(홍보기사)도 틈틈이 때려 주는 한편, 방송이나 다른 매체도 아주 쉽게 탑니다. 냐오 님께서는 이런 것을 잠깐 생각해 주시면 좋겠군요. `문화공간'으로 시작했다는 <아름다운 가게>라지만, 그 `문화공간'에서 말하는 `문화'라는 게 무엇일까요? 한 가지 더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국내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자기가 농사를 짓든 짓지 않았든.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곡식은 `수입농산물'입니다. 그러면 이제 수입농산물을 얼마든지 값싸게 사먹을 수 있으니, 이 나라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다 없어져야 할 퇴물들일는지요? 국산농산물을 먹자 하는 소리나, 국산농산물을 지키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 농사꾼은 쓸모없거나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냐는 거지요. `헌책방'도 이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쩝...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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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아름다운가게와 북오프, 그리고 헌책방의 미래.."

<아름다운 가게>는 공공성을 내세우지만, 실질로는 `사업' 성격을 버릴 수 없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있기는 하지만 상근자가 있어서 상근자한테 월급을 주어야 하고, 가게 운영에 들어가는 전기세나 여러 가지 세금도 내야 하지요. 이런 데에 들어가는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책을 사고파는 일은 `장사'인 한편 `문화'입니다. 그래서 헌책방 주인들은 `개인사업주'인 한편, `문화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까닭도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아름다운 가게]를 놓고 살필 때 어느 쪽이 `공익-공공성'을 더 생각하고, 어느 쪽이 `사익-이윤'을 생각하는지 칼로 금긋듯 자를 수 없습니다. 또한,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 가운데 적잖은 비율을 차지하는 책은 `도서관에서 버린 책'입니다. 지금 도서관법에서는 `도서관 자료는 무조건 폐기'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도서관은 자기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셈이 되고, 헌책방이 외려 `도서관에서 내버리는 책이 사라지지 않도록 챙기는 구실'을 하는데요, 이런 것들을 두루 살피면서 `헌책방'을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 댓글 단 분한테 드리는 이야기. 일본 북오프는 `재고책 중심'입니다. 일본 책 유통구조에서는, 새책(신간)은 석 달이 지난 뒤에는 `구간'으로 처리가 됩니다. 이때 일본 헌책방조합에서는 이 책을 재고도서로 다루어 `몇 부를 받아들여 헌책방에 유통시킬 것인가를 결정'하지요. 이때 헌책방조합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버리는 책을 북오프에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오프는 이런 재고시장만 연 것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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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뻔한 줄거리, 커다란 감동..."

시공사 판보다 일과놀이 판이 값도 싸긴 하지만, 김라합 님 번역이 훨씬 매끄럽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읽기에도 부드럽고 좋습니다. 말도 훨씬 쉽지요. 다만, 일과놀이는 정식계약을 하지 않은 판이고, 시공사는 정식계약을 한 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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